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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자본주의 그림자 | |||
지은이 : 말콤 해리스 (지은이), 이정민 (옮긴이) |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 ||||
출판일 : 2025년 0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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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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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로 돌아왔을 때 휴렛은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40년만 해도 매출이 4만 달러가 채 안 되던 곳이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하면서 직원은 200명이 넘고 연 매출은 150만 달러에 이르는 진정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설립자들이 루스벨트 정부를 상대로 계약을 따낸 데 비해 팩커드는 외부 투자자에 의존하지 않고 매년 100%씩 성장할 수 있는 수익원을 확보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향한 열정에 기반해 허버트 후버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모두의 신뢰받는 고문으로 거듭나면서 루스벨트의 전시 재협상 위원회에서 온 요청도 거부할 수 있었다.
관료 두 명이 팔로알토로 찾아와 HP가 과잉수익 규제안을 위반했다고 경고하자 팩커드는 그들이 이해도 못하는 자유시장 이론에 대해 성토한 뒤 ‘사실상 자신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캘리포니아 후버빌에서 루스벨트의 대리인과 사회민주주의 의제가 다시 한 번 무력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대형 계약의 씨가 마르자 HP도 매출의 3분의 2가량이 줄었다. 하지만 전시 수익이 두둑했던 덕분에 전후 경제를 향해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었다. 휴렛과 팩커드에게는 앞으로 뭘 만들지 결정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미국은 그 자체로 모순의 땅이지만 미국 자본은 한결같이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해왔고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자본이다. 세계에서 가능한 한 많은 지역을 확보하는 것은 자본가에게 필수 사항이었다. 이는 무역을 위해서나 ‘인권’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가 높은 수익에 전념하는 국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토지 개혁과 압수 과세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앞에서도 국가가 재산권을 존중하고 보장해줄 거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노동 갈등이 발생했을 때 자본의 편을 들고 임금 통제에도 도움을 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보장이 없다면 해외에 투자했다 현지인들의 정치적 변덕에 휘말릴 수 있고, 그랬다가는 자칫 애초에 예상했던 투자수익에 손실을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캘리포니아의 자본가들이 20세기 전반기에 개인적으로 절감한 것처럼 전 세계 노동자들은 천연자원 및 생산 수단을 장악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못지않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정반대의 이 두 체제는 모든 노동 현장에서 통제권을 놓고 경쟁했다. 정부의 10여 년에 걸친 인프라 확장과 전쟁 지출에 뛰어든 미국 자본은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미국인들은 실리콘밸리의 마이크로 컴퓨터 산업 초기를 발명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발명의 역사는 데이비드 팩커드,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빌 게이츠와 폴 앨런 같은 상징적 천재 사업가의 스토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는 아니었지만 일찌감치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임에 분명했다. 진정한 발명의 길은 결코 깨끗하거나 단순하지 않지만 과학적 공로가 순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때 대중은 늘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결국 발명가의 공로를 인정하는 건 어렵기로 악명 높다.
모든 혁신은 이전 혁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발명가는 이런저런 커뮤니티와 불가분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은 아이디어를 동시에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돈이 일종의 점수판 기능을 해 본래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의 비교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릴런드 스탠포드가 서던퍼시픽의 유명 그림작품에 등장했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씽크 디프런트’ 포스터를 고안해냈다. 유다와 워즈니악은 직접 개발한 제품의 브레인으로 역사 속에 묻혔고 철로를 깔고 칩을 조립한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배경화면의 등장인물로 남았다.
베이 지역은 기업 간, 개인 간 활동이 워낙 많이 일어나는 만큼 중립성이 보장되는 공공장소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는 커피문화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파리 야외 카페의 여유가 아닌, 노트북과 라떼, 정보회의와 업계가십만이 난무했다. 이 무렵, 버클리의 피츠커피에서 시작되어 시애틀의 스타벅스로 이어지고 급기야 전 세계로 확산된 미국 커피의 ‘제2의 물결’이 일어났다. 실리콘밸리의 자아 인식에서 카페를 창조적 거점으로 여기는 시각이 핵심을 차지하게 돼 향후 기업들은 사무실을 아예 안락한 커피숍처럼 꾸몄다. 하지만 커피 전문점이 미래의 사무실로 변모하면서 고용 트렌드에 우려스러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스타벅스에 자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부자이거나 점차 부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돌아갈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들도 갈수록 많아졌다. 글로벌 자본 시장 내 실리콘밸리의 가치는 대부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왔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란 새로운 고용 모델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고용 모델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인터네트워킹 회사들이 미국인들이 신뢰하는 매끄럽고 멋진 웹사이트를 추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로 만든 것처럼, 기술업계는 클린룸 엔지니어의 완벽한 작업으로 매우 수상한 비즈니스 관행을 제시했다. 당국도 이를 확신했고, 산호세 경찰서는 도둑을 잡기 위한 잠복 작전으로 결국 전자 기술자들을 잡는 데 성공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980년대 초 경찰은 비밀리에 자체 바를 열고 도난품을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일반적인 보석 등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석 대신 디스크 드라이브와 마이크로칩을 얻었다. 기술회사 직원들은 장비를 훔쳐 고물상이나 중고 컴퓨터 상인에게 팔아 코카인 대금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실에서는 금선 같은 귀중한 재료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간혹 스파이가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거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실리콘밸리가 장려하는 문화 안에서 사업을 하는 데 따르는 대가일 뿐이었다. 유명 기업의 관리자들은 코더들에게는 코카인을, 조립라인의 직원들에게는 저렴한 필로폰을 나눠주는 등 직원들에게 마약을 권했다. 정확성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했고 부품의 고장률이 높았다. 별거 아니었다. 마진이 너무 크면 그냥 무료 교체품을 보내면 된다. 애초에 진정한 품질관리를 구현하는 것보다 더 저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