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논쟁 대화법
 
지은이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은이), 김시형 (옮긴이)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24년 04월




  •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논쟁해도 절대 지지 않는, 대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38가지 말하기 기술을 소개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논쟁에서 이기는 말싸움 기술과 만나보세요.


    쇼펜하우어의 논쟁 대화법


    Eristische Dialektik

    ‘양날을 가진 칼을 다루는 위험하고도 섬세한 기술, 논쟁 대화법

    논쟁 대화법 (논쟁 대화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이다. 누구든 어떤 문제에서 객관적으로 옳을 수도 있지만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보기에도 틀린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논쟁 상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의 반론은 당신에게 양날을 가진 칼로 작용할 것이다. 즉 이는 당신에게 상대의 주장을 논박할 근거를 제공 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역 이용할 가능성도 동시에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당신의 논쟁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 역시 객관적으로 틀린 자기주장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쓸 테니 말이다. 어떤 주장의 객관적인 진실 여부와 논쟁하는 사람들, 논쟁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인정함으로써 생긴 진술의 효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주장이 진리의 편에 서 있는가와 그 주장이 논쟁 상대 · 논쟁을 듣는 청중 모두의 동의를 얻어 진리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이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 책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후자의 논쟁 대화법이다.


    인간이 가진 태생적 ‘악의에서 논쟁 대화법이 탄생했다?

    논쟁 대화법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흥미롭게도,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가진 태생적 악의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는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악의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정직했을 것이기에 무자비한 공격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논쟁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또 만일 그랬다면 사람들은 무슨 토론을 하든 애초에 자신이 내세운 의견이 맞는지, 상대가 내세운 의견이 맞는지 여부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는 일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또 만일 그랬다면 자기 의견이 맞는지는 상관없거나 부차적인 요소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인간은 지성과 관계된 일이라면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묘한 감정과 허영심 탓에 자기주장이 틀릴 수 있고 상대 주장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주장을 말하 기 전에 깊이 잘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이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다수 사람이 허영심에 더해 떠벌리고 꾸며서 말하는 태도를 함께 타고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생각 없이 말해 버리고 나중에야 자기주장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이럴 때 사람들은 속마음을 숨긴 채 겉으로는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참된 명제를 증명하고자 하는 유일한 동기였던 진리를 향한 관심을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허영심을 채우려는 욕심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참은 거짓이라는 오명을 쓰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한다.


    논쟁 대화술은 ‘머리로 하는 검술이다

    대화술을 정확하게 구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학의 주요 대상인 객관적 진실 여부에 집착하지 말고 대화술을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술로 보아야 한다. 물론 만일 당신이 논쟁 상황에서 올바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면 정당성을 얻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어찌 됐든 당신은 대화술에서 온갖 종류의 공격, 그중에서도 특히 허위 주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방법과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상대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는 일 없이 적절한 논박으로 그의 주장을 무력화하는 방법 등을 모두 배울 수 있다. 당신은 객관적 진실을 찾아 밝히는 일과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여 논쟁을 듣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술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전자, 즉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전혀 다른 행위의 과업일 뿐 아니라 판단력, 사고력, 경험의 작동이며, 여기에는 특정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에 반해 후자, 즉 자기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대화술의 목적이다. 이제껏 대화술은 허상의 논리학으로 정의되어 왔다. 이는 틀린 주장이다. 만일 이 주장이 맞는다면 대화술이 오로지 거짓 문장을 정당화하고 변호하는 데에만 쓰였을 테니까. 맞는 주장을 펼칠 때도 대화술은 필요하다. 억지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그것을 사전에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논쟁이 벌어지면 당신은 상대가 당신의 논리를 깨기 위해 사용한 무기를 활용해 오히려 역공에 나설 수 도 있다.


    대화술에서는 객관적 진실을 논외로 하거나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의 자기주장과 논리를 견지하고 상대의 논리와 주장을 꺾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논쟁 상황에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객관적 진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논쟁이 벌어지면 때로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착각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논쟁 상대 모두 그렇게 믿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말대로 "진리는 심연 속에 있기(veritasest in puteo)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은 논쟁이 시작될 때 진실이 자기 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논쟁이 진행되면서 논쟁 상대 양측 모두 확신을 잃고 회의에 빠진다. 결국 진실을 확정하는 것은 논쟁의 결과뿐이다. 이렇듯 대화술은 진리나 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생각해 보자. 죽고 사는 결투에 나선 검투사가 자기가 옳은지 그른지 신경 쓸 여유가 있는가? 한마디로 대화술은 머리로 하는 검술이다. 찌르기와 막기, 이 두 가지에만 매진하면 된다. 이렇게 단순한 관점으로 보아야만 대화술이 효과적인 특유의 기술로 정립된다. 만일 당신이 객관적 진실만을 목적으로 둔다면 당신은 다시금 단순한 논리학(Logik)에 머물고 말 것이다. 반대로 만일 당신이 그릇된 주장(문장)을 정당화하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처럼 궤변 (Sophistik)에 갇히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두 가지 또한 당신이 객관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만 이것을 사전에 간파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대화술의 본질은 주장 그 자체다. 이런 맥락에서 대화술을 논쟁이나 토론에서 정당성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정신의 검술 혹은 논쟁 대화술(Dialectica eristica) 등으로 부르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치에 맞지 아니하게도, 논쟁 대화술이 오랫동안 홀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는 놀랍도록 쓸모 있는 기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논쟁 대화술은 사람들이 말싸움할 때 자신이 진실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자신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을 다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쟁 대화술은 이런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하나하나 설명 하고, 체계와 규칙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학문적으로 구축한 논쟁 대화술을 동원하여 객관적 진리를 깨치고자 한다면 오히려 목적을 달성하기 요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쟁 대화술은 그만두고 원초적 논쟁 대화술에서조차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오직 이기는 것만이 목표가 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한 학문적 논쟁 대화술의 주된 역할은 논쟁 에서 흔히 등장하는 허위 주장을 알아보고 철저히 분석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 논쟁에서 그런 식의 허위 주장을 쉽게 간파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논쟁 대화술을 실제로 구사할 때 궁극적이 면서도 구체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객관적 진리가 아닌 이기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맥락으로 쓰인 저작물이 있는지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단 한 권도 찾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태곳적 비밀을 간직한 미증유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논쟁 대화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즉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기 경험을 재료로 삼아 일상에서 흔히 벌어 지는.논쟁 상황에서 양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특별한 대화술을 구사하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비록 형식은 달라지더라도 반복되는 대화술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효과적인 전술(Stratagemata) 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그것을 구사할 때 무력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38가지 논쟁 대화술

    확대해석하라

    상대의 주장을 본래 의미의 경계 너머로 확장하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일반화하고, 과장하라. 동시에 당신의 주장은 최대한 좁게 의미를 축소시키고, 특정 한계 안의 의미로 제한해서 개진하라. 왜냐고? 어떤 주장이나 진술이 일반화할수록 공격당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비하려면 논점과 논쟁의 의도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예시 ①

    언젠가 토론 자리에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영국인은 극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상대는 반례를 들어 나의 주장을 헛소리로 몰아세우고자 이렇게 말했다.


    "영국 사람이 음악이든 오페라든 제대로 만들어 낸게 없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나요?"


    나는 그의 논박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무력화시켰다.


    "음악은 극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극에는 비극과 희극만 포함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지 않나요?"


    상대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저 그는 내 주장을 무작정 일반화해서 자신이 논쟁의 주도권을 잡고자 그런말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마치 (극) 이 모든 형식의 공연을 의미하는 것처럼 확대해석하며 은근슬쩍 오페라를 포함한 음악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하면 내 주장이 금세 힘을 잃고 무력화할 것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와 반대로, 이런 식의 논쟁에서 당신에게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애초 당신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축소해석해서 당신의 주장을 방어하라.


    예시 ②

    A: "1814년, 강화조약을 맺음으로써 독일 한자 동맹 도시의 재독립이 가능했습니다."


    A의 주장을 두고 B가 반례로써 단치히는 보나파르트 가 보장해 준 독립을 오히려 강화로 잃었음"을 들며 상기 시키려 했다. 그러자 A는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A: "제 말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저는 분명하게 독일 한자 동맹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단치히(그단스크)는 독일이 아닌 폴란드의 한자 도시고요."


    참고로, 이런 식의 대화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피카』 제8권 제11장, 제12장에도 소개된다.


    예시 ③

    프랑스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는 자신의 책『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에서 "폴립 (Polyp)은 신경 조직이 없으므로 지각 능력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립이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이다. 녀석들은 빛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 가지에서 다른 가지로 우아하게 옮겨 다니며, 날렵하게 먹이를 낚아 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학자들은 폴립의 몸 전체에 신경망이 녹아든 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추정을 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폴립은 별도의 감각기관이 없는데도 지각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추정은 라마르크의 주장과 상충하므로 그는 다음과 같은 논쟁 대화술로 자신의 논리를 방어했다.


    "그렇다면 폴립의 모든 부위가 각종 감각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운동력, 의지력, 사고력 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렇다면 폴립의 각 신체 부위는 가장 완벽한 동물이 가질 만한 전체 기관처럼 기능할 것이다. 이는 곧 폴립의 모든 부위가 보고 냄새 맡고 맛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나아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추론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폴립의 각 신체 부위가 하나의 온전한 개체인 셈이니, 따라서 폴립은 인간보다 상위에 위치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몸 전체가 다 같이 작동해야만 완전체로 기능하지만, 폴립은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그렇다면 모든 생물을 통틀어 가장 불완전한 단세포 생물은 물론 식물 등등으로 폴립과 관련된 가설을 확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은가."


    라마르크는 논쟁 대화술을 이용한 말재간을 부림으로써 옳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넌지시 드러냈다. 그는 "(폴립의) 몸 전체가 빛을 지각하므로 이것을 신경 조직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는 사람들의 진술을 확대해석해, 그렇다면 폴립은 몸 전체가 생각도 할 수 있을것이라는 결론을 고의로 이끌어낸 것이다.


    진실성이 모호한 명제로 선택권을 확보하라

    당신이 모순된 명제를 내놓았으며, 이것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먼저 참이기는 하나 명백하게 참이지는 않은 문장을 하나 선택해 당신이 그 문장을 증명 수단으로 사용할 것처럼 하라. 그런 다음 상대에게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는지, 아니면 부정하는지 물어라. 논쟁 상대가 뭔가 의심스럽게 여겨 당신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그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논박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가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할 경우, 그 즉시 당신은 분별 있는 사람이 되므로 이후 논쟁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논쟁 대화술을 활용하며 당신의 논리가 입증되었음을 주장하라. 이 전략을 실행에 옮기자면 철면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뻔뻔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럼 뭐가 더 필요할까?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한다. 물론 이 세상에는 이 모든 전략과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기는 하지만 존재한다.


    결론의 순간을 당신이 정하라

    당신이 필요로 하는 전제 조건을 끌어냈고 논쟁 상대도 이를 인정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결론을 이끌어 내라. 이때 당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 상대에게 또다시 의견을 물을 필요는 없다. 결론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전제가 몇 가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승인되었다고 여기고 주저 없이 결론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 대화술도 논거가 아닌 것을 논거로 채택해 기만하기 기법에 해당 한다.


    교란작전을 펼쳐라

    당신의 주장이 이제 곧 철퇴를 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가? 그렇다면 교란작전을 사용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창 진행되던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그것이 마치 상대가 제기한 주장에 대한 반박인 것처럼 당당히 말하라. 다만 여기서 소개하는 교란작전은 어디까지나 논쟁의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주제는 아랑곳없이 개인적인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트집 잡는 태도는 이와는 별개의 기술이다.


    예시

    나는 언젠가 중국에는 세습 귀족이 없고 오직 과거 제도의 관문을 거쳐서만 관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칭찬한 적이 있다. 그러자 나의 논쟁 상대는 아무리 많은 학식을 쌓는다 한들 태생적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관직을 얻는 데 크게 도움될 리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의 반론은 청중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는 중국에서는 신분을 막론하고 자주 발바닥 태형이 형벌로 주어지곤 한다며, 그것이 과하게 차를 마셔서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중국인을 깎아내렸다.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그의 말에 일일이 대응하려 했다면 다 이긴 논쟁을 망칠 수도 있었을 게 분명하다.


    똑같은 교란작전이라고 해도 논쟁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내용으로 빠지면 비열한 태도로 낙인찍히기 쉽다. 만일 당신이 논쟁 상대에게 "네네, 최근에 당신은 이런저런 실속 없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곤 하더군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인신공격이 돼 버린다.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마지막 파트에서 다시 다룰 생각이다. 교란기술과 인신공격은 어떻게 다를까? 엄밀히 말하자면, 교란기술은 인신공격과 사람 논박의 중간 단계가 아닐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의 말싸움에서도 자주 교란기술이 쓰이는 걸 보면 이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것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인신공격을 가하면 상대는 똑같이 인신공격으로 대응한다.


    주의할 것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방치하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 내 머릿속엔 고대 로마 장군 스키피오가 자국 영토 이탈리아 반도에 쳐들어온 한니발 장군의 카르타고군에 맞서지 않고 (카르타고가 있는) 북아프리카로 달려가 적을 격파한 역사적 사건이 떠오른다. 물론 전쟁에서라면 이런 식의 교란작전이 활발하게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논쟁 에서는 다르다. 마치 전쟁터의 화살처럼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를 향한 나쁜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청중이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관전 중이기 때문이다. 사실 논쟁에서 종종 사용되는 교란작전은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방패에 가까운 수동적인 무기로 보아야 한다.


    ‘한 줌의 의지가 수백 톤의 통찰보다 강하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 논쟁 대화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사실 다른 대화술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논거를 동원해 지성에 호소하기보다 동기를 거쳐 의지를 절묘하게 건드리는 이 대화술은 그 정도로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당신의 논쟁 상대는 물론이고 청중도 당신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킬 수만 있다면 당신이 아무리 터무니 없어 보이는 견해를 내놓는다 해도 그들 모두를 당신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한 줌의 의지가 수백 톤의 통찰과 굳건한 신념보다 더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 이다. 물론 이 전략이 아무 때나 통하는 것은 아니므로 자주 찾아오지 않는 특별한 순간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논쟁 상대의 주장이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라도 그런 속마음을 철저히 감춘 채 그의 이해관계나 관심사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으리라는 암시를 넌지시 주자. 그러면 상대는 무심코 뜨거운 감자를 집어든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자신이 피력한 견해를 서둘러 철회하려 할 것이다.


    예시

    한 성직자가 어떤 독단적인 철학이나 가설을 옹호하며 자기 견해를 밝힐 경우, 그 주장이 그가 속한 교단의 기본 교리와 배치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라. 그러면 그 성직자는 즉시 태도를 바꿔 방금 한 자기 주장을 주워 담으려 할 것 이다. 어느 자산가가 영국의 기계 설비가 탁월하고 증기기관 하나가 수십 명의 노동자가 할 일을 대신 할 수 있다고 칭송한다. 이 경우 장차 수레와 마차도 증기기관의 힘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며, 그가 소유한 마구간의 말도 일제히 값어치가 떨어질 거라는 말을 들려 줘라. 기계를 칭송하는 그의 주장은 자라 목처럼 쑥 들어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떠올려야 할 말은 이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경솔하게 자기 자신을 찌르는 흉기와도 같은 법칙을 만들어 내곤 하는가?" 마찬가지로, 청중이 당신과 같은 학파나 길드, 조직이나 협회 소속이고 논쟁 상대는 아닐 경우를 가정해 보자. 상대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옳을 수도있다. 그러나 그의 견해가 청중과 당신 측의 공동 이해에 위해가 되리라는 점을 당신이 암시하는 순간 청중은 당신의 논쟁 상대의 주장이 아무리 치밀하고 이치에 맞는 논리라 해도 즉각적으로 허술하고 보잘것없는 논리로 취급하게 될 것 이다. 반대로, 당신의 주장은 아무리 공허하고 급조된 티가 난다고 해도 치밀한 논리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렇게 관중은 당신의 편이 되고 상대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며 쓸쓸히 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모든 청중은 자신이 온전히 신념에 의해 표를 던졌다고 믿을 것이다. 많은 경우, 자신에게 해롭거나 불리한 것은 불합리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성은 아무 기름 없이 타오르는 빛이 아니다. 의지와 열정이 그것의 재료다." 이 전략은 나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강력한 효과를 지니며 효용에 소구하는 논박(argumentum abutili)에 속한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