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지닌 영향력을 생각해본 적 있는지? 똑같은 소재와 디자인이지만 색깔만 달라져도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전하는 옷이 있다. 비슷한 상품군을 진열해놓은 진열대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이템에는 언제나 독특한 컬러가 있다. 색은 일종의 언어이고 가장 압도적인 디자인 요소다.
여기 색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컬러의 말』이 컬러의 이름과 그에 얽힌 역사에 주목했고 『컬러의 힘』이 컬러가 지닌 심리적 역할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면, 이 책 『컬러의 일』은 본격적으로 컬러가 과거와 현재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서술하는 책이다. 각 색마다 강렬한 이미지로 해당 색에 대한 이해를 한결 돋우는 책으로 색에 대한 100가지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색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를 대변한다. 과거의 피치Peach와 현재의 피치, 그리고 앞으로 이 색을 사용할 여러분에게 피치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컨설턴트인 저자는 컬러 전문가로서 색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새 색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숨어 있는 컬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 저자 로라 페리먼
컬러와 재료를 전문으로 다루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컨설턴트다. 시시각각 변하는 컬러 트렌드에 대한 섬세한 통찰과 정교한 예측을 바탕으로 작은 공방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컬러 아이덴티티를 전략적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재료 위에 컬러가 ‘충돌’하는 순간, 그 표면의 아름다움에 특별한 매혹을 느끼는 그는 다양한 산업에서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라이프스타일부터 모빌리티 디자인, 디지털 영역까지 폭넓은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교에서 텍스타일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염료염색학회(The Society of Dyers and Colourist)가 수여하는 세계적 권위의 컬러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미래 지향적 디자인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 컬러오브세잉(Color of Saying)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자와 디자이너가 실무에서 컬러 탐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기관 더컬러인디자인어워드(The Colour in Design Award)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3M, 해비타트, 파나소닉,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에서 브랜드 컨설팅을 해왔고, 런던예술대학교, 첼시예술디자인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역자 서미나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교육계에 오래 몸담았다.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바른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차례
서문
색과 빛
가산혼합과 감산혼합: 물리적 색과 비물리적 색
색과 시지각
색채 이론
색상환
색의 비율
색과 재료
색채 심리학
색채 심리학에서 중요한 인물들
색체계
주요 용어
색 프로필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분홍&보라
흰색&페일
회색&검정
갈색
색채는 그 자체로 강력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사랑한 레드 오커부터 자외선 차단 효과로 주목받는 멜라닌까지, 컬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활용 방법을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컬러의 일
색과 빛
우리가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물체가 형태나 소재에 따라 빛의 파장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체가 반사하는 파장이 우리 눈에 들어오면 광수용체는 시신경을 통해 뇌에 신호를 전달하고 뇌는 이 신호를 색깔로 인식한다. 인간은 삼색형 색각자 (trichromat)로, 우리의 눈은 각각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파장을 감지하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가지고 있으며 덕분에 수많은 색을 구별할 수 있다.
빛의 스펙트럼은 1666년 아이작 뉴턴이 처음으로 발견했다. 뉴턴은 프리즘에 백색광 한 줄기를 통과시켜 벽에 무지개를 비춘 뒤 이 스펙트럼을 관찰 가능한 일곱 개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 결과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이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의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파장이 무엇인지 밝혀냈으며, 이것은 나노미터(nm) 단위로 측정된다.
또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더 광범위한 전자기 스펙트럼의 일부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적외선과 자외선이 시작되는 가시광선의 양 끝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색의 스펙트럼에서 가장자리에 있는 빨간색과 보라색을 더 인지하기 어려워하고 중간에 있는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계열을 더 쉽게 본다. 한쪽 끝에 있는 보라색(380~450나노미터)은 파장이 가장 짧으므로 에너지와 진동수가 가장 높다. 다른 한쪽에 있는 빨간색(620~750나노미터)은 파장이 가장 길고 따라서 에너지와 진동수가 가장 낮다.
색과 빛은 (···)
서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일곱 가지로 구분된 색의 영역은 각각 다른 색으로 서서히 변하는 양상을 띤다. 이를테면 초록색의 범위는 풀색이 도는 노란색에서 시작해 파란색 영역에 들어가기 직전인 청록색까지 이어진다. 반짝이는 에메랄드색이 정확히 어디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초록색의 끝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마주친 색을 재현해내는 작업, 또는 마음의 눈으로만 보았거나 없었던 색을 창조하기 위해 완벽한 색을 찾는 작업은 색이 선사하는 큰 매력이다. 색은 뜻밖의 행운과 집중적 연구 사이에서 늘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왔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이롭게 해주었다.
색과 재료
보석을 재료로 수많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안료를 만들었던 때부터,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서며 예술이나 디자인에서의 재료를 다루는 지식이 풍부해지기까지, 색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는 재료에 있다.
최초의 안료는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 20세기 전까지는 재료를 씻고 솎고 녹이고 찧고 갈고 난 뒤에 백악(석회질 화석을 주성분으로 하는 흰색 석회암·옮긴이), 기름, 동물성 지방, 달걀과 섞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짙은 노란색 계열은 식물에서, 스칼릿(Scarlet)같은 빨간색 계열은 곤충에서, 구하기 힘든 보라색 계열은 바다에서 나는 고등류에서 추출했다. 색은 원료가 나거나 생산 기술이 있는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색을 창조할 때는 과학, 기술, 예술, 디자인이 동등한 역할을 맡아 서로 돕고 협력했다. 현대의 염료 산업이 생겨나고 발전한 것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색을 두루 표현하고자 탐구했던 반 다이크(Van Dyke)는 흙으로 안료를 만들었고, 이브 클랭(Yves Klein)은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파란색을 만들기 위해 화학의 도움을 받았다.
*원재료(Raw Material)
원재료의 고유한 색이 사랑받아 분위기나 색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맥스 램(Max Lamb),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같은 많은 현대 예술가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표현을 위해 원재료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그들은 재료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두거나 표면에만 열과 화학약품 처리를 하고 작업한 흔적을 남겨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매개물로서의 빛
일렁이는 빛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기 마련이다. 얀 반에이크(Jan Van Eyck) 같은 예술가들은 보석과 장신구를 안료 혼합에 사용함으로써 빛을 물감의 형태로 재현하는 데 대가였다. 컨템퍼러리 예술가들은 안료 대신 색이 있는 빛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빛의 예술로 밤 과 낮이 바뀌는 모습을 표현했다. 3D 시각화와 디지털 예술 같은 새로운 분야는 색을 바라보는 우리 인식을 다시 한번 바꾸고 있다.
*과학적인 색
현대 과학은 색을 물질 및 효율성과 연결하여 심미적인 요소 이상으로 발전시켰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 같은 자연적 안료의 특성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이용할 수도 있는 반면, 가장 검은 나노튜브(nanotube)는 탐지조차 쉽지 않다. 한편 색을 물체 표면에 직접 투입하는 바이오 가공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폐기물을 줄이기도 한다.
*폐기물에서 얻은 색(Waste Colour)
쓰레기 매립을 줄이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산업 및 농업 폐기물, 소비자가 쓰고 버린 쓰레기에서 얻은 색을 활용하는데, 이는 독특하고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반적인 예시로는 농업 폐기물에서 얻은 식물성 염료, 산업 폐기물에서 추출한 금속 빛이 도는 유약이 있다.
색채 심리학
색채 심리학은 비교적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우리에게 색이 미치는 영향이 심미적인 차원을 뛰어넘는다고 상정한다. 심리학자 앤절라 라이트(Angela Wright)는 색이 우리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빛의 파장은 눈으로 들어와 뇌로 전달되고 내분비샘을 관장하는 시상하부에 도달해 호르몬을 생산하고 분비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각각의 색(파장)은 뇌의 특정 부위에 초점을 맞추기에 그에 맞는 심리학적 반응을 환기하고 생리학적으로도 변화를 일으킨다."
곧 황혼이 졌다. 귤 밭과 길게 펼쳐진 멜론 밭 위로
포도색의 황혼, 보라색 황혼이 덮쳤다.
짙붉게 난도질된 꼭 쥐어짠 포도색의 태양에,
밭은 사랑과 스페인의 신비로 가득한 색을 띤다.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각각의 색은 우리에게 감각적, 감정적, 육체적으로 다른 영향을 끼친다. 리액티브 레드 같은 색을 보면 우리 뇌는 위험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므로 심장박동 수를 높이는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반면 베이커밀러 핑크(Baker-Miller Pink) 같은 색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얻기 위해 특별히 개발됐다. ‘감각적 연상(sensorial association)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특정한 색에 느끼는 정신적 연결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때의 색은 개인에게 사적인 의미가 있는 색일 수도 있고, 한 집단에서 어떤 브랜드나 역사적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색일 수도 있다. 색에 관한 인식은 문화적인 영향을 받으므로 종교, 전통, 심지어 정치적 선전과 연관된 의미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기도 하다.
어떤 색은 특정 문화권에서 상징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흰색은 순결과 죽음을 상징하고, 멕시코에서 마리골드 옐로(Marigold Yellow, 금잔화색)는 부활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더 광범위한 문화권의 일부로서 자기 자신을 보는 시대적 정신의 영향을 받아 의미를 부여한다. 여러 맥락에서 사용된 색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마찬가지다. 일생 생활에서 우리가 노출되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영향력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
색 프로필
빨강(Red)
인류는 빨강과 긴 역사를 함께해왔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안료인 빨강은 인류가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동굴 벽에 그릴 때부터 검정, 하양과 함께 우리의 팔레트에 올라온 진정한 첫 번째 색이었다. 그 이래 줄곧 빨강은 우리에게 중요한 색으로 남아 있으며, 그 의미는 너무나도 많아 이제는 상투적일 정도다. 피, 열정, 위험, 분노, 사랑, 신성, 전쟁··· 말하자면 끝이 없다.
색상환에서 평온한 초록의 정반대에 있는 빨강은 적극적인 색이다. 눈길을 끌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희미한 다른 색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보는 이의 심장박동 수까지 높일 것 같다. 빨간색을 입은 운동선수와 스포츠 팀이 유리하다는 가설도 있다. 2013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색은 높은 심장 박동 수, 힘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자연계에서 초록이 지배적으로 많다 보니, 빨강은 잠재적 포식자에게 독소나 불쾌한 맛을 경고하는 역할을 하거나 또는 짝짓기 상대나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유인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빨강이 우리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하다.
빨강이라 하면 화려한 색이 바로 떠오를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강의 섬세한 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를테면 로즈우드(rosewood) 나무껍질에서 볼 수 있는, 흙바닥 점토와 같은 톤의 짙고 어스름한 색 말이다. 버찌 색(Cherry)과 흙빛이 도는 빨간색 계열은 고대부터 여러 아시아 문화권에서 상징적인 의
미를 품어 왔다. 일본에서 짙은 빨강은 꼭두서니 등의 몇 가지 식물과 진사(Cinnabar)를 포함한 몇 가지 광물로 만들었는데, 진사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불타는 생명력과 관련된 깊고 신령스러운 의미를 지닌다. 빨간색 안료는 옷감과 화장품에 쓰였으며 오래전부터 도기류와 장신구의 윤을 내는 데 쓰였다. 오늘날에도 일본 신사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진사로 붉은색을 낸 도리(鳥居)다.
그리스도교 시대에 빨강은 예수의 피를 상징했다. 13세기부터 가톨릭교회의 추기경들은 자신의 신성한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붉은 모자를 썼다. 하지만 종교개혁 때 빨강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죄의 색, 특히 성욕의 죄를 나타내는 색으로 인지되면서 매춘과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밝은 빨간색 계열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황제, 왕족들이 즐겨 입은 옷에서도, 현대에 들어와서는 유명 인사들이 걷는 레드카펫과 그들이 신고 있는 매혹적인 루부탱 신발의 밑창에서도 빨강이 보인다. 고풍스러운 흙빛이 도는 빨강 역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안정적이며 견고한 특징을 지닌 필수적인 톤으로, 오늘날의 팔레트에 균형 잡힌 에너지를 선사한다.
주황(Orange)
에너지가 높은 빨강과 발랄한 노랑 사이에 있는 이차색인 주황은 차가운 느낌이 없는 가장 따듯한 난색으로, 색의 조화와 대비 모두 훌륭하게 균형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감성적인 피치(Peach, 실제 복숭아색과 달리 주황빛이 도는 색 ·옮긴이)부터 활기찬 탄제린(Tangerine, 노란 주황색인 일반 귤색과 달리 붉은 빛이 도는 주황·옮긴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코퍼(Copper, 청동, 구리색 ·옮긴이)까지 주황색은 다양한 현대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16세기 전까지 영어에서는 주황색을 가리키는 이름이 없었다. 다만 중세 영어에서는 지올로레드(Geoluhread, 문자 그대로 노랑-빨강이라는 뜻이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으며, 중세 초기 기록에는 태양, 금잔화, 헤롯 대왕의 머리카락 색이라는 표현이 있다. 수 세기 동안 주황색 염료는 생산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17세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올리언스 노랑 2온스를 재와 섞어서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놓는다. 이 물을 끓이다가 30분 정도 끓으면 쿠쿠미(cuccumi) 가루 1온스를 넣고 막대기로 젓는다." 16세기 초창기 무역업자들이 유럽 국가에 가져온 이국적인 오렌지라는 과일이 소개되고 나서야 주황은 하나의 색으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초창기 오렌지는 먹지 못했기 때문에 약용 세정제, 이목을 끌기 위한 독특한 물건, 심지어 아주 연한 잉크로 사용되기도 했다.
주황은 카드뮴과 크롬 오렌지(Chrome Orange) 같은 안정적인 합성 원료가 발명되고 나서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다. 가시성이 높은 특징 덕분에 현대 사회에서 구조선이나 안전장치에 자주 쓰이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국제 우주 정거장의 우주비행사들이 입는 옷에도 쓰인다.
선명한 주황색에 노출되면 인지력과 주의력이 향상되며 인간의 생체 주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저녁에 채도가 낮은 앰버(Amber)를 보면 멜라토닌 분비가 자극되어 휴식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주황은 색 스펙트럼에서 가장 중요한 보색이다. 주황이 없다면 파랑의 정반대되는 색이 없다는 뜻이다. 인상주의부터 추상미술까지 예술가들은 또렷한 주황으로 색을 조합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했다. 컨템퍼러리 영화 제작자들은 주황이나 피치 필터를 쓴 장면으로 관객의 감성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자주 사용되는 파랑과 주황의 대비 효과는 아바타부터 덩케르크까지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노랑(Yellow)
노란색 계열에는 눈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안료의 차원을 넘어 촉감과 감각까지 만족시키는 매력적인 색조가 많다. 노랑은 갓 자른 신선한 레몬, 강황의 풍미와 따뜻함, 달걀을 깨면 흘러나오는 노른자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만지고 맛봄으로써 다양한 노랑을 더 깊게 경험한다. 순 노랑은 일차색으로, CMYK 인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톡 쏘는 레몬 옐로와 쨍한 팩토리 옐로부터 부드러운 버터색까지 다양하며 갈색과 초록색, 주황색 모두 노랑의 톤에 영향을 준다. 밝은 노랑은 다양한 곳에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노른자색과 탁한 겨자색은 부담 없이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
20세기 전까지 안정적인 노란 안료는 없었다. 납, 비소(석황), 나무 수액 뿐 아니라 화학적으로 만든 크롬조차도 햇빛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했으며, 대부분의 안료는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그러다 19세기 말 합성 알리자린과 아조(Azo) 안료가 발명되면서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고충이 사라졌다. 그 이후 시트러스색이 감도는 한자 옐로(Hansa Yellow)와 태양 빛 코발트 옐로(Cobald Yellow) 같은 안정적이고 깨끗한 투명 염료와 안료가 수없이 생겨났다.
현대 사회에서 노랑은 이모티콘, 포스트잇, 어린이 통학 버스의 색이며 위험이나 경고를 알리는 신호에 사용되기도 한다. 산업화된 색이므로 밝은 노랑을 과하게 배치하면 부담스럽고 조잡하게 보이기 쉽지만, 생동감 있고 이목을 끄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연구에 따르면 노랑은 고무적인 색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활기를 돋우며 기억력과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장점 덕분에 노랑은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천연 식물성 염료도 다시 떠오르는 추세다. 수천 년간 전해져 내려오는 천연 염료와 염색법은 폐기물에 지속 가능한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한다. 부드럽고 색이 바랜 노란 계열은 의식 있는 소비주의를 가리키기도 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노랑은 기어이 소란을 뚫고 나와 낙관, 위안, 포용, 평온, 행복을 나타내는 빛나는 등불 역할을 하고 있다.
초록(Green)
초록색 계열이 다른 색보다 적다고 흔히들 오해한다. 하지만 우리 눈은 초록색 빛 파장의 미묘한 차이를 잘 구분하도록 진화했다. 자연에서 나뭇잎을 관찰해보라. 언뜻 보기에는 하나의 색 같지만 자세히 보면 거의 무한하게 많은 색으로 빼곡하다. 우리 눈은 초록색에 익숙하기 때문에 초록색을 보면 편해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오늘날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테리어 팔레트에 초록색을 포함함으로써 이 색이 주는 이점을 실내로 들여올 수 있다. T.S. 엘리엇은 초록색을 사용한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변하는 세상에서 고요한 곳"이라고 묘사했다.
쾌활한 노랑에서 나뭇잎색과 비슷한 초록을 지나 신비롭고 안정감을 주는 어두운 초록까지, 부드러운 올리브에서 밝고 보석 같은 에메랄드와 튀르쿠아즈(터키 옥색)까지 초록색 계열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아주 넓으며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초록색을 절대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색으로 여겼다. 여러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서도 초록색이 자주 보이는데, 마호메트와 밀접하게 관련 있고 천국, 풍요, 행운, 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초록색은 쇠퇴와 부활의 색이기도 하므로 흔히 부패나 질병과 연결되기도 한다. 태국에서 kheiyw라는 단어는 초록이라는 뜻도 있지만 계급과 냄새가 고약한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기독교 국가에서 초록색은 이교도와 연관성이 있는데, 한 가지 예시로 켈트족의 그린 맨(Green Man, 삶의 주기와 부활을 상징하는 전설 속의 인물·옮긴이)이 있다. 초록색은 신성하고 용감한 빨간색 계열과 대조적으로 악마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됐다.
초록색 안료가 개발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합성 안료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초록색 계열은 파란색과 노란색 안료를 섞어서 만들었다. 따라서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초록색을 추출하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초록색이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1775년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셸레 그린을 만든 뒤 빠른 속도로 섬유와 벽지를 염색하는 데 사용됐다. 하지만 비소를 함유한 이 색은 건강에 치명적이었고 19세기 내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복이 심했던 초록색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초록색은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환경 운동과 함께 다시 인기를 얻었다. 과거에는 그린피스나 영국의 녹색당 같은 친환경 그룹과 관련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지속 가능한 환경 정책과 연결점을 찾으려는 기관이라면 대부분 초록색을 이용하려고 한다. 최근 과학과 바이오 소재의 발전은 식물에서 찾을 수 있는 천연 안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친환경을 상징만 하던 초록이 실제 재료로도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파랑(Blue)
파랑은 자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예술과 디자인에 사용할 안료를 추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보석(가치가 비교적 낮게 평가되는 보석 ·옮긴이)인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청금석)는 고대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산악 지대에서 채굴되었고 여기서 추출한 안료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 중동 전역에서 파랑은 영성이나 불멸과 관련된 색으로, 하늘을 본뜬 파란 아치형 천장이 있는 회교 사원 같은 신성한 장소에서 자주 보인다. 곱게 간 청금석은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라는 가장 훌륭한 파란색 안료가 되었고, 나중에 이 색은 유럽의 화가들도 탐내는 색이 되었다. 울트라마린이라는 이름은 진귀하고 이국적이며 신화적이기까지 한 이 색의 유래를 나타낸다.
시대가 흐르면서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예술가들이 완벽한 파란색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예술가 이브 클랭은 원하는 하늘색을 찾기 위해 그 유명한 울트라마린의 한 버전을 개발했다. 기존의 전색제 때문에 줄어들었던 안료의 순수한 강렬함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클랭은 파란색에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연구에 따르면 파란색은 실제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실내 디자인에 자주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파란 안료는 오래도록 매우 귀했으므로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은 예술가들이 가장 가치 있는 대상을 그리거나 중요한 의뢰를 받았을 때만 파란색을 사용하도록 안료를 아껴두었다. 이 색이 흔해진 것은 18세기에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가 우연히 발견되어 최초의 합성 안료로 만들어진 뒤부터다. 2009년에는 무기 안료인 인망 블루가 실험실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됐다. 인망 블루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파랑으로, 온도를 낮추어준다는 특징이 있다. 파란색과 과학적 혁신의 연관성 때문에 미디어 회사나 첨단 기술 회사들이 자사 로고에서 이 색을 즐겨 쓰는 것으로 보인다.
고귀한 상류층을 의미하는 ‘블루 블러드, 사회의 노동자 계층을 가리키는 ‘블루 컬러 그리고 영적인 세계와도, 과학의 세계와도 관련된 파랑. 파랑에는 끝없는 하늘과 바다처럼 많은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깨끗한 하늘과 맑은 물을 가까이했던 인류가 생존할 확률이 높았으므로, 그때의 선택이 지금까지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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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