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의 소통법
 
지은이 : 김진수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26년 02월




  • 오케스트라의 원리를 리더십과 팀워크에 접목해 ‘지시’가 아닌 ‘경청’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구체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아다지오에서 알레그로까지 교향곡의 악장 구성을 따라가며 개인의 리듬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방법을 지휘자의 시선에서 섬세하게 풀어냈다. 




    아다지오: 힘을 빼고, 느려도 다 함께 앞으로

    힘을 뺄수록 힘이 생기고, 유연할수록 단단해진다
    악보에서 ‘아다지오’는 느리게 연주하라는 뜻이며, 느린 템포의 곡이나 악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타나 교향곡 또는 협주곡의 제2악장은 대개 아다지오로 구성돼 있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풍부한 선율을 자랑하는 이 악장을 듣다 보면 다양한 음들이 저마다 개성을 부드럽게 드러내는 게 느껴진다.

    가장 낮은 음역에서 시작된 선율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천천히 그러나 점차 강렬하게 펼쳐낸다. 어느 하나의 선율도 혼자만 돋보이거나 튀지 않는다. 마치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유유히 유영하듯 서로에게 잔잔하게 스며들며 하나가 돼간다.

    나는 아다지오 선율을 들을 때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올린다. 특히 팀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방식과 소통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구성원 중 누군가의 목소리만 유난히 크거나 혼자만 속도를 올려 내달리면 그 조직은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없다. 반면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고 신뢰가 생겨난다. 마치 어느 곳 하나 튀지 않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아다지오의 음들처럼 말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전체의 호흡을 맞추듯 기업의 리더나 팀장일수록 무작정 내달리기보다는 한 박자 쉬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급하게 몰아붙이기보다는 약간의 여유를 인정하고, 강하게 지휘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이끌어야 한다. 그런 리더 아래에서 팀은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게 된다.

    물론 때로는 빠른 결단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조직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어가는 리더십은 결국 긴장을 내려놓는 태도, 즉 ‘힘을 빼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힘을 덜어낼수록 지향할 방향이 또렷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흐름에 뒤처지기 쉬운 세상에서 힘 빼라는 조언은 어쩐지 실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필요한 게 바로 ‘유연함’과 ‘조율’이다. 힘을 주며 긴장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시야를 넓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흐름에 쫓기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진짜 내공은 바로 유연함과 균형 감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과연 이런 감각을 갖추고 있을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뭔가 빠르게 처리해서 성과를 내는 데 익숙하다. 6·25 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국력을 회복했고 놀라운 속도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배달 서비스나 행정 처리 속도 역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다.

    이런 ‘빠름’은 분명 강점이지만, 빠른 게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 속도만을 우선시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고, 자신만의 리듬과 방향을 잃은 채 남의 속도에 휩쓸리는 상황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관계에 균열이 생겨 마음의 여유까지 잃게 된다. 속도를 무리하게 끌어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직의 리더가 강약 조절 없이 ‘빨리빨리’만 외치면,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따르던 구성원들도 점차 지치고 동력을 잃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 빼기’라는 새로운 방식의 전환이다. 힘 빼기는 소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내가 직접 모든 걸 쥐고 흔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전략이다. 힘을 빼야 중요한 일에 더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리더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를 본능처럼 안다. 그 균형감각과 조율 능력이 바로 조직의 에너지를 오래도록 유지케 하는 핵심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우리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직과 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힘을 빼고 덜어낼수록 방향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이는 비단 기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다. 항상 힘을 주고 긴장한 채로는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계속 성장하길 원한다면 힘을 뺄 때 비로소 진짜 힘이 생기는 ‘아다지오’의 느림이 필요하다.

    진짜 경쟁력은 무조건 빨리 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달리고 언제 멈출지를 아는 데 있다. 전속력으로 질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를 시점도 있다. 그 리듬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변화에 강한 사람이다. 속도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함이 절실한 때다.


    안단테: 천천히, 리듬과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팀은 개인의 특별함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북유럽에서 널리 통용되는 ‘얀테의 법칙(Jante Law)’이 있다. 개인의 성취나 특별함을 앞세우기보다 공동체의 이익과 조화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 자주 회자할 만큼 익숙한 표현이다.

    얀테의 법칙은 한마디로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을 깎아내리라는 뜻이 아니라 관계와 조직 속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을 현실적으로 점검하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많은 부를 쌓고, 공부를 잘하고,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뤘더라도, 결국 나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도, 타인도, 관계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비교가 만든 함정에서 벗어날 때 불필요한 마찰은 줄어든다
    얀테의 법칙은 모두 열 가지다. 첫 번째 지침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다. 나만 소중하다고 여기는 순간 세상은 불평등해진다. 나아가 관계 안에서 나만 예외가 되려는 태도는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 그 마음은 쉽게 질투와 욕망으로 번져서, 자신만의 속도를 잃어버린 채 남과의 경쟁에만 매몰되고 만다. 특히 팀의 구성원일 때 이런 태도가 강해지면 협업을 어렵게 만들고 팀의 신뢰 구조를 흔들게 된다.

    두 번째 지침은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다. 보통 우리는 자신이 베푼 선의만큼 상대가 보답하지 않으면 불만을 품는다.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네가 가진 것만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이 말은 내가 가진 만큼 남들이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만, 거꾸로 남들이 가진 만큼 내가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관계에서의 실망은 대개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어’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팀 안에서도 이 기대의 불균형은 쉽게 서운함과 오해로 번진다.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이해는 사라지고 악감정만 남는다.

    세 번째 지침은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더 현명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일 수도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지침도 같은 맥락이다.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여기지 말라”와 “당신이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다. 이런 자세야말로 겸손을 넘어 조직과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실질적인 지혜다.

    조직과 사회는 개인의 우월감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얀테의 법칙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라는 교훈을 넘어 삶의 태도 전반을 성찰하게 만든다. 여섯 번째 지침은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다. 조직과 사회는 특정 개인의 우월감 위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내가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타인 또한 소중하다. 이런 인식이 있을 때 조직은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데라토: 뚜벅뚜벅,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시너지
    흐름을 만들면 팀은 저절로 움직인다
    머릿속에서 ‘흐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강물이 잔잔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그 안을 채우는 입자의 크기다. 물은 입자가 작기에 유연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강바닥에 있는 바위, 돌, 자갈, 흙, 모래도 강물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다만 큰 바위나 돌은 물살을 따라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작은 자갈은 좀 더 쉽게, 모래는 더 부드럽게, 흙은 마치 물에 녹아들듯이 자연스럽게 강물을 따라 흐른다. 입자가 작아질수록 물의 흐름에 저항하는 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거센 강물이 된다
    음악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리듬은 잘게 쪼개질수록 부드럽고 유연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온음표에서 시작해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로 나뉠수록 리듬의 결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음악은 그만큼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이어진다. 이렇게 세밀하게 쪼개진 리듬들이 서로 연결될 때, 음악은 비로소 살아서 움직이며 청중의 마음을 흔든다.

    이 원리는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은 흙 입자가 강물의 흐름을 따라가듯, 조직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의 역할이 세밀히 나뉘고 서로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이 흐름의 바탕에는 반드시 신뢰와 존중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서로의 노력을 믿고 각자의 몫을 인정할 때, 팀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원팀’이다.

    내가 시립합창단에서 지휘자로 있었을 때의 경험이 이런 점을 뼈아프게 일깨워줬다. 음악적 결정은 지휘자의 역할이었지만, 일부 단원들은 그 경계를 넘어서까지 개인 주장을 과도하게 드러냈다. 음악적 토론을 가장한 간섭은 곧 팀 전체의 호흡을 깨뜨렸고, 합창단은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결국 과욕은 협력을 무너뜨렸다. 흐름을 잃은 조직은 끝내 와해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내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조직이 건강하게 흐르려면 각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진리 말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실수조차도 함께 감싸안는 태도가 필요하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에 실수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모일 때, 조직은 다시 힘을 얻고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좋은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 조직은 자연스럽게 더 높은 성과를 낸다. 리듬이 부드럽게 이어질 때 곡이 생명력을 얻는 것과 같다. 반대로 불필요한 간섭이나 과도한 통제는 흐름을 끊고 조직을 무겁게 만든다. 신뢰와 존중 속에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면, 조직은 조화로운 흐름을 타고 성장해나간다. 합창단 경험을 통해 나는 결국 조직의 본질은 신뢰와 존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밑거름 삼아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가는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 강물이 흐르며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듯이, 음악의 조화로운 흐름이 진한 감동을 주듯이, 우리 삶과 조직도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다.

    자율과 책임, 수평과 수직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음악은 수평적 흐름인 ‘선율’과 수직적 관계인 ‘화성’, 이 두 축이 어우러져 완성된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동시에 서로가 연결돼야 음악은 생명력을 갖는다. 지휘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 원리는 음악을 넘어 조직의 팀워크와 협력의 은유로 확장된다.

    수평적 흐름은 선율, 즉 ‘멜로디’에 해당한다. 멜로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러 음이 이어져 생겨난다. 대위법적 관점에서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마디는 악보에 분명히 표시돼 있지만, 그것이 음악의 본질적인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 지휘자는 마디를 넘어 가사와 감정에 따라 선율의 방향을 이끌어야 하며, 선율은 하나의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휘자는 단순히 손을 흔드는 존재가 아니라, 음악의 맥락을 해석해 단원들과 공유하는 해설자이자 안내자가 돼야 한다.

    수직적 관계는 화성에서 비롯된다. 화성은 여러 성부가 동시에 쌓아 올리는 음들의 ‘관계’다. 합창에서는 각 성부가 자신이 부르는 음정이 화성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근음(根音, root note), 3도, 5도 같은 위치를 스스로 인지할 때, 각 성부는 자신이 전체 구조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성부들의 소리를 경청하며 자신의 음을 조율해야 한다. 한 성부만으로는 화성이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성부가 맞물려야 비로소 화성이 완전해지고 풍성한 울림이 탄생한다.

    이처럼 음악은 ‘수평’과 ‘수직’의 균형 속에서 완성된다. 수평적 선율은 개인의 개성을 살리며 흐름을 만든다. 조직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될 때 나타나는 모습과도 닮았다. 반면 수직적 화성은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인식하도록 해준다. 이 둘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건강한 조직이 된다.

    음악에서 수평과 수직을 조화시키는 핵심은 서로의 소리를 듣는 태도와 자신의 목소리를 조율할 줄 아는 능력이다. 자기 목소리만을 고집해서는 결코 하모니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소리를 모아 하나의 울림을 만들 때, 음악은 생명력을 얻는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를 경청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체의 조화 속에 맞출 때 비로소 살아있는 팀워크가 완성된다.

    음악의 수평과 수직은 조직의 개인성과 집단성 그리고 자율성과 구조를 동시에 보여준다. 조직의 조화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지휘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되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균형을 만들어갈 때, 조직은 생명력 있는 흐름을 타고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음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협력의 본질적 의미다.


    알레그로: 빠르고 경쾌하게, 성장하는 조직을 위한 리더십
    유연성을 잃은 리더십은 흐름을 잃은 음악과 같다
    음악의 세 가지 요소인 ‘멜로디’, ‘화성’, ‘리듬’ 중에서도 리듬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리듬은 단순히 일정한 박자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맥박처럼 생명을 품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흐름이다. 사람의 심장이 혈액을 온몸에 고르게 공급해 생명을 유지하듯이, 음악에서도 리듬은 음들을 자유롭게 흐르게 하며 곡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혈관이 막히면 어떻게 될까?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이처럼 음악에서도 흐름이 막히면 연주는 생동감을 잃을뿐더러 소음 말고 다른 무엇도 아니게 된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사고의 ‘유연성’을 잃는 순간 조직의 업무 흐름은 끊어지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당연히 그 안의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젊은 세대는 정체된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가장 먼저 조직을 떠난다. 이때는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무용지물이다. 리더의 역량이 모자라거나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느끼면 거액의 연봉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유연한 사고에 기반한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사고는 조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가치관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출몰하는 요즘이다. 이런 시대에 리더가 사고의 유연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성장과 발전을 멈추게 된다. 리더는 그저 외로운 섬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사고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음악에서 리듬이 단순히 반복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변화와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생명력을 얻듯이, 리더 또한 고정관념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휘자가 악보에 적힌박자를 지키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흐름과 감정을 읽어내어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호흡하게 만드는 것처럼, 리더도 규칙과 원칙을 유지하되 상황에 맞는 유연한 사고와 결정을 통해 공동체가 조화롭게 흘러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 곡의 음악이 강물처럼 흘러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때 관객은 깊이 감동한다. 리더의 생각도 그렇게 유연하게 흐를 때 조직은 강한 생명력을 얻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리더의 유연성은 단순한 성격적 특성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활력과 직결된다. 사고의 흐름이 열린 리더는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처럼 유연성이 살아있는 리더십이 자리 잡은 조직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구성원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할 자신감을 얻고, 한층 큰 성장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진정성과 유연성 사이 리더가 가야 할 올바른 길
    리더라면 누구나 ‘진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덕목의 균형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리더십 강의를 해오면서 자기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정성 있는 리더가 신뢰를 얻고 직원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강사는 다른 입장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을 다 드러내면 전략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세상이에요.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장착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어쩌면 그동안 내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해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다. 올바른 리더라면 진정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과연 조직을 위해 올바른 행위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리더에게 진정성이란 단순히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핵심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식에 가깝다. 즉, 진정한 리더는 자기다움을 유지하되 상황에 맞게 표현할 줄 아는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조직 내부에서는 신뢰를 쌓기 위해 솔직함이 전제돼야 하지만, 소통과 협상을 위해서는 전략적인 태도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진정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현실적인 리더십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을 유지하면서도 관계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식을 찾는 유연성이 있어야 진정한 리더로서의 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균형 잡힌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숨겨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노출해서도 안 된다. ‘투명한 벽’을 쌓아야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율할 수 있는 투명한 벽을 만든다면 진정성 있는 리더십과 전략적 소통이 공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