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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대로 살고 싶을 때 니체
 
지은이 : 양대종
출판사 : 초록북스
출판일 : 2025년 10월




  • 많은 사람들이 삶의 위기 앞에서 무너진다. 불행은 왜 유독 나를 향하는지, 내 안의 상처는 왜 이렇게 깊은지 물으며 쉽게 좌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 삶의 고통을 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큰 가능성으로 이끄는 연료라고 강조했다.


    내 의지대로 살고 싶을 때 니체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 왜 이렇게 어려운가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하며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학과를 정하고, 직장을 고르고, 인간관계를 맺는 순간마다 내 의지를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돌아보면 중요한 결정일수록 타인의 시선, 시대의 유행, 안전한 선택이 더 크게 작동했다는 사실을. 그때 입안에서 조용히 맴도는 말이 있다. 나는 정말 내 의지대로 살고 있는가. 니체의 사유는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니체가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누구의 간섭 없이 선택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는 묻는다. 그 선택의 기준조차 남들이 준 언어와 가치라면, 그건 과연 자유일까.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맞춰 사는 삶, 평균적인 행복을 복사 붙여넣기 한 듯한 삶은 편안하지만 어딘가 공허하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과 목소리가 있는데도, 조용히 눌러놓고 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진짜 자유는 나에게 이미 내려진 수많은 보이지 않는 명령을 의심하는 데서 첫 발을 뗀다. 부모가 말해온 성공, 사회가 정의한 이상적인 인생, 종교나 도덕이 속삭여온 선과 악의 기준을 통째로 다시 묻는 일이다. 이 재검토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견디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남이 만든 궤도 위를 규칙적으로 돌기만 하는 위성으로 남는다. 자기 궤도를 창조하는 힘,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의지다.


    도덕의 가면을 벗겨볼 용기

    니체는 도덕을 정면으로 비판한 철학자로 악명이 높다. 그가 의도한 것은 도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보자는 요구였다. 선과 악이라는 분류가 정말로 순수한 정의감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약한 자의 원망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이 의심을 위해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언어를 사용했다.

    도덕은 종종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하나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긍정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에너지를 억누르고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역할이다. 니체는 특히 두 번째 측면에 주목한다. 누군가의 강렬한 열정과 독립성을 보며 불안해진 마음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그 힘을 죄악시할 때, 우리는 도덕의 배후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을 향해 주변이 말한다. 안정성이 부족하다, 부모를 생각하라, 실패는 무책임이다. 이 모든 말은 선의의 충고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스스로의 두려움과 체념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니체에게 도덕은 이런 순간에 정체를 드러낸다. 남의 삶을 재단하는 잣대로 기능할 때, 도덕은 이미 자기비겁함을 숨기는 가면이 되었다.

    니체가 제안하는 것은 도덕 폐기가 아니다. 도덕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안에 숨은 힘의 역학을 보는 통찰이다. 왜 나는 어떤 행동에는 관대하면서, 다른 행동에는 유난히 분노하는가.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나의 열등감, 공포, 억눌린 욕망이 섞여 있지 않은가. 이 질문을 견디며 통과할 때에만, 우리는 진짜로 나에게 필요한 윤리를 새로 쓸 수 있다. 타인이 준 규범을 그대로 따르는 삶에서, 나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삶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 자체가 니체가 말한 의지의 연습이다.


    의지는 욕망이 아니라, 나를 키우려는 힘이다

    대부분 사람은 의지를 욕망의 다른 이름으로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바로 의지라고 여긴다. 그러나 니체에게 의지는 단순한 소유욕이나 쾌락 추구가 아니다. 그는 의지를 힘이 자신을 키우려 하는 방향성, 즉 더 큰 자신이 되려는 성향으로 본다. 이 힘이 있을 때 인간은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끼고, 없을 때 깊은 권태와 허무에 빠진다고 보았다.

    의지가 약해질 때 사람은 두 가지 극단 중 하나로 기울기 쉽다. 하나는 무기력이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타인의 결정에 몸을 실으며 책임에서 멀어지는 삶이다. 다른 하나는 공격성이다. 스스로를 키울 힘이 사라질 때, 남을 깎아내리며 상대의 힘을 줄이는 방식으로 위안을 찾으려 한다. 니체는 이 두 태도 모두 의지의 병든 모습이라고 본다. 내 힘을 내 삶에 쓰는 대신, 도망가거나 남을 찌르는 데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건강한 의지는 방향이 다르다. 이 힘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는 동시에, 나를 넘어서 더 넓은 생명으로 확장된다. 스스로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도전하며, 과거의 나보다 더 넓고 깊은 존재가 되려 한다. 이때 의지는 타인에게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심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살아보려는 성실함에 가깝다. 그러므로 내 의지대로 산다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최대한 충실하게 키워보겠다는 다짐과 맞닿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니체가 반복해서 짚는 것은 한 가지다. 나는 지금 내 힘을 나를 키우는 데 쓰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축소하고 남을 재단하는 데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이 당신의 일과 인간관계, 사랑과 실패를 바라보는 기준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의지는 일시적인 각오가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선택이다.


    군중의 편안함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들

    니체는 군중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서 군중은 단순히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상태를 의미한다. 군중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다수가 택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정답을 확보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대가를 요구한다. 나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조금씩 상실한다는 것이다.

    군중은 우리에게 확실성을 준다. 그러나 그 확실성은 주로 단순한 구호와 편리한 이분법의 형태를 띤다.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분류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숫자와 등급으로 환원한다. 니체에게 이 분류는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풍부함을 잘라내는 칼날이다. 우리는 이 칼날에 익숙해질수록, 예측 불가능하고 풍부한 자신의 가능성을 자꾸만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군중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은 혼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혼자됨은 외롭고, 때로는 두렵다. 나를 대변해 줄 구호와 진영이 사라지고 나면, 내 의견과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 불안정한 지점에서야 비로소 인간이 진짜로 성숙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집단이 나를 대신해 말해 주지 않을 때, 나는 내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의지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용기가 아니다. 일상에서 자잘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먼저 묻는 습관이다. 직업, 연애, 인간관계의 방식뿐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도 포함된다. 이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군중 안에서 길을 잃은 개인이 될 것인지, 자기 삶의 작가가 될 것인지가 갈린다.


    니체가 말하는 자기 초월의 윤리

    니체의 철학은 흔히 기존의 윤리를 부정하는 파괴자의 목소리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궁극적으로 향한 곳은 새로운 윤리의 탄생이다. 그는 인간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넘어가야 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때 자기 초월은 자신을 부정하는 고행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조금씩 넓혀 가는 창조의 과정이다.

    자기 초월을 말할 때 니체는 과거를 지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와 실수, 실패를 포함해 지금까지의 삶 전체를 떠안으라고 요청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있다. 무엇이 있었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 전부를 책임지고 긍정해 보려는 태도다. 이 긍정은 모든 일이 잘 됐다고 자기암시하는 낙관이 아니다. 나는 그때 그렇게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스스로를 키우겠다는 결심이다.

    이런 태도에서 나오는 삶의 방식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남을 바꾸려는 욕망에 매달리기보다, 나 자신의 시선과 해석, 반응을 바꾸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불평하는 대신, 이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성장의 가능성을 찾는다. 니체에게 자기 초월은 고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도 자신을 더 깊고 넓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결국 니체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한 가지다. 너는 너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남이 만들어 준 인생 시나리오를 적당히 따라가며 살아도 무난한 시대에, 이 질문은 도리어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는 말은, 남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기보다, 이제는 최소한 내 삶을 남 탓으로만 돌리지 않겠다는 책임의 수락에 가깝다.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결심을 가능하게 하는 질문들

    니체의 생각을 오늘의 삶에 가져오는 일은, 복잡한 철학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해 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제 위험인가, 타인의 평가인가. 내가 비난하는 대상은 정말로 잘못된 존재인가, 아니면 내가 닮고 싶지만 두려워하는 모습인가.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편안함이 유지되는가, 나인가, 주변인가.

    이 질문들을 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된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온 많은 것들이 사실은 선택 가능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각의 여지가 생길 때마다, 의지는 조용히 힘을 되찾는다. 한 번의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각성들이 모여 내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 놓는다.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불안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때로는 군중의 의견에 기대고 싶어진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돌아오고자 하는 기준이 나에게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니체가 보여 주는 길은 외로운 길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길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 삶을 누구의 책임으로 남겨둘 것인가. 시대와 부모, 사회와 운명의 탓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내 이름으로 떠안겠는가. 이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니체의 사유는 조용히 속삭인다. 이제, 네 의지를 네 삶의 중심으로 다시 데려올 시간이라고.


    핵심 메시지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미 새겨진 타인의 명령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니체가 말하는 의지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더 넓고 깊게 키우려는 생명의 힘이다.
    군중의 안락함을 벗어나 자기 초월의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삶을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자유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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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며 점점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잊고 지낸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도덕과 성공, 정상성에 대한 통념을 의심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니체의 사유는 날카롭지만 해방감을 주는 새로운 시야를 선물한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을 바꾸는 질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결심을 구체적인 삶의 연습으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