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모호한 느낌들에 세심하게 이름을 붙인 신조어 300여 개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박학한 언어 지식과 섬세한 감각으로 만든 새로운 단어의 목록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껴온 감정의 모음이다. 그야말로 방대하고 경이롭고 시적이다.
저자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신조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한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며, 그것을 어떻게든 표현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때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긴 세월 동안 만들어진 이 책의 에세이는, 마치 시가 그러하듯, 한 편 한 편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길을 걷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이부자리에서 잠을 청하다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 이 책을 펼쳐보자.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는 이 책은 ‘슬픔’의 원래 의미를 회복하고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한다. 지금껏 보지 못한 섬세한 감정들과 언어에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나보자.
■ 저자 존 케닉
저자 존 케닉은 영상 편집자, 성우,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영상 감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그는 2009년 개인 블로그 dictionaryofobscuresorrows.com에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dictionary of obscure sorrow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의 박학한 언어학적 지식과 마음의 뉘앙스를 잡아내는 섬세하고도 집요한 감각으로 금세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이 프로젝트는 유튜브 채널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로 발전하여 소설가 존 그린과 비욘세에게 상찬을 받는가 하면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한 편의 시이자 사전인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그의 첫 번째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네소타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 역자 황유원
역자 황유원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하얀 사슴 연못’, ‘초자연적 3D 프린팅’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모비 딕’, ‘바닷가에서’, ‘폭풍의 언덕’,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패터슨’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 차례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이 책에 대하여
1. 삶과 꿈 사이에서
2. 내면의 황야
3. 매력의 몽타주
4. 군중 속의 얼굴들
5. 물결을 거스르는 배들
6. 주사위를 던져라
신조어학
고마움에 대하여
조언 한마디
찾아보기
모호한 느낌들에 세심하게 이름을 붙인 신조어 300여 개를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한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며, 그것을 어떻게든 표현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삶과 꿈 사이에서
트럼스프링거(trumspringa)
명사. 사회생활의 길에서 벗어나 숲의 빈터에서 작은 농장을 돌보거나 외딴 환상 산호섬에서 등대를 관리하거나 산에서 양치기가 되어 소박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지만, 실컷 그런 생각만 하다가 다시 도시의 좁은 방으로 천천히 돌아오고 마는 일종의 최면적인 기분 전환에 불과한 열망.
어원: 독일어 Stadtzentrum(도심) + 펜실베이니아 독일어 Rumspringa(깡총깡총 뛰다). ‘Rumspringa는 소문에 들리는 전통으로, 아미시파에 속한 십 대 청소년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헌신할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한동안 현대 문물에 발을 담그는 행위를 뜻한다.
오키올리즘(occhiolism)
명사. 자신의 감각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제한적인지, 자신의 좁은 시야가 얼마나 고정적인지, 자신이 보는 색깔이 얼마나 적은지, 자신이 듣는 소리가 얼마나 적은지, 자신의 뇌가 얼마나 주제넘게 그것의 만화 같은 추론으로 공백을 채우는지에 대한 깨달음. 그저 실재를 힐끗 보는 대신 우선 열쇠 구멍에서 뒤로 물러나서 마침내 문을 열어 실재 전체를 경험하고 싶게 만든다.
어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09년에 현미경에 붙여준 이름인 이탈리아어 occhiolino(작은 눈).
베이모달렌(VEMODALEN): 독창성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두려움
당신은 유일무이하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만큼이나 유일무이한 존재인 다른 사람 수십억 명에게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르고, 세상에 대한 몇몇 새로운 관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삐 손으로 빚고 있는 삶이 결국 전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다들 흩어져서 최첨단의 조각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뭔가 특별한 것, 뭔가 개인적인 것을 포착하려 애쓰며. 하지만 우리가 찍은 스냅 사진들을 모두 모아서 나란히 놓아두면 그 결과는 종종 기괴하다. 그곳에는 똑같은 눈의 클로즈업, 똑같은 창문의 빗방울, 똑같은 사이드미러 속 셀카가 있다. 비행기의 날개 끝, 해변용 의자 위로 쭉 뻗은 두 맨다리, 라테 위에 장미 모양으로 둥글게 장식한 우유. 똑같은 음식 사진들이 찍히고 또 찍힌다. 똑같은 기념물들이 손가락 사이에 들어간다. 똑같은 폭포들. 일몰 뒤에 또 일몰.
우리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우리의 관점들이 아주 말끔히 정렬되어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우리가 똑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래도 당신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찍은 스냅 사진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다른 똑같은 수많은 사진으로 쉽게 교체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또 다른 달이나 타지마할, 에펠탑의 사진을 찍는 일에는 어떤 가치가 남아 있을까? 한 장의 사진은 그저 당신이 어딘가에 다녀왔음을 증명할 일종의 기념품에 불과한 것일까? 당신이 우연히 스스로 조립한 어느 조립식 가구처럼?
다들 이미 들은 농담을 똑같이 되풀이해도 괜찮다. 똑같은 영화를 계속 리메이크해도 괜찮다. 똑같은 관용구를 한 번도 써먹지 않은 것처럼 서로에게 계속 써먹어도 괜찮다. 심지어 당신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을 되돌아볼 때조차도 동굴의 벽에 찍힌 손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서로 구분되지 않게 겹쳐진 수백 개의 손자국을.
장담하건대 당신과 나와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리가 물려받은 흔적을 남겨 놓을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존재했던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결국 우리가 더는 아무 할 말도, 더할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찾지 못한 채 오래전에 다른 이들이 남긴 윤곽만 게으르게 따라간다면 우리는 이곳에 있지도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것 또한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다. 시인이 한때 말했듯, “강렬한 연극은 계속되고, 당신은 한 편의 시를 보태리라.” 그것 말고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당신은 당신의 대사를 읊으라.
어원: 스웨덴어 vemod(부드러운 슬픔, 수심에 잠겨 느끼는 우울함) + Vemdalen(스웨덴의 마을 이름). 이케아(IKEA)는 보통 이런 식으로 스웨덴의 지명을 빌려와서 자신들의 상품명을 짓는다.
내면의 황야
보카시(vaucasy)</P>
명사. 자신이 환경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최대한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행동과 관계를 형성해나감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우연히 맞닥뜨린 어떤 자극에 길들여진, 믿을 만한 강한 쾌감과 회의적인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당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누군가에게 반사적으로 이끌린,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
어원: 프랑스의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 그는 실물과 똑같은 일련의 자동인형인 오토마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그의 걸작 ‘음식을 소화시키는 오리도 있다. 이 오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꽥꽥 울고, 물을 마시고, 약간의 곡식을 소화해서 가짜 배설물을 만들 수 있었다.
리베로시스(liberosis)
명사. 세상일에 신경을 덜 쓰고픈 욕망; 삶을 움켜쥔 손에서 힘을 뺀 채 그것을 느슨하고 유쾌하게 들고 있을 방법, 즉 재빨리 몸을 움직여 삶을 배구공처럼 공중에 계속 띄운 채 신뢰하는 친구들이 자유로이 튀기게 해서 공이 늘 살아 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고픈 욕망.
어원: 이탈리아어 libero(자유롭게 하다). 배구팀에서 리베로(libero)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허락 없이 자유로이 교체할 수 있으며 공이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데 주력하는 포지션이다.
이모독스(emodox)
명사. 주위의 모든 사람과 영원히 조화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 낮잠 시간에 공포를 느끼고,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대화를 비판하고, 댄스 클럽에서 상념에 잠기는 경향이 있다.
어원: emotional(감정의) + dox(예상된 규범에 따르지 않는).
나이트호크(nighthawk)
명사. 한밤중에만 문득 떠오르는 듯한, 때로는 몇 주 동안 잊고 살지만 결국 또다시 어깨에 내려앉아 조용히 둥지를 트는 듯한, 이미 마감을 넘긴 업무,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 닥쳐오는 미래에 대한 되풀이되는 생각.
어원: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한 그림 ‘Nighthawks(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한밤중의 쓸쓸한 작은 모퉁이 식당을 그린 작품이다. 벌목에서, ‘나이트호크는 배의 깃대에 매달려 이리저리 움직이며 조종사의 항해를 돕는 금속 공을 뜻한다.
케이노포비아(KOINOPHOBIA): 평범한 삶을 살고 말았다는 두려움
삶 속에서 직접 살아가는 동안, 삶은 한 편의 서사시 같다. 맹렬하고 보잘것없으며 종잡을 수 없는 서사시. 하지만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거나 그것을 종이에 쓰려고 할 때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왠지 왜소해진 것처럼 보인다. 초라해진 것처럼. 거의 예스러워진 것처럼.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살피며 무언가 흥미롭거나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당신은 평범한 거리에 있는 평범한 집을 본다. 그 집은 당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작아 보인다. 한때 당신에게는 사방에서 다가오는 무모한 꿈과 장애물과 위험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들 또한 작아 보인다. 당신은 거인과 여신과 악당들을 기억하지만, 이제 당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작은 교실과 업무 공간에 모여 보드게임의 토큰처럼 각자 작은 걸음으로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들뿐이다.
주사위를 아무리 많이 던졌어도 결과는 늘 이런 작은 움직임, 여기 아니면 저기가 전부였다. 일을 조금 하라. 약간의 휴식을 취하라. 몇몇 친구를 만들라. 작은 파티를 열라. 살짝 따분함을 느끼라. 살짝 반항하라. 이처럼 토큰이 만들어낸 순간들은 너무나도 많아서, 당신이 확신할 수도 있었던 일은 분명 다른 무언가, 더 큰 무언가가 되어야만 했다. 당신은 그것들을 계속 합산한다. 마치 깜박 잊고 세지 않은 무언가, 트럭 뒤로 떨어져버린 숨겨진 영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당신이 당신의 삶을 그 자체로 경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신은 그것이 획기적인 삶은 아님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어쩌면 문제는, 실은 당신이 처음부터 거기 ‘빠져 있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원하던 삶을 처음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 나머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외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것은 당신이 원하던 세상이 아니었음을 그동안 쭉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세상이 너무 저열하고 평범한 나머지 당신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자 애썼고, 그리하여 그곳 위 어딘가를, 당신이 만든 이 삶을 다른 누구도 내려다볼 수 없는 곳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직 당신만이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매력의 몽타주
미딩(midding)
명사. 무리 근처에 있지만 딱히 거기에 속해 있지는 않은, 모닥불 주위를 맴돌거나 파티장 밖에서 조용히 대화하거나 차 뒷좌석에 앉아서 앞에 앉은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쉬게 하는 데서 오는 고요한 즐거움. 다들 함께 있고 다들 괜찮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한 덕분에 보이지 않는 행복감과 동시에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고,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곳에 있다는 흥분을 느끼게 된다.
어원: 중세 영어 midding(midden, 주거지 근처에 놓인 쓰레기 더미).
플래시오버(flashover)
명사. 겹겹의 반어법으로 지켜온 연약한 회로가 신뢰의 불꽃으로 인해 합선을 일으키면서, 수십 년 동안 세상과 불화하며 쌓아온 정적인 감정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며 대화가 활기를 띠는 순간.
어원: 소방 활동에서, ‘플래시오버는 어느 지역의 모든 가연성 물질이 갑자기 일시에 타오르는 현상을 뜻하다.
맥플라이 효과(the McFly effect)
명사. 자신의 부모가 함께 자라온 사람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현상. 그들을 젊은 시절로 되돌려서, 자신을 낳기 전에 몽상가나 악당으로 살던 모습을 언뜻 보게 해준다.
어원: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McFly). 맥플라이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서 십 대인 부모님과 교류한다.
몰레드로(moledro)
명사. 아주 오래전에 아주 먼 곳에 살았을 것임에도 여전히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도보 여행가들이 낯선 장소의 숨겨진 길을 표시하며 남기는 작은 돌무더기 같은 경험의 흔적을 남기는, 절대 만나지 못할 작가나 예술가와 하나로 이어진 느낌.
어원: 포르투갈어 moledro(이정표; 돌무덤), 포르투갈 전설에 따르면, 당신이 돌무덤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베개 아래에 두면 아침에 마법에 걸린 병정이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돌멩이로 변해서 돌무덤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접점의 순간(MOMENT OF TANGENCY):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아무도 모를 스치듯 짧은 접촉
당신과 나는 예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우리의 행로는 온라인이나 길거리에서 한두 번 교차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공항 게이트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당신에게 전화를 잘못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근처에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확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연히 서로를 놓치고 만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은 넓으니까.
우리의 나날은 수없이 많은 작은 이유들로 인해 절대 실현되지 않는 이런 우연한 만남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의 거리는 우연히 자신의 차례를 잊고 만, 시간과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임의의 낯선 이들로 붐비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러 해 동안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세상 어딘가에서 조화를 이루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만일 두 선이 정말로 평행하다면, 그것은 그 둘이 실제로 만날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대체 현실의 접점에서 방향을 홱 틀고 있을 아까운 기회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기란 쉽지 않다. 당신과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이 저 바깥 어딘가, 당신이 초대받지 않은 어느 파티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의 동업자가 세상을 바꿀 만한 아이디어를 반쯤 깔고 앉은 채 절대 나타나지 않을 당신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군중 속의 어느 낯선 사람을 힐끗 보고는 상황이 달랐더라면 함께할 수도 있었을 삶을 상상해보지 않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길을 계속 가면서,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를 일의 메아리만을 남기는 가슴 아픈 어긋남을 느끼며 말이다.
당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바로 당신만을 위해 일어났어야 했는지 당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운명이 얼마나 쉽게 당신의 방향을 틀어서 영혼의 동반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어느 낯선 사람을 만나게 할 수도 있었을지 당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통근 열차에 앉아서 자신만의 문제에 골몰해 있는 동안, 당신은 자신이 사랑했을 수도 있는, 여러 해를 함께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함께 가정을 꾸렸을 수도 있는 사람과 얼마나 가까이 앉아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당신은 방 건너편에 있는 바로 그 얼굴을 보고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말하며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려 애썼을 것이다. 마치 당신들의 행로가 결국 교차하리라는 것을 그동안 쭉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늘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당신이 만난 바로 그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많은 장애물이 끼어들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기적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그것은 개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모든 게 그저 우연의 일치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어원: 기하학에서, ‘tangent(탄젠트)는 한 직선이 한 곡선을 ‘간신히 스치는 접점을 뜻한다. 그 직선과 곡선은 접점에서 정확히 같은 각도를 공유하고는 다시 분리돼서 영원히 제 갈 길을 간다.
군중 속의 얼굴들
산더(SONDER):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
당신은 주요 인물이다. 주인공. 당신 자신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 중심에 자리한 스타. 당신은 조연들에 둘러싸여 있다. 바로 옆 궤도를 돌고 있는 친구들과 가족. 약간 더 떨어진 곳에는 여러 해 동안 연락이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는 지인들의 네트워크가 산재해 있다.
하지만 희미하고 초점이 맞지 않는 배경에는 엑스트라들이 있다. 익명의 행인들. 각자가 당신 자신의 삶만큼이나 생생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당신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살아간다. 자신만의 야망, 우정, 일상, 실수, 걱정, 업적, 물려받은 광기의 축적된 무게를 짊어진 채.
당신의 삶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 그들의 삶도 제자리에서 깜박거린다.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자기들끼리만 아는 농담과 인물들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그 모두는 당신은 절대 보지 못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이야기들과 결합되어 있다. 당신은 그 존재를 절대 알지 못할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에서 당신은 딱 한 번만 등장할지도 모른다. 배경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엑스트라로.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흐릿한 형체로. 황혼 녘의 불 켜진 창문으로.
어원: 프랑스어 sonder(깊이를 재다). ‘wonder(놀라움, 놀라다)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명사나 동사로 사용할 수 있다.
헤일바운드(hailbound)
형용사. 시골길, 산길, 외딴 바다에서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이상하게도 꼭 손을 흔들게 되는.
어원: hail(맞이하다) + bound(의무가 있는).
락하티드니스(lockheartedness)
명사. 사람들이 멈춘 엘리베이터, 폭풍 대피소, 기차의 침대칸 등 어떤 장소에 갇혔을 때 서로 동지애를 느끼는 분위기. 달리 갈 곳이 없고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남들과 함께 있게 된다.
어원: locked up(갇힌) + fullheartedness (열정에 넘침).
케너웨이(kenaway)
명사. 다른 사람들이 남들이 없는 데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열망; 자신의 삶과 비교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자신이 기이할 만큼 평범한지 평범할 만큼 기이한지 알 수 있게끔 또 다른 인간 존재의 어지럽고 고독한, 양치를 하면서 제자리에서 몸을 흔들고, 신발을 어디 둘지에 대한 문제로 말다툼하고, 홀로 통근하는 와중에 자신의 문제를 지껄이는 날것의 삶을 열렬히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어원: ken(지식의 범위) + keep-away(둘이서 서로 주고받는 공을 다른 한 명이 사이에서 가로채는 놀이).
루디오시스(ludiosis)
명사. 누군가가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을 때 설득력 있는 설명을 떠올리지 못하고 진행 상황에 따라 그저 되는 대로 꾸며내고 있다는 느낌.
어원: 즉흥극의 예술을 낳은 고대 로마의 Ludi Osci(오스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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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