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오해하지만, 수학은 단순한 계산이나 숫자놀음이 아닙니다. 2000년 넘는 인간 사유의 역사에서 수학은 ‘철학’이었습니다. 빈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 게임이론의 선구자가 이성적 사유의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유의 역사
기하 chr(124)_pipe 이름 없는 것에 대한 기억들
잊어버리기의 기술
첫 장면의 무대는 아테네다. 이곳은 아니토스라는 정치 모리배의 저택이다. 전도 유망한 군사 지도자인 젊은 메논이 저택을 방문한다. 우연히 소크라테스도 동석한다. 메논은 기회를 놓칠세라 덕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냐고 그에게 묻는다. 한 번도 소크라테스를 낚지 못한 적 없는 백발백중 미끼다. 이 계략 덕분에 메논은 영원으로 가는 통행권을 얻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전쟁에서 의심스러운 상황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이름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 하나로 남았다.
『메논』은 플라톤의 초기 저작이다. 여기서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이 주창하는 개념 하나를 처음으로 제시한다. 바로 어떤 지식은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배울 수 있다는 개념이다. 우리의 불멸하는 영혼 은 그 지식을 처음부터 알았으며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묻혀 있는 지식을 복원하는 일에 이름을 붙였으니, 그것이 바로 ‘아남네시스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구제 불능 구닥다리요 미신 시대의 유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과 수학의 가장 장엄하고 실제로 황홀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신기한 개념을 변호하고자 메논을 위해 완전한 회상의 실험을 선보이겠노라 제안했을 때였다.
소크라테스는 곁에 있던 노예들 중 한 소년을 부른다. 소년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능숙한 질문법을 구사하여 소년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기하학 정리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그러고는 소년이 이 정리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다. 단지 지금껏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은근히 캐묻자 잠재했던 지식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대 용어로 표현하자면 프로이트 박사의 소파에서 정신분석 요법을 진행할 때처럼 잠재의식의 일부가 의식화되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본인은 자신의 역할을 산파에 비유하여 소년이 잊은 것을 아니 잊도록 도와줬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과정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소년은 비천한 무지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는 모든 질문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을 뿐더러 이 사건은 그에게 명성의 15분도, (아무도 소년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불멸의 15분도 선사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와 메논은 덕이 무엇에 대한 것이냐는 토론으로 돌아갔다.
소크라테스가 물리학이나 지리학 같은 학문이 아니라 기하학을 실험 소재로 고른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갈고닦은 변증술을 구사하여 소년으로 하여금 크레타가 섬이라거나 모든 것이 물·불·공기·흙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내도록 할 수 있었음에도 기하학 정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 무엇도 기하학보다 더 타당하게 영원한 진리로 간주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소년에게는 주어진 정사각형보다 넓이가 두 배 큰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가 놓였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정사각형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가 이야기한 도형은 변의 길이가 같은 사변형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정사각형을 정의하기에 부족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두 대각선의 길이가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변의 길이가 같은 사변형은 정말로 정사각형이다.
소크라테스는 대각선의 길이가 아니라 모든 각이 같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 조건에서도, 변의 길이가 같은 사변형은 정사각형이다. 하지만 그는 문답을 시작하면서 대각선을 대수롭지 않은 듯 도입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것은 묘수다. 이 대각선이 결국 해를 낳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향해 소크라테스는 소년이 스스로의 길을 따르도록 유도하면서 실수를 은근슬쩍 바로잡아주었다. 변의 길이를 두 배로 하면 될까? 아니,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만든 정사각형은 넓이가 원래 정사각형의 네 배가 될 것이다. 변의 길이에 1.5를 곱하면? 아니, 그래도 너무 크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다 마지막에 소크라테스는 소년에게서 정답을 끌어낸다.
무한 chr(124)_pipe 무한 수영장에 다이빙하기
분필과 계산
수 1, 2, 3, ···은 자연수라고 불린다. 왜 자연스러울까? 자연수는 실제로 현실 세계에 속한다. 원, 극한, 함수 같은 수학 용어보다 더 가까이에 존재한다.
자연수는 매우 추상적이다. 우리는 깃털 세 개는 볼 수 있지만 ‘셋 자체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자연수에는 허구나 규약이 전혀 없다. 각각의 수는 세상 속에서 자리를 가진 듯하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수는 몇 개 되지 않지만 각자 사는 주소가 있는 것 같다. 자연수는 이곳에 있다. 기하학에서는 이 점이나 저 점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자연수는 하나하나가 개별성을 가진다.
많은 동물이 수를 셀 수 있으며 심지어 초보적 덧셈을 할 줄 아는 종도 있다. 이것은 동물심리학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다. 한스라는 말에게서 뼈아픈 경험을 했던 터라 더더욱 그렇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년 전 독일의 학교 교장이자 수학 교사 빌헬름 폰 오스텐은 자신의 말 한스가 수를 셀 수 있고 심지어 덧셈, 뺄셈, 곱셈까지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대중도 설득당했다(한스는 나눗셈은 하지 않았다).
데어 클루게 한스(영리한 한스)는 유명해졌다. 주인이 없을 때조차 재능을 뽐낸 것을 보면 사기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한스는 번번이 정답을 내놓았다. 정답에 해당하는 횟수만큼 발굽을 두드렸다. 결국 한스가 구경꾼의 반응을 주시하다 자신이 기대에 부응했음을 알게 되면 발굽질을 그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스는 구경꾼에게서 단서를 얻었다. 이것이 산수 능력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더 신기한 수수께끼는 한스가 인간의 마음을 읽는 데 왜 이토록 뛰어난가였다. 안타깝게도 이 수수께끼는 미해결로 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한스는 군에 징발되어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스 이후 동물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할 때 극도로 신중을 기했다. 그 뒤로 어떤 짐승도 영리한 한스의 재능에 필적할 수 없었지만, 많은 종이 6과 8을 구별하거나 2와 2를 암산으로 더하거나, 새가 세
마리 천막에 들어갔다가 두 마리가 나왔으면 아직 천막이 비지 않았음을 알아차리는 데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다.
인간은 수를 다루는 데 언어를 활용한다. 적어도 ‘하나, ‘둘, ‘셋을 나타내는 낱말이 없는 사회는 거의 없다. 그 극소수의 사회조차 손가락, 새김눈, 매듭, 조개껍데기를 이용하여 수를 센다. 가장 오래 된 셈 흔적은 이상고 뼈로, 약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성적 학자들은 뼈에 11, 13, 17, 19개의 새김눈이 파여 있다고 주장한다(뼈에 관한 여러 주장이 그렇듯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수들은 10과 20 사이의 소수다(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조약돌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셈에 쓰였다. 조약돌 한 개는 가축 무리 중 한 마리에 해당한다. 이렇게 하면 가축이 전부 목초지에서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편리하다. 로마인들은 이런 조약돌을 ‘칼쿨루스(calculus)라고 불렀는데, 어원은 ‘분필을 뜻하는 ‘칼크스(calx)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계산의 기원은 조약돌이며, 전 세계 수학과에서는 여전히 칠판에 분필로 계산 과정을 필기했다가 이튿날 새벽에 지운다.
조약돌은 셈에도 쓰이고 계산에도 쓰인다. 조약돌 두 무더기(집합)는 크기를 비교하기 쉬우며 줄지어 늘어놓으면 더욱 편리하다. 이 배열은 수직선을 따라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당혹스러운 수수께끼
확률 chr(124)_pipe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무작위 행보
운에 맡기지 말라
그것은 수학과 철학의 만남을 통틀어 가장 유쾌한 만남이었을 것이다. 가장 유익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1728년 파리에서 열린 연회에서 볼테르라는 필명의 전도유망한 젊은 철학자이자 저술가가 아 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저명 수학자 라 콩다민 옆자리에 앉았다. 볼테르와 콩다민의 대화 주제는 금세 국영 복권의 현행 제도로 흘러갔다. 만성적 돈 가뭄에 시달리던 프랑스 정부는 국민에게 채권 매입을 독려하려 애썼다. 재무부는 유인책으로 복권을 내걸었다. 채권 보유자는 보유 채권의 시가가 1000리브르 이상이면 복권 한 장을 살 수 있었다. 당첨자는 채권의 액면가(당시는 불황이었기에 시가보다 훨씬 높았다)와 별도로 50만 리브르라는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돈이면 18세기 내내 떵떵거리며 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당시는 부자에게 무척 유리한 사치스러운 계몽 시대였다.
콩다민은 복권 제도가 뭔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당첨금의 크기는 언제나 같았지만 최종 수령액은 복권 액면가에 따라 달라졌다. 어떤 채권은 고가였고 어떤 채권은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공정 한 게임의 전형적 사례였다.
볼테르는 재빨리 허점을 간파했다. 재무부는 실로 심각한 실책을 저질렀다. 볼테르는 실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도 있었고 남몰래 악용할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 당국을 조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이미 여러 차례 입증했다. 신랄한 풍자로 1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고 2년간 잉글랜드로 추방된 전력도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정부의 속을 긁고 재무부의 어수룩한 셈법을 조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입 다물고 정부 관료들의 실수를 이용하는 것이 더 짭짤하지 않겠는가? 볼테르는 자신이 작가가 되고 싶어하기에는 무일푼 작가를 너무 많이 안다고 즐겨 말했다. 그런데 콩다민이 약간의 수학을 활용하여 금세 부자가 되고 대성공을 거두는 방법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의 수법은 저렴한 복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이었다. 많을수록 좋았으며, 싹쓸이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기본 발상은 간단했지만 실행 과정은 엄청나게 복잡했다. 신디(케이트§채권 등을 인수하기 위해 조직)된 연합체를 결성하고, 바지 사장과 허위거래를 동원하고, 담당 관료들을 구워삶아야 했다. 다행히 볼테르는 프랑스 전역에 알려진 마당발이었다.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매달 국영 복권이 추첨되었으며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둑한 당첨금을 챙겼다. 2년이 지나서야 당국은 낌새를 챘다. 콩다민과 볼테르는 법정에 섰다. 이번 장난으로 호된 대가를 치를 수도 있었으나 결국 무죄 방면되었다. 불법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게임의 규칙을 악용했을 뿐이다. 복권은 폐지되었으며 불운한 재무총감은 해임되었다.
볼테르와 콩다민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콩다민은 투옥을 피한 직후 프랑스 과학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훗날 알렉산더 폰 훔볼트 가 벌인 것과 비슷한) 대규모 과학 탐사를 벌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성실한 약탈자와 함께 레반트에서 머문 뒤 남아메리카에서 10년을 보냈으며 아마존강 유역을 가로지르는 전대미문의 여행을 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유럽 전역에서 천연두 예방접종 사업을 후원했다. 일흔세 살에 죽음을 앞두고서는 새로운 탈장 수술법의 실험 대상으로 자원했다. 의사들에 따르면 수술은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운이 콩다민을 비켜 갔다. 그는 상처로 인한 고열 때문에 죽었다.
볼테르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손에 넣은 재산을 불려 값을 매기기 힘든 어마어마한 독립을 성취했다. 복권 사기로부터 몇 년 뒤 출간된 그의 『철학 편지』는 "앙시앵레짐에 투척된 최초의 폭탄" 역할을 했다. 볼테르는 계몽주의의 거두이자 당대 최고의 유명인이 되었다. 우연 계산법, 즉 확률론은 그의 찬란한 경력에서 필수적 역할을 했다.
확률론은 종종 무작위성의 수학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볼테르는 무작위성을 부정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우연을 이야기하는 것은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볼테르가 자신의 기이한 복권 당첨을 의미심장하게 암시하려는 문장이 아니었다. 모든 근대 철학자의 확립된 견해였다. 적어도 뉴턴 시기에 이르자 세계관은 확고히 결정론으로 기울었다. 사실 수백 년 전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고 지금은 과학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만 다르다. (지난 100년을 거치며 인과율과 결정론에 대한 견해가 또 다른 변화를 겪었는데, 이번에도 물리학 때문이었다. 무작위성은 양자역학에서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독자 여러분을 저 지뢰밭에는 데리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해 chr(124)_pipe 푸딩도 증명도 먹어봐야 맛을 안다
많은 수학자가 플라톤주의자이고 더욱 많은 수학자가 쾌락주의자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믿기 힘들 것이다. 일반인들은 학창 시절 자신에게 지루하기만 하던 과목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학은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까? 무엇보다 통찰의 쾌감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정신적 광명의 순간은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사람에겐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순간은 주로 홀연히 당도하며 가끔은 느릿느릿 밝아오기도 한다. 대개는 약 오르고 실망스럽고 심지어 괴로운 지지부진 뒤에 찾아온다. 이따금 포기하고 딴 날 다시 시도해야 할 때도 있다. 수학은 끈기를 가르친다. 겸손도 가르친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 신비한 이해 과정의 풍미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를 드는 것이다. 이런 사례의 선택은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수백 가지 예들도 안성맞춤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맨 먼저 고전적 결과인 피타고라스 정리를 다시 살펴보자. 피타고라스 정리보다 낡은 예는 없어 보인다. 다시 들여다보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은 수백 가지나 된다.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논리적 관점에서는 분명히 충분하다. 하지만 새로운 증명은 새로운 이해를 낳는다.
‘아하!와 ‘아차! 사이에서
거의 모든 수학자가 동의하다시피 증명은 수학의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언 해킹은 증명에 매우 다른 두 가지 이상(ideal)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증명을 ‘데카르트적 증명과 ‘라이프니츠증명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고찰하고 연구하면 완전히 이해하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증명이 있다. 그것이 데카르트적 증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 단계를 꼼꼼히 전개하고 한 줄 한 줄 기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증명이 있다. 그것이 라이프니츠적 증명이다.”
쾌락을 찾는 사람이라면 데카르트의 편에 서야 한다. 데카르트적 증명은 대체로 번득이는 이해, ‘아하!의 경험, 난데없는 깨달음과 관계있다. “이등변 삼각형을 증명한 최초의 사람 – 그가 탈레스든 또는 다른 이름을 가졌든 – 에게 한 줄기 광명이 비쳤다.” 이마누엘 칸트의 말이다.
이런 번득이는 이해는 결국에 가서는 섬광으로든 느린 여명으로든 덜 흡족한 다른 통찰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무언가를 간과했거나, 반례가 제기되거나, 증명이 불완전하거나 심지어 틀렸을 수도 있다. ‘아하!에서 ‘아차!까지는 잔걸음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이 ‘아차!는 증명을 수선하거나 추측을 수정하거나 논박하는 방법들로의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결국에는 라이프니츠적 증명에서만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때가 되면 재미는 온데간데없다.
수학적 이해의 희열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다들 정교한 이론을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 퍼즐과 두뇌 게임 같은 이른바 취미 수학도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삼는다.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철학 책을 상상할 수 있듯이 퀴즈로만 이루어진 수학 교과서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러커토시 임레의 수학 멘토 포여 죄르지는 이렇게 썼다. “기초적인 수학 문제는 모든 바람직한 다양성을 제공해주며, 그러한 문제의 풀이를 찾는 연구는 특히 접근하기 쉽고 흥미롭다.”
이런 평이한 예제 두 가지를 들어보겠다. 둘 다 널리 소개된 낯익은 문제다.
1번 예제. 기차 두 대가 동시에 출발한다. 빠른 기차는 A에서 B로, 느린 기차는 B에서 A로 이동한다. 결국 두 기차가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첫 번째 기차는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뒤에 B에 도착하고, 두 번째 기차는 첫 번째가 도착하고서 세 시간 뒤에 A에 도착한다. 문제: 첫 번째 기차는 얼마나 더 빠른가?
독자들 중에는 책을 덮고 직접 답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야말로 저자가 꿈꾸는 유형이다.
자, 독자여, 풀어보시라. 정답: 첫 번째 기차는 두 배 빠르다. 빠른 기차의 속력이 느린 기차보다 x배 빠르다고 가정해보자. 두 기차가 교차한 뒤 느린 기차가 주파해야 할 킬로수는 빠른 기차의 x배이며 1킬로미터당 걸리는 시간도 x배다. 그러므로 느린 기차가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x2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알다시피 빠른 기차는 교차점으로부터 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느린 기차는, 네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x2=4이니까 x=2다.
이 문제는 대학 물리학 수업에 단골로 등장한다.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다. 20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수학자는 연구자가 일상 연구에서 평균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정신노동의 전 형적 수준을 산출하면서 이 예제를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이 정신노동이 어디 적용되는지는 천차만별이지만. 대학생들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수많은 학생이 이미 거쳐갔으며 기껏해야 몇 시간이면 풀 수 있음을 안다(행운의 영감이 번득이면 몇 분 만에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연구자들은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가 평균 수준의 난이도를 가진 걸림돌인지, 오를 수 없는 장애물인지 미리 알지 못한다.
2번 예제. 통이 두 개 있는데, 하나에는 포도주가 가득 담겼고 다른 하나에는 같은 양의 물이 담겼다. 첫 단계로 첫 번째 통에서 포도주를 한 숟가락 떠서 두 번째 통에 따른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통에 0서 한 숟가락 떠서 첫 번째 통에 따른다.
문제: 물통에 담긴 포도주와 포도주통에 담긴 물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둘 다 똑같다고. 그러다 의심이 든다. 첫술은 순수한 포도주였지만 다음 술은 물에 소량의 포도주가 섞이지 않았던가.
실은 최초의 충동이 옳았다. 어떤 사람들은 납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 두 통 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액체가 같은 양 담겼다는 ‘통찰에서 이해가 비롯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통에서 얼마큼의 포도주가 빠져나갔든 그것은 두 번째 통에 있던 물로 보충되었어야 한다. 아하!
이 ‘이해는 무엇일까? 수학자들에게는 이토록 귀중한데도 대부분의 수학철학자에게는 외면받는 이 이해는? 그런데 대부분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번에도 비트겐슈타인이 엇박자를 낸다. 그는 수학적 증명에 결부되는 확신에 매혹되었다. 우리는 증명을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이해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2차 이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설명하려 들지조차 않았다. 설명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학적 추론을 기술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증명이 위베르제바어(ubersehbar,명료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것,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 이언 해킹의 용어로는 데카르트적인 것을 뜻한다)여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이 장의 첫머리에서 살펴본 피타고라스 정리는 그에게 만족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증명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대체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상황은 일련의 수(手)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하나하나가 명료한 경우다. 20세기에 가장 활발히 활동한 저명 수학자 에르되시 팔은 신이(그의 말로는 “지고의 파시스트”가) 이 증명들을 책에 꼭꼭 감춰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수학적 증명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그 책에 있는 증명이군”이다.
우리가 증명을 경험할 때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신경생물학자들이 수학자들의 뇌를 촬영했더니 엽(葉)의 어떤 부위는 활성화되고 어떤 부위는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예상한 결과였다. 이것으로는 증명을 이해할 때 쾌락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진화생물학이 열쇠를 쥐고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수학적 쾌락주의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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