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씽킹
 
지은이 : 천문물리학자 BossB (지은이), 이정미 (옮긴이)
출판사 : 알토북스
출판일 : 2024년 10월




  • 우주를 이해하면 인생이 보입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시점을 통해 자신만의 빛을 발견해보세요.


    코스모스 씽킹


    우주 속의 우리

    우리 인간은 우주의 어디에 있나요?

    광대한 우주

    우주를 알면 아주 작고 아주 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면에 숨어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무한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주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내 시점에 의존하며, 그 시점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배운다. 시점은 한정되어 있지만 우주 즉, 현실을 탐구하고 새로운 발견을 해나갈 때마다 다양하게 빛나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주변의 빛남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각자 빛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우주를 알고 시점이 늘어나면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존재의 본질이 보인다. 이것이 코스모스 씽킹이다. 자, 이제 우주를 탐구하는 여행을 떠나자!


    먼저 우주 속 우리의 위치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는 지구의 우주 주소를 알고, 우주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구의 우주 주소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처녀자리 초은하단, 처녀자리 은하단, 국부 은하군, 우리 은하, 오리온자리 팔, 태양계, 지구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주소로 나타내면 라니아케아 제국, 처녀자리 나라, 국부도, 우리시, 오리온로, 태양집, 지구님이라 하면 될까?


    관측 가능한 우주

    우주에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외에도 비슷한 초은하단, 은하, 별들이 끝없이 분포한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930억 광년에 걸쳐 있으며, 다 합쳐 수조 개의 은하가 있다.


    대략 100,000,000,000,000,000,000,000개(수조 개×수천억)의 항성이 있다. 이 숫자는 0이 23개 있으며 수학적으로도 1023으로 나타낸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해변의 모래알을 전부 세도 1021개 정도라는데 이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큰 숫자다.


    게다가 항성의 주위에는 행성이 있다. 우리 은하의 항성 하나당 평균 10개의 행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중 관측 가능한 행성만 대략 1024개다. 행성이 이렇게 많은데 지구에만 생명이 존재한다면 이상하다.


    관측 불가능한 우주

    관측 가능한 우주 너머에는 관측 불가능한 우주가 무한히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 무한한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와 별, 무수히 많은 생명이 있다 그 속에 지구가 덩그러니 있고 내가 덩그러니 있다.


    COSMOS THINKING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느껴 보자. 우주는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주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는다. 우리를 판단하지 않고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예를 들어 우주는 시험 점수나 표준 편차로 우리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 시험 점수 40점으로 우리를 평가하는 것은 학교이고 사회이며 우리 자신이다. 우주는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시험은 절대 우리의 가치를 온전히 판단할 수 없다.


    우주는 출신 학교나 사회 계층으로 우리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우리 자신이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정해야 하며 사회나 학교, 집단의 계층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누구도 타인의 가치를 정할 수 없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정하자. 한 사람의 가치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탐구는 곧 자신에 대한 탐구이다.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원자란 무엇인가요?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별이 만들어 낸 다양한 원자로 이루어진 별의 아이들이다. 이를테면 물은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가 결합한 물 분자로 이루어진다. 각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하나뿐인 가장 단순한 수소 원자를 생각해 보자.


    수소 원자를 도쿄돔에 비유하면 원자핵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정답은 초코볼이다. 예를 들어 도쿄봄에 지붕과 벽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휑뎅그렁한 공간에 초코볼이 뚝 떨어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조그마한 초코볼이 원자의 질량에서 99.9 이상을 차지한다. 밀도가 물의 약 100조배나 되는 최강의 초코볼이다.


    한편 전자의 질량은 원자의 0.1 이하에 불과해 크기를 알 수 없다. 원자는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소립자다. 물리학에서 소립자는 점입자로 불리며 크기는 0으로 간주한다. 그 크기 없는 전자는 원자 내부 돔 안의 모든 곳에 있다. 전자는 위치를 측정하면 움직임이 불확정해 매 순간 다른 곳에 나타난다. 수많은 원자의 내부를 몇 번이고 거듭 측정해 전자의 위치를 통계적으로 해석하면 전자는 도쿄돔 안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전자가 도쿄돔 안 모든 곳에 전자구름처럼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도쿄돔이 전자의 파동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이 도쿄돔 모형은 수소 원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원자에 적용된다. 모든 원자의 돔은 얼핏 보면 텅텅 빈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전자의 파동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전자의 파동이 물질에 형태를 부여한다. 우리의 몸에서 전자를 모두 빼내면 머리카락보다도 더 가늘어지고 말 것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으로 원자핵의 구조를 살펴보자.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지는데, 원자 속 양성자 수가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한다. 기본적으로 양성자와 똑같은 수의 중성자가 있고, 그 원자와 아주 비슷하면서 중성자의 수가 다른 원자도 있다. 전하를 띠는 양성자를 전하(轉荷)라고 한다. 양성자는 양의 전하를 띠고 중성자는 전하가 없다.


    한편 전자는 음의 전하를 띤다. 양성자의 전하와 완전히 똑같은 양이지만 플러스(양)와 마이너스(음)가 다르다. 원자는 중성으로 전하는 플러스마이너스 0이다. 다시 말해 양성자와 똑같은 수의 전자가 있다. 그러므로 양의 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의 전하를 띤 전자는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이끌리듯 전자기력이라는 전기와 자기의 힘에 끌려 원자 안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3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란 전자와 마찬가지로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물질로 분해할 수 없다. 물질의 최소 단위 소립자로 점입자이며 크기는 0이다. 다시 말해 크기가 없는 것이거나 또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쿼크에는 업, 다운, 참, 스트레인지, 톱, 보텀의 6종류가 있다. 양성자는 업 쿼크 2개와 다운 쿼크 1개, 중성자는 업 쿼크 1개와 다운 쿼크 2개로 이루어진다. 참고로 쿼크의 명칭에 의미는 없다. 그저 이름일 뿐이다.


    업 쿼크와 보텀 쿼크의 질량은 각각 전자의 약 4배와 9배로 그다지 무겁지 않다. 그러나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1,836배나 된다. 쿼크 3개를 합쳐도 양성자나 중성자 질량의 2 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원자핵도 속은 텅텅 비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98 는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양성자와 중성자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E=mc2

    양성자 속에서는 쿼크 3개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며 운동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럼에도 빠르게 돌아다니는 쿼크가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는 이유는 우주 최강의 힘, 즉 강력한 핵의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쿼크가 용수철 끝에 연결되어 있고 쿼크가 튀어 나가지 않도록 용수철이 오므라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 힘이 작용하는 양성자의 내부에는 쿼크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있는 에너지인 위치에너지가 있다. 이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총량이 양자의 질량 중 98 를 차지한다. 질량은 에너지다. 그야말로 E=mc2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공식의 또 다른 해석은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됨을 나타낸다고 보는데, 이는 틀린 해석이다. 아인슈타인의 원래 논문에는 m=E/c2이라고 쓰여 있었다. 에너지가 질량으로 발현된다=질량은 에너지다라는 의미의 관계식이다.


    양성자의 질량도 E=mc2이다. 양성자 속은 얼핏 보면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 에너지가 양성자의 질량이다. 중성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의 질량도 에너지다.


    텅 비어 보이는 원자 속에는 전자 파동이 가득 차 있고 전자는 물질의 형태를 만든다. 텅텅 비어 보이는 원자핵 속에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고 에너지는 물질의 질량을 만든다. 이처럼 물질의 보이지 않는 곳에는 방대한 에너지가 숨어 있다.


    COSMOS THINKING

    우리는 에너지 덩어리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정신이 팔렸던 어린 시절처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가? 이렇게 질문하며 자신을 마주하면 숨어 있던 에너지가 눈에 보이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다 자란 동물은 평소 쓸데없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보존하도록 뇌가 지시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본능적으로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들은 쓸데없이 몸을 움직이며 논다. 놀이는 생존을 위한 연습이자 배움이다. 상상이며 탐험이자 발견이고 순수한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에너지가 다 떨어질 때까지 또한 부모에게 야단을 맞을 때까지 놀 수 있다.


    숨겨진 에너지를 해방하는 열쇠는 놀이할 때 느끼는 감정에 있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흥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일이 있다면 이런 에너지가 어디 숨어 있었을까? 라고 스스로 신기할 정도의 에너지가 솟아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아이들은 공부와 숙제에 쫓겨서 놀 시간이 적어지고 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 호기심을 잃고 놀이를 잊게 된다. 놀아야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로 대학에 가고 취업한다. 입시를 전제로 한 학교 교육은 호기심을 억압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호기심을 되찾자. 나이는 상관없다. 언제나 상상과 탐험, 발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면 에너지와 가능성이 해방될 것이다.



    블랙홀은 무섭지 않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까 봐 무서워요. 살려 주세요

    블랙홀은 빨아들이지 않는다

    블랙홀은 아무것도 빨아들이지 않는다. 태양이 블랙홀이 될 일은 절대로 없지만, 태양이 블랙홀이 된다는 사고실험을 해 보자. 그리고 블랙홀이 된 태양과 항성인 현재의 태양을 비교해 보자.


    우선 태양이 블랙홀이 되어도 태양계 모든 행성의 궤도는 단 1㎜도 달라지지 않는다. 태양계 천체의 입장에서 태양과 태양 블랙홀의 유일한 차이는 태양은 크고 태양의 블랙홀은 아주 작다는 점뿐이다. 태양과 태양 블랙홀의 질량은 똑같으므로 태양계 천체에 작용하는 중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태양이 블랙홀이 됨으로써 태양광이 없어지는 일이 더 긴급사태인데 여기서 이 문제는 무시하겠다.


    빨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태양이다

    블랙홀보다 태양이 오히려 사물을 더 빨아들인다. 태양의 반경은 약 70만km이고 대기는 5,800K의 플라스마다. NASA가 2018년 발사한 파커 태양 탐사선은 2025년까지 태양 중심에서 태양 반경의 9배 정도의 거리 약 600만km까지 접근해 태양을 관찰할 예정인데 현재의 기술로는 이것이 한계다. 그보다 더 태양 표면에 가까이 가면 운석이든 혜성이든 탐사선이든 플라스마에 파괴된다. 그리고 표면에 더 가까이 가면 태양의 일부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태양에 빨려들어 잡아먹히는 것이다.


    블랙홀에는 가까이 갈 수 있다

    한편 태양의 블랙홀 반경은 태양 반경의 0.0004 , 겨우 3㎞다. 태양의 플라스마가 없어지고 태양이 발하는 방사선과 우주선cosmic ray도 없어진다. 그로 인해 우리 인간도 산소와 우주복만 있으면 중심에서 7천㎞(태양 반경의 1 )까지 다가갈 수 있다.


    태양의 블랙홀은 아무리 가까이 가도 모든 질량이 항상 눈앞에 있으므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중력이 커지지만4) 전혀 문제가 없다. 중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유낙하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하면 달이 지구 주위에서 안정된 궤도를 돌듯 태양의 블랙홀 주위에서 안정된 궤도를 그리며 돌 수 있다. 절대 빨려 들어갈 일이 없다.


    중심에 더 가까이 가도 빨려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블랙홀 주위에서 궤도를 유지하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중심에 다가갈수록 시공의 뒤틀림이 점점 커지므로 중력도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 블랙홀에 가장 가까운 부위(이를테면 발)가 있는 곳의 중력과 가장 멀리 있는 부위(이를테면 머리)가 있는 곳의 중력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몸이 당겨지는 느낌이 날 것이다.


    태양의 블랙홀 약 1,800km(태양 반경의 0.3 )까지 다가가면 중력 차이 때문에 우리 몸의 혈액이 순환하지 않고 산소 결핍으로 죽게 된다. 그보다도 더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될까?


    약 1,200km까지 다가가면 중력 차이로 몸이 두 조각으로 찢긴다. 태양의 블랙홀 입구인 3km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죽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빨려 들어가지는 않는다(안정된 궤도에서 자유낙하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


    블랙홀에는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있다. 이것은 3km 크기(반지름)로 태양의 블랙홀 입구다. 어느 블랙홀 주위든 그 사건의 지평선 몇 배의 거리까지는 안정된 궤도를 그리며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블랙홀에 그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결코 빨려 들어가는 일은 없다. 다만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COSMOS THINKING

    블랙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우리 상식으로는 그 성질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블랙홀을 두려워한다. 사실은 태양이 블랙홀보다 더 사물을 빨아들이고 현실적 위험(우주선, 방사선 등)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태양은 인간의 눈에 보이므로 태양을 블랙홀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블랙홀은 사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깊은 숲, 심해, 외국인,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 다른 외모로 태어난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본 적이 없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의 착각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럴 때는 한 번 뇌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반대로 해 보면 어떨까? 착각 때문에 두려운 것이므로 가까이 다가가 알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


    다만 그런 것들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두려워하던 대상이 정말로 두려워할 만한 것인지 아닌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우주는 어디로 갈까?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요?

    우주에 중심은 없다

    우주의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이 은하가 분포한다. 지구에서 보면 모든 은하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의 어느 곳이든 중심이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은 따로 없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허블의 관측에 따르면 은하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주가 어디서나 똑같이 균일하게 팽창하기 때문에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듯 보인다는 것이 허블의 법칙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우주에 중심은 없다, 끝도 없다

    3차원 공간에 사는 우리에게 중심이 없는 3차원 공간을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차원을 하나 낮춰 구형 풍선의 표면을 우주에 비유해 보겠다. 풍선 표면이라는 2차원 우주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 표면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전부이다. 풍선 표면에 은하가 있고 풍선 안이나 바깥은 없다. 2차원 사람은 한 은하에서 다른 은하로 이동하면 우주에 끝은 없고 중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구 표면을 아무리 걸어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균일하게 팽창하는 풍선 표면에 있는 은하와 은하 사이에는 어디서 보아도 완전히 똑같은 허블의 법칙이 성립한다.


    이 2차원 풍선 표면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3차원 공간 우주도 팽창한다.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어떤 지점이든 중심이 될 수 있다. 특별한 지점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우주에는 끝도 없고 중심도 없다.


    COSMOS THINKING

    우주에는 중심도 없고 특별한 곳도 없다. 또 우주에는 의지도 없고 의도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계속 의문을 가진다.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속 질문한다.


    나는 우주를 알면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주를 알면 알수록 해답이나 정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의미는 의식이 있는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다. 우주의 움직임, 우주에 있는 별이나 생명의 존재에 의미는 없다. 다시 말해 의미를 찾는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의미를 찾는 여러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분이다.


    우주에서 우리는 특별한 곳에 있지도 않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의식이 있고 의미를 찾는 우리가 우주를 무대로 서 있는 한 이야기의 중심이자 주인공임은 틀림없다.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나요?

    시공의 경로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쉽다. 실제로 우리는 매 순간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빨리 미래로 가고 싶다면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 된다. 공간 속을 움직이면 시간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르기 때문이다.


    다만 움직임은 상대적이어서 시점에 의존하므로 내 시점에서는 남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내 시점에서 보면 타인의 시계가 천천히 움직이고, 타인의 시점에서 보면 내 시계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럼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시계를 비교해 보면 누구의 시계가 더 느릴까?


    각 시계의 움직임은 두 사람이 어떻게 시공 속을 움직였느냐 하는 경로에 따라 결정된다. 경로가 길면 길수록 시간의 경과가 짧다.


    똑같이 1초1초를 거쳐 미래로 간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은 몸의 시계도 마찬가지로 느려진다는 뜻이므로, 움직인다고 결코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1초 1초를 거쳐 미래로 향한다. 그러나 각자의 1초가 가지는 폭이 서로 다르다. 그 서로 다른 1초를 통해 미래로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임으로써 더 빠르게 상대방의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


    COSMOS THINKING

    시공에서 여기저기 들러 미래로 가는 일을 일본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우라시마 다로에 빗대 우라시마 효과라고 한다. 우라시마 다로가 용궁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자신이 알던 모든 사람이 늙어 죽고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라시마 다로가 갔던 용궁이 어쩌면 우주선인지도 모른다. 우주선이 광속으로 3년간 이동했다면 우라시마 다로가 지구에 돌아왔을 때 지구에서는 700년이 흘러 있었다고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라시마 다로도 원래 수명보다 오래 산 것은 아니다. 3년 동안 술과 여자에 취해 있다가 700년 후 미래의 지구에 더 빨리 도착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론은 물리 법칙에 어긋난다. 보석 상자를 열자 우라시마 다로가 순식간에 늙어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우라시마 다로가 순식간에 늙어 버린 듯 보여도(이를테면 우라시마 다로만 제외하고 지구를 포함한 모든 것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 등) 우라시마 다로 자신은 순식간에 늙었다고 믿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우라시마 다로의 1초 1초와 우리의 1초 1초는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입자의 조합으로 태어나고, 시공의 어느 지점에 태어나고, 어디서 자라날지 등 인생의 초기 조건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1초 1초 동안 무엇을 할지, 무엇을 생각할지, 어떤 사람이 되려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의의는 자신이 만들고,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1년 전의 자신보다, 일주일 전의 자신보다, 1초 전의 자신보다,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워지면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1초 1초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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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