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주차 |
BOOK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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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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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리우시 보이치크 (지은이), 제임스 체셔, 올리버 우버티 (그림), 윤종은 (옮긴이) 출판 윌북 출간 202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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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요약 보기![]()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자산과 시장 이주하는 돈 송금은 사람들의 생계와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수천억 달러가 송금 결제의 형태로 여러 나라를 오간다. 이는 대부분 해외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본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이다. 송금을 받는 사람들은 이 돈으로 기본적인 필요를 해결하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교육과 직업 훈련에 드는 비용을 댄다. 2019년 전 세계를 오간 송금액은 554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돈은 빈곤 완화와 경제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때로는 외국인의 직접 투자와 해외 원조보다 더 많은 돈이 송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2019년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송금으로 들어오는 돈이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송금에 의존하는 정도가 큰 국가들은 아메리카·동유럽·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아이티와 남수단은 송금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송금액이 GDP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 돈의 출처는 어디일까? 송금 결제는 전 세계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송금이 이뤄지는 지역은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돈을 보내려면 먼저 이주를 해야 하지만 누구나 이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로들은 보통 식민지 시대가 남긴 영향과 지정학적 관계를 반영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멕시코로 들어간 송금액은 2017년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렇듯 송금은 국제 개발 전략에서 중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지리적 불균형이 심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러 의문이 생긴다. 송금을 비롯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송금에 의존한 개발은 지속 가능한가? 국가가 송금을 개발의 한 형태로 장려한다면, 이주할 수 없는 가구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외에서 안전과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이처럼 송금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수십억 명이 송금 수입에 의지해 살아간다. 앞으로는 기존의 송금 경로로 오가는 송금액이 늘어나고 새로운 송금 경로가 등장함에 따라, 빈곤층을 위해 공정하고 공평하며 지속 가능한 개발로 이어지도록 송금을 보장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투자자와 투자 노후 (불)안정 이론상 연금기금은 은퇴 후 개인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발한 장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연금 자산은 50조 달러를 넘었으며, 이는 같은 해 유통된 부채증권과 지분증권의 4분의 1 이상을 살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생산 가능 인구의 90퍼센트가량은 여전히 적절한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은퇴 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연금 제도는 일반적으로 고용주와 직원의 기여금을 모아 폭넓게 분산된 금융 포트폴리오에 투자함으로써 자본을 지키고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금 제도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군대의 충성심을 높이고자 병사들에게 16년 근속 시 연봉의 12배에 달하는 연금을 제공했다. 이처럼 일정한 은퇴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사전적립형 혹은 확정급여형(이하 DB형) 연금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제도는 고용주가 직원을 모집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높은 수준의 은퇴 안정을 제공하지만, 운영 비용이 매우 비싸다. 가령 아우구스투스는 로마가 거둬들인 세수의 절반을 군인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연금 공약을 지키는 데 썼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은 DB형 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국가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연금 자산보다 부채가 1조 달러 이상 많은 상황이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수백만 명의 노후가 불안정해지고 주 정부가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반면에 확정기여형(이하 DC형) 연금 제도는 미래의 급여액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투자 수익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금융 투자에 따르는 불확실성은 DC형 연금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 즉 미래의 은퇴자가 부담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한 고용주에서 다음 고용주로 연금을 이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DC형 연금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로 노동자의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강해졌다. DB형 연금에 점점 부담을 느끼는 고용주들(국가와 기업 모두) 역시 DB형에서 DC형 연금으로 전환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 결과 세대 간의 사회적 계약을 수반하는 DB형 제도는 개인이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는 DC형 제도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DC형 연금에 가입한 노동자가 은퇴를 앞둔 시점에 금융시장이 붕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쇼핑몰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계 각지에서 쇼핑몰은 금융 투자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보통 사람들은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러 쇼핑몰에 간다. 그런가 하면 어떤 투자자들은 쇼핑몰 자체를 쇼핑하기도 한다. 우리가 쇼핑몰에서 새 청바지를 입어보는 사이 그 쇼핑몰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자신탁(이하 리츠REITs)은 소매업체에서 임대료를 받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쇼핑몰을 비롯한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취득·개발·관리하는 회사를 말한다. 그중 쇼핑몰에 주력하는 리츠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공실률을 최대한 줄이고 쇼핑몰의 매력을 활용하려 한다. 미국 최대의 쇼핑몰 리츠 사이먼프로퍼티그룹은 대도시(특히 대도시의 교외 지역)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세계 각지에 쇼핑몰을 보유하고 있다. 파리에 본사를 둔 클레피에르는 유럽 시장을 점령했으며, 링크리츠는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 쇼핑몰 제국을 세웠다. 요하네스버그에 본사를 둔 그로스포인트와 하이프롭은 아프리카와 동유럽에 걸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리츠에는 자금을 제공해 수익을 챙기는 주주가 있다. 뱅가드, 블랙록 그리고 오스틴에 본사를 둔 디멘셔널펀드어드바이저 같은 자산운용사들이 그 예다. 각국의 연기금과 국부펀드도 리츠에 관심을 보여왔다. 일례로 노르웨이의 정부연기금을 관리하는 중앙은행 노르게스방크는 링크리츠, 사이먼프로퍼티그룹, 그로스포인트, 하이프롭, 클레피에르 등 여러 리츠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가 쇼핑몰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이스크림을 살 때마다 쓴 돈은 복잡하게 순환하며 전 세계의 소비자와 소매점, 리츠, 최종적으로는 투자자로 흐른다. 아크라의 한 쇼핑몰이 가나세디로 벌어들인 모든 수익은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뉴욕으로 향한다. 멕시코의 쇼핑몰에서 페소로 벌어들인 수익은 인디애나폴리스를 거쳐 오슬로에 이른다. 쇼핑몰은 리츠들이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금융자산으로 변모했으며, 단순히 친구를 만나러 쇼핑몰을 찾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쇼핑몰 이용객이 국제 금융 네트워크의 참여자가 됐다. 중개와 기술 해상 위험 분담 공동해손은 고대부터 이어진 금융 전통으로서 해상 무역을 촉진해왔다. 1599년 10월 10일, 일코르보볼란테(하늘을 나는 까마귀)라는 범선 한 척이 설탕과 목재, 염료 등을 싣고 브라질의 올린다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리보르노항이었으며, 기항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하지만 이 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리스본에 기항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600년 1월 말, 프랑스의 해안에서 강한 폭풍이 배를 덮치는 바람에 주돛 두 개가 찢어지고 돛대가 부러졌다. 안트베르펜 출신의 마르티노 에르만 선장과 다른 선원들은 이틀 동안 거센 파도에 시달린 끝에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화물 일부를 바다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8일 후, 이 배는 만신창이가 된 채 가까스로 리보르노에 입항했다. 이 사건에서 바다에 버린 화물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화물의 주인들은 선장에게 버려진 물건을 물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에르만 선장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페르디난도 1세 데 메디치 대공이 다스리던 토스카나에는 공동해손(general average)이라는 원칙이 있어 비상시 선원들이 배를 구하고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화물을 버리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버려진 화물에 대한 보상은 항해의 이해관계자들이 전체 화물의 가치에 따라 분담했다. 이에 따라 일코르보볼란테호의 경우에는 염료 307상자의 소유권자였던 베르나르도 사소가 가장 비싼 화물을 실은 사람으로서 가장 큰 손실을 부담했다. 리보르노에 도착한 에르만 선장은 토스카나의 규정에 따라 배가 파손된 경위와 바다에 버린 화물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다음 선장은 피사에 있는 해양영사를 찾아가 화물의 소유권자들이 공동해손에서 부담해야 할 몫을 계산했다. 영사가 발행한 최종 증서에 따르면, 소유권자들은 총 1421 토스카나스쿠디의 손실과 수수료를 분담했다. 공동해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기 로도스항에서 활동하던 해상 무역 업자들의 관습법적 관행에서 찾을 수 있다. 6세기에는 동로마제국이 로도스해법이라는 상업 무역 규정을 만들어 이러한 관행을 로마 민법에 편입했다. 그리고 이 원칙은 1890년 요크·앤트워프 규칙이 만들어지면서 세계적인 규정으로 명문화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각국에서는 공동해손을 해상법으로 규정한다. 돈과 법률, 회계를 결합한 공동해손은 해상 무역의 위험에서 상업 활동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보섬을 보완한다. 이처럼 손실을 측정하고 분산하는 공정한 방법이 없었다면 해상 무역은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핼리의 계산 위대한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우연히 얻은 데이터로 보험을 혁신하고 금융과 인구 통계를 연관 짓는 데 공헌했다. 남은 생애 동안 매년 일정 금액을 받을 권리를 지금 살 수 있다면 얼마를 내겠는가? 이 질문은 보험 업계의 용어로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연금의 현재 가치는 얼마인가? 이는 금융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지만, 사람들은 17세기 말까지 여기에 답을 하지 못했다. 17세기 말, 브레슬라우(오늘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 살던 목사 카스파르 노이만은 점성술에 근거한 미신을 싫어했는데, 그중 하나가 63세는 인간의 삶에서 특히나 사망 위험이 큰 나이라는 믿음이었다. 노이만은 이러한 미신에 반박하고자 1687~1691년 사이 브레슬라우 주민들의 출생과 사망 관련 데이터를 모아 독일의 대표적인 과학자이자 하노버 선제후의 궁정사서였던 라이프니츠에게 보냈다. 라이프니츠는 이 데이터를 런던의 왕실 사서였던 헨리 저스텔에게 전달했고, 저스텔은 이를 영국 왕립학회에 발표했다. 이후 천문학 연구로 유명한 왕립학회 회원 에드먼드 핼리가 이 데이터를 분석해 1693년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핼리는 브레슬라우의 인구로 징병 가능한 남성 비율을 계산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18~56세 인구를 전체 인구로 나눈 다음(18053/34048), 남성과 여성의 수가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다시 2로 나눴다. 그가 나눗셈에서 얻은 0.265는 오늘날 미국의 인구를 똑같은 방식으로 나눈 결과(0.24)와 거의 비슷하다. 핼리의 논문은 연금의 가치를 계산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공헌을 했는데, 이는 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구매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연금지급액의 7배로 연금을 판매해 전쟁 자금을 조달했다. 이 가격에 연금이 잘 팔리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가격으로 연금을 판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연금지급액의 7배는 지나치게 저렴했다. 5세에서 17세 사이의 아동에게는 연금 지급액 1파운드당 13파운드 이상 받아야 했으며, 7파운드 이하는 63세가 넘는 사람들에게만 적절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영국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연금을 100년 가까이 판매하며 연금수령자에게 혜택을 주고 미래의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겼다. 핼리가 공들인 계산은 보험계리학의 토대가 됐고, 인구 통계와 금융 사이 연관성을 밝혔으며, 데이터 수집의 가치와 추상화의 힘을 입증했다. 핼리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데이터에서 천문학적 공식을 끌어낸 학자였다. 도시와 중심지 런던의 인력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런던은 여전히 유럽 최대의 금융중심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을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유권자의 52퍼센트가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로써 영국은 43년간 이어진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영국의 미래가 불확실해진 가운데, 일부 논평가는 곧 EU 단일시장과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수천 개의 금융 기업이 런던을 떠나고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리라 전망했다. 유럽 금융계에서 독보적인 구심점이었던 런던이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2021년 4월 기준, 런던에서 유럽 대륙으로 사업을 일부 이전한 금융 기업은 443곳이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보면, 유럽의 금융계가 재편되기는커녕 기존의 구조가 더 공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런던에서 비행기로 90분 이내의 거리에 있으며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런던과 보완 관계인 몇몇 금융중심지가 런던의 주위를 도는 구조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은행들은 일부 직원을 전통적인 은행 부문의 중심지인 파리와 프랑크푸르트로 보냈고, 자산운용사와 펀드사들은 더블린과 룩셈부르크로 이전했다. 예전부터 거래 부문에 집중해온 암스테르담은 거래와 기타 비즈니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을 유치했다. 그러나 런던에서 이 도시들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한 기업은 훨씬 적었다. 그 결과 런던은 여러 기업이 이전한 뒤에도 거래 규모 면에서 주변의 위성 도시들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가 인터뷰한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런던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금융중심지이자 사업을 위한 필수 목적지로 여겼다. 실제로 브렉시트 투표 후 6년이 지난 뒤에도 유로화 표시 파생상품의 90퍼센트는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청산됐다. 브렉시트는 지리적으로 런던을 중심에 둔 금융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았으며, 유럽의 금융중심지들이 이루던 기존의 분업 구조는 브렉시트 이후 더욱 강화됐다. 런던은 시장의 규모와 국제적 연결망, 런던에 집중된 기업과 고객, 공급업체와 전문성, 국제 기축 통화로서 파운드화의 역할, 영국 관습법이 가진 힘 덕분에 유럽의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금융․비즈니스 서비스회사들은 EU에서 막힘없이 거래할 권리를 잃었지만, EU에서는 영국과 EU의 법률과 규제에 큰 차이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으므로 유럽 시장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금융은 지금도 런던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남아 있다. 버블과 위기 끝나지 않는 금융 위기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확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금융은 본디 변덕스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정상적인 성장과 번영의 시기가 급작스러운 불안정으로 막을 내릴 수 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는 은행 부실·통화 폭락·채무 불이행 등으로 1000여 차례의 위기가 발생했다. 자본주의 초기에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전통적인 군주제 국가들은 전쟁과 무역 탐험에 필요한 자금을 부채로 충당했다. 권력에 눈이 먼 위정자들은 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지다 국가 재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 이후에는 국제 무역으로 전 세계가 한층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통화 가격 투기가 흔해졌고, 이에 따라 통화 가치가 갑작스레 하락하는 일이 늘어났다. 금융위기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 빈도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글로벌사우스(북반구 저위도와 남반구에 집중된 비서구권 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용어 - 옮긴이)는 글로벌노스보다 더 많은 불안정과 위기에 시달려왔다. 정치와 사회가 흔들리는 동시에 채무 불이행, 투기적 통화 공격, 급격한 인플레이션, 심각한 뱅크런(은행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 -옮긴이) 등이 발생하는 일은 글로벌사우스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례로 1800년대에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라틴아메리카는 여러 차례 국제 부채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금융위기는 글로벌노스 안에서도 각국의 금융 시스템에 따라 그 정도와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금융시장으로 꼽히는 미국과 영국은 여러 차례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다. 반면에 스위스와 룩셈부르크는 위기를 한두 차례밖에 겪지 않았다. 이 나라들은 금융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급작스러운 금융 불안정에 대처하는 적절한 장치와 규제 환경을 구축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규제와 거버넌스 국제 금융 서비스계의 대형 백화점 금융·비즈니스 서비스 부문의 중심에 있는 4개의 영미계 회사는 고객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랑스의 갤러리라파예트, 영국의 셀프리지스, 스페인의 엘코르테잉글레스 같은 유명 백화점의 이름은 그 자체로 현대 소비문화의 출현을 상징한다. 이 백화점들이 소비재 판매를 전문으로 한다면, 빅4로도 불리는 세계 4대 회계법인 딜로이트(Deloitte, PwC, EY, KPMG)는 전 세계 기업들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빅4는 19세기 신흥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활동하던 소규모 영미계 회계법인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점차 전통적인 감사와 회계 업무를 넘어 세무 및 법률 컨설팅, 기업 전략, IT 혁신, 금융 자문 등으로 서비스를 넓혔다. 그 결과 오늘날 네 회사는 기업 고객과 정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갖가지 금융·비즈니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백화점에 가까워졌다. 빅4를 찾는 많은 고객의 이름만 보더라도 이들의 사업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뒀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펩시, 아스트라제네카, 모건스탠리의 회계감사를 맡고, 글렌코어, 폭스바겐, 다임러에 법률 자문을 제공하며, P&G, 아마존, EU 집행위원회에 컨설팅을 제공한다. 빅4의 사업과 성과, 고용 규모는 그야말로 눈부신 수준이다. 2021년 빅4는 약 17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직원 수는 총 1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작은 국가 하나에 맞먹는다. 빅4가 창출한 수익을 합치면 룩셈부르크,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GDP보다 높으며, 이들은 137개국의 2911개 지사로 이루어진 방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중심지와 조세회피지를 포함한 세계 어느 곳에서나 24시간 연중무휴로 고객을 지원한다. 그러나 빅4가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지면서 이들이 지는 책임도 문제가 됐다. 빅4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회계감사시장을 장악해 과점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부와 규제 당국에 로비를 벌이고 공적 논의의 의제를 좌우하기도 한다. 게다가 빅4의 직원 중 상당수는 정부와 규제기관의 요직으로 진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제는 감사인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적인 감사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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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살, 경제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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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손희애 (지은이), 홍춘욱 (감수) 출판 황금부엉이 출간 202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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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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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우치다 히로시 (지은이), 김수정 (옮긴이) 출판 서사원 출간 202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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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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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아리스토텔레스 (지은이), 박문재 (옮긴이) 출판 현대지성 출간 202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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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 BRIEF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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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생산성 붐’의 시대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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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인력이 점점 더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의 증대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1973년 이후 미국은 생산성 증가 둔화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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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 교모세포종 ‘뇌종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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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료용 젤을 통해 전달된 약물이 공격적이고 치명적인 뇌종영, 즉 뇌암에 걸린 쥐를 100% 치료했다. 이 놀라운 결과는 인간에게 가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