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지은이 :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은이), 김운찬 (옮긴이)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1년 07월



  • 프랜시스 베이컨 필사본이 떠돌 때부터 논란거리였고, 출간 뒤에는 “악마의 사상”이라 비난받으며 교황청 금서로 지정된 책. 하지만 지금은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MIT, 서울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의 필독서이면서 『타임』과 『뉴스위크』가 “세계 100대 도서”로 선정한 책이다.



    군주론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켜야 하는가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교활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경험한 것처럼 우리 시대에 위대한 일을 한 군주들은 신의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고, 교활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충실함에 토대를 둔 군주들을 능가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법으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전자는 사람의 고유한 특성이고 후자는 짐승의 고유한 특성이지만 많은 경우 첫 번째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방식을 의존합니다. 따라서 군주는 짐승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을 모두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 작가들은 암암리에 이런 내용을 군주들에게 교육했습니다. 그들은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과거의 많은 군주가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에게 맡겨졌고, 케이론이 그들을 돌보며 훈련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절반은 짐승이요 절반은 사람인 자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군주가 두 가지 본성을 모두 갖춰야 하며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 한쪽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합니다.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여우는 늑대 앞에서 꼼짝도 못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덫을 알려면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쫓아내려면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사자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중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신의를 약속한 이유가 사라졌을 때, 신의를 지킬 수 없을뿐더러 지켜서도 안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면 이런 권고는 바람직하지 않을 테지만, 사람들은 사악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신도 그들에게 신의를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군주에게는 신의를 지키지 못한 것을 둘러댈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근래의 숱한 예를 제시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평화, 얼마나 많은 약속이 신의 없는 군주들 때문에 헛것이 되고 무효가 되었는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우의 방법을 쓸 줄 알았던 사람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격을 잘 둘러댈 줄 알아야 하며, 능숙한 사기꾼이자 위선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척 단순하며 눈앞의 필요에 복종합니다. 따라서 속이는 사람은 언제나 속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일어난 한 가지 사례에 대해 침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렉산데르 세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며, 언제나 속일 수 있는 대상을 찾아냈습니다. 어떤 일을 그만큼 설득력 있게 단언하거나 강하게 맹세하면서 주장한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남을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그가 세상사의 이런 측면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문인 라틴어 ad votum은 상당히 악의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이다. 고대 로마에서 votum은 신에게 하는 약속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신에게 바치는 엄숙한 약속 덕분에 교황의 속임수가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군주가 앞에서 말씀드린 모든 자질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자질을 가진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습니다. 아니,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자질을 갖추고 유지하는 것은 해로우나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 그러니까 자비롭고 신의가 두텁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면서 또 실제로 그러는 것이 유용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면 당신은 태도를 정반대로 바꿔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주는, 특히 새 군주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모든 기준을 따를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합니다. 나라를 유지하려면 종종 신의와 반대로, 자비로움과 반대로, 인간애와 반대로, 경건함과 반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행운의 변화와 바람의 방향이 명령하는 대로 돌아서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할 수 있다면 선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악으로 들어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군주는 앞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 자질로 가득한 말이 아니라면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를 보고 그의 말을 들으면 참으로 자비롭고, 신의가 두텁고, 정직하고, 경건하게 보이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마지막 자질은 반드시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손보다는 눈으로 판단합니다. 보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당신을 볼 수 있지만, 당신의 실제 모습은 소수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위엄과 함께 있는 다수의 의견에 감히 반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행위, 특히 법정에서 호소할 수 없는 군주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결과를 보고 판단합니다.


    군주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자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일만큼 군주에게 높은 평가를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사례는 스페인 왕인 아라곤의 페란도가 있습니다. 그는 거의 새 군주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약한 왕으로 시작해서 명성과 영광을 얻으며 그리스도인들의 최고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동을 고찰해보면 하나하나가 전부 위대하고 일부는 비범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는 통치 초기에 그라나다를 공격했고, 그때 거둔 위업은 나라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방해받을 걱정 없이 여유롭게 전쟁을 시작했으며, 카스티야 제후들의 주의를 전쟁으로 돌렸으니, 그들은 전쟁과 관련된 문제에 몰두하느라 개혁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명성을 얻었고, 귀족들이 알아채기 전에 그들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교회와 민중의 돈으로 군대를 육성했고, 기나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대의 토대를 세웠으며, 그렇게 조직된 군대는 훗날 그에게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더 위대한 과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항상 종교를 이용해 경건한 잔인함을 지향했습니다. 그는 자기 왕국에서 마라노들을 쫓아내고 약탈했는데, 그보다 비참하고 특이한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똑같은 구실을 내세워 아프리카를 공격했고,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벌였으며,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공격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늘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그 때문에 신민들은 언제나 놀라워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지 못했고, 사태의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한 사건과 다른 사건 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로 연달아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맞서 일을 꾸밀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페란도 2세의 그라나다 공격은 십자군 전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덕분에 교황청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군주는 내부를 통치할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해 보기 드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유용합니다. 밀라노 사람 베르나보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민 생활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낸 사람이 있으면, 그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보상을 하거나 처벌했습니다. 무엇보다 군주는 자기의 모든 행동을 통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라는 명성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주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친구이거나 진정한 적이 될 때, 말하자면 다른 군주에 대항하는 어느 군주를 지지한다고 밝힐 때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 결정은 중립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언제나 유익합니다. 만약 당신의 이웃인 두 강대국이 싸우게 되어 둘 중 하나가 승리하면, 당신은 승리자를 두려워해야 하거나 그렇지 않은 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 중 어떤 경우든, 당신이 누구 편인지 밝히고 당당하게 싸우는 편이 언제나 더 낫습니다. 첫 번째 경우 만약 당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은 승리자의 전리품이 될 것이고, 그 사실은 패배한 자에게 기쁨과 만족감을 줄 것이며, 당신은 보호를 받지도 피난처를 얻지도 못할 것입니다. 승리자는 자기가 역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던 미심쩍은 친구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며, 패배자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자신의 운명을 향해 달려가려 하지 않았던 당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운은 인간사에서 얼마나 강하고, 인간은 어떻게 행운에 저항할 수 있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행운과 하느님이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의 신중함으로 바로잡을 수 없으며 어떤 대비책도 없다는 견해를 지금껏 많은 사람이 가져왔고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일에 땀을 흘릴 필요가 없으며 행운이 지배하도록 놔두어야 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그런 견해는 더 많은 힘을 얻고 있는데, 예상을 뛰어넘은 엄청난 일들을 날마다 보았고 또한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때로는 저도 어느 정도 그들의 견해에 이끌립니다. 그렇지만 행운이 우리 행동의 절반을 결정하더라도, 우리의 자유 의지가 꺼지지 않도록 나머지 절반 정도는 우리 스스로 지배하도록 놔둔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행운을 물살이 거센 강 중에서 하나에 비유하는데, 그런 강들은 분노할 때 들판으로 범람하고, 나무들과 건물들을 무너뜨리며, 이곳에서 흙을 들어내 저곳으로 옮깁니다. 그 앞에서는 모두가 달아나거나 어떤 방식으로도 기세를 저지하지 못해서 결국에는 굴복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평온한 시기에 둑과 제방을 쌓음으로써, 훗날 강물이 불어나더라도 물줄기를 수로로 돌려 흘러가게 하거나 무자비하고 커다란 피해를 보기 않도록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행운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하게 개입할 수 있습니다. 행운은 역량이 자신에게 저항할 만큼 조직되지 않은 곳에서 힘을 과시하며, 자신을 막을 둑과 제방이 준비되지 않은 지점을 알아채고 그곳에 공격을 집중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변화의 중심지이면서 격변을 유발한 이탈리아를 고려해보신다면, 그곳은 어떤 둑도 없고 제방도 없는 벌판이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만약 이탈리아가 독일, 스페인, 프랑스처럼 적절한 역량을 갖추고 대비했다면, 홍수가 났어도 그렇게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예 홍수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행운에 저항하는 것에 대해 제가 말씀드린 일반적인 내용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안티오코스는 아이톨리아인의 요청을 받아 로마인을 쫓아내려고 그리스로 들어갔습니다. 안티오코스는 로마의 우방이었던 아카이아에 사절을 보내서 중립을 지키라고 촉구했으며, 로마도 자기들을 위해 무기를 들라고 아카이아를 설득했습니다. 이 문제는 아카이아인의 평의회에서 논의되었는데, 거기에서 안티오코스의 사절이 중립을 지키도록 그들을 설득하자 로마 사절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지만, 그보다 당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명예를 얻지도 못하며 결국 승리자의 전리품이 될 것입니다." 또한 친구가 아닌 자는 언제나 당신들에게 중립을 요구할 것이며, 친구는 무기를 들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단호하지 못한 군주는 눈앞의 위험을 피하려고 중립의 길로 가지만 그들 대부분은 결국 파멸합니다.

    군주가 강력하게 한쪽을 지지한다고 밝힐 때 만약 당신이 지지하는 자가 승리한다면, 비록 그의 세력이 강해져서 당신이 그의 재량에 맡겨지더라도 그는 당신에게 의무감을 느끼게 되며 이를 토대로 우호 관계가 체결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가 넘도록 배은망덕하게 행동하면서 당신을 억압할 만큼 파렴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승리자가 정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결정적인 승리는 없습니다. 당신이 지지하는 자가 패하더라도 그는 당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가능한 한 당신을 도울 것이며, 당신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행운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두 번째의 경우, 즉 당신이 승리자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군주들이 서로 싸울 때, 승리자를 지지하는 일은 훨씬 더 신중한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한쪽을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승리자가 현명했다면 상대방을 그대로 놔두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도움 없이는 승리를 거둘 수 없었기 때문에, 승리자의 운명은 당신의 재량에 맡겨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군주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군주와 동맹을 맺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필요에 따라 강요된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하더라도 그의 포로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자신이 다른 군주의 재량에 맡겨지는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베네치아인들은 밀라노 공작을 공격하려고 프랑스와 손을 잡았는데, 그들은 동맹을 맺지 않고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 동맹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교황과 스페인이 군대를 이끌고 롬바르디아를 공격하러 갔을 때 피렌체인들이 맞닥뜨린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군주는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로 전쟁에 개입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도 자기들이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의심스러운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하나의 불편을 피하려고 노력할 때 다른 불편과 전혀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만물의 이치입니다. 하지만 신중함은 불편한 것들의 특성을 알고, 덜 나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더 구체적인 경우로 좁혀서 본다면, 군주가 성격이나 자질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도 오늘 행복했다가 이튿날 파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앞에서 오랫동안 논의했던 이유로 생겨났다고, 즉 전적으로 행운에 의존하는 군주는 행운이 바뀌면 몰락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시대의 상황과 일치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앞에 놓인 목적, 말하자면 영광과 부로 인도하는 일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조심스럽게, 누구는 충동적으로, 누구는 격렬하게, 누구는 교묘하게, 누구는 참을성 있게, 또 누구는 그와 반대로 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조심스럽게 행동한 두 사람 중 한 명은 자신의 계획을 달성하고, 다른 한 명은 그러지 못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사람과 충동적인 사람이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똑같이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과 어울리거나 그러지 않은 시대 상황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 다르게 활동하면서도 동일한 결과에 도달하거나, 두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활동했지만 한 사람은 목적을 이루고 한 사람은 그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행복 역시 그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는데, 시대와 상황이 그의 행동 방식에 어울리게 돌아간다면 그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시간과 상황이 달라졌을 때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추는 법을 알 만큼 신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본성이 이끄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한길을 걸으면서 계속 잘되었다면 그 길에서 떠나도록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심스러운 사람은 충동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때가 와도 그렇게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몰락합니다. 만약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본성이 변한다면 행운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모든 일을 충동적으로 추진했는데, 그런 방식이 시대의 상황과 어울렸기 때문에 언제나 행복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조반니 벤티볼리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볼로냐를 상대로 추진한 첫 번째 원정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베네치아인들은 그 일에 반대했고, 스페인 왕도 마찬가지였으며, 프랑스와도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난폭하고 충동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스페인과 베네치아를 멈춰 세우고 꼼짝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네치아는 두려워했고 스페인은 나폴리 왕국 전체를 장악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터라 달리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베네치아의 힘을 빼려는 목적을 가지고 교황과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 했던 프랑스 왕은 교황이 움직이자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지 않고는 교황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율리우스 2세는 인간적으로 신중한 교황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을 법한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황이라면 모든 일이 확실하게 정리된 다음 로마를 떠나려고 기다렸을 테지만, 만약 그가 그렇게 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왕은 수많은 변명을 했을 것이고, 다른 자들은 교황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행동이 모두 비슷하고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행동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짧은 생애 덕분에 그는 정반대 상황을 겪지 않았습니다. 만약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 그는 파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본성이 이끄는 방식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