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을 전공한 문과 출신이지만 일본의 권위 있는 신문사인 《마이니치신문》에서 과학 기자로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이 책의 저자 모토무라 유키코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간판을 벗어던졌다. 대신 스스로를 ‘잡식성 과학 기자’라 칭하며, 과학이라는 넓은 세상 속에서 발견한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세상을 읽는 과학적 시선』은 인류의 과학이 눈부신 도약을 이룬 최근 수년간 그녀가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정리한 책으로, 화려한 발견이나 대단한 성취보다는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한 과학적 통찰을 가득 담고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저자는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을 말한다. “VUCA(급변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애매한)의 시대에도 우리는 눈앞의 일들을 해내야 합니다. 작은 행동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글을 써왔습니다.”라고 했듯이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과학을 어려워하거나 자신과 멀게 느끼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친근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과학의 스펙트럼을 넓혀 보다 흥미로운 지식과 의외로 서정적인 과학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을 읽는 과학적 시선』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위, 아래, 그리고 대각선으로 시선을 확장하며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과학의 창이 되어준다.
■ 저자 모토무라 유키코
1966년생. 규슈대학 문과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1989년 《마이니치신문》에 입사 후 과학 환경부에 배정받아 20여 년 넘게 과학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2006년 제1회 과학 저널리스트 대상을 수상했고,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힘을 쏟으며 도야마대학, 국제기독교대학 등의 강단에 서기도 했다. 저서로는 『이과 사고』, 『궁금한 과학』, 『과학의 편』, 『과학 취급설명서』, 『과학의 힘을 강하게 만들기!』 등이 있다.
■ 역자 김소영
다른 나라 언어로 그려진 책의 재미를 우리나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번역을 시작했다. 저자의 색깔에 녹아든 번역을 추구한다.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눈부신 수학』, 『미적분, 놀라운 일상의 공식』,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 읽기』, 『심리학 용어 도감』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1. 박사가 사랑한 기생충
- 물리학자의 뇌 속에서 펼쳐진 우주
- 흰 가운을 벗고 턱시도를 두르는 날
- ‘갑툭튀’가 제일 무섭다
- 고분(古墳)을 투시하다
- ‘인류세(人類世)’,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 매머드가 되지 않기 위해
- 사차원 포켓의 미래
- 가사 로봇, 현실이 될까?
- 바이러스, 지나치게 똑똑한 ‘하숙인’
-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우주여행, 거기에는 어떤 볼일이 있을까?
- 테크놀로지로 퍼져 나가는 세계
- 모르니까 더 재미있다
- 사느냐, 죽느냐
- 고양이와 개다래나무
- 또 한 분의 조상님
- 색다른 만남, 색다른 맛
- 박사가 사랑한 기생충
- 자연에 집중하면 수학이 보인다
- 0에서 1을 창조하다
2. 숲, 장작, 그리고 사람
- 열대 우림에도 같은 시간이 흐른다
- 피어라, 져라, 인간의 뜻대로
- ‘탄소 중립 사회’, 꿈인가 신기루인가?
- 바나나로 지구의 현재를 생각하다
- 오가사와라의 음색
- 사지 않고 버리지 않는 사업
- 파괴적 이노베이션
- 파타고니아의 결단
- 오버슈트
- 식탐 탈출! 과식은 이제 그만
- 지속 가능한 세상을 꿈꾸다
- 숲의 왕국을 이끄는 자
- 숲, 장작, 그리고 사람
- 조상들의 항해술
- 인간과 미생물의 기나긴 인연
- 식탁 위의 풍경,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
- 포도와 사람과 떼루아
- 달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다
- 도심의 거리를 거닐던 소들
- 눈물은 아낌없이
- 매실주 너머의 뒷산
- 살아 있으면 나오는 것
- 코로나바이러스로 얻은 것들
- 우주, 다양성으로 가득한 무한의 공간
-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주의 멜로디
- 슈퍼 푸드 곤충
- 대상포진이 보내는 경고
- 아프니까 산다
- 코끼리에 밟히는 듯한 고통이라니
- 더 높이, 더 멀리
- 구름을 알고 사랑하는 기술
3. 과학의 빛과 어둠을 살았던 학자
- ‘물의 행성’에 살다
- 도움이 된다? 안 된다?
- 체르노빌의 목소리
- 과학의 빛과 어둠을 살았던 학자
- 애국심이 독가스를 낳는다
- 포옹이라는 선물
- 과학을 사랑한 소녀
- 만지고, 보다
-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자아이
- 북극성처럼 빛나는 꿈
- 밤하늘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
- 봄, 공원에서
- 우유 한 잔, 일상의 여유
- 그래서 더 인연을 맺는다
- 좌표축을 찾는 여행
- 밝게, 가볍게, 부드럽게
- 홀로 살아간다는 것
- 치매,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다
마치며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모토무라 유키코는 ‘문과 출신 과학 기자’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과학을 보다 접근하기 쉽고 친근하게 전달합니다. 과학을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으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과학적 통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세상을 읽는 과학적 시선
박사가 사랑한 기생충
물리학자의 뇌 속에서 펼쳐진 우주
베일에 싸여 있던 블랙홀의 모습이 마침내 포착되었다. 이쪽 분야에 어두운 친구에게 '이름에는 홀이 들어가는데 사실 구멍이 아니라 천체야.'라고 설명을 한 터인데, 공개된 사진을 보니 도넛처럼 생긴데다가 정작 중요한 블랙홀은 도넛의 '구멍'에 해당하는 시커먼 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만 구멍 맞잖아!'라며 코를 벌름거리는 친구에게 나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 블랙홀은 우주에 뻥뚫린 구덩이로 보는 게 맞겠다.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가진 괴물이 숨어 살면서 그 근처를 지나가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빛조차도 한번 발을 들이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 애초에 확인하러 갈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거니와, 가까이 간다고 하더라도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알면 알수록 불가사의한 존재다.
블랙홀의 존재는 일찍이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예언했다. 물론 착각이었거나 허풍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대를 이어온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이 실존한다'고 믿으며 무려 100년 동안 연구해 왔다. 그 사이에 '괴물'의 존재가 엿보이는 관측 결과를 얻기도 했다. 범인을 추격하는 형사가 범인이 남긴 흔적이나 유류품, 목격 증언들을 긁어모으듯이 증거를 하나하나 쌓으며 수사망을 좁혀 갔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치는 않다.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블랙홀은 존재한다. 그들은 이렇게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꾸준히 펼쳐 왔다. 결론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2018년 3월,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가 그중 한 사람이다. 박사는 생전에 블랙홀이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에너지를 거꾸로 방출하고, 머지않아 증발한다는 예측을 세웠다.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그 마지막을 점치는 대담한 가설이었다. 게다가 계산에 따르면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100억 년 이상의 미래의 일이라고 한다.
물론 그때 우리는 없다. 하물며 인류나 지구가 그때까지 존재할지도 불투명하다. 그런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을 예측하고 검증은 후배에게 맡기다니,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물리학자의 머릿속에는 블랙홀보다 더 깊고 아득한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은 목적지도 없고 기간도 정해지지 않은 미스터리 투어를 즐기는 방랑자들과도 같다.
‘갑툭튀’가 제일 무섭다
과학 기자에게 노벨상이란 해마다 한 번 찾아오는 축제와 같다. 게다가 연구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널리 알릴 절호의 찬스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차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는 저녁 시간에 발표가 난다는 점이 꽤 골치 아프다. 이튿날 조간신문에 실릴 난해한 과학 문제를 밤사이에 알기 쉽게 정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오키상이나 아카데미상은 누가 최종 후보에 남아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 그런데 노벨상은 선정 과정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보안'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 명이나 되는 후보군에 맞게 일일이 원고를 만들어 준비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갑툭튀'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2002년에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노벨상 웹 사이트에 뜬금없이 나타난 'Koichi Tanaka'라는 이름. "누구야?”, “원고도 안 써 놨는데, 어디 소속의 누군지 찾아내!" 곧이어 다나카 씨가 교토의 시마즈 제작소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랴부랴 번호 안내 서비스에서 알려준 홍보과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를 받은 남성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귀사의 다나카 고이치 씨가 노벨상에 선정되셨습니다." 남성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네? 저희 다나카요? 그게 누구죠?” 얼빠진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홍보과에 있는 모든 전화가 불난 듯 울려댔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날은 시마즈 제작소의 '야근 없는 날'이었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부장도 마침 귀가하려고 정리하던 참이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다나카 씨는 그 당시 수상 소식을 알리려고 자신의 책상으로 직접 걸려 온 국제전화를 받고 우왕좌왕했다. 순간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를 분해하지 않고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박사도, 관리직도 아닌 마흔셋의 기술자가 갑자기 세계 무대로 끌려 나온 것이다. 기자회견은 물론, 전철을 타고 통근 할 때도 항상 작업복 차림인 그의 '수수함'에 많은 사람이 친근감을 느꼈다.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다나카 씨는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결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퇴근길에 잠깐 약국에 들러서 혈액 한 방울만 가지고도 어떤 질병들을 앓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당시에는 '에이,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다나카 씨는 약속대로 소량의 혈액만 가지고도 치매나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수상은 '통과점'이다. 외부 요인에 꿈쩍하지 않고 몰두하는 연구자세에 진정한 노벨상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20년 동안 긴 시선으로 보다 보면 그런 깨달음도 얻게 된다.
바이러스, 지나치게 똑똑한 ‘하숙인’
바이러스는 생물에 기생한다. 식물, 인간, 동물, 하물며 세균에도 기생한다. 따지자면 생활이나 식사를 일방적으로 숙주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하숙인보다는 더부살이에 가깝다. 바이러스는 생물의 몸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세포가 늘어가는 구조에 편승해 자기편을 늘린다. 그렇게 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가끔은 숙주를 점령할 때도 있다. 숙주가 죽는다는 걸 안 순간 다른 숙주로 갈아타서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이게 바이러스다.
과학자들은 의학 역사 속에서 소중한 가족이나 가축을 괴롭히는 의문의 병원체의 정체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바이러스를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다. 정체를 알아낸 것은 아니다. 광견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아닌 광학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무언가'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이것을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19세기 말의 일이다.
그 후 100년 남짓 동안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20세기에 전자현미경을 발명하면서 바이러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바이러스의 DNA나 RNA를 해독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것이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성질이나 다양성과 더불어 의외의 측면도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세균에 선옥균과 악옥균이 있는 것처럼 바이러스에도 '선옥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은 타인(남편)의 유전자를 절반 물려받은 태아라는 이물을 10개월 동안 태내에서 기른다. 일반적으로는 면역이 작용하여 배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임신을 하면서 만들어진 특수한 막 덕분이고, 놀랍게도 그 막은 먼 옛날에 인간에게 옮겨 온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보면, 더부살이는커녕 인류의 번영을 든든하게 받쳐 주는 존재다.
우주여행, 거기에는 어떤 볼일이 있을까?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우주 개발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주의 낭만이야 알겠는데 뭐가 재밌지?"라며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을 실현한 구소련에 대한 반항심으로 아폴로를 쏘아 올렸다. 국위 선양과 지지율 상승이라는 정치적 야망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거액의 세금을 들이는 반면에 빈곤이나 인종 차별은 나 몰라라 했다. 비판의 눈초리가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그 돈이 개인의 자금이었다면 어땠을까?
2021년 여름, 미국의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버진 갤럭틱은 6인용 우주선을 제트기에 결합해 상공에서 로켓 엔진에 점화했고, '우주의 입구'라고 불리는 85km 상공에 다다랐다. 총 한 시간 남짓의 여행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에는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블루 오리진이 우주에 나섰다. 여기는 승객이 탄 캡슐을 로켓으로 쏘아 올리는 방식이었다. 3분 만에 고도 100㎞에 도달했고, 10분 후에 낙하산을 타고 연착륙했다. 둘 다 무중력 체험과 장대한 광경이 셀링 포인트다. 칠흑같이 캄캄한 우주와 동그랗고 푸르른 지구도 직접 볼 수 있다.
우주선에 직접 올라탄 버진 그룹 대표 리처드 브랜슨 씨는 어릴 때부터 이 순간을 꿈꿨다고 했다. 경영인으로서 대성공을 거두고 우주로 가는 꿈도 이루었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 착륙을 지켜보던 소년이 반세기 후에 '누구나 우주로 갈 수 있는 시대'의 문을 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이번 성공의 배후에는 아폴로 계획을 경험했던 미 항공우주국(NASA) 베테랑 기술자들의 공헌이 있었다. 단지 막대한 비용이 걸림돌인데, 전 세계의 부자들이 호기롭게 투자해 준다면 기술은 발전하고 가격은 내려간다.
이제 20년쯤 지나면 여행 사이트에 '우주' 코너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달로 떠나는 5박 6일 여행, 옵션으로 둥근 지구를 보며 골프도 즐길 수 있어요!" 이런 시대가 과연 올까?
숲, 장작, 그리고 사람
‘탄소 중립 사회’, 꿈인가 신기루인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를 줄이는 '탄소 중립'의 움직임이 점점 퍼지고 있다. CO2를 비롯한 온실 효과 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위기의식이 희미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국제 정치 사항으로 다뤄졌다. 1997년에 채택된 '교토 의정서에서는 선진국의 CO2 배출 삭감이 의무화되었다. 그런데 과연 실행되었을까? 대답은 'NO' 이다. 그 당시에 배출량을 줄이라는 말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내려놓고 경제 성장을 포기하라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지구 환경은 속수무책인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열파에 목숨을 잃었고, 가뭄이 기근을 일으켰으며, 호우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다. 이런 사건들이 해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5년에 ‘파리 협정'이 생겼다. 이때는 개발도상국부터 신흥국까지 모두같이 온난화 대책을 펼치기로 약속했다. 2021년 가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6에서는 3대 배출국인 중국, 미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의 의사를 확인했다.
'파리에서 경기장이 만들어지고, 글래스고에서 레이스가 시작되고, 오늘 밤 그 신호탄이 울렸다. 미국의 존 켈리 대통령 특사는 이렇게 선언했다. 탄소 중립. 단순한 울림에 비해 달성을 향해 가는 길은 상당히 험난하다. 단지 교토 의정서 시절과 다른 것은 CO2 의 배출 삭감뿐 아니라 '회수'를 위한 비즈니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Carbon Capture and Storage(탄소 회수, 저류)'의 머리글자에서 따와 'CCS'라 불리는 기술이 그중 하나다. 수법은 다양하지만, 스위스에는 대기 중의 CO2 를 회수하는 상용 플랜트가 등장했다. 회수한 CO2 는 지하 파이프를 통해 농업용 하우스에 공급된다. 채소는 그걸로 광합성을 해서 자란다. 수확량이 10% 정도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행동할 때 절약하거나 인내하는 '뺄셈'보다, 새로운 물건이나 서비스를 추가하는 '덧셈'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재활용이나 CCS 사업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시점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불확실한 부분도 많다. 기술만 믿고 자원을 낭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추천하지 않는다.
'지구는 자손들에게 빌린 것'
미국의 선주민들에게 계승되는 사상이다.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자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시점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불확실한 부분도 많다. 기술만 믿고 자원을 낭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추천하지 않는다.
'지구는 자손들에게 빌린 것'
미국의 선주민들에게 계승되는 사상이다.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자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다.
숲, 장작, 그리고 사람
나무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연료다.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나오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도 한다. 생육과 소비의 균형을 배려하면서 적절히 사용하면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정전 위험에도 강하다.
불을 길들이는 것은 목숨을 지키는 것과 직결된다. 우주 비행사가 받는 서바이벌 훈련은 러시아의 설원에서 이루어지는데, 제일 먼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 피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추위와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살아남을 기력을 준다. 북유럽에서 장작 패는 일은 남성이 정년 후에 시작하는 '취미' 중 하나라고 한다. 젊은 세대들은 시의 집합 주택에 살며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모닥불이 인기다. 캠프 유행을 넘어서 더 깊은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자연 속에서 불을 마주하면 고대부터 유전자에 새겨진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적어도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불꽃이나 타닥타닥 튀는 소리는 디지털 정보의 홍수 때문에 지친 오감을 어루만져 준다.
나는 아마 난로가 있는 단독 주택에는 평생 살지 않을 것이라서 장작 패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고 숲이나 나무나 장작에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를 알고 감동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겨울을 맞이하긴 전, 북유럽에서는 초봄부터 준비해 놓은 장작 선반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누군가가 하얀 입김을 내쉬며 장작을 끌어안고 득의양양하게 거실로 옮기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얻은 것들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2020년 새해부터 전에 없던 타입의 폐렴 환자들이 우한에서 속출한다는 중국발 뉴스가 난데없이 터졌다. 강 건너 불구경인 줄로만 생각했던 것도 잠시, 바이러스는 배나 비행기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처음 2년 동안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었다. 일시적으로 휴전은 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2년'을 한탄만 하지 말고, 이번 일로 얻은 깨달음이나 가치관의 변화도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큰 변화가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회사와 관련된 일들인 것 같다. 먼저 대규모 회의나 출장, 접대 등이 금지되었다. 하는 수 없이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거나 거래처와 이야기하게 되니 재택근무로 전환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왜 안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직장에 오래 있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멸사봉공(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씀-역자)'의 가치관도 다시 보게 되었다. 주 3일제를 검토하거나, 국내 어느 곳에 살아도 괜찮도록 허락하거나, 교통비를 월 15만 엔까지 지급하는 기업도 나왔다.
물론 '현장'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도 있다. 하지만 불합리한 관행을 멈추게 된 계기를 코로나바이러스가 제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콘서트나 공연 같은 이벤트가 크게 제한된 대신, 고성능 동영상 배포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방에 살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접근하기가 쉬워졌을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빈부의 격차를 더 뚜렷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행동을 부추기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2022년 한 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이는 '어린이 식당(어린이, 보호자,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무료나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사회 활동-역자)'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7,000개 이상 늘어났다.
'레질리언스 resilience'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물질의 탄성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인데, 심리학 세계에서는 '역경이나 곤란을 딛고 활기를 되찾는 힘'을 뜻한다. 과정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힘든 시간을 공유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사는 이유는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학의 빛과 어둠을 살았던 학자
과학의 빛과 어둠을 살았던 학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화학 병기를 사용했다고 의심을 받고 있다.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은 데다가 공격이 끊이질 않는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말이다. '러시아군이 무인기에서 유독 물질을 투하했다.' 현지를 거점으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전투부대가 주장했다.
화학 병기는 신경에 작용해서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살아남는다 해도 후유증이나 장애를 남기며 환경을 오염시켜 피해를 퍼뜨리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비인도성 때문에 보유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는 2017년에 '폐기 완료'를 선언했다. 이번 의혹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있지만 확증은 없다. 남을 위협하고 상처 입힌다는 이유로 각종 무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ABC 무기(Atomic(원자), Biological(생물), Chemical(화학)의 머리글자로 묶어서 부르는 대량 살상 무기)는 특히 더 악질이다.
화학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개발에 공헌했던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년)는 '화학 무기의 아버지'라 불렸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공기 중의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명한 덕분이다.
그 이름을 따서 하버법(또는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암모니아로 질소 비료를 만들 수 있다. 질소 비료는 식량 생산에 혁명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굶주림에서 구했다. '만약 하버가 없었더라면 지구의 인구는 30억 명 더 적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과학은 빛과 어둠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하버의 생애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아주 잘 보여준다. 비료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화학 무기가 태어났다. 게다가 암모니아로 만든 질산도 폭약으로 모습을 바꿔 전쟁에 사용됐다. 무엇보다 인간이 과학의 결실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좌표축을 찾는 여행
드라마 북쪽 고향에서가 방송 40주년을 맞이했다. 도시에서 자란 초등학생 준과 호타루가 아버지 고로에게 이끌려 홋카이도 후라노의 폐가로 이사한다. 혹독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각본가 구라모토 사토시 씨는 39세에 도쿄를 떠나 인생의 절반 이상을 후라노에서 살아왔다. 이야기에는 이 땅에서 체험한 것들과 만난 사람들의 삶이 투영되었다.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알고 싶어서 숲속 아틀리에로 구라모토 씨를 방문했다.
그는 '서둘러서 변화하려는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서 좌표축을 찾고 싶어서' 각본을 썼다고 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용납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문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드라마가 완결된 후에도 구라모토 씨는 계속 생각했다.
구라모토 씨는 전쟁 후 일본의 발전을 '재팬'이라는 이름의 슈퍼카에 비유했다. "그런데 깜박 잊고 달지 않은 게 있어요. 브레이크랑 후진기어죠. 멈추지도,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이주했을 당시 후라노는 이런 시대가 오기 전의 소박함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집으로 통하는 임간 도로에 큰 바위가 묻혀 있었다. 한번은 불편하다고 동네청년에게 털어놨더니, 청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먼저 사방으로 바위 주변을 파세요. 통나무를 지렛대로 쓰면, 하루에 3cm, 열흘에 1m 정도는 움직일 거예요." 편리함과 스피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와는 선을 긋는 사람들의 삶, 자연과 마주하는 모습은 드라마를 쓸 때 축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라노도 변하고 있다. 고령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별다른 이견 없이 진행되고, 세대교체와 함께 선조들이 개간한 농경지를 내놓는 사람이 늘었다. 시가지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고급 맨션이 생겼다. 땅을 산 외국인이 투자 목적으로 건물을 짓기도 한다.
"자연은 너희들이 죽지 않을 만큼 매년 충분히 먹여 주잖아. 자연한테 받아. 그리고 겸손하면서 검소하게 살아." "죽어도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머리를 굴려서 만드세요. 그게 귀찮으면 썩 갖고 싶은 게 아니었다는 뜻이니까요." 구라모토 씨가 고로의 대사를 빌려서 담아낸 마음과 정반대로 사회는 성급하게 나아간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빼앗아 '크게 갖고 싶지도 않은 것'을 만들어 내며, 그것은 머지않아 대량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파괴한다.
나는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동시에 일어난 2011년에 북쪽 고향에서를 처음으로 봤다. 생각 이상으로 심했던 진동과 쓰나미가 과학 기술의 틀을 모아 놓은 시스템을 쉽게 부수었다. 문명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들이었고, 드라마의 메시지는 사무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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