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주차

BOOK SUMMARY


 인문 

500가지 건축으로 읽는 세계사

저자 소피 콜린스 (지은이), 성소희 (옮긴이), 임석재 (감수)
출판 현대지성
출간 2026.03
스톤헨지부터 우주정거장까지 역사의 랜드마크로 남은 위대한 걸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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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가지 건축으로 읽는 세계사


1000년 이전: 돌로 만든 인류 최초의 흔적
본데르베르크 동굴
남아프리카공화국, 쿠루만 구릉지 / 기원전 180만 년

지금까지 발견된 인간 거주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

칼라하리사막 가장자리의 쿠루만 구릉지 내부로 140미터 정도 파고 들어간 이 석회암 동굴은 180만 년도 더 전에 인간의 보금자리가 됐다. 원시 인류는 수백 세대에 걸쳐서 이 동굴을 안전한 은신처로 삼아 생활하며 긁개와 주먹도끼 등 단순한 석기를 만들고, 동물을 사냥하고, 불을 피워 몸을 덥히고, 음식을 조리했다.

동굴 바닥에 수천 년 동안 쌓인 퇴적물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해서 밝혀낸 사실이다. 가장 원시적인 도구와 동물 뼈, 불을 피우고 남은 재는 다른 유적지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본데르베르크 동굴은 특별하게도 이런 유적지 가운데 최초로 지붕이 있는 곳이다. 인간이 실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인잘로 일랑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음푸말랑가 / 기원전 7만 3000년경

음푸말랑가 지역의 산악 지대에 있는 이 환상열석은 아담의 달력 또는 태양의 탄생지라고도 불린다. 고고학계는 이 유적이 달력으로 사용됐으리라고 추정한다. 햇빛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고 해의 움직임을 추적하도록 돌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유적의 연대는 오리온의 허리띠로 불리는 오리온자리의 별 3개가 놓인 위치와 2만 6천 년을 주기로 하는 지구의 세차운동을 토대로 계산했다.

스톤헨지
잉글랜드, 월트셔 / 기원전 2750년경

신석기 유적이 다수 분포한 풍경 속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신석기시대에 잉글랜드 남부는 대부분 숲이었다. 하지만 스톤헨지 주변은 탁 트인 구릉지였기에 건축물을 세우기에 특히 알맞았다. 스톤헨지 건설에는 천 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우선, 기원전 3500년경에 흙을 쌓아서 다지고 백악으로 벽을 세웠다. 5세기가 지난 후, 35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웨일스에서 커다란 블루스톤을 가져와서 최초의 환상열석을 세웠다. 기원전 2750년 무렵에는 잉글랜드 중남부의 사암인 거대한 사슨석 80여 개를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왔다. 그 뒤로 오랜 세월에 걸쳐 건설이 이어지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웅장한 환상열석이 서서히 완성됐다. 장부 이음 방식을 이용해서 선돌 위에 상인방 돌을 얹었고, 블루스톤을 안쪽으로 재배치했다.


1000-1499년: 요새와 궁전, 대성당의 시대
바이킹 족장의 집
노르웨이, 보르그 / 1000년경

수 세기 동안 지역 지도자들이 살았던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전통 가옥.

철기 후반에 지어진 족장의 집은 노르웨이 서해안의 로포텐제도에 속한 베스토괴이에서 1981년에 발견됐다.

뒤집힌 배 모양의 이 집은 길이 83미터, 너비 12미터, 높이 9미터에 이른다. 벽에는 뗏장을 입혔고, 기둥으로 떠받친 지붕은 나무 널로 덮었을 것이다. 건물 안의 칸막이벽이 거주 구역과 잔치에 쓰이는 대형 홀, 가축을 기르는 헛간을 구분한다. 유적에서 발견된 라인란트 도자기 파편과 유리 조각, 금박 부적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알 수 있다. 9세기쯤에 노르웨이인은 널리 무역하며 모피와 철 등 수출품을 내다 팔 시장을 찾아다녔다. 족장의 집은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면서 오래도록 수명을 유지했다. 500년 무렵에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가 700년경에 확장된 후 11세기 초에 버려졌으리라고 추정한다. 섬의 인구가 늘고 자원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시엠립 / 1100년부터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 크메르 왕조의 수리아바르만 2세가 지었다. 왕은 사후 이곳에 묻힐 계획이었다. 건설에 30년 이상 걸렸을 것으로 보이는데, 1.6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땅에 힌두교 신들의 거처인 메루산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처럼 사원 단지를 배치했다. 사원의 탑은 신이 사는 산을 상징하며, 거대한 해자는 산을 둘러싼 바다를 나타낸다. 아울러 신과 정령,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조각이 수천 채의 건물 표면을 뒤덮고 있다.

12세기 말, 크메르 왕조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했고 앙코르와트도 힌두교 사원에서 불교 사원으로 변모했다.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양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트 인클로저, 그레이트 짐바브웨
짐바브웨, 마스빙고 / 1350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중세 석조 도시 유적.

11세기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이곳에 꾸준히 살았던 쇼나족은 거대한 도시를 지었다. 그레이트 인클로저는 이 도시 역사에서 후반부에 지어진 구역이다. 이곳의 웅장한 석벽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커다란 탑은 곡물 창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매끈하게 자른 돌을 모르타르 없이 쌓아서 대칭 형태로 완성한 석조물은 감탄스러운 석재 절단 기술을 자랑한다. 그레이트 인클로저를 짓는 데 아마 1세기에 이르는 긴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유적지 주변에서는 금속 장식품 및 실용품, 동물 뼈가 상당히 많이 출토됐다. 이런 유물은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건설한 쇼나족이 소를 사육하고 거래해서 부를 일궜다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1500-1799년: 제국의 흥망과 도시의 성장
무르주크 구시가지
리비아, 페잔 / 1500년경

순례와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된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무르주크의 역사는 13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 사막 도시가 널리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는 무함마드 알파시가 모로코에 건국한 아울라드 무함마드 왕조에 점령당한 16세기 초였다. 무르주크는 카이로와 팀북투를 오가는 길에 있었고, 남쪽으로는 현재의 나이지리아와 차드까지 있어서 입지가 훌륭했다. 새로이 도시를 지배하게 된 총독들은 서둘러 이러한 입지 조건을 활용했다. 구워서 만든 벽돌로 거대한 요새를 세워 도시 방비를 강화하고 새로운 모스크를 건설했다. 그로 인해 무르주크는 혹독한 기후를 이겨내고 상업과 정치의 중심지이자 순례길의 중간 기착지로 자리매김했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노예무역상과 카라반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었다. 무역상은 북쪽으로 올라갈 때는 코끼리 이빨과 센나 잎을 말린 약제를 취급했고, 남쪽으로 갈 때는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귀중한 상품인 직물을 운송했다.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 1682년

태양왕의 권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사유에는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이 있었다. 뒤이어 왕좌에 오른 루이 14세는 이곳에 넓은 정원으로 에워싼 궁전을 지어 궁정 생활과 정치의 새로운 중심지로 삼고자 했다.

1682년, 궁전이 완공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루이 14세는 정부를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옮겼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베르사유로 오면 파리의 대중이 품은 불만에서 멀어질 수 있었고, 귀족이 정기적으로 베르사유를 방문해야 하는 탓에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아울러 으리으리한 궁전은 군주의 권위를 강력하게 일깨웠다.

마침내 1710년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프랑스 고전주의를 탄생시켰다. 대사의 방이나 거울의 방처럼 화려한 공간을 갖춘 궁전을 짓는 데 루이 르보, 프랑수아 도르베, 쥘 아르두앙망사르 등 당대의 쟁쟁한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정원과 드넓은 후원 또한 유명하다.


1800-1899년: 산업혁명과 거대 공학 프로젝트의 등장
원형 석조 외양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핸콕 / 1826년

간편하고 위생적인 축산업을 위한 혁신적 설계.

셰이커교, 공식 명칭 그리스도 재림을 믿는 신자 연합은 1747년에 창설됐다. 이 종교 단체는 예배 중 몸을 흔드는 격렬한 춤과 독신주의, 평등주의, 공동체를 중시하는 단순한 생활 방식으로 유명하다. 셰이커교의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설계는 늘 찬사를 받았다. 셰이커교도가 모여 살던 핸콕 빌리지의 유일한 원형 외양간은 가구나 가정용품만큼이나 셰이커교도의 설계 철학을 잘 보여준다.

원형 외양간은 직사각형 외양간보다 건축 자재를 덜 써서 지을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었다. 그런데 핸콕의 외양간은 곡선에 다른 기능도 추가했다. 외부 경사로를 통해 짐마차가 위층에 도착해 짐을 내린 다음, 반대 방향으로 뒤돌지 않고도 원을 그리며 출구까지 나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창문이 많아서 건물 내부는 밝고 바람도 잘 통했다. 아래층의 한가운데는 움푹 파였고, 이 공간을 고리처럼 둘러싸 건초를 보관했다. 바깥쪽으로는 가축을 들였는데, 가축이 지내는 칸마다 바닥에 작은 문을 내서 분변을 지하로 떨어지게 했고 필요하면 바깥의 뜰로 분변을 옮겼다. 이토록 실용적이지만, 이상하게도 핸콕 빌리지에 원형 외양간은 1개밖에 없다. 다른 셰이커교 마을에도 원형 외양간이 아예 없다. 미국 각지에는 원형 외양간이 여럿 있지만, 핸콕 외양간만의 특별한 요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봉마르셰 백화점
프랑스, 파리 / 1852년

쇼핑을 오락으로 만든 파리 최초의 백화점.

19세기 중반 사람들은 특정 상품을 사려고 특정 상점을 둘러보고는 했지만, 쇼핑을 여가 활동으로 여기는 생각은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 아스트리드와 마그리트 부시코 부부는 1852년 파리에 중간 규모쯤 되는 남성복 겸 직물 가게를 열면서 쇼핑을 더욱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시코 부부는 다양한 상품을 모두 정가로 판매했고, 마진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으며, 반품과 환불, 계절별 세일, 심지어 고객이 신문을 훑어볼 독서 공간 등을 포함해 방대한 광고와 참신한 서비스를 도입했다. 아울러 직원을 위해 건강관리와 강의, 오락 시설까지 마련했고, 더 큰 매장을 지었을 때는 특히 젊은 여성 직원이 지낼 구내 기숙사까지 만들었다.

봉마르셰는 빠르게 성공을 거뒀다. 1863년 부시코 부부는 매장에 대한 권리를 모두 사들였고, 1869년에는 그야말로 모든 상품을 판매하는 새 건물을 설계했다. 심지어 1872년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 사무소에 의뢰해 매장을 더욱 확장했다. 에펠은 실내를 밝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조를 고안했다. 새 건물은 다시 한번 봉마르셰의 새 출발을 알렸다.

19세기 말이 되자, 봉마르셰는 오늘날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갖췄고, 어느 주요 도시에서든 백화점이 생겨났다.


1900-1999년: 전쟁이 남긴 상흔과 대중문화의 번성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1917년

강력한 선전으로 재연된 10월 혁명의 핵심 사건.

1917년 10월 26일의 겨울 궁전 습격은 10월 혁명을 대표하는 핵심 사건이다. 10월 혁명으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1917년 3월에 차르를 몰아내고 러시아를 통치하던 임시정부에게서 권력을 빼앗았다. 사실, 이 사건은 습격보다는 점령에 가까웠다. 볼셰비키 군인은 궁전을 지키던 소규모 병력을 빠르게 제압했고, 도망치지 못한 정부 장관들도 체포했다.

3년 후, 혁명 기념일에 겨울 궁전 습격을 성대하게 재연하면서 궁전은 곧 영웅적 상징으로 떠올랐다. 공연에 참여한 사람은 2,500명이 넘었고, 관람객은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소련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가 연출을 맡았고, 가장 마지막 장면인 볼셰비키 적위대와 임시정부 인사의 궁전 내 충돌은 궁전 창문에 스크린을 설치해 실루엣으로 보여줬다. 공연을 촬영한 영상물은 수십 년 동안 소련에서 중요 선전물로 쓰였다.

바우하우스 빌딩
독일, 데사우 / 1926년

단명했지만 오랫동안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디자인 운동.

바우하우스는 1919년 바이마르에서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 선언문을 제작하고, 학생들이 창의적 잠재력을 개발해 이를 일상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끄는 운동을 구상했다. 그런데 바이마르가 속한 튀링겐주의 보수주의 정부가 갈수록 적대적으로 나오자, 1925년 데사우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데사우시 당국은 그로피우스에게 부지를 제공하고 새로운 학교 건물 설계를 의뢰했다.

새로운 바우하우스 빌딩은 1926년에 문을 열었다. 작업장과 스튜디오 별관, 별도의 직업 학교, 교수와 관리자 사택 등을 아울렀다. 깔끔한 흰색 형상을 바탕으로 섬세한 세부 장식을 더한 건물 외관은 당시에 매우 현대적이었다. 화가 파울 클레와 직물 디자이너 아니 알베르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 등이 모인 강사진도 화려했다.

바우하우스는 데사우에서 6년 동안 번창했고, 이곳에서 일한 예술가들은 전 세계로 바우하우스 철학을 퍼뜨렸다. 하지만 바우하우스도 독일 내 정치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나치가 데사우를 장악했을 때 바우하우스는 잠시 베를린으로 이전했으나 1933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빌딩은 독일 근대 건축의 아방가르드 흐름에서, 국제주의 양식의 출발점이 된 건물로 평가받는다.


2000-2020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건축
외레순 다리와 드로그덴 터널
스웨덴과 덴마크 / 2000년

스웨덴과 덴마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상징적인 다리.

두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직접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는 적어도 1세기 동안 논의되다가 1991년 합의에 이르렀다. 다리와 터널이 완공되기까지는 5년이 더 걸렸는데, 전체 공사 중에는 인공 섬 페베르홀름을 만드는 과정도 포함됐다. 이 섬은 스웨덴에서 시작한 다리가 끝나고 코펜하겐으로 가는 마지막 구간을 덮는 터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교량과 터널 공사는 몹시 까다로운 과제였다. 폭풍우로 유명한 수역과 덴마크의 카스트로프 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고려해야 했고, 다리 아래로 대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침내 우아하고 기다란 구조물이 탄생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페베르홀름에는 대규모 자연보호 구역이라는 보너스까지 생겼다.

다리와 터널 덕분에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통근이 수월해졌고, 스웨덴 말뫼를 포함해 양국 모두 상업적 이익을 누렸다. 하지만 다리 때문에 마찰을 빚기도 했다. 특히 2015년 유럽이 전례 없는 난민 위기에 빠져 국경 통제를 시행했을 때, 양국을 연결하는 다리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 / 2008년

세상 끝에 자리 잡은 인류 최후의 씨앗 저장고.

예술가 디베케 산네의 조명 패널이 입구에서 반짝이는 터널은 언덕 속으로 곧장 이어진다. 노르웨이 건축가 페테르 소데르만이 설계한 저장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내부 터널에서 더 나아가면 씨앗을 보관하는 작은 3개의 금고로 이어지는 지하 공간에 이른다.

저장고가 위치한 스발바르제도는 앞으로 몇십 년 동안 기온이 올라도 여전히 영구동토층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정전 사태가 벌어져도 종자는 냉동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보관하는 종자는 더 위험한 곳에 있는 다른 종자 은행 씨앗의 백업용, 즉 일종의 예비 물자라 할 수 있다. 100만 종 이상 되는 전 세계 작물의 종자가 진공 포장된 알루미늄 봉투에 담긴 채 상자에 ?17.5도로 보관된다. 이곳은 농업 재해에 대비한 보험이다. 정권이나 정치색과 관계없이 모든 국가의 종자를 보관하기에 전 세계 농업을 위한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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