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힘든 하루를 버텨냈지만 내일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때, 우리는 그동안 자신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 앞에 서 있게 된다.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이 같은 질문은 빠르게 휘발되는 위로보다 오래 남아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기준, 습관처럼 반복해 온 판단, 무심코 따라온 생각의 방향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우리가 놓쳤던 ‘삶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 철학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도구이자 사유의 기술이 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왔지만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린 현실 속에서, 철학은 잠시 멈춰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넨다.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고전 철학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30인의 철학자를 통해, 불안·관계·고난·성장·의미라는 삶의 본질적 주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철학 에세이이자 삶의 안내서다. 인문교양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인문학 강연자인 임재성은, 철학을 추상적 사유가 아닌 삶을 회복시키는 실천적 도구로 제시하면서, 이 책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 작가정보
임재성
안정적인 대기업에 몸담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던 질문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늘 묻는 일이 있었다. 잘 살고 있는지, 이 방향이 맞는지, 지금의 나는 괜찮은지를 자신에게 되묻는 과정에서 작가와 강연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근래에는 철학자의 삶과 사유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철학을 지식이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이며 지금의 삶에서 마주한 질문과 맞닿아 있는 철학자를 찾아 그 사유를 현실의 문제와 연결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렇게 길어 올린 사유를 다시 독자의 삶으로 건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몽테뉴, 사유의 힘》,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등 30여 권이 있다.
또한 ‘생각을 가치로 창조하는 인문 브랜딩 콘퍼런스’를 통해 AI 시대에 인문적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방법을 전한다. 책 쓰기의 실전 노하우부터 경험과 배움을 콘텐츠로 확장하는 과정을 담아, 생각을 삶의 가치로 연결하는 적용형 강좌를 진행 중이다.
■ 목차
Prologue │ 괜찮냐고, 철학은 지금도 묻고 있다
1장. 마음이 흔들릴 때, 철학이 말해준 것
흔들림 속에서도 평화를 지키고 싶다면 │ 아우렐리우스
혼돈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 세네카
내 뜻대로 삶이 풀리지 않는다면 │ 에픽테토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면 │ 몽테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정을 찾으려면 │ 스피노자
욕망을 다스리며 평온을 얻고 싶다면 │ 에피쿠로스
2장. 삶의 이유를 묻는 순간, 철학이 들려준 답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 빅터 프랭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알고 싶다면 │ 솔로몬
더 깊은 사랑을 하고 싶다면 │ 에리히 프롬
나를 더 깊이 성찰하고 싶다면 │ 소크라테스
행복한 삶에 대해 알고 싶다면 │ 아리스토텔레스
나이 듦이 아쉽고 속상하다면 │ 키케로
3장. 고난 앞에 선 나에게, 철학이 건넨 위로
고난을 극복할 지혜를 만나고 싶다면 │ 니체
우울로 인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면 │ 키르케고르
공허함으로 삶이 멈추었다면 │ 하이데거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싶다면 │ 쇼펜하우어
선택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 것 같다면 │ 사르트르
마음의 방황을 멈추고 싶다면 │ 아우구스티누스
4장.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철학이 알려준 관계의 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 라로슈푸코
말이 닿지 않는 마음까지 전하고 싶다면 │ 비트겐슈타인
혼란한 시대를 이기는 리더가 되려면 │ 한비자
지금, 관계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 그라시안
깊이 있는 소통을 원한다면 │ 야스퍼스
5장.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을 때, 철학이 보여준 길
시대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 아렌트
내 생각의 뿌리를 지키려면 │ 데카르트
현상 너머의 진실을 보고 싶다면 │ 플라톤
나만의 판단을 가지고 싶다면 │ 칸트
한 분야의 전문가로 비상하려면 │ 괴테
책을 통해 더 나은 나로 거듭나려면 │ 정약용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성장하고 싶다면 │ 파스칼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기준, 습관처럼 반복해 온 판단, 무심코 따라온 생각의 방향에 작은 균열을 낸다. 철학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도구이자 사유의 기술이 된다.
일상이라는 거대한 물음표
철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히는 질문의 다른 이름이다. 퇴근길에 문득 밀려오는 공허함, 잘 지내냐는 인사 뒤에 숨겨둔 피로, 선택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움은 모두 조용한 질문의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괜찮냐는 말이 형식적인 안부인지, 아니면 내 삶을 다시 쥐어보라는 요청인지 구별되는 순간, 철학은 더 이상 책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철학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푸념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버리는 힘을 가진다.
일상은 늘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균열과 충돌로 가득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간격,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혼자가 편하다는 이중적 욕구, 안정된 삶을 바라면서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충동. 이러한 모순을 외면한 채 버티기만 하면 삶은 점점 납작해진다. 철학은 이 모순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모순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라고, 한 번 더 묻는다. 괜찮냐는 말 속에, 사실은 괜찮지 않다는 진심이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질문은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든다.
철학의 질문은 왜 자꾸 불편한가
철학은 대답보다 질문을 사랑한다. 그런데 질문은 언제나 약간 불편하다. “괜찮다”고 말하며 버텨온 사람일수록 “정말 괜찮아?”라는 두 번째 물음은 뼈를 울린다. 질문은 우리가 세워놓은 방어막, “원래 다 그런 거지”, “다들 이렇게 사니까”라는 말들 사이로 파고들어 온다. 그래서 철학은 종종 지나치게 예민한 시선처럼 느껴진다. 질문에 귀 기울이는 순간, 익숙한 삶의 설명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끝까지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다 찾아온 실패, 관계의 균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는 우리가 미뤄두었던 질문을 다시 부른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나한테 맞는 걸까”, “성공이라는 말, 도대체 누가 정한 기준일까” 같은 물음은 아무리 밀어내도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철학적 사유는 이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복 속에 “진짜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고 본다.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용기는, 생각보다 강력한 치유의 시작이 된다.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진 진짜 표정
“요즘 어때, 잘 지내지”라는 인사는 대부분 “응, 잘 지내”라는 짧은 대답으로 끝난다. 그 몇 글자 안에 버티는 마음, 포기한 꿈, 타협한 선택이 함께 눌려 들어간다. 진짜 심정은 밥을 먹다 갑자기 숟가락이 무거워지는 순간, 아무도 없는 곳에서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순간에 슬며시 얼굴을 드러낸다. 철학은 바로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말로는 괜찮다고 반복하면서도, 몸과 표정과 하루의 리듬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철학은 조용히 되묻는다. “네가 믿고 있는 괜찮음의 기준은 누구의 것이냐”고.
괜찮다는 말은 종종 책임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조직을 위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말. 이때 철학은 그 책임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책임을 지는 나 자신도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나의 한계, 감당할 수 있는 무게, 포기해도 되는 것들의 목록을 점검하지 않으면, 책임감은 어느새 자기파괴로 변한다. “그래도 잘 견디고 있다”는 자부심이 “조금 내려놓아도 된다”는 자기 연민과 만나야 비로소 건강한 삶으로 이어진다. 철학은 이 만남을 위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한다.
나는 왜 나답게 살지 못하는가
많은 사람이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럼 나다운 게 뭔데”라는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타인이 정해준 성실함, 회사가 요구하는 유능함, 사회가 칭찬하는 성공의 모습은 선명하다. 반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는 희미하다. 철학이 다시 꺼내 드는 물음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무엇을 포기했고, 대신 무엇을 손에 쥐었는가. 그 선택은 정말 내 것이었는가, 아니면 선택하라는 말조차 듣지 못한 채 밀려온 결과였는가.
철학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는 비법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작은 자각을 선물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 퇴근길에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인지, 일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인지, 이런 세밀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나다운 삶”의 단서를 찾게 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거창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나를 지치게 만드는 기준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준을 구분하는 일에 더 가깝다. 철학은 이 구분을 위해 우리가 미루어둔 질문들을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다.
의심은 냉소가 아니라 희망이다
질문을 자주 던지는 사람은 때로 냉소적으로 보인다. “그게 정말 옳은 거야”, “반드시 저렇게 해야 해” 같은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이 말하는 의심은, 세상을 포기하는 냉소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다. 이미 주어진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뜻은, 아직 바꾸고 싶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괜찮냐”는 물음 뒤에 “정말 이렇게 괜찮아도 되는 걸까”라는 두 번째 물음이 따라붙을 때, 그 사람은 사실 자신의 삶을 여전히 믿고 있는 셈이다.
의심은 방향을 잃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향을 찾게 만든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각자 다른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는 깨달음.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했던 삶이, 실은 전혀 다른 지도를 따라가고 있었다는 인식. 철학적 사유는 우리의 속도보다 우리의 방향을 먼저 묻는다. “지금의 선택이 너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솔직해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시간표에만 의존해 살지 않게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일
바쁘다는 말이 일종의 자랑처럼 소비되는 시대에, 멈춰 서서 생각하는 행위는 종종 비생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멈춘 자리에는 늘 누군가의 기준,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이익이 대신 들어온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 틈을 지키려는 시도다. 나의 선택이 정말 나의 것인지 확인해보겠다는 고집이다. 철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지식이 아니라, 이 고집을 포기하지 말라는 작은 용기다.
괜찮냐는 질문에 자동적으로 괜찮다고 답하는 삶에서, 잠시 멈추어 “나는 정말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삶으로 옮겨가는 것. 그 전환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하루의 짧은 사유에서 시작된다. 출근길, 식탁, 잠들기 전의 몇 분, 생각을 끊어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보는 습관. 철학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생기는 변화
철학이 반복해서 묻는 “괜찮냐”는 말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그것은 “이대로도 괜찮고, 달라져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우리는 흔히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변화만을 해답으로 여긴다. 철학은 조금 다른 길을 제안한다. 먼저 지금 이 자리에서 충분히 질문해보라고. 변화는 질문을 견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다고.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는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한 끝에 선택한 변화가 더 오래 지속된다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삶의 속도는 잠시 느려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느려짐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괜찮냐는 물음에 솔직해지는 연습은, 나의 상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제안은 이것이다. 완벽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만은 진실해 보자는 것.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 철학은 언제나 같은 말로 인사를 건넨다. 오늘의 너는, 정말 괜찮냐고.
핵심 메시지
철학의 질문은 일상을 해체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내가 진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되묻게 하는 기회다.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감정과 타인의 기준을 분리해낼 때, 비로소 나다운 삶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질문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용기는, 냉소가 아니라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단단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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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안부 인사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책이 대신 묻는 “정말 괜찮냐”는 질문이 강렬한 울림을 줄 것이다.
철학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독자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버티는 삶에서 이해하는 삶으로, 자동적인 대답에서 진짜 나의 대답으로 건너가고 싶은 이들에게 찬찬하지만 깊이 있는 동반자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