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지은이 : 귀스타브 르 봉 (지은이), 정영훈 (엮은이), 이나래 (옮긴이)
출판사 : 메이트북스
출판일 : 2025년 02월




  • 19세기 후반의 혼란스러운 유럽 사회 속에서 군중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분석한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를 현대적 시각으로 초역했습니다. 군중 속에서 개인이 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변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본성과 사회 심리를 탐구합니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군중의 정신

    군중의 일반적 특징과 군중심리의 일체화 법칙

    군중심리의 일체화 법칙에 따라 심리적 군중은 움직인다

    일반적으로 군중이라는 단어는 국적, 직업, 성별과 상관없이 우연한 계기로 모인 평범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군중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특정한 상황에서, 오직 그 상황에 의해 형성된 집단은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과는 판이한 새로운 성격을 드러낸다. 즉 자의식은 희미해지고 모든 구성원의 감정, 사고가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집단정신은 일시적이지만 매우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 관계로 나는 이 집단을 '조직된 군중'이라 부르겠지만 '심리적 군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 군중은 하나의 독자적인 개체로 존재하며, '군중심리의 일체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단지 수많은 개인이 우연히 한곳에 모였다고 해서 조직된 군중의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공공장소에 우연히 천 명의 개인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확고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절대로 군중이라고 할 수 없다. 군중이란 외부 또는 내부 자극에 의해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된 집단을 가리킨다.


    개인의 자의식이 사라지고, 감정과 사고가 일정한 방향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군중 형성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예를 들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처럼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면 심리적 군중이 가지는 특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는 사소한 계기만 있어도 사람들이 결집하고, 이들의 행동이 곧바로 군중 행동의 고유한 특성을 띠게 된다. 때로는 단 여섯 명만으로도 심리적 군중을 이루는 반면, 수백 명이라도 우연히 모인 것뿐이라면 군중심리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민족 전체가 실제로 결집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영향을 받아 군중이 되기도 한다.


    일단 심리적 군중이 형성되면, 일시적이긴 하지만 군중의 일반적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외에도 군중은 구성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갖게 되며, 이러한 요소들이 군중의 정신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심리적 군중은 그 성격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실제로 분류를 해보면, 서로 다른 요소들로 구성된 이질적 군중과 예를 들어 종파, 신분, 계급과 같이 비슷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동질적 군중이 공통된 특성을 지니는 동시에 각각 구별될 수 있는 고유한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양한 군중 유형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모든 군중에 공통되는 특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박물학자처럼 한 과에 속하는 모든 개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특성을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그 과에 포함된 속과 종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개별적 특성을 다룰 것이다.


    군중의 정신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군중이라는 조직은 민족과 그 구성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 조직을 관통하는 자극의 본질과 강도에 따라서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평범한 개인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하는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평생을 변함없이 일관된 성격으로 살아가는 인물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한결같아야만 겉으로 드러나는 특성 또한 일관성을 갖게 된다.


    심리적 군중이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여기에서 군중 형성의 모든 단계를 연구할 수는 없으므로, 우선 완성 단계에 있는 군중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군중이 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처럼 고도로 조직화된 단계에서만 새롭고 고유한 특성들이 변함없고 지배적인 민족적 특성 위에 겹치며 집단 전체의 모든 감정과 사고가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서야 비로소 내가 앞서 언급했던 '군중심리의 일체화 법칙'이 작용한다.


    군중의 심리적 특성 중 일부는 독립된 개인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군중에게만 절대적으로 고유하며 오직 집단에서만 발견되는 특성들도 있다. 군중의 고유한 특성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바로 이 특성들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심리적 군중이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이 어떤 사람이든, 각각의 생활 방식, 직업, 성격 또는 지성 수준이 서로 비슷하든 그렇지 않든, 단지 군중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구성원 모두가 일종의 집단정신을 공유한다. 그렇게 되면 각자가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오직 군중 속에 있는 개인에게만 나타나서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생각과 감정이 있다는 의미다. 심리적 군중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잠시 결속해서 형성된 일시적 존재다. 예를 들면, 마치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각각의 세포가 지닌 특성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과 같다.


    군중이라는 집합체는 단순히 각 구성요소들의 합이나 평균이 아니라, 새로운 특성의 결합이자 탄생을 의미한다. 화학에서 염기성과 산성을 띤 물질들이 접촉을 통해 결합하면 각 물질의 특성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닌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이 군중의 일원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얼마나 다른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밝혀내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 원인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려면 먼저 현대 심리학에서 검증되었듯이, 무의식적인 현상들이 생명체의 생물학적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지능의 작용에도 상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야만 한다. 실제로 정신의 의식적인 부분은 무의식적인 부분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치밀한 분석가나 가장 통찰력 있는 관찰자조차 자신을 이끄는 무의식적 동기 중 극히 일부분만을 겨우 찾아낼 뿐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주로 세대를 이어오며 만들어진 무의식의 기층에 기인한다. 이 기층에는 민족정신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조상들의 잔재가 들어 있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표면상의 원인이 있더라도 그 이면에는 분명 우리가 털어놓지 못한 비밀스러운 원인이 있고, 이 비밀스러운 원인 뒤에는 우리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훨씬 더 비밀스러운 원인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숨겨진 동기가 발현된 결과다.


    한 민족에 속한 개개인에게 서로 비슷한 면이 있다면 이는 민족정신을 구성하는 무의식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서다. 반면 개성은 교육의 결실이자 무엇보다 뛰어난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된 의식적 요소에 의해 나타난다. 지적 수준에서 극명한 격차를 보인다고 해도 인간은 본능, 열정 그리고 감정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종교, 정치, 도덕, 호감과 반감 같은 감정을 느끼는 데 있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적 측면에서 위대한 수학자와 그의 구두를 만드는 구두장이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인격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둘 사이에 차이가 없거나 있더라도 굉장히 미미한 정도다.


    사실 이러한 성격의 일반적인 특성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며 한 민족에 속한 평범한 개인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정도로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군중 역시 공통적으로 이와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집단정신 안에서 개인의 지적능력, 그러니까 개인의 개성은 지워진다. 이질성은 동질성에 녹아 없어지고, 무의식적 특성들이 주도권을 장악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군중은 높은 지적 수준이 필요한 행동을 수행하기 어렵다. 공익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인물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 어리석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도출할 법한 결론보다 항상 월등히 뛰어난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인재들 또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특성뿐이기 때문이다. 군중 안에 축적되는 것은 어리석음이지 지성이 아니다. 흔히 말하듯, 여러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볼테르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갖추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군중을 뜻한다면 볼테르 한 사람의 지성이 군중을 능가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군중에 속한 개개인에게서 각자가 가진 평범한 특성을 하나씩 모아 합쳤을 뿐이라면 단순히 평균적인 특성만 나타났겠지만, 앞서 말했듯, 군중이 형성되면 새로운 특성들이 드러난다.


    군중만의 독특한 특성이 나타나는 세 가지 원인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군중만의 독특한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원인들이 작용한다.


    첫 번째로, 군중에 속한 개인은 단지 함께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적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도취되어, 혼자였다면 분명히 억눌렀을 본능에 몸을 내맡긴다. 군중은 익명이 보장되어 결과적으로 무책임해지기 쉽고, 개인을 구속하던 책임감도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군중에 속한 개인은 점점 본능을 억눌러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전염을 꼽을 수 있다. 전염은 군중의 독특한 특성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군중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전염은 확인하기는 쉽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현상이라서, 곧 우리가 살펴볼 최면 현상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 군중 속에서 모든 감정, 모든 행동은 전염되기 쉽다. 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 이익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할 정도로 전염성은 강하다. 그야말로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이러한 성향은 오직 개인이 군중에 속해 있을 때만 발휘된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언급했던 원인들 중 단연코 가장 중요한 원인인 피암시성이다. 피암시성은 때때로 군중의 일원인 개인에게서 개별적으로 행동할 때 나타나는 개인의 성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고유한 특성을 끄집어낸다. 앞서 언급한 전염도 피암시성의 결과일 뿐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생리학에서 최근 발견된 몇 가지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현재 우리는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개인을 특정 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상태에서 개인은 자신의 의식적 인격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상황을 설계한 조작자의 모든 암시에 복종하게 된 나머지 자신의 본래 성격이나 습관과는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군중을 가장 면밀히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일정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군중 속에 있던 개인은 군중으로부터 발산되는 활기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인해 최면술사의 손아귀에서 최면에 걸린 사람이 느끼는 황홀경과 매우 유사한 특별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최면에 걸린 사람은 두뇌 활동이 마비되면서 최면술사가 제멋대로 조종하는 의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모든 척수 활동에 완전히 지배당한다. 그러면 의식적인 인격체는 모조리 사라져버리고 의지와 분별력도 잃게 된다. 모든 감정과 사고는 최면술사가 결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심리적 군중에 속한 개인의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더 이상 의식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일부 능력이 약화되는 동시에 다른 능력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군중 속 개인은 암시에 사로잡혀 특정한 행동을 완수하기 위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충동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따라서 최면에 걸린 사람보다 군중 속 개인이 충동을 억제하기가 더욱 어렵다. 군중을 이루는 모든 개인이 동일한 암시에 빠져 서로가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 암시의 힘이 더욱더 증폭되기 때문이다. 암시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한 사람들도 군중 속에서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세에 거스르기 어렵다. 기껏해야 또 다른 암시를 이용해 군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적절하게 사용된 한마디, 상황에 맞게 떠오른 이미지 하나로 군중이 잔혹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막은 사례도 있다.


    따라서 개인의 의식적 인격이 소멸하고, 무의식이 우세해지며, 암시와 전염을 통해 감정과 사고가 하나의 방향으로 편향되고, 암시로 주입된 생각을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경향을 보이는 등과 같은 특성이 군중에 속한 개인에게 나타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조직된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은 문명의 등급에서 여러 단계 추락하고 만다. 혼자였다면 교양인이었을 개인도 군중이 되면 본능에 충실한 야만인이 된다. 군중 속 개인은 원시적 존재처럼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폭력적이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영웅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군중은 원시적 존재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어 개인으로 있었다면 전혀 영향이 없었을 말이나 이미지에 쉽게 감동해버리고, 자신에게 가장 확실한 이익과 가장 익숙한 습관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그러므로 군중 속 개인은 바람이 휘몰아쳐 이리저리 흩날리는 모래 알갱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배심원단이 배심원 개개인이었다면 반대했을 판결을 채택하고, 의회가 의회 구성원 개개인이라면 거부했을 법과 조치를 채택하는 상황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공회 사람들도 개개인으론 교양 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부르주아였다. 하지만 군중으로 결집하면 아무 망설임 없이 피도 눈물도 없는 법안을 승인하거나 무고한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내곤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의 모든 이익에 반해 면책특권을 포기하거나 스스로를 괴멸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단지 행동에서만 군중 속 개인이 본래의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독립성을 잃기 전부터 개인의 사상과 감정은 이미 달라져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구두쇠가 돈을 흥청망청 쓰게 하고, 무신론자가 신을 믿게 하며, 정직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겁쟁이가 영웅이 되게 할 정도로 근본적이다. 그 유명한 1789년 8월 4일의 밤, 환희에 들떠 귀족들은 자신들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만약 그들이 '함께' 가 아니라 각각 '따로' 떨어져 있었다면 그 누구도 결코 이러한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군중의 견해와 믿음

    군중의 변덕스러운 신념과 견해의 한계

    감정만 따르는 군중의 변덕스러운 견해

    철학자의 역할은 표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오래된 신념들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출렁이는 의견의 파도 속에서 무엇이 일반적 신념과 민족의 영혼을 통해 결정되는지 구별해 내는 것이다. 만약 이런 철학적 기준이 없다면, 군중이 정치적 혹은 종교적 신념을 툭하면 마음대로 바꾼다고 믿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정치, 종교, 예술, 문학을 포함한 인간 역사의 모든 영역이 이러한 경향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1790년부터 1820년까지, 즉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의 짧은 기간만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처음에는 왕정을 옹호했던 군중은 혁명가가 되었다가 후에는 제정주의자가 되더니 다시 왕정주의자로 돌아갔다. 같은 시기에 종교적으로는 가톨릭교도에서 무신론자와 이신론자를 거쳐, 결국에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가톨릭교도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비단 군중에게서만이 아니라 군중을 이끌었던 이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한때 왕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며, 신도, 지도자도 거부했던 국민공회 의원들이 나폴레옹 앞에서는 유순한 종복이 되더니, 루이 18세 시절에는 경건하게 초를 들고 예배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그 뒤로 7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군중의 의견은 수도 없이 바뀌었다. 프랑스에게 '불신의 알비온(알비온은 고대 영국의 명칭이다-옮긴이)'이라고 불리던 19세기 초반의 영국은 나폴레옹의 후계자가 통치하던 시절에 프랑스의 동맹국이 되었다. 두 차례나 프랑스의 침략을 겪고, 프랑스의 패전을 그토록 환호했던 러시아는 별안간 프랑스의 우방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학, 예술 그리고 철학에서는 변화가 더욱 빠르게 이어졌다. 낭만주의, 자연주의, 신비주의 같은 여러 사조가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열렬하게 칭송받던 예술가와 작가가 다음날이면 차갑게 외면당했다.


    그런데 겉으로는 심오해 보이는 이 모든 변화들을 분석하면, 무엇을 알게 될까? 민족의 일반적인 신념과 감정에 상반되는 모든 변화는 그저 일시적일 뿐이다. 방향을 잃었던 강물도 곧 본래의 흐름을 되찾기 마련이다. 민족의 일반적인 신념이나 감정과 어떠한 연관도 없고, 결과적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의견은 모든 우연에 휘둘리게 된다. 다시 말해 환경의 사소한 변화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암시와 전염으로 형성된 의견은 언제나 일시적이다. 바람에 실려 바닷가에 쌓인 모래 언덕만큼이나 빠르게 생겨났다가 사라져버린다.


    오늘날 군중의 의견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유동적이고 다양해졌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의 신념이 점차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어, 예전만큼 일시적인 의견에 영향을 미치지도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신념이 사라지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수많은 개별적 의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둘째, 군중의 힘은 점점 커지는데 이를 상쇄할 견제 세력은 사라지는 추세여서, 군중의 사상에서 나타나던 극단적 유동성이 이제는 제약 없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최근에 언론 매체가 확산되면서 군중에게 끊임없이 양극단의 의견들을 전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의견이 만들어내려는 암시는 곧 정반대의 의견에서 비롯된 암시에 의해 파괴된다. 따라서 어떤 의견도 확산되지 못한 채 하루살이처럼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일반적 의견이 될 정도로 층분히 널리 퍼지기 전에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새로우면서 현시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여론을 주도할 만한 능력이 없다. 과거에, 그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정부의 힘, 몇몇 작가와 극소수 신문의 영향력이 여론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오늘날 작가들은 영향력을 완전히 잃었고, 신문도 그저 여론을 반영하기만 할 뿐이다. 정치인은 여론을 주도하기는커녕 뒤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여론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때로는 공포에까지 이르러 정책의 일관성을 잃어버릴 정도다.


    따라서 군중의 여론은 점차 정치의 방향을 결정짓는 최우선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군중의 여론이 동맹을 강요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최근에 두 눈으로 확인했듯, 러시아와의 동맹은 전적으로 민중운동에 의해 성사된 것이다. 또한 요즘 교황, 국왕 그리고 황제가 특정 주제에 관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군중의 판단을 얻고자 자리를 마련해 대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는 정치가 감정과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성은 무시한 채 오로지 감정만 따르는 변덕스러운 군중의 충동이 정치의 방향을 좌우하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한때 여론을 주도했던 언론은 정부가 그랬듯 군중의 힘 앞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론은 지금도 상당한 힘을 휘두르고 있지만, 단지 군중의 여론과 그 끊임없는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보도기관이 되어버린 언론은 더 이상 어떤 사상이나 이론을 불어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대중의 변화하는 생각에 맞춰갈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매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독자를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신탁을 받들 듯 읽던 역사 깊은 신문들은 과거에는 엄숙하고 영향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리거나, 재미있는 소문, 사교계 가십 그리고 금융 광고로 채워진 단순한 정보지로 전락했다. 오늘날 기자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마음껏 펼치게 해줄 만큼 재정적 여유가 충분한 신문사가 있긴 할까? 설령 있다 해도 단지 정보를 얻거나 즐거움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고 기자들의 모든 조언 뒤에는 항상 큰손이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이런 의견이 과연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평론도 더 이상 책이나 연극 공연을 세상에 널리 알릴 만한 힘이 없다. 오히려 해만 끼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문사들은 비평이나 개인의 의견이 하등 쓸모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점차 문학 평론에 할애하는 지면을 줄이고 단지 책 제목과 두세 줄의 소개 글만 싣기 시작했다. 20년 후면 아마 연극 비평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여론을 살피는 일은 오늘날 언론과 정부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그들은 사건이나 법안, 연설이 가져오는 결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군중의 생각만큼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것도 없어서, 전날만 해도 갈채를 보내놓고 오늘은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론을 이끄는 힘이 완전히 사라진 와중에 일반적인 신념마저 해체되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신념이 산산조각 났으며, 군중은 자신과 명확히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다. 사회주의 같은 이념을 진심으로 믿고 지지하는 사람은 광산이나 공장 노동자들처럼 완전히 무지한 계층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소시민과 약간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적어도 철저하게 유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오늘날 모든 의견은 토론과 분석 앞에서 그 권위를 잃는다. 각 관점은 금세 닳아 없어지고,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의견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대인은 점점 더 무관심에 잠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의견이 붕괴하는 현상을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이런 붕괴가 한 민족의 쇠퇴를 보여주는 징후일지라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혜안을 지닌 선각자, 사상의 전도자, 군중의 지도자, 한마디로 신념을 지닌 자들은 분명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군중의 강력한 힘을 고려할 때, 단 하나의 의견이라도 충분한 권위를 얻어 대중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면, 곧 전제적인 힘을 휘두르게 될 테니 모든 것은 그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자유로운 토론의 시대는 이후 오랫동안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군중은 때때로 그러했듯, 평화를 사랑하는 지배자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발적인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문명이 군중의 손에 떨어지면 그때부터 온갖 우연에 휘둘리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만약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붕괴의 때를 늦출 수 있다면, 바로 여론의 극도로 유동적인 성격과 모든 일반적인 신념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는 군중의 태도일 것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Insert into User_Gumi_Real_Tbl (SiteCode, Account, DomesticNo, RegistDate,morning) Values ('KUNSANAC0324', '','CE20055','202504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