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지은이 : 고병권 (지은이)
출판사 : 메디치미디어
출판일 : 2024년 07월




  • 제목에서 언급된 ‘하녀’는 사회의 마이너리티로서, 권력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가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녀와 같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철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철학자와 하녀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천국에는 철학이 없다

    “2003년 8월 15일 무더운 밤 뉴욕시에서는 은하수가 보였다.” 미국 북동부 지방에서 발생한 재난으로 정전이 발생하자 뉴욕이 밤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그때 뉴욕 시민들은 그동안 대낮같이 밝은 밤 때문에 몰랐던 사실, 즉 자신들이 ‘별들의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솔닛은 대재난이라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자율적이면서도 이타적인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그가 말한 ‘은하수’란 아마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공동체들일 것이다. 재난이라는 말이 ‘별’이 ‘없는’ 상태(그래서 어떤 불길함이 예고된 상태)에서 연원했음을 생각하면, 재난의 때에 사람들에게 나타난 무수한 별들의 이야기는 참 기발하고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에서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까지, 사회시스템은 무너지고 언론이 과장된 공포만을 유포하고 있을 때, 현장의 가난한 이들은 ‘별수 없이’ 하지만 또한 ‘놀랍게도’ 삶의 공동체들을 일구어냈다.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졌던 자율적이고 이타적인 공동체들. 아무 조건도 없이 사람이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인간 공동체를 가장 아래에서부터 떠받친 힘이고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기댈 수밖에 없는 절대적 가능성일 것이다.


    솔닛은 그가 본 공동체들을 ‘낙원’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떠올리는 낙원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대개 낙원이란, 기껏해야 ‘영원한 휴양지’이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만들어 갈 필요가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솔닛에 따르면, “지옥에 세워지는 낙원은 늘 문제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난다. ∙… 지옥에서 세워지는 낙원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이 낙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힘과 창조성을 쏟아붓고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과 얽혀 있는 순간에도 뭔가를 창조할 만큼 자유로워진다. 지옥 속에서 세워지는 낙원들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솔닛이 말한 낙원은 현실로부터 도피한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모두가 도피한 현실의 가장 어두운 곳에 남겨진 이들이 만든 공동체다. 그런데 이 공동체는 인간이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후 영생을 얻어 누리기를 꿈꾸는 하늘의 낙원은 그것이 설령 인간에게 주어질 때조차 신의 능력이고 신이 보인 배려이다. 그러나 신이 보살핌을 거둔 곳, 즉 지옥에서 낙원이 생겨난다면 베푼 배려 때문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철학, 내가 지금까지 실행하고 있는 철학은 자발적으로, 얼음이 덮인 높은 산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가 말한 얼음이 덮인 산정은 범속한 것들이 찾아올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러기에 그곳은 세상의 가치평가와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그 평가 속에서 추방된 것들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가치전복의 최적 장소이기도 하다.


    ‘철학의 정신’은 그런 고행과 금욕의 외투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니체는 말했다. 이는 많은 철학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도피 욕망, 즉 번잡한 곳을 떠나 조용히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참된 철학자가 높은 산정과 얼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지금의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재료가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을 잃은 지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음을, 아니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가진 참된 것이 드러난다는 걸 철학은 말해준다. 깨달음은 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배움 이전에 배움이 일어난다

    배움 이전에 일어난 배움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개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강연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개교 기념식의 강연에서 내가 부탁받은 주제는 ‘노들야학의 역사와 한국 장애인 운동’이었다. 내심으로는 노들야학의 발자취가 궁금하기도 했던 터라 나는 선뜻 강연을 맡았고, 며칠 동안 이 학교의 과거 자료들을 열심히 읽었다.


    나는 글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서 몇 번이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특히 젊은 교사들이 장애인 학생들의 삶 앞에서 절망하던 장면들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이들 중에 누군가는 “내일도 우리 아침에는 해가 뜨지 않겠지? 라고 적었다. 어떤 이는 ”학생들의 삶을 마주하니 가슴에 뭔가 자꾸 고여서 술을 들이켜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무슨 공부가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했을까? 딱딱하기 그지없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펴놓고 검정고시 준비를 했던 사람들. 그런데 왜 이들은 울분과 절망, 기쁨과 희망이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고서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었던 것일까?


    물론 장애인의 삶이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대입 검정고시에 붙는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검정고시 합격증은 마치 ‘장롱면허’처럼 개인적 한풀이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대학 진학을 꿈꾸거나 취업을 생각한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와 학업, 취업, 빈곤, 결혼 등의 사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배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들야학의 한편에는 분명히 이런 의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주체화가 필요한데 야학이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의 의식화 말이다.


    노들야학은 학교인가, 운동조직인가. 내부에서는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과 장애인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긴장감을 가지고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야학 학생들이 오래전에 쓴 글에서 나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내가 발견한 것은 어떤 ‘배움’ 이었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그런 ‘배움’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지식을 배우기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이라는 점에서 ‘배움 이전의 배움’ 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운동’ 내지 ‘변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제도나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변혁 이전에 사람들의 맘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운동 이전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언젠가 리영희 선생에 대한 글을 쓸 때 비슷한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리영희 선생은 7~80년대 대학을 다닌 많은 이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불렸고, 검찰 공안부에게는 ‘의식화의 주범’으로 통했다.


    나는 리영희 선생이 사상의 은사로서 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가 사상의 은사, 즉 ‘생각의 스승’이었다면 그것은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책을 읽고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느낌’이라고 했던 게 아닐까. 그것은 구체적 견해가 아니라 생각 자체의 일깨움이다. 즉, 선생은 견해가 아니라 각성을 전달한 것이다. 말하자면 계몽은 지식 이전에 정서에서 일어난 변화인 셈이다.


    수십 년간 집이나 시설, 그리고 작업장에만 갇혀 있던 어느 장애인이 야학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함께 보았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어떤 불가능이 가능으로, 어떤 무능이 능력으로 바뀌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정서들의 대변혁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닥불이 있는 밤하늘이 그에게 무언가를 일깨운 것이다. 이 일깨움, 이 깨달음, 이 배움은 분명 앞으로 그가 만날 지식과 정보의 성격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배움’ 이다.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굴복보다는 커피를 택한 이들

    대학원을 졸업하던 날, 학교에서 선생님 한 분을 인사차 찾아 뵌 적이 있었다. 차를 한 잔 내주던 선생은 평생을 연구자로 살아가겠다는 내게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젊어서 함부로 무릎을 굽혀서는 안 된다.” 당신 친구들을 보건대 젊어서 한 번 무릎을 구부리면 평생 습관이 되더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돈이 필요하고 남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 다시 말해 ‘성공’하려는 사람이라면 제 무릎을 아끼지 않겠지만, 제자가 공부하겠다고 뜻을 밝혔으니 그 길을 걷고 있는 선생이 귀한 말로 제자의 여비를 챙겨준 것이다. 겸손의 미덕을 모르지 않는 분이었기에 난 그 말의 무게를 짐작했다.


    선생은 학문의 길에 나선 어린 제자에서 그 말을 던졌지만, 공부라는 게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이 꼭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칸트가 ‘계몽’의 비밀을 지능이 아닌 ‘용기’에서 찾았듯이, 그리고 ‘비판 이성’ 이외에 아무 권위도 인정하지 말라 일렀듯이,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꿇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이 쓸데없이 제 고집을 세우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아집이야말로 내 습관과 편견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게 낯선 존재,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게 기꺼이 나 자신을 개방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뭔가를 깨우칠 수 있다. 그래서 기꺼이 동의할 때도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삐딱하게 고집을 세울 때도 노예인 사람이 있는 것이다. 노예란, 저 자신이 옳고 그름을 따져볼 능력이 없는 존재 혹은 그런 것에 무관심한 존재를 가리킨다. 그래서 노예는 습관에 의탁하고 언론에 의탁하고 권력자에 의탁하고 다수에 의탁하는 것이다. 쉽게 굴복한다는 것은 스스로 따져볼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이니 그에게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 바탕이 없는 것과 같다.


    먼 나라에 머물 때에도 눈과 귀를 반쯤은 한국에 두었던지라 한국 상황이 답답해지면 책이 좀처럼 읽히질 않았다. 마음이 심란해서 이 책 저 책을 꺼내 드는데 갑자기 십 년 전쯤 적어두었던 독서 메모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선포된 날, 못 살겠다며 봉기를 일으킨 멕시코 남부의 사파티스타 원주민들, 그 부대를 이끌던 부사령관 ‘마르코스’라는 사람이 쓴 책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실재 인물이었고 마르코스가 그와의 대화를 우화 형식으로 풀어 썼다.


    이 책에 대해 남겨놓은 것은, 사실 독서 메모라고는 했지만 이 책의 어느 부분을 필사해놓고는 한마디 적어둔 게 전부였다. 이 이야기는 전세가 매우 불리해진 사파티스타 부대가 정부군에 굴복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사령부에서 오후 내내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굴복’이라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원주민 언어에서 그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아무도 그 단어가 토홀라발 족의 언어와 촐 족의 언어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 했다. 우리는 적절한 번역어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단어는 진실한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절대로 무릎을 꿇고 굴복하지 않는다네.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네.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죽은 이들이 우리에게 진실한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은 세상에서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라네.” 사령부는 커피를 마실 것인지, 계속 ‘굴복하다’에 적절한 단어를 진실한 언어에서 찾을 것인지를 이 땅 치아파스의 전통에 따라서 표결에 부친다. 만장일치로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누구도 굴복하지 않는다.

    - 마르코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중에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정성껏 필사해두고 적어둔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얼마나 위대한 무지인가. 굴복을 모른다는 것. 이 부족에게는 굴복이 없고 커피가 있다.”


    저항의 가치

    아무런 저항도 없는 세계. 그것은 모든 권력자가 꿈꾸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대단한 권력자가 아니라 해도, 정치의 세계에서든 학문의 세계에서든 사람들은 저항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정치인들은 저항을 눌러버리거나 떨쳐 내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학자들은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을 때 자기주장의 진리가 입증되었다고 믿는다. 어느 경우든 저항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일은 드물다.


    환자의 저항은 통념상 분석을 막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 반대가 진실이다. 그는 저항이란 나타나기 마련이고 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분석가는 오히려 환자의 “분명하고 충분할 정도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저항이야말로 무의식에 대한 분석을 가능케 해주는 소중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 저항하지 않는 환자란 말하지 않는 환자와 같다. 그렇게 되면 분석가는 편안하게 자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분석가는 아무런 방해 없이 자기 지식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환자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였을까? 정신분석을 배우러 온 청중들에게 프로이트가 한 말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은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만 배울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저항을 극복해가지만, 그 극복은 환자의 저항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정한 이해는 저항의 너머에 있지만 우리는 저항을 통해서만 거기에 이를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저항을 긍정하고 저항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저항을 부인하고 그것을 없애려는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저항의 부인’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 통로의 봉쇄라는 것을 말해주며, 강한 억압은 더 큰 왜곡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끄럽다고 귀를 닫으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한마디로 저항을 소중히 생각하고, 저항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수용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시설사회에 살고 있다

    미셸 푸코는 타자공간에 대하여: 유토피아와 헤테로피아라는 글에서 어느 사회나 ‘타자공간’ 혹은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마치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를 바꾸는 거울처럼 사회의 공간과 배치를 비춰주면서 뭔가 뒤집혀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할 장애인 수용시설도 그런 공간 중의 하나이다. 대체로 이런 공간들은 사회의 통상적인 공간과는 다른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곳으로 취급되지만, 푸코에 따르면 이 공간들이야말로 사회 전체의 윤곽을 그려주는 곳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한종선의 증언을 담은 살아남은 아이를 읽었을 때 내게 떠오른 생각도 그랬다. 이 책은 1980년대 부산에 존재했던 어떤 끔찍한 시설에 대한 고발이지만 또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도 풀리지 않는 시설 사회에 대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시설’이란 어떤 곳인지, 왜 우리가 ‘문제의 시설’이 아니라 ‘시설 일반’, 더 나아가 ‘시설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말해보려고 한다.


    복지원에서는 ‘이유 없는’ 폭력도 자주 휘둘러졌는데, 이는 권력이 그 순수성이나 절대성에 다가갈 때 드러나는 권력의 참모습이다. 권력은 절대적으로 되어갈수록 그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권력 자체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설에서 자의적인 폭력, 이유 없는 폭력이 행사되는 것은 권력을 확인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모든 맥락이 제거된 채 거기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에 그들은 생존을 시설에 전면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단순 생명체로 축소된다. 삶의 이러한 전면적 의존이 그것을 의탁받은 체제의 절대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시설과 시설장은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권력의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병영사회에서 권력자들의 이념형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형제복지원은 1975년 유신 치하에서 공포된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서 설립되었다. 긴급조치를 남발하고 사회 전체를 규율 잡힌 통제공간으로 만들려던 시점에 길거리의 부랑자들에 대한 강력한 수용 조치가 이루어진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광주학살 이후 철권통치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전두환 정부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 아래 유신체제에 이루어진 이런 조치들을 계승하고 강화해갔다. 즉 형제복지원은 예외적 공간이긴 했지만, 그것은 사회의 이념으로부터 일탈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의 이념이 예외적으로 선명하게 구현된 공간이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권력만이 아니라 돈(경제)과 영혼(이데올로기)에서도,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 사회 전체를 비춰준다.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경제적 능력을 부인 당한 사람들이며, 대체로 자립의 신념과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로 간주한다.


    형제복지원은 사회에서 모든 경제적 수단과 능력을 박탈당했거나 부인된 존재가 시설에서 어떻게 경제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일반 노동시장에서 수용자들은 낮은 생산성 때문에 거부되지만 수용소에서는 보통의 경우 상상할 수 없는 노동통제와 임금착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들은 일반 노동시장에서는 취업할 수 없었지만, 형제복지원에서는 양재와 목공, 철공 작업에 배정되었고 사실상 임금을 받지 못한 채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복지원은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형제복지원의 경우에는 생체가 아닌 사체에서까지 가치를 발견했다. 형제복지원은 죽은 이들의 사체를 병원 실습용으로 300~500만 원에 판매했다.


    이런 착취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리화해준 것이 교회였다. 교회는 수용자들의 강제 수용 자체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했으며, 수용시설 안에서의 강제 규율이나 강제 노동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정당화했다. 게다가 지금도 교회는 많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 시설은 마치 교회 공간, 다시 말해서 세속과 구분되는 영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로써 사회로부터의 각종 규제와 간섭을 피할 수 있는 권력의 독립된 공간이 창출되는 것이다. 한종선은 “교회는 복지원 내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것은 물론 형제복지원 내 건물들의 배치를 지칭한 말이었지만, 복지원 권력의 종교적 성격과 영적인 착취를 지칭하는 말로도 읽어낼 수 있다.


    1990년대, 민주화와 더불어 군사정부는 종언을 고했고 병영사회 모델도 공식적으로는 해소되었다. 정치∙경제∙사회의 각 영역, 특히 공식적 부문들은 제도적으로 상당 부분 자유화되고 합리화되었다. 그런데 시설 문제를 살펴보고 있으면, ‘시설’은 마치 민주화 과정에서 벗어난 예외 공간이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꽤 많은 시설이 여전히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설 사회’라는 문제의식에서 볼 때 우리 사회가 크게 변한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일부 시설들은 군사정부 시절의 병영사회 모델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시설’은 예외적 공간이라는 생각, ‘시설’을 ‘여기’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그런 황당한 시설들을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속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형제복지원의 ‘드러난 야만성’ 때문에,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은 야만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설수용자들의 탈시설을 직접 가로막는 것은 시설장이지만, 드러나지 않게 탈시설을 막고 있는 것은 시설 사회이다. 기초생활 수급권에서부터, 이동권, 활동보조인 제도, 탈시설을 위한 주택지원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시설보다 더 높은 담을 쌓고 탈시설을 막고 있다. 게다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삶의 추방과 포기, 방치 등을 통해 삶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는 권력 현상은 오히려 더욱 강화된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출발점으로 해서 시설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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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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