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수의 의견은 무시하고 한 사람이 결정할까? 좋은 결과가 곧 좋은 선택일까? 모두 똑같이 노력하는데 왜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가난할까? 이런 막연한 질문에 진심을 바쳐 연구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이다.
흔히 경제학을 돈 잘 버는 법이나 복잡한 수식을 다루는 학문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경제학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이다. 일상부터 정치 제도까지 현재의 상황을 데이터로 만들어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 책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연구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직장과 학교, 영화와 역사, 정치와 사회 등 우리 삶과 직결된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학을 통해 일상의 크고 작은 선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국내 게임 이론 권위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재학 당시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매스킨(Eric Maskin)과 게임 이론의 대가 드루 푸덴버그(Drew Fudenberg)에게 지도를 받았다. 일본 국립정책연구대학원에서 4년간 교수 생활을 한 후 2002년부터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게임 이론과 법경제학으로, 기업과 국가의 전략적 행동과 진화론적 경제 이론이 주요 관심 분야다. 생물이나 역사, 스포츠 등 다른 분야에 경제학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경제학회 사무국장, 연세대학교 국제처장·상경대학 부학장·입학정책부처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 행정 분야에서도 경험을 쌓아왔다.
저서로는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인생 경제학》, 《경제학 비타민》 등이 있다. 매일경제 및 조선일보에 경제학 칼럼을 연재했으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어쩌다 어른〉, KBS 〈쌤과 함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에 출연했고 다수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고 있다.
■ 차례
1부 개인 : 선택과 협력의 경제학
1. 좋은 만남은 설계된다 : 로이드 섀플리와 앨빈 로스의 매칭 이론
시장을 설계한 경제학자들 /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이유 / 완벽한 매칭의 조건 / 시장의 두터움과 혼잡의 방지 / 불편한 매칭을 찾으면 인생이 바뀐다
- 로이드 섀플리의 또 다른 이론 ‘섀플리 밸류’
2. 오늘 점심 메뉴를 골라야 한다면 :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천재들의 천재 /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불가능하다 / 민주주의와 공공 선택의 딜레마 / 다수결의 역설 / 콩도르세 투표, 콩도르세 역설 / 정답은 없지만 더 나은 차선은 있다
2부 조직 : 기업과 성과의 경제학
3. 조직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 로널드 코스의 거래 비용과 법경제학
법경제학의 창시자 / 법학은 어떻게 경제학의 무기가 되었을까 / 왜 환경오염은 시장 거래로 해결할 수 없을까 / 기업의 내부는 자유 시장과 모순 관계일까 / 보이는 손은 언제 필요할까
4. 최고의 팀에도 구멍은 있다 : 마이클 크레이머의 오링 이론
최첨단 우주선 속 단 하나의 빈틈 / 대기업 CEO가 비싼 차를 타는 경제학적 이유 / 인생의 성공은 확률이 아닌 횟수다
5. 사람보다 시스템을 믿어라 : 올리버 하트와 벵트 홀름스트룀의 계약 이론
두 거장에게 배운 것 / 대리인이라는 난제 / 주인과 대리인의 동상이몽 / 직원이 게으른 이유는 주인에게 있다 / 능력의 경제학, 담력의 경영학 / 그들이 꾀를 부리는 진짜 이유
- 벵트 홀름스트룀의 또 다른 이론 ‘팀에서의 도덕적 해이’
3부 시장 : 경쟁과 설계의 경제학
6. 정직하지 않으면 손해다 : 에릭 매스킨의 메커니즘 디자인과 윌리엄 비크리의 세컨드 비드 경매
세상을 설계한 두 천재 / 정직하지 않아서 경제학이 필요하다 / 효율성에 목숨을 거는 이유 / 윌리엄 비크리의 세컨드 비드 경매 / 클라크-그로브스 메커니즘 / 정치도 설계될 수 있을까 / 에릭 매스킨과 메커니즘 디자인
7. 가장 먼저 결정할 필요는 없다 : 로버트 윌슨과 폴 밀그럼의 동시적 상승 경매
경매와 경제학의 상관관계 / 경매라고 다 같지 않다 / 승자의 저주란 무엇인가 / 동시적 상승 경매는 왜 필요할까 / 비교 없는 선택은 위험하다 / 좋은 선택은 끝까지 열어두는 것이다
8. 모두가 선택했다고 정답은 아니다 :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의 무리 짓기 이론
남들이 사면 나도 산다 / 인간도 무리 짓는 동물이다 / 무리 짓기는 어떻게 시작할까 / 의견 수렴이 필요한 이유
4부 국가 : 제도와 번영의 경제학
9. 패닉은 전염된다 : 벤 버냉키의 대공황
불안이 돈을 움직인다 / 정부 정책의 딜레마 / 은행의 탄생과 뱅크런의 비밀 / 벤 버냉키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 미시경제학자가 보는 거시경제학
10. 통계는 우리를 속인다 : 조슈아 앵그리스트의 자연 실험
결과가 원인을 말해줄까 / 텔레비전을 많이 사면 성적이 오른다? / 통계가 우리를 속이는 방법 / 경제학은 자연을 실험실로 삼는다 / 좋은 데이터보다 좋은 질문
11. 번영도 선택할 수 있을까 : 다론 아제모을루의 제도
문제는 환경일까, 제도일까 / 아제모을루 교수의 거대한 주제 / 번영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 답은 제도에 있다
국내 게임 이론의 권위자이자 하버드 출신 경제학자 한순구 교수는 노벨 경제학자들의 어렵기만 한 이론을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쉬운 예시를 통해 소개한다. 회사에서 먹을 점심 메뉴 고민이나 승진과 같은 일상 밀착형 고민부터 경제와 사회, 국가 제도까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더 좋은 해답을 찾는 방법을 제시했다.
경제학자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개인 : 선택과 협력의 경제학
오늘 점심 메뉴를 골라야 한다면 :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천재들의 천재
하버드 박사 과정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국가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 경험을 가지고 하버드대학에 모 였지만, 이곳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뛰어난 학자들을 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보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 존재하는가를 느끼게 된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교수는 하버드대 교수 중에서도 단연코 범접할 수 없는 지능을 가졌다는 것을 몇 번 대화만 해봐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누굴까’라고 묻는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 교수를 꼽을 것이다. 경제학에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재정학 등 많은 분야가 존재하는데 그중 미시경제학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바로 케네스 애로다. 애로 교수는 미시경제학의 중요한 분야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증명이라 할 수 있는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불가능하다
어느 화창한 오후 점심시간, 어떤 식당에서 먹을지 항상 부장님이 결정하는 게 못마땅한 적은 없는가? 부장님이 모든 부서원의 점심값을 낸다면 모르겠지만, 각자 식사비를 내는데 어째서 가고 싶지 않은 식당에 억지로 가야 할까? 같은 소소한 불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가 전체의 고민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지역에 공항을 만들고 그 지역 주민들에게 정부가 지원금을 보상한다고 할 때, 내가 낸 세금 일부를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써도 되는지에 대해 불만이 생긴다. 당연히 부서원의 의견을 모아서 식당을 정하고, 민의를 모아서 국가사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부서원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믿겠는가?
케네스 애로 교수는 ""구성원의 의견을 완벽하게 수렴하는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 정리""라는 유명한 경제학 이론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부서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여 식당을 결정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부장님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정치인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눈에 띄고 있다. 물론 더 좋은 정치인을 선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결국 국민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가장 현명을 판단을 내리는 정치인을 뽑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된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인의 한심한 행동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울한 현실이다. 하지만 완벽한 의견 수렴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완벽에 가까운 의견 수렴 제도가 있는 반면, 부실하고 불완전한 의견 수렴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공공 선택의 딜레마
경제학을 정의하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이는 경제학을 무엇이라 정의할지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시경제학자라면 경제학을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실업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시켜 주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미시경제학자들에게 경제학이란, ""이익과 손해 관계를 통해 인간을 움직이는 인센티브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정의하거나 혹은 ""올바른 의사선택을 위한 학문""이다.
우리 인간은 불확실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올바른 선택을 더 많이 할 수 있겠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다. 매일 우리는 ""현재의 여유 자금을 주식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정기예금에 넣을 것인가""와 같은 일상의 사소한 결정도 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찍을까""처럼 중대한 의사 결정도 한다. 이런 의사 결정은 항상 후회가 남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려운 의사 결정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런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어떤 개인이 자신의 돈을 가지고 선택을 하는 경우 그 책임이 모두 개인에게 귀속되며 남이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 않더라도 그 개인은 자신의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타인의 결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경제학자의 태도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학자들이 가장 골치 아프고 어렵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공공 선택 (Social Choice)""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동일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한 개인의 선택도 쉽지 않은데 다수의 구성원들이 논의하여 똑같은 선택을 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작업임이 확실하다. 그 이유는 원하는 바가 다른 대다수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의 선택을 따라야 하는 구성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 후보가 60%의 지지율로 당선됐다고 가정할 때, 40%의 국민은 그 당선자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는 뜻이 된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게 민의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중요한 질문에 답을 하고자 경제학자들과 수학자들이 공공 선택 분야를 연구하였다.
젊은 시절 케네스 애로 교수도 이런 공공 선택을 위한 이상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애로 교수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가장 이상적인 공공 선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공공 선택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고 증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 정리""이다. 불가능성 정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구성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서 공공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애로 교수가 불가능성 정리를 증명한 이후, 공공 선택은 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차선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는 우울한 연구 분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조직 : 기업과 성과의 경제학
조직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 로널드 코스의 거래 비용과 법경제학
법경제학의 창시자
경제학 이론을 이용해서 현실을 가장 많이 바꾼 경제학자를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로널드 코스 교수를 꼽는다. 가장 주요한 업적만 언급해 보자면, 코스 교수 덕분에 법학에서 법경제학이라는새로운 분야가 생겼다. 도덕과 윤리만 따지던 법학자들이 경제적 개념을 도입해 효율성을 법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경제에 관여하지 않고 자유방임 정책을 펴면 결국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경제의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코스 교수는 시장에도 결점이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고, 결국 정부가 나선다는 것은 법을 제정하여 사람들이 지키도록 하는 것이므로 법이라는 형태로 정부가 나서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었던 것이다.
법학은 어떻게 경제학의 무기가 되었을까
우리 부서의 부장과 과장은 내 업무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가? 가만 놓아두면 내가 알아서 잘할 텐데, 부장과 과장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트집을 잡아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업무 효율은 낮아지기만 한다. 경제학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 ""자유로운 시장경제""라고 하는데 어째서 우리 부서에선 자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불합리해 보이는 지시를 따라야 할까? 첨단 IT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정해진 자리나 사무실도 없이 자유롭게 출퇴근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은 정말 효과적일까? 이러한 질문을 오래전에 던지고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조직과 규제가 왜 필요하며, 어느 선에서 그쳐야 하는가를 규명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널드 코스 교수다.
일반 상식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 모든 물건은 얼마든지 내 것과 네 것으로 나누실 수 있다. 내가 사는 집은 우리 가족의 집이다. 나와 가족의 허락 없이 이 집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소유권 위반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강도나 도둑이라고 간주해서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침입자는 체포될 것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구매한 빵도 내 것이다. 내가 산 빵을 누군가가 가로채서 먹는다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역시 도둑이라고 봐서 틀림이 없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너무 기본적인 사항이라서 경제학자조차도 간과하기 쉽지만, 이 세상에서 물건을 사고판다고 할 때 그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소유권""이다. 내가 팔 수 있는 물건은 내가 소유한 물건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팔고 나면 그 물건을 산 사람이 소유자가 되고 돈을 받고 물건을 판 나는 더 이상 소유자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철수가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옆방에는 영수라는 다른 대학생이 살고 있다. 철수가 기숙사비를 내고 살고 있는 방은 적어도 이번 학기까지는 철수가 소유한 공간이다. 또한 옆방은 영수가 소유한 공간이다. 그런데 철수의 취미는 음악감상이다. 공부할 때나 쉴 때나 항상 음악을 듣는다. 그것도 크게 볼륨을 올리고 음악을 들어야 흥이 난다. 문제는 기숙사가 방음이 잘 되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철수가 방에서 음악을 들으면 옆방의 영수에게 그 음악이 들린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영수는 공부하거나 쉴 때 조용하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철수는 음악을 들을 것이며 영수는 그 음악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다. 심지어 기숙사 방이 재배정되기 전까지 6개월을 버텨야 한다. 이때 기숙사 사감이 영수의 고통을 이해하고 철수에게 음악을 듣지 말라고 하면 어떨까? 철수도 할 말이 있다. 내가 내 방에서 내 돈 주고 산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철수는 음악을 듣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 수가 없어서 성적이 곤두박질치는데 기숙사 사감이 이를 책임질 거냐고 따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기숙사 방은 철수가 돈을 지불한 철수 소유의 공간인데, 자신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소유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
결국 기숙사 방을 한 학기 동안 사용한다고 할 때, 이 소유권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가 아니면 조용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가의 반대되는 주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용한 기숙사에서 지내고 싶다는 영수와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는 철수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경제학자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더 큰 이익이나 효율성이 창출되는가를 따지는 학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 읽어보아도 옳거나 그르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반대로 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를 ""외부성(Externality)""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경제학자가 가장 고민하는 난제 중에 하나가 바로 외부성이다.
철수와 영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숙사를 운영하는 사감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철수의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조용한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영수의 욕구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철수가 무제한으로 음악을 듣도록 하는 것은 영수에게는 너무 큰 피해다. 반대로 철수가 전혀 음악을 듣지 못하도록 막는 것 또한 철수에겐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적 최적은 철수가 매일 일정 시간 동안만 음악을 듣게 허용해 주되, 그 이후에는 기숙사가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철수에게 몇 시간 정도만 음악을 듣도록 허용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최적 문제는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결국 철수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고 영수가 얼마나 음악이나 소음을 싫어하는가를 알아야 적정 수준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숙사 사감이 이 두 학생에게 묻는다면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코스 교수가 증명한 코스 정리에 메시지가 있다. 코스 정리에서 제안한 해결책은 "재산권, 즉 소유권을 법으로 확실히 정해주라"는 메시지였다. 기숙사 규정을 만들어서 ""기숙사에서는 음악 소리 등의 소음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고 취침할 권리가 있다""라는 식으로, 그러니까 영수가 조용한 환경에서 거주할 권리가 있다고 정해주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철수는 음악을 들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코스 정리에 의해 철수는 기숙사에서 절대로 음악을 듣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재산권이라는 것은 행사할 수도 있지만, 돈을 받고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매한 집은 나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사실 내가 월세를 받고 남에게 빌려줄 수도 있는 공간이다. 즉 영수는 조용한 환경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재산권을 가지고 있지만 철수에게 매일 1만 원을 받고 6시부터 7시 사이에 철수가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것을 허용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 집을 월세를 받고 세를 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6시부터 7시까지 영수는 저녁 식사를 한다면 철수와 영수가 모두 만족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영수와 철수가 평화롭게 거래할 수 있는 이유는 기숙사 규정이 영수에게 조용한 환경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영수가 가지지 않은 권리를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영수가 그 권리를 소유한다는 사실을 법으로 명시함으로써 권리의 매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코스 정리가 절묘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유지되는 시장이 소음이나 환경오염 같은 외부성의 경우에는 불완전해지는데, 그렇다고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최소한의 보이는 손을 개입시켜 다시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 정리 이전의 경제학자들은 법학과 경제학은 전혀 관계가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의 재산권을 확정해 주는 법의 존재가 경제에 얼마나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코스 정리를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법학자들도 경제학은 법과 전혀 관련이 없고 법은 오로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코스 정리를 통해서 경제학의 이론을 접하게 되자 법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의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의 활성화를 통해서 국가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장 : 경쟁과 설계의 경제학
정직하지 않으면 손해다 : 에릭 매스킨의 메커니즘 디자인과 윌리엄 비크리의 세컨드 비드 경매
정직하지 않아서 경제학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바로 미국 독립을 이뤄낸 조지 워싱턴 장군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매우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어릴 적 새로 산 도끼를 너무 써보고 싶었던 나머지 직접 벚나무를 베어 보았다고 한다. 벚나무가 베어진 것을 본 그의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면서 누가 벤 것인지를 묻자, 정직하게 자신의 행동이라고 말해서 오히려 부친의 칭찬을 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원했다면 세 번째 연임이 가능했겠지만, 자신은 두 번 대통령을 한 것으로 충분하다며 자진해서 출마를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가게의 점원으로 일할 당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을 발견하고는 그 손님이 있는 곳까지를 몇 시간 동안 걸어가서 잔돈을 마저 돌려준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이 때문에 ""정직한 에이브러햄""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또 정직한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직하다는 것은 단순히 주변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정직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하면 모든 의사 결정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조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반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 있으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게 되어 비효율이 발생하고 조직의 성공 확률을 저하시킨다. 하지만 조직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해로운 거짓말을 여전히 빈번하게 하는 이유는 거짓말이 ""개인""에게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에 이로운 일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동네에 원자력 발전소를 설치하면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원자력 발전소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뉴스에서 본 적 있을 것이다. 순순히 발전소의 건설을 허용하기보다, 이렇게 반대를 하면 발전소가 건설되더라도 더 큰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워싱턴이나 링컨처럼 정직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들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고 진실을 알아내는 연구를 해왔다.
효율성에 목숨을 거는 이유
경제학자는 효율성에 목숨을 건다. 효율성이란, ""가장 적은 투입으로 가장 많은 산출을 낸다""는 개념인데, 경제학자들은 이런 효율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인물 중에서 과학자와 공학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의 경제생활은 산업혁명을 계기로 정말 차원이 다르게 발전했다. 증기관, 기차, 자동차, 전기 등이 모두 산업혁명 이후에 과학자와 공학도의 노력으로 발명되었다. 이들 덕분에 이전에는 100명의 인부가 하던 일을 이제는 1명이 기계를 작동시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니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과학자와 공학도의 발명을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만으로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마을에 경운기 한 대가 들어왔다고 하자. 그런데 철수라는 농부가 이 경운기를 사용하면 벼 50석을 더 생산할 수 있는데, 영수라는 농부가 이 경운기를 사용하면 벼 200석을 더 생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경운기를 주어야 할까? 당연히 영수다. 영수가 있으니 철수에게 주면 안 된다. 영수가 경운기를 사용할 경우, 철수에 비해 효율성이 4배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에서 경운기가 영수에게 간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수의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든지 아니면 마을 제일의 부자라든지 등의 이유로 영수가 써야 할 경운기를 힘과 돈을 빼앗아서 철수에게 주는 상황이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과학자와 공학도가 똑같이 경운기를 발명하더라도 어떤 나라는 철수에게 주어서 효율성이 낮아지는 반면, 어떤 나라는 영수에게 주어서 효율성이 높아지면 이 두 국가의 격차는 확연히 벌어지게 된다.
경제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좋아하는 이유도 효율성에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에 의해서 경운기를 판매하면 철수는 절대로 벼 50석 이상의 가격을 내고 경운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수는 경운기를 사용함으로써 벼를 200석 더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50석의 가격을 지불하고 나서라도 경운기를 살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경운기를 판매하면 경운기는 영수에게 판매된다.
하지만 보이는 손, 즉 공무원(사람)에 의해서 경운기가 배분된다면 영수가 경운기를 쓴다는 보장이 없다. 철수가 자기는 벼 400석을 생산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담당 공무원이 철수의 거짓말을 믿으면 경운기가 철수에게 주어진 수 있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철수가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경운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는 달리, 공무원은 거짓말에 속을 수도 있고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에 의해 자원을 배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람이 임의로 자원을 배분한 공산주의 경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을 따른다고 해서 언제나 효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경제학자들이 골머리를 썩이며 연구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 물건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사람에게 그 물건이 주어지는 사회가 결국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이런 치열한 노력을 하지도 않고 그 물건을 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꾸 배분되는 사회는 결국 경제가 붕괴되거나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경제적으로 점점 빈곤해진다.
이렇게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경제학자들의 무수한 노력들 중, 최근에 가장 주목을 받는 분야가 ""공학적 관점의 경제학""이다.
경제학자들은 거짓말을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 마을 주민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이유는 협상 때문이다. 순순히 협력하는 것보다 반대했을 경우, 정부가 주민 모두에게 2억 원씩 준다고 조건을 걸 수도 있다. 그 경우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2억 원이 부족하다면 모두에게 3억 원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국가 경제에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1,000명의 주민에게 3억 원을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100억 원씩 준다고 해도 반대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면서 내 목숨은 100억 원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지만 100억 원을 받는다면 그 마을에 살 이유가 없다. 서울 같은 대도시로 이사를 가서 풍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100억 원을 줘도 반대한다는 식의 주장은 진실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
아마도 3억 원이면 충분히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격렬히 반대하면 아마 정부에서 10억 원까지 돈을 더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진실을 감추고 “나는 100억 원을 줘도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한다”는 거짓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짓말과 억지 주장 때문에 건설되어야 할 도로나 발전소가 건설되지 못하면 국가 경제에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필요하지도 않은 다리나 공항을 “정말 필요하니 자기 동네에 세워달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에 속아 세운 다리에 자동차가 하루 평균 10대만 지나다니거나, 새로 건설한 공항에 매일 비행기 1대만 이착륙한다면 그런 국가의 경제는 쇠퇴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원자력 발전소는 정말 지으면 안 되는가, 또는 이 공항이 정말 필요한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주민들이 그때마다 거짓말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메커니즘 디자인을 연구하여 주민들이 거짓을 말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을 공학적으로 설계하여 주민들이 진실만을 이야기하도록 만들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노벨상 위원회가 2007년도에 메커니즘 디자인 분야의 세 경제학자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