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
 
지은이 : 말콤 글래드웰 (지은이), 김태훈 (옮긴이)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25년 02월




  • 사회적 전염 현상을 설계하는 원리를 분석하며, 특정한 조건과 요소들이 결합할 때 커다란 변화를 촉진하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변화의 법칙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


    세 가지 수수께끼

    캐스퍼와 C-도그

    발도르프 학생들은 왜 백신을 맞지 않았나

    캘리포니아주는 주내에 있는 전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권장 백신을 얼마나 많이 접종했는지 공식적으로 집계한다. 조사 대상에는 수두 백신, 홍역 백신, 유행성이하선염 백신, 풍진 백신, 소아마비 백신 등이 있다. 그 목록은 얼핏 아주 단순해 보인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공립학교 학생 중 대다수는 모든 백신을 맞았다. 그러면 사립학교 학생들은 어떨까? 사립학교는 수가 더 적고 유별나다. 거기에는 더 많은 편차가 있을까? 한 번 살펴보자.


    발도르프 학교(Waldorf schools)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이 학교들은 오스트리아 교육자인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가 20세기 초에 시작한 교육 운동의 결과물이다. 발도르프 학교는 작고, 비싸며,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개발하는 ‘전체론적’ 학습에 초점을 맞춘다. 전 세계에 수천 개 발도르프 학교가 있고, 캘리포니아에도 20여 개가 있다. 발도르프 학교가 있는 모든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낮은 학교는 거의 예외 없이 발도르프 학교다.


    마이애미의 문제

    발도르프 학교와 버팔로주 심장 전문의들에게 생긴 일

    잠시 발도르프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발도르프가 너무나 특이한 이유에 대한 가장 명백한 설명은 이미 백신에 적대적인 부모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인 엘리사 소보(Elisa Sobo)는 발도르프의 문화를 조사한 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누구도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부모들이 자녀를 그 학교에 보내는 건 아니었다.”


    물론 분명히 그런 학부모도 일부 존재했다. 그러나 패턴이 드러난 것은 다른 방향이었다. 소보는 “그곳에서 학부모들이 습득하는 행동이나 태도, 믿음이 그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발도르프 학교에 복수의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에게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가령 세 살 난 첫 아이를 발도르프 유치원에 보낸 후 가족이 늘어나고 계속 그 동네에 머물기로 결정한 경우, 둘째 자녀가 백신을 맞는 비율이 줄었고 셋째 자녀가 백신을 맞는 비율은 더 줄었다.” 발도르프 학교는 구성원들에게 마법을 부린다. 거기에 오래 머물수록 마법은 더욱 강해진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법은 어떻게 작용할까? 발도르프 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이 발언은 시카고에 있는 한 발도르프 학교에서 제작한 홍보 영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해당 영상을 보면 여러 젊고 매력적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발도르프에서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다음은 졸업생 사라의 말이다.


    “발도르프는 세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심어줘요. 그건 일종의 발도르프 효과라고 말할 수 있어요. 모든 걸 뭉뚱그려서 규격화하지 않고 배움에 대한 강한 열망과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어요.”


    발도르프가 학생들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주는 방식에는 놀라운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 사상이 구성원들을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엇나가도록 허용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사실 ‘이야기(story)’라는 단어는 별로 적절치 않다. 그보다 ‘오버스토리(overstory)’라는 단어가 더 낫다. 오버스토리는 숲을 이룬 나무들의 윗부분을 말한다. 오버스토리의 크기와 밀도 그리고 높이는 훨씬 낮은 땅에 있는 모든 종의 행동과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발도르프 학교를 여느 학교와 다르게 만들거나, 볼더와 버팔로를 다르게 만드는 소지역 편차의 본질이 이야기보다는 오버스토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주민에게 주입되는 명시적인 것이 아니다. 오버스토리는 높은 곳에 있는 것들로 구성되며, 많은 경우 우리의 의식 바깥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버스토리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눈앞에서,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는 삶에 너무나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버스토리는 알고 보면 정말로, 정말로 강력하다.



    사회공학자들

    매직 서드

    백인 탈주 사태

    1950년대에 들면서 미국의 수많은 대도시는 하나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종차별법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부에서 이주하는 흑인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러나 자유를 기대하며 옮겨간 도시에서 그들은 거듭 백인들에게 배척당했다. 일부 흑인들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흑인 가족이 어떤 동네에 이사를 오면 백인 가족들이 그냥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들 이를 ‘백인 탈주(white flight)’라 불렀다.


    미국 역사에서 이토록 갑작스러운 도시의 격변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직자들은 경각심을 가졌다. 학자들은 관련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민을 인터뷰하고, 주택 매매 현황을 확인하고, 인구 변동 지도를 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사실은 모든 주요 도시가 같은 패턴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정치학자인 모튼 그로진스(Morton Grodzins)는 1957년에 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흑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흑인 거주지는 때론 방사형으로, 때론 동심원을 그리며 한 구역씩, 한 동네씩 확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 동네가 백인 거주지에서 유색인종 거주지로 바뀌는 변화가 시작되면 중단되거나 옛날로 되돌아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초기 논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 탈주 현상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논문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졌다.


    그로진스의 말에 따르면 이 변화는 처음에는 천천히 진행되다가 추진력을 키운 다음, 결정적인 지점에서 급격해졌다. 그는 나중에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을 단어를 활용하여 이렇게 썼다.


    “이 ‘넘기는 지점(tip point)’은 도시마다. 동네마다 다르다. 그래도 대다수 백인에게는 그 지점이 존재한다. 그 지점이 지나면 그들은 더 이상 흑인 동네에 머물지 않는다.”


    ‘넘기는 지점’. 그로진스는 이 단어를 시내 동네에서 백인 집주인들을 이주시키려는 부동산 중개사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흑인 인구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틈타 수입을 늘리고 싶어 했어요. 그들은 자신들끼리 빌딩이나 동네를 ‘넘긴다(tip)’는 말을 거리낌없이 나누었어요.”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사람들은 이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나는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첫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임계점’은 수세대 동안 한결같아서 바뀌지 않을 듯하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경계를 말한다.


    ‘3분의 1’ 마법

    ‘뉴욕 타임스’의 한 기자는 1959년에 “일부 백인 학부모는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의 통합은 마지못해 받아들일지 모른다.”고 썼다. 그러니까 어쩌면 15퍼센트도 괜찮을지 모른다. 앨린스키가 발언한 그 청문회에서 위원들은 대형 부동산기업 경영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자기 회사가 프레이리 쇼어라는 19층짜리 아파트를 분양했는데, 입주민 중 4분의 3은 백인, 4분의 1은 흑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은 백인과 흑인 비율이 75 대 25인 상태에서 아무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25퍼센트도 여전히 임계점 밑일지 모른다.


    하지만 30퍼센트까지 갈 수 있을까? 필라델피아와 뉴욕 출신 인사들이 의견을 냈다. 워싱턴 D.C. 교육감은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 흑인 학생의 비율이 30퍼센트에 이르면 “아주 짧은 기간에 99퍼센트”까지 늘어났다는 거였다. 위원들은 끝으로 시카고 주택청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공공주택 사업을 운영했고 그래서 백인 탈주를 막을 ‘정확한’ 수치를 알 것이 분명했다. 그는 워싱턴 D.C. 교육감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공공주택 단지가 있는 노스 사이드의 카브리니를 보십시오. 초기 주민 비율을 보면 백인 70퍼센트, 흑인 30퍼센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흑인 비율이 98퍼센트입니다.”


    결국 모두가 의견 일치를 이루었다. 어느 집단이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외부자의 비율이 4분의 1에서 3분의 1 사이에 이르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구간의 최대치를 ‘매직 서드(Magic Third)’라 부르도록 하자.


    매직 서드는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현대 경제에서 가장 힘 있는 조직 중 하나인 기업 이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상 모든 주요 기업에는 대개 아홉 명 정도의 경험 많은 기업인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자에게 조언하는 이사회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사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에게도 서서히 문이 열렸다. 일련의 연구는 여성이 들어가면 이사회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려는 의욕이 더 강하고, 협력을 더 중시하며, 경청을 더 잘한다. 다시 말해서 ‘여성 효과’가 존재한다. 그러면 이사회에 여성이 얼마나 많아야 이 여성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세 명 이상의 여성이 이사회에서 같이 일할 때 마법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아홉 명 중 세 명. 매직 서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처음에는 이 결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정도 규모의 집단에서 외부자가 두 명 있는 것과 세 명 있는 것에 정말 큰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대기업 이사를 지낸 여성들에게 연락해보니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그중 한 명이 수킨더 싱 캐시디(Sukhinder Singh Cassidy)라는 기업인이다. 그녀는 숫자가 지니는 의미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기업 이사회에 여성 수를 늘리고자 하는 더보드리스트(theBoardlist)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한 명은 외롭고, 두 명은 친구가 되지만, 세 명은 팀이 된다.


    미스터 인덱스와 메리어트 집단 감염 사태

    소수의 법칙이 ‘소수의 탓’으로 작용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전염의 두 가지 요소를 살폈다. 첫 번째 요소는 오버스토리다. 오버스토리는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두 번째 요소는 집단 비율이다. 이 비율은 해당 집단이 임계점에 이를 가능성과 그 시기를 좌우한다. 이 두 요소는 포플러 그로브 연쇄 자살 사태에서 드러났다. 포플러 그로브는 나름의 독특한 오버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극단적인 성취 윤리라는 이 오버스토리는 파괴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 또한 집단 비율도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포플러 그로브는 모노컬처였다. 그곳에는 학교의 규범에 짓눌린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줄 대안적 정체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 번째 요소도 있었다. 포플러 그로브 문제를 연구한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세스 아브루틴의 말을 떠올려보라.


    “네 번의 연쇄 자살 중 적어도 세 번의 경우에는 매우 두드러지는 평판 높은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들은 포플러 그로브 재학생의 이상적인 모습을 충실히 구현하는 학생이었죠. 자살한 청소년 중 다수는 완벽해 보였어요. 하지만 난데없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그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라고 생각했죠.”


    포플러 그로브 연쇄 자살 사태를 초래한 요인 중 하나는 초기 자살자들이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교의 위계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티핑 포인트’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를 ‘소수의 법칙’이라 불렀다. 우리가 다루는 많은 사회문제는 심히 비대칭적이다. 즉, 소수가 대부분의 ‘일’을 한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소수’는 정말, 정말 적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오래전 나는 도널드 스테드먼(Donald Stedman)이라는 대단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덴버 대학교의 화학자이자 명민한 발명가였다. 그가 고안한 많은 발명품 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배기가스를 적외선으로 즉시 측정하고 분석하는 장치가 있었다. 나는 덴버로 가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차를 타고 25번 주간고속도로에 있는 스피어 대로 출구로 갔다. 거기에 대형 전광판에 연결된 그의 발명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매연방지 장치를 갖춘 차가 지나가면 전광판에 ‘양호’라고 떴다. 반면 배기가스 허용치를 넘어서는 차가 지나가면 ‘불량’이라고 떴다.


    우리는 족히 1시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곧 알게 된 사실은 ‘불량’ 판정을 받는 차가 놀랄 만큼 드물다는 것이었다. 스테드먼은 그럼에도 그 소수의 차량이 덴버의 대기오염 문제를 초래하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차량 노후화, 부실한 수리, 소유자의 의도적 조작 등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소수 차량이 일산화탄소 수치를 평균보다 최대 100배나 더 높이고 있었다.


    도시 지역의 대기오염은 소수가 초래하는 문제의 완벽한 사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 모두가 초래한 문제인 것처럼 행동한다. 누구도 비대칭성에 대한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소수의 오염 물질 대량 배출자를 골라내는 일은 덴버의 대기질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일을 훨씬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적발되는 사람 중에 빈곤층이 압도적으로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에게 차를 수리할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치를 따르지 않으면 차를 압수해야 할까? 경찰들이 현장에서 오염방지법의 집행을 망설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단체가 자신들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테드먼의 검사 장치를 사들여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망신 주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가 ‘모두의 탓’이라는 입장에서 ‘소수의 탓’이라는 입장으로 옮겨가기는 정말 어렵다. 우리는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차라리 더러운 공기를 마시기로 작정한 듯하다.



    결론

    오버스토리, 슈퍼전파자 그리고 집단 비율

    처방 건수에서 발견된 80/20 법칙

    2002년, 유명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Company)가 내는 저널에 스타 컨설턴트 중 한 명인 마틴 엘링(Martin Elling)이 쓴 긴 논문이 실렸다. 제목은 ‘제약회사 영업 인력의 성과 향상’이었으며, 주제는 제약회사들이 제품을 의사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오랫동안 제약회사들은 단순히 나라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영업팀이 담당 지역에 가서 의사들에게 제품을 파는 방식을 따랐다. 가령 두 가지 심장병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는 전국 모든 병원의 심장 전문의를 담당하는 영업팀을 구축했다. 엘링이 논문을 쓸 당시, 미국에는 거의 9만 명에 달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있었다. 이 수치는 이전 6년 동안 두 배로 불어난 것이었다. 제약업계는 의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군대 규모의 영업조직을 꾸렸다. 그러나 엘링의 지적에 따르면 이 전략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엘링이 제시한 해결책은 영업사원들이 모든 의사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을 ‘세분화’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같은 병원의 나란히 붙은 진료실에서 일하는 두 명의 정형외과 전문의라 해도 처방하는 약의 수와 종류가 크게 다를 수 있다. 즉, 어떤 의사는 다른 의사들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서른다섯 살 먹은 의사는 예순다섯 살의 의사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 설령 나이 많은 의사가 많은 약을 처방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는 어차피 처방 습관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곧 은퇴할 것이다. 그러니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반면 서른다섯 살의 의사는 키울 여지가 있다.


    퍼듀는 2013년 맥킨지에 연락했다. 한 팀의 컨설턴트들이 뉴욕에서 코네티컷에 있는 퍼듀 본사까지 차를 몰고 갔다. 새클러 가문은 그들에게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옥시콘틴의 매출은 출시 첫해에 기록한 4,900만 달러에서 2005년에는 1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후 성장 엔진이 멈추고 말았다. 게다가 법무부는 퍼듀 파마가 옥시콘틴의 중독성에 대해 의사들을 오도했다며 제약산업 역사상 최고 수준의 벌금을 때렸다. 옥시콘틴의 평판이 위태로웠다. 특허권도 곧 만료될 예정이었다. 다른 제약회사들은 더 저렴한 복제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퍼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맥킨지는 바삐 움직였다. 그들은 젊고 똑똑한 컨설턴트에게 옥시콘틴 영업사원과 같이 매사추세츠주 우스터 지역을 돌도록 시켰다. 이 컨설턴트가 확인한 현실은 암울했다.


    마틴 엘링이 경고한 모든 일이 그대로 일어난 셈이었다. 퍼듀는 핀볼 게임식 영업을 했고, 그런 영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에 맥킨지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다. 그 이름은 ‘탁월성을 위한 진화(Evolve to Excellence)’, 줄여서 E2E였다. 퍼듀의 공동 회장인 리처드 새클러는 맥킨지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후 사촌에게 “맥킨지가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이후 10년 동안 퍼듀는 옥시콘틴 매출에 “터보 엔진”을 달아준 대가로 맥킨지에 8,6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조사 기간은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이며, 이 기간에 옥시콘틴은 총 617만 회 처방되었다. 맥킨지는 해당 데이터를 10개의 균등한 집단, 10분위로 나눈 다음, 최상위에서 최하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맨 하단에 있는 1분위는 9만 9,825명으로 가장 큰 집단을 이룬다. 여기에 속한 의사들은 6개월 동안 평균 1회 옥시콘틴을 처방했다. 이는 미미한 수치다.


    2분위는 2만 4,399명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1월부터 7월까지 3.6회 처방했다. 3분위는 1만 3,500명이 조금 넘는다. 그들은 같은 기간 평균 6.5회 처방했다. 위로 갈수록 각 집단에 속한 의사의 수가 줄어드는 반면 처방 횟수는 늘어난다. 10분위 인원은 겨우 358명인데 같은 6개월 동안 평균 247회나 처방했다. 옥시콘틴의 성공은 대다수 미국 의사, 심지어 일부 미국 의사의 덕을 본 게 아니었다. 그 요인은 8분위, 9분위, 10분위에 속한 극소수 의사들이 주도한 전염이었다. 이 약 2,500명의 의사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처방전을 썼다. 맥킨지의 E2E 계획에 사용된 표현에 따르면 이 상위 세 개 집단에 속한 의사들은 “코어(Core)”와 “슈퍼 코어(Super Core)”였다.


    “퍼듀는 전체 영업 활동 중에서 ‘슈퍼 코어’나 ‘코어’ 의사들에게 훨씬 높은 비중을 둔 영업사원들에게 보너스와 보상을 제공하는 점수 시스템을 따랐다.” 이는 마침내 퍼듀의 행태가 지적되었을 때 제기된 여러 형사 고소장에서 나온 내용이다. 퍼듀는 영업사원들에게 코어와 슈퍼 코어 의사들에게만 집중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큰 교훈은 바이러스가 공기로 전파되는 경우, 전염이 일어나는 데 많은 전파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드문 체질을 지닌 단 한 명의 슈퍼전파자가 많은 사람 앞에 서기만 하면 된다. 오피오이드 사태가 주는 교훈도 같다.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 알겠는가? 대다수 의사들, 압도적 다수의 의사들은 옥시콘틴 같은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적절한 주의 하에 다루었다. 전반적인 의료계는 모범적으로 행동했다. 그들은 신중을 기했고, 증거를 확인했고, ‘무엇보다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지혜를 받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사상 최악의 과용 사태를 방지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극소수의 의사들은 그다지 신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극소수는 전염 사태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이 사례는 다시 한 번 소수의 법칙을 훌쩍 넘어선다. 이는 매우, 매우 적은 극소수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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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