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슨의 자기 신뢰
 
지은이 :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은이), 황선영 (옮긴이)
출판사 : 메이트북스
출판일 : 2023년 08월




  • 에머슨의 에세이는 ‘자신을 믿는 것’이 모든 성취의 출발점임을 강조합니다.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은 더 나은 성취를 이룰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체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에머슨의 철학은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에머슨의 자기신뢰


    내 생각을 믿고 용감하게 나아가자

    내 일에 전념하고 최선을 다하라

    신은 당신의 과업이 겁쟁이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지는 않으신다. 사람은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최선을 다했을 때 안도감과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그러지 못했을 때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이것은 구원의 기능이 빠져버린 구원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천재성을 잃어버리며, 영감을 줄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_옮긴이) 또한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창의력이 없고, 희망도 없다.


    나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

    자신을 믿어라. 어떤 마음이든 그 강한 현(絃)에 맞춰서 울리게 되어 있다. 신의 섭리가 우리를 위해 찾아준 자리, 동시대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그리고 사건의 연관성을 받아들여라.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인식으로 당대의 천재성에 아이처럼 의지했다. 천재성은 위대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일을 해내고, 그들의 존재를 통째로 지배했다.


    우리는 이제 모두 성인이다. 따라서 고결한 마음으로 위대한 사람들과 똑같은 초월적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보호받는 미성년자나 환자가 아니며, 혁명을 앞두고 도망치는 겁쟁이도 아니다. 우리는 안내자, 구원자, 후원자로서 전능하신 분의 노력에 복종하며 혼란과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나의 진정한 모습에 대하여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적인 증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동안 당신이 보여준 행동을 그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한다.


    남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내가 하든 안 하든 나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고유한 권리가 있는 곳에서 특권을 누리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비록 타고난 재능이 적고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이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나를 위해서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든 부차적인 보증은 필요하지 않다.



    결코 순응하지 말고 내 참모습을 찾자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신경 쓸 뿐이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 없다. 이런 규칙은 실생활에서든 정신적으로든 똑같이 지키기 어려우며, 위대함과 하찮음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기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 당신의 의무인지 당신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뜻대로 세상을 살기는 쉽다. 혼자라면 자기 뜻대로 살기도 쉽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군중에 섞여 있을 때도 사람들을 아주 상냥하게 대하면서 고독이 선사하는 독립성을 유지한다.


    장막 아래 가려진 내 참모습을 찾자

    당신에게 의미가 이미 퇴색해버린 관습에 순응하지 마라. 힘이 쓸데없이 분산되고, 시간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습은 당신의 성품에 관한 인상을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이 영향력을 잃은 교회에 계속 다니고, 별볼일 없어진 성서공회(성경을 출판・배포하고자 만든 기관_옮긴이)에 기부하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거대 정당에 투표하고, 비열한 가정부처럼 식탁을 차린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 모든 장막 아래 가려진 당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물론 당신이 참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힘도 너무 많이 빼앗겨버린다.


    하지만 당신이 자기 일을 한다면 나는 당신을 알게 되고, 당신은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순응이라는 이 게임이 눈먼 사람이 좋아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대중의 분노를 사소한 일로 여기자

    순응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에게 불만을 표하며 채찍을 휘두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떨떠름한 표정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구경꾼들은 길에서든, 친구가 사는 집의 응접실에서든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수상쩍다는 듯이 곁눈질한다. 이런 혐오감이 그 사람에 대한 경멸과 저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 사람은 슬픈 얼굴로 집에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떨떠름한 표정은 상냥한 표정과 마찬가지로 뿌리가 깊지 않다. 대중은 바람이 부는 대로, 그리고 신문이 보도하는 대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중의 불만이 의회나 대학의 불만보다 더 위력적으로 느껴진다.


    세상을 잘 알고 의지가 굳은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쉽게 견딘다. 교양 있는 사람들의 분노는 점잖고 신중하다. 그런 사람들은 상처를 잘 받는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약한 분노에 일반 대중의 분노가 더해지고, 무식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흥분하고,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어리석고 야수 같은 세력이 으르렁거리고 얼굴을 찡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때는 이런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소한 일로 여길 줄 아는 관대한 태도와 종교적 습관이 필요해진다.


    과거의 내 말과 행동에 집착하지 마라

    우리가 ‘자기 신뢰를 이룩하지 못하도록 겁을 내는 또 한 가지 요소는 우리의 일관성이다. 우리가 과거에 했던 말이나 행동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과거의 행동 말고는 우리를 판단할 만한 자료가 없고, 우리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자꾸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는가? 왜 예전에 공공장소 이곳저곳에서 했던 말과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며 ‘기억이라는 송장을 끌고 다니는가? 당신이 과거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발언을 한다고 치자.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릴 때조차 자기 기억에만 의존하지 마라. 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현재로 과거를 불러내서 재판을 받게 해라. 그렇게 항상 새로운 날을 사는 것이 바로 지혜롭게 사는 길이다.


    당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친다. 사람의 성품은 의지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사람들은 명백한 행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미덕이나 악덕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덕이나 악덕이 매 순간 숨을 쉰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우리의 행동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하나하나가 정직하고 그 순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라면 서로 화합이 잘될 것이다. 여러 행동이 많이 달라 보이더라도 같은 의지에서 비롯된 만큼 실제로는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의 다양성은 조금 떨어져서 보거나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눈에 띄지 않는다. 하나의 경향이 모든 다양성을 통합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배도 방향을 백 번씩 틀면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하지만 멀리서는 배의 항로가 꼭 직선처럼 보인다. 당신의 진실한 행동은 그 자체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런 행동으로 당신의 다른 진실한 행동들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의 순응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생각대로 행동해라. 그러면 당신이 이미 주체적으로 한 행동들이 지금의 당신을 정당화해줄 것이다.



    나를 신뢰해야 삶의 혁명이 일어난다

    왜 온전히 현재를 살지 못하는가

    인간은 소심하며 남에게 잘 미안해한다. 더는 꼿꼿하게 서지도 못하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그저 어떤 성인이나 현자의 말을 인용할 뿐이다. 그는 풀잎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 앞에서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내 창문 아래에 피어 있는 장미들은 더 먼저 핀 장미나 더 예쁘게 핀 장미를 언급하지 않는다. 장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오늘 신과 함께 있다.


    장미에게 시간이란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장미는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완벽하다. 장미는 잎눈이 트기 전부터 생명력이 넘친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생명력이 더 왕성해지는 것도 아니고, 잎이 다 떨어지고 뿌리만 남았다고 해서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장미의 본성은 충족되며, 장미는 모든 순간에 자연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인간은 현재를 미래로 연기하거나 과거를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풍요로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며 통탄하거나, 미래를 내다보려고 발끝으로 선다. 그도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서 자연과 더불어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행복해지거나 강인해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영향력 있는 지성인들조차 감히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윗(통일 이스라엘의 2대 왕_옮긴이, 예레미야(Jeremiah, 고대 이스라엘 최후의 예언자_옮긴이), 바울(그리스도교 대사도로 기독교 최초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함_옮긴이)과 달리 신이 우리가 아는 말로 말씀하시지 않는 한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나만의 확고한 주장과 완벽한 세계

    대중은 당신이 일반적인 기준을 거부하는 행동을 모든 기준을 거부하고 도덕률을 폐기하려는 행위로 여긴다. 대담한 감각론자는 실제로 자기 범죄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철학을 들먹인다. 하지만 의식의 법칙은 여전히 작용한다.


    속죄에는 2가지 방법이 있으며,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여러 의무를 수행하면서 속죄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고, 반사적인 방법이 있다. 반사적인 방법은 당신이 아버지, 어머니, 사촌, 이웃, 마을, 고양이, 강아지와의 관계를 충족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중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신랄하게 비난할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봐라. 직접적인 방법은 이런 반사적인 기준을 무시하고 나의 죄를 스스로 용서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확고한 주장과 완벽한 세계가 있다. 직접 속죄하는 방법은 의무라고 불리는 여러 임무에 의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을 부정한다. 하지만 내가 그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세상의 일반적인 규칙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런 규칙이 느슨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규칙에 따른 계명대로 살아보게 해라.


    동정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스토아학파(기원전 3세기 제논에서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로 보편적인 이성과 금욕적인 삶을 중시함_옮긴이) 철학자에게 인간의 능력을 개발하게 해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딘가에 기대야 하는 버드나무가 아니라 홀로 설 수 있고 꼭 그래야만 하는 존재임을 알리게 해라. 자기 신뢰를 실천하면 새로운 힘이 나타날 것이다.


    인간은 육신이 된 신의 말씀이며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태어났다. 인간은 동정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가 법률, 책, 우상 숭배, 관습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순간, 우리는 그를 더는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숭배할 것이다. 그런 스승은 인간의 삶을 다시 영예롭게 해주고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길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가 이 모든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이 더 커지면 인간의 모든 일과 인간관계, 즉 종교, 교육, 직업, 생활 방식, 교제, 재산, 사색적인 관점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해진다.



    동정받거나 구걸하지 말고 홀로 서라

    동정하지 말고 진실을 들려주자

    동정심도 후회만큼이나 야비한 감정이다. 우리는 바보같이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옆에 앉아 함께 울어준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들려주고 그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도우면서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편이 낫다. 그러면 그들이 자신의 이성과 다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것을 찾는 여행은 위험하다

    나는 미술, 공부, 자선 행위를 위해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은 무작정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거대한 것을 찾으리라는 희망은 품지 않고 외국에 가길 바란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또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여행하면서 오히려 자신과 멀어지게 된다. 그런 사람은 젊더라도 오래된 것들 사이에서 늙어버린다. 그의 의지와 정신은 고대 도시 테베(Thebes, 이집트의 고대도시_옮긴이)와 팔미라(Palmyra, 시리아의 사막에 있는 유적지_옮긴이)에서 그 도시들만큼이나 낡고 황폐해진다. 여행자가 폐허가 된 곳으로 폐허를 들고 가는 셈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마라

    당신의 생각을 고수해라. 절대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마라. 당신의 재능은 그것을 평생 갈고닦으면서 쌓아온 힘으로 어느 순간에든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재능은 미봉책이며 반쪽짜리 재능이나 마찬가지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조물주만이 알려주실 수 있다. 그 사람이 재능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재능을 알아내지 못한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_옮긴이)를 가르칠 수 있었을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_옮긴이), 워싱턴, 베이컨(Francis Bacon, 근세 철학의 선구자_옮긴이), 뉴턴 같은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었을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위대한 인물은 누구나 유일무이하다. 스키피오(Scipio Aemilianus,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크게 활약함_옮긴이)가 내세운 스키피오주의는 그가 남에게서 빌릴 수 없었던 바로 그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더라도 셰익스피어 같은 인재를 양성할 수는 없다.


    홀로 우뚝 서는 사람이 되자

    정당은 전당 대회를 수도 없이 연다. 참가자 수가 많을수록 젊은 애국자들은 천 개의 새로운 눈과 팔 덕택에 자신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느낀다. “에식스(Essex)에서 온 대표단입니다!” “뉴햄프셔에서 온 민주당원들이에요!” “메인(Maine)에서 온 휘그(Whig) 당원들입니다!”라고 사람들이 새로 외칠 때도 마찬가지다. 개혁자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집회를 열고, 투표하고, 다수결로 의견을 정한다.


    하지만 친구들이여, 신은 당신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머물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하실 것이다. 사람은 외부의 모든 지원을 거절하고 홀로 설 때 강인해지고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자기 뜻에 따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약해진다. 혼자 우뚝 선 사람이 마을 전체보다 낫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라. 그래야 끝없는 변화 속에서 당신이 유일하게 굳건한 기둥이 되어 당신을 둘러싼 모두를 곧바로 지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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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