2024년 10월 5주차 |
BOOK SUMMARY | ||
유비는 왜 그랬을까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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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위안 (지은이), 정주은 (옮긴이) 출판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출간 202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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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기어코 인생을 바꾼 전략을 세운다 | ||
도서요약 보기유비는 왜 그랬을까 1 도원에 서다 뜻을 세우고 세상을 보자 때론 우연한 만남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유비와 장비의 만남이 그러했다. 어느 날, 유비는 탁현(涿縣) 성문 앞에 이르러 벽에 붙은 방을 보았다. 몇 구절 읽지도 않았는데 심란해진 유비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장비가 그 한숨의 의미를 넘겨짚고 버럭 호통쳤다. “사내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힘을 내야 할 시기에 어찌 한숨이나 쉰단 말이오?” 유비가 돌아보니 체구는 우람하고 표범 머리에 고리눈, 제비턱에 호랑이 수염을 가진 사납기 그지없는 장부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유비와 장비의 첫 만남이다. 유비와의 첫 만남에서 이 호통이 없었다면 장비는 장판파에서 활약하지 못했을 것이고, 당연히 유비도 시대의 풍운아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숨 뒤에 끼어든 호통이 없었다면 유비는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고 그 자리를 떠났을 테니 장비와는 스치는 인연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때는 후한영제 중평 원년(서기 184년)이었다. 기주(冀州) 거록군(鉅鹿郡)의 장각(張角), 장보(張寶), 장량(張梁) 삼형제가 태평도(太平道)를 펼친다며 신도를 이끌고 ‘황건의 난을 일으켰다. 여기에 곤궁한 삶에 지친 백성들이 너도나도 합류하니 어느새 그 수가 수십만으로 불어났다. 후한영제는 급히 중랑장(中郎將) 노식(盧植), 황보숭(皇甫嵩), 주준(朱儁)에게 정예병을 이끌고 황건적을 토벌하라 명했다. 그리고 황건적 소탕에 힘을 보탤 의병을 전국 각지에서 모집했다. 유비와 장비가 본 방이 바로 유주자사(幽州刺史)가 의병을 모집하려고 붙인 것이다. 그런데 왜 방을 본 유비는 한숨을 내쉬고 장비는 그런 유비를 꾸짖었을까? 보통 자신의 직간접 경험에 비추어 상대의 성격을 진단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행동이나 말을 듣고 으레 성격이 어떻다는 식의 선입관을 가진다. 그러나 장비의 겉모습만 보고 이렇게 넘겨짚었다면 고정관념의 덫에 빠진 것이다. 장비의 우락부락한 생김새는 ‘걸걸한 사람으로 떠올리는 전형적 특징이다. 그러나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장비는 세심하고 기민한 사람이었다. 장비는 방을 보자마자 성취욕이 들끓었다. 장비는 평범한 백성의 신분을 뛰어넘어 출세하길 원했다. 하지만 후한 말 계층 간의 이동은 매우 어려운 야망이었다. 그러던 차에 황건의 난이 일어나 천하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것이 하늘이 준 기회임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장비는 군에 들어가 황건적을 토벌하기로 뜻을 세웠다. 사람은 대개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기 꺼린다. 여럿이 무리를 이룬 뒤에야 용기를 내 두려움에 맞서려고 한다. 이것은 ‘소속 욕구다. 장비는 분명 배짱이 두둑하고 호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대에 들어가 적과 싸워본 적이 없으니 내심 두렵지 않았을 리 없었고, 그렇게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온 유비의 한숨에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유비도 자신과 같은 욕구가 있다고 넘겨짚고 든든한 동반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장비는 유비의 한숨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냈다고 자신했지만 사실 유비의 속마음은 훨씬 복잡했다. 그러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일지라도 장비의 호통은 유비의 ‘소속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첫 만남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자원과 실력을 비교해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쪽으로 서열을 정하기 때문이다. 장비는 유비와 사귀고자 했을 뿐 그의 아우가 될 작정은 아니었다. 그러니 장비가 스스로 신분을 밝히고 부를 자랑한 것은 성격이 호탕해서이기도 하지만 부유한 집안을 내세워 우위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비와 유비는 둘 다 하층민이었지만 처지는 천양지차였다. 사회적 서열을 따지면 유비가 한참 밀렸다. 유비가 솔직히 답한다면 관계의 우위는 장비에게 넘어간다. 한마디로 장비의 졸개 노릇이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쉽사리 무릎 꿇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을 본 순간,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야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유비의 야망은 장비의 꿈과는 수준이 달랐다. 여기에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할까 늘 염려스러웠다. 이것이 장비가 오해한 그 ‘한숨이 나온 진짜 이유다. 뚜렷한 신념이 리더십이다 장비는 장객을 시켜 제사에 쓸 물건을 준비했다.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고 향을 사르며 의형제를 맺었다. 세 사람은 한목소리로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를지라도 이미 형제가 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어려울 때 구해주고 위태로울 때 도와주며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안정시키려 합니다. 한날한시에 태어나기를 바랄 수는 없었으나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라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마음을 살피시어 의리를 배신하고 은혜를 잊으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주십시오!” 이 결의는 ‘계약에 의한 혈연관계를 탄생시켰다. 이후 세 사람은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도리를 다했다. 이것이 바로 ‘도원결의다. 세 사람이 서언에서 쓴 “한날한시에 태어나기를 바랄 수는 없었으나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란다.”라는 말은 후대에 의형제를 맺는 이들도 꼭 쓰는 표현이 되었다. 형님이니 ‘아우니 하는 호칭은 혈연의식을 일깨워 서로의 거리를 줄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이것이 ‘친족 호칭 효과다. 실제로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도 친족어로 부르면 이런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유비, 관우, 장비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한패가 되었으며 성대하고 공개적인 결의 의식을 통해 결속력을 다졌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관우와 장비의 열정은 ‘의기투합이 일으킨 효과다.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면 그들이 가진 뜻은 더 단단해지고 극단적으로 흐른다. 이를 ‘집단 극화라고 한다. 장비와 관우는 원래 각자 참군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동료를 모아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큰 잔치를 열고 마을의 호걸들을 모았다. 소식이 전해지자 일 벌이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제 발로 찾아와 합류했다. 그리하여 며칠 만에 300여 명이 모였다. 중요한 것은 유비, 관우, 장비가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 그 자체였다. 유비, 관우, 장비가 ‘황건적 토벌이 아니라 ‘황건적 추종을 외치며 조정에 맞섰더라도 300명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군중심리는 맹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중 절대다수는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유비, 관우, 장비는 무기, 갑옷, 말 등 참군(參軍)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했다. 가난뱅이인 유비와 관우에게 돈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 모든 돈은 장비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형편이 넉넉해도 혼자 힘으로 다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누군가 달려와 이르길 상인 두 사람이 말 떼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들은 기주 중산군(中山郡)의 대상인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이었다. 두 사람은 유주 북쪽의 선비족 마을에서 말을 사들여 기주에 파는 일을 해왔다. 기주는 유주의 남쪽에 자리해 있는데 기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유주를 거쳐야 했다. 말 떼를 몰고 탁현에 닿은 두 사람은 조정에서 황건적을 토벌할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왜 유비, 관우, 장비를 찾아온 걸까? 장사꾼이라면 모름지기 이해득실을 잘 따진다. 장세평과 소쌍은 전쟁이 벌어지면 장사는 글렀음을 잘 알고 있었다. 황건적이든 관군이든 말들을 강제로 빼앗아 갈 게 분명했다. 어차피 적자를 피할 수 없다면 손해를 입기 전에 뭐라도 거둬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유비, 관우, 장비에 관한 떠들썩한 소문을 접했다. 그들은 말들을 유비, 관우, 장비에게 투자하기로 정하고 달려온 것이다. 어쩌면 훗날 투자 수익을 챙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게 얼마이든 아예 다 뺏겨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판단했다. 서주의 주인으로 서다 자신이 빛날 위치에 서라 반동탁연합군은 기세등등하게 사수관(汜水關)으로 향했다. 소식을 들은 동탁은 휘하의 맹장 화웅(華雄)을 보내 맞섰다. 제북상 포신이 먼저 공을 세울 욕심에 아우 포충을 내보냈으나 화웅의 칼에 두 동강 나고, 이어 원소가 연합군 최고의 맹장 손견을 내보냈으나 그 또한 화웅에게 패했다. 연달아 적장을 물리치고 기세가 오른 화웅은 연합군을 욕하며 싸움을 걸었다. 원소는 다급히 대책 회의를 열었다. 유비는 천하의 난다 긴다 하는 호걸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용기를 낸 유비는 관우, 장비에게 눈짓해 공손찬을 따라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걸출한 인물들이 모인 그곳에서 유비 삼형제는 자리에 앉을 자격조차 없었다. 그저 공손찬의 수행원으로 뒤에 뻣뻣이 시립해 있는 신분이었다. “누가 나가 화웅을 상대하겠소?” 한때 기백이 넘치던 연합군 수장들은 용맹한 손견이 패하자 크게 위축돼 있었다. 군막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원소가 사방을 둘러보는데 문득 공손찬의 뒤에서 냉소가 들려왔다. 유비 삼형제였다. 원소가 세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딱 보니 셋 다 기골이 범상치 않은 데다 본 적 없는 얼굴이라 궁금한 마음에 공손찬에게 물었다. “공손 태수, 뒤에 서 있는 이들은 누굽니까?” “이 사람은 저와 어릴 적 동문수학한 벗입니다. 현재 평원현령을 맡고 있으며 이름은 유비, 자는 현덕으로 한실 종친입니다.” 공손찬은 유비의 신분 키워드 세 개, 즉 그의 ‘오랜 친구, ‘평원현령, ‘한실 종친을 한꺼번에 밝혔다. 공손찬이 유비를 ‘한실 종친이라 소개한 데도 이유가 있다. 천하 사람들이 다 아는 호걸들 앞에 서기에 ‘현령은 급이 맞지 않았다. 때문에 ‘한실 종친으로 금칠을 좀 해줘야 했다. 물론 공손찬은 ‘선의였으나 유비는 당혹스러웠다. ‘한실 종친이 수행원 노릇이나 하고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신세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데 유비의 당혹감과 별개로 원소는 ‘한실 종친이라는 말에 혹했다. “유현덕께서 한실 종친이시라니 자리를 마련해라.” “일개 현령인 제가 어찌 자리에 앉겠습니까?” “나는 그대의 관직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황가의 후손이며 큰 공을 세웠던 것을 존중하는 것이니 더는 사양치 마시오.” 이번에도 ‘한실 종친이 위력을 발휘했다. 동한 말은 서역에서 의자가 전해지기 전이라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옆에 있던 시종이 돗자리를 가져와 섬돌 아래 말석에 깔았다. 유비가 좌정하니 관우와 장비가 늘 그랬듯이 두 손을 허리에 대고 그의 뒤에 섰다. 이때 밖에서는 화웅이 격한 말로 도발하고 있었으나 다들 대응책을 고심할 뿐이었다. 원소가 탄식했다. “나의 상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가 아직 당도하지 않은 것이 한이로다. 둘 중 한 사람만 이 자리에 있었어도 화웅 따위가 저리 날뛰게 두었겠는가! 설마 이 많은 군사 중에 화웅 하나 쓰러뜨릴 자가 없다는 말이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데 별안간 큰 외침이 들렸다. “제가 나가 화웅의 목을 베어 장하(帳下)에 바치겠습니다!” 바로 관우였다. 원소가 기쁨을 드러내며 물었다. “이 자는 누구입니까?” “지금 무슨 직책을 맡고 있습니까?” “지금 유현덕을 따르며 마궁수로 있습니다.” 원소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원술이 버럭 소리쳤다. “한낱 궁수 따위가 어찌 감히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우리 군중에 대장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게냐! 여봐라, 이놈을 두들겨 패서 내쫓아라!” 원술은 왜 발끈했을까? 그는 가문과 신분을 매우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조조가 나서서 수습했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이자가 큰소리치는 것을 보니 진실로 재주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한번 싸우게 해서 화웅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때 죄를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 “이자의 자태가 위풍당당한데 화웅이 어찌 궁수인 것을 알아보겠습니까?” 원소와 원술은 조조가 관우 편을 드니 그의 체면을 생각해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조조는 관우에게 승전을 비는 술을 권했다. 그러나 원술의 폭언에 자극받아 이미 전투 상태에 들어간 관우는 그대로 군막을 걷고 나가 몸을 날려 말에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화웅에게 달려갔다. 뒤이어 북소리가 지축을 울리고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방울 소리가 울리더니 관우가 날 듯이 말을 달려 중군으로 돌아와 화웅의 목을 군막 앞에 내던졌다. 조조가 관우에게 권했던 따뜻한 술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것이 술이 식기도 전에 화웅을 죽였다는 ‘온주참화웅 사건의 전모다. 이 한 번의 싸움으로 관우는 널리 이름을 알렸다. 유비가 ‘한실 종친이라는 이름값으로 중군 군막 안에서 자리를 얻어냈다면, 관우는 출중한 무예로 영웅호걸의 마음자리를 얻어냈다. 유비는 관우가 큰 공을 세운 것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사실 유비는 자리에 앉아서도 켕기는 바가 있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우가 그의 체면을 살려주니 저도 모르게 가슴을 쫙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게 되었다. 영웅을 탐하다 말과 행동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라 ‘내가 여포를 죽이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않더니 결국 여포한테 당했구나. 유비를 마주한 조조의 심경은 복잡했다. 반동탁연합군으로 함께할 때 조조는 유비 삼형제와 친분을 쌓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훗날 유비가 공짜로 서주를 얻었을 때는 배가 아파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억지로 분을 삼키고 관작으로 회유했다. 그리고 유비를 이용해 여포를 죽이려 했으나 완곡히 거절당했다. 그런데 이제 갈 곳 없는 몸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유비를 받아줘야 할까? 이때의 유비는 무명의 현령이던 당시의 유비가 아니었다. 천하 사람들에게 한실 종친임을 인정받았고 도겸의 청을 세 번이나 거절하면서 인의군자로 명성을 떨쳤다. 이제 세상 사람들의 눈에 유비는 훌륭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조조는 천하의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을 모아 수하로 두고 한헌제까지 쥐락펴락하는 정계의 슈퍼스타였다. 조조는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자기 고양(self-enhancement)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만약 유비가 그 옛날의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조조도 원술처럼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영웅으로 불리는 유비를 거둔다면 조조의 허영심을 한껏 채울 수 있었다. 조조는 기쁨을 드러내며 말했다. “여포는 참으로 불의한 자요. 내가 현제와 힘을 합쳐 그를 죽이겠소.” 유비가 나가자마자 조조의 모사 순욱이 찾아왔다. 진궁이 유비를 구천과 같은 위험인물로 간주했듯이 순욱도 유비를 경계했다. 순욱이 말했다. “유비는 영웅입니다. 만약 세력을 잃은 지금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훗날 틀림없이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조조는 순욱의 말에 침묵으로 답했다. 순욱이 나가고 곽가가 들었다. 조조가 곽가에게 물었다. “방금 순욱이 내게 유비를 죽이라고 권하던데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오?” 곽가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주공께서는 군사를 일으켜 폭도를 물리치는데 성실과 신의로 사방의 호걸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재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유비는 천하에 영웅으로 불립니다. 지금은 비록 곤궁해져 주공께 의탁하러 온 처지입니다. 그런 그를 죽인다면 얼마나 많은 호걸을 낙심시킬지 알 수 없습니다. 이후 주공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시겠습니까? 한 사람의 후환을 없애려다가 사해의 열망이 가로막힐 것입니다. 그것이 득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해가 되겠습니까?” 참으로 훌륭한 답이었다. 곽가는 유비가 훗날 화근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되 대승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옳은 말이다. 지금 발등의 불을 고려하면 유비를 죽이기보다는 받아주는 편이 이로웠다. 이튿날, 조조는 한헌제에게 유비를 예주목으로 추천했다. 사실 이름뿐인 직책이었으나 이후 사람들은 종종 유비를 유예주라고 부르게 된다. 유비는 자신이 이미 두 번이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왔음을 모른 채 조조의 은혜에 감지덕지했다. 조조는 유비에게 군사 3천을 내주며 서주로 돌아가 소패에 주둔하며 여포를 감시하라고 했다. 절묘한 수였다. 조조가 여포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완성(宛城)의 장수(張繡)가 유표(劉表)와 손잡고 군사를 일으켜 허도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웠고, 그 틈을 타고 여포가 허도를 노릴까 봐 어쩔 수 없이 달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조조의 ‘변덕은 유비에게 심중의 혼란을 잠재울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냉혹한 정치판에서 뛰어난 정치가는 절대 양자택일을 고집하지 않고, 인의도덕이 현실의 이익과 상충되지 않을 때는 경중과 완급을 조절해야 하고, 어느 것이 더 중한지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조는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했다. 이는 곧 모든 세력과 밀고 당기며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투와 화해, 동맹과 분화에 시간과 공간상의 착오는 용납되지 않았다. 최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능력이었다. 조조는 그런 면에서 후한 말 정치인 중 단연 돋보였다. 복잡다단한 정세를 능수능란하고 조리 있게 움직인 유일한 인물이다. 유비는 조조가 ‘변덕을 부린 내막을 알고 많은 생각을 했다. 통렬한 자기비판을 거친 유비는 자신이 문치, 무공, 모략, 재주 등 모든 분야에서 조조보다 못함을 알았다. 그러자 조조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두려움이 밀려왔다. 배반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다 유비는 천우신조로 위기를 넘겼으나 조조에 대한 두려움은 날로 커져만 갔다. 유비는 한시라도 빨리 허도를 떠나고 싶었다. 일각이 여삼추이던 중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옥새를 손에 넣어 눈에 뵈는 게 없어진 회남의 원술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리며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다. 그러자 그동안 줄곧 무시해 온 형 원소에게 전국옥새를 바치는 조건으로 몸을 의탁하기로 한다. 원소는 공손찬을 무너뜨리고 기세가 오르면서 야심도 커진 터라 흔쾌히 원소의 뜻을 받아들인다. 이에 원술은 남은 수하를 데리고 회남에서 원소가 있는 하북으로 향한다는 소식이었다. 유비는 허도를 탈출할 절호의 기회임을 깨닫고 곧 조조를 찾아가 말했다. “원소와 원술의 회합은 승상께 좋지 않습니다. 원술이 원소에게 가려면 반드시 서주를 거쳐야 합니다. 이 유비가 일군을 이끌고 가 매복해 있다가 원술을 사로잡겠습니다.” 조조는 원소와 원술의 연합을 막아야만 했다. 서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유비가 매복병을 이끌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미 조조는 유비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조조는 이내 유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유비가 황급히 떠나는데 국구 동승이 소식을 듣고 배웅하러 나왔다. 동승은 유비가 떠나면 혈조를 잊고 약속을 잊을까 걱정했다. 이에 유비는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약조했다. 동승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침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순욱과 곽가의 간언으로 조조는 유비를 놓아준 걸 후회했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곽가였다. 순욱은 줄곧 유비를 죽이라고 주장했으나 곽가는 유비를 거두는 것이 조조의 명성에 이롭다고 해왔다. 그는 명성을 드높일 도구로만 쓸 작정이었지 유비의 자립을 원치는 않았다. 그래서 호랑이를 산에 풀어주면 통제할 수 없게 되니 유비를 제거하는 쪽에 의견을 보탰다. 조조는 지난날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황급히 떠났던 일을 떠올렸다. 유비가 갑자기 농사일을 배우고 매실주를 마실 때 유독 당황했던 일을 생각해 보니 뭔가 켕기는 게 있어 그랬던 것 같았다. 이를 깨달은 조조는 유비를 다시 불러들이려 했으나 이미 떠난 뒤였다. 조조는 서주를 지키는 차주에게 밀서를 보내 진등 부자와 상의해 유비가 방심한 틈을 타 제거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조조는 진등 부자가 유비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임을 모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진등은 곧바로 유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유비는 먼저 손을 써 차주를 제거하고 손쉽게 서주를 점령했다. 이로써 유비는 한번 잃었던 서주를 다시 손에 넣었다. 유비는 서주를 단단히 지켜 다시는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조조는 유비가 차주를 죽이고 서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노발대발하며 출정을 서둘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때 혈조당 일이 발각된다. 조조는 즉시 동승을 비롯해 관련자들을 모조리 붙잡아 죽이고 동승의 여동생이자 한헌제의 후궁인 동귀비(董貴妃))의 목숨까지 거두었다. 이때부터 조조는 유비를 진정한 자신의 적수로 인정했다. 조조는 혈조와 관련된 자들을 피로 다스린 뒤 한헌제를 더 옴짝달싹 못 하게 감시했다. 이어서 다섯 길로 대군을 보내 유비를 치게 했다. 유비는 다급히 원소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원소는 가장 아끼는 아들이 중병에 걸려 유비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유비는 겁에 질린 상태로 가장 두려운 상대를 홀로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조조는 자신을 속이고 배신한 유비에게 분노해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고, 유비는 제대로 맞서지도 못한 채 서주를 잃고 말았다. 유비 삼형제는 다시금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유비의 식솔도 조조의 손에 떨어졌다. 유비는 홀로 말을 달려 원소를 찾아갔고, 장비는 수하 몇을 이끌고 망탕산(芒碭山)으로 도망쳐 도적이 되었다. 관우만이 토산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비는 다시 밑천까지 탈탈 털리는 참패를 겪었다. 이때 유비의 나이 마흔이었다. 유비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유비는 그 누구보다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유비를 지탱해 준 ‘강점은 끈끈한 형제의 정이었다. 이 긴 세월 유비가 가진 유일한 자산도 형제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었다. 유비의 처지가 어떻든 관우와 장비는 아무 원망 없이 일편단심 유비를 따랐다. 실패할 때마다 자신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두 아우를 떠올리며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성공했다고 위안했다. 그 덕분에 실패 후 넝마가 된 자존심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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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 인지과학이 밝힌 "더 효과적인 학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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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 인지과학이 밝힌 "더 효과적인 학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