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인생 수업
 
지은이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은이), 정영훈 (엮은이), 정윤희 (옮긴이)
출판사 : 메이트북스
출판일 : 2024년 01월




  • 세네카의 12편 에세이 중 6편을 현대적으로 편역하여, 인생의 의미, 행복, 분노 등 다양한 주제를 간결하게 다룹니다.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통해 독자들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세네카의 인생 수업


    인생은 지금도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잘 살아야 합니다

    수명이 짧은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는 게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짓궂은 섭리, 즉 ‘인생의 짧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합니다. 극히 제한적인 수명을 타고나는 것도 모자라서 그 짧은 한 번의 인생마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신없이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인생을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삶의 끝자락에 도달하고는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과 무지한 대중들만 이러한 보편적인 자연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 두각을 나타냈던 유명인들조차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불평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의술가 히포크라테스(‘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의 의학자-옮긴이)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로 플라톤의 수제자-옮긴이)도 ‘인생의 짧음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습니다.


    “자연은 동물에게 인간의 다섯 배, 열 배가 넘을 만큼 넉넉한 수명을 주었다. 하지만 엄청난 업적을 성취하는 인간에게는 아주 짧은 수명을 정해주었다.”


    사실 인간의 수명이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길며, 이를 제대로 잘 활용한다면 위대한 과업을 이루고 남을 정도로 시간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방탕을 일삼고 무심하게 살며 옳지 못한 목적을 위해 시간을 소비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 도달한 뒤에야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수명을 짧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수명을 짧게 만드는 것이고,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가져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금세 바닥나고, 미미한 재산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금세 불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타고난 수명도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풍요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와의 시간을 확보하고 운명의 변덕에 초연해야 합니다

    위대한 철학자들과의 만남이 진정한 의미의 여가입니다

    철학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는 자들만이 진정 여가를 즐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인생 여정을 잘 지켜낼 뿐만 아니라 한 해 한 해를 더하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지금까지 보내온 오랜 세월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양한 학파를 창시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양한 지침을 정리해두었습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올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지난 몇 세기의 시간들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를 향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마침내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한 좁은 경지를 벗어나 고매한 정신을 터득하기 위해 저 광활한 시간 속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옮긴이)와 토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카르네아데스(고대 그리스의 회의학파 철학자-옮긴이)와 함께 의혹을 해결하고, 에피쿠로스(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로 쾌락주의 철학을 펼침-옮긴이)와 함께 평온을 찾고, 스토아학파(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제논이 창시자이며, 이성과 금욕적인 삶을 중시함-옮긴이)들과 함께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라고도 불리며, 금욕과 자족하는 삶을 강조함-옮긴이)들과 모여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기 위해 힘쓸 수도 있습니다. 무한하고 영원하며 더 나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굳이 짧고 덧없는 시간의 흐름에 머물 이유가 있을까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타인과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들은 쉽게 흥분합니다. 또한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람의 문지방을 넘나들고, 닫힌 문을 기어이 열고 들어가며 사방으로 떨어진 집을 돌면서 돈 심부름을 하고 안부를 전합니다. 그렇게 광대한 도시에서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자들을 만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고 있는 꼴입니다.


    잠에 빠져서, 쾌락을 즐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들을 멀리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마음 졸이며 기다리게 만들어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어제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종일 잠에 취해 달콤한 잠도 마다하고, 그를 찾아온 불쌍한 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집사가 손님이 찾아왔다고 수없이 속삭여야만 그제야 거만하게 하품을 하며 대답할 것입니다.


    오히려 고귀한 철학의 대가들과 가까이하며 우러러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시간을 내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기쁘게 만들어주고 만족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며, 손님을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 세상 누구라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덧없는 쾌락을 좇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미덕 안에 존재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미덕 안에 존재합니다. 미덕이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요? 미덕이나 악덕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닌 것은 절대 선이나 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마주하거나 선을 즐기게 되더라도 가능한 한 신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대가로 미덕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할까요? 신들이나 누릴 법한 엄청난 축복을 인간에게 줄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으며, 아무 부족함 없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안전한 가운데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 헛된 시도를 하지도 않을 테고 방해받는 일도 절대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어지고 적대적인 일을 겪지 않으며, 기대와 희망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덕 하나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충분한 것일까요? 미덕이 완벽하고 신성한 것이라면 어찌 부족함이 있을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소망하는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면 그 이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미덕을 추구하고 충분히 성장했다고 해도 운명의 여신이 친절을 보이는 것 정도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맺고 있는 유한한 매듭을 풀 수 있을 때까지 인생과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그 매듭에 묶여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꽁꽁 매여 살지만, 저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매듭에 묶여 있어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기에 아직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아도 이미 자유를 얻은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점입니다.


    미덕보다 나은 것은 없고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반론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어떠한 쾌락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에 맹목적으로 미덕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설사 미덕이 쾌락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쾌락을 얻기 위해서 미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미덕이 쾌락을 가져온다면 다른 목표를 추구하다 보니 우연히 쾌락을 덤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옥수수를 심기 위해서 들판을 갈아엎었는데 우연히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옥수수 씨를 뿌리려던 농부가 일부러 그 어린 꽃을 키우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덤으로 꽃이 자란 것처럼 말이지요.


    쾌락 또한 미덕으로 인한 보상이나 미덕을 추구하는 원인이 아니라 그저 덤으로 얻는 것에 불과합니다. 미덕이 즐거움을 준다고 해서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듯 그저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더불어 쾌락을 느끼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은 이를 선택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완벽히 조화를 이룰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서 끝까지 나아가고 정해진 한계를 지킬 때만 최고의 선이 완성되며,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완전체를 넘어선 곳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최종 한계 너머에는 어떠한 목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 미덕을 추구하느냐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건 최고의 선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셈이니까요. 미덕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묻는 것인가요? 미덕은 그 자체를 바랍니다. 미덕보다 나은 것은 없고,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입니다.


    미덕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이 질문에 제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어떤가요?


    “최고의 선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견고한 영혼의 본성이며, 그 자체로 선견지명과 숭고함, 건전함, 자유, 조화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더욱 그럴싸한 대답을 해달라고 조를 텐가요? 왜 쾌락이라는 저급한 자질을 들먹이나요? 저는 인간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지, 육체적인 즐거움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분이라면 오히려 소떼나 야생동물을 통해 더 쉽게 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인은 부의 주인이 되지만 바보는 부의 노예가 됩니다

    앞으로 조금 덜 아프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평소 철학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토로하던 사람들이라면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네카 당신은 왜 실제 삶이 아닌 말로만 용감하게 떠드는 것입니까? 왜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아첨을 하고, 돈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손해를 입으면 속상해하고, 아내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눈물을 짜고, 남들의 평판에 귀 기울이고, 나쁜 소문을 들으면 기분 나빠합니까?”


    “어떤 이유로 당신의 농장은 필요 이상으로 잘 가꾸어져 있습니까? 왜 정해진 식단대로 식사를 합니까? 왜 온갖 가구들이 번쩍번쩍 빛이 납니까? 왜 당신 나이보다 더 오래된 와인을 손님들에게 대접하지요? 왜 금으로 된 식기를 사용합니까? 그늘을 제공하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는 비싼 나무를 왜 심었습니까? 왜 당신의 아내는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값비싼 귀걸이를 차고 다니지요? 왜 당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습니까? 왜 당신 집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며, 아무렇게나 식기를 배열하는 대신 질서정연하게 배열하고 음식을 썰어주는 사람을 따로 둡니까?”


    “왜 당신은 해외에도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처음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합니까? 참으로 부끄럽게도, 본인이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하인들을 왜 거느리고 있나요? 그 자체가 낭비 아닙니까?”


    이들의 따끔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중에 스스로 충분히 반성해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 이런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현인이 아닙니다. 더 비난을 받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현인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최고의 현인들과 견주지 말고 차라리 악랄한 자보다 나아지라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 내 자신의 잘못된 행동 속에서 악함과 과오들을 곱씹어보는 것만도 충분히 벅찬 일이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완벽히 건강하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도 통풍으로 고생하고 있어 치료약을 구하기보다는 조금이나마 고통을 더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금 덜 아프고 드물게 고통 받는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약한 자들에 비하면 저는 건강한 운동선수나 다름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사악한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저 자신이 아니라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충고하는 것임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가능한 한 올바른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이런 저의 대답에 누군가 “그럼 당신은 말과 행동이 다른 거군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가장 고귀한 것들을 무조건 비난하기 바쁜 사악한 이들은 듣기 바랍니다. 그대들이 말하는 것은 과거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카데메이아의 창설자-옮긴이), 에피쿠로스, 제논(준엄한 도덕주의와 엄격한 의무 준수를 주장하는 스토아학파를 창시했음-옮긴이) 또한 들었던 것들입니다. 그들 또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미덕에 대한 것이지 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악덕을 비난하려고 할 때는 제일 먼저 저 자신의 악덕을 곱씹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가능한 올바른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독설이 악의를 가득 보인다고 해도 최상의 것을 위해 살려는 저를 끌어내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독으로 스스로를 죽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까지 죽이려고 하지만, 최상의 것을 위해 살고자 나아가려는 저의 마음과 미덕을 찬양하며 저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가고자 하는 저를 결코 방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쩌자고 짧은 인생을 남에게 화나 내며 낭비하나요

    화를 내며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우리는 화라는 악덕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화의 뿌리를 말끔히 뽑아내어 혹시라도 그 사악한 격정이 어딘가에 들러붙어 가지를 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그저 조절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화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사악한 습성을 조절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한다면 악의 뿌리를 완전히 뽑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어쩌자고 우리는 짧은 인생을 남들에게 화나 퍼부으며 낭비하고 있는 걸까요? 고결한 즐거움을 누리기에도 짧은 시간이 아닌가요. 타인을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것에 시간을 써야 옳은가요?”


    아무 가치도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급하게 전쟁터로 달려가나요? 어떠한 이유 때문에 타인과 갈등을 빚으려고 하나요? 왜 인간이 나약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것을 잊은 채 누군가를 파멸시키겠다는 분노를 품고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던지는가요?


    제아무리 깊은 원한을 품고 적개심을 불태우며 살아도 언젠가는 열병이나 다른 병에 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날이 올 것입니다. 결국 죽음이 끝까지 반목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영원히 갈라놓을 것입니다.


    왜 혼란을 자초하며 어지러운 싸움에 인생을 바치려고 하나요? 우리 머리 위에서 운명의 여신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들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정해두었던 날이 어쩌면 우리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보다 더 고단한 일이 있을까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행운의 신과 선한 기운을 주는 신들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의 문으로 다가서기만 하면 됩니다. 나중에는 평소 습관대로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보다 더 안락한 것이 있을까요? 화를 내는 것보다 더 고단한 일이 있을까요? 온화함보다 더 편한 것이 있을까요? 잔인함보다 더 복잡한 일이 있을까요?


    악덕은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겸손함은 여유를 줍니다. 미덕의 문화는 유지하기에 용이하지만 악덕을 지속하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먼저 우리 마음에서 화를 지워내야 합니다. 최대한 화를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제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것입니다. 모든 악덕을 마음에서 비워버려야 합니다. 악덕을 품고 있어봤자 전혀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화를 지우면 더 쉽게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고, 죄인을 정당히 처벌하고 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격정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고, 행여 정해진 선을 넘어서지 않을까 시시각각 감시해야만 하는 부수적인 것들에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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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