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윤카페
 
지은이 : 윤영희 (지은이)
출판사 : 책구름
출판일 : 2023년 10월




  • 20년 간 일본 도쿄에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삶의 의욕을 잃었던 저자가 창업을 통해 진짜 자기다움을 찾고 온전한 자립과 자유에 다다른 법칙을 공개합니다.


    도쿄 윤카페


    나는 어쩌다, 창업했을까

    이런 가게, 어디 없을까

    일본에서 20년을 살아온 나에게 어떤 요리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가정 요리!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레스토랑이나 유명 맛집의 음식보다 어느 나라 요리가 됐든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보통의 가정집에서 만든 요리가 나는 가장 좋은 음식이라 여기고 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네 종류의 음식을 각 나라의 정갈한 가정식으로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우리집 주변에 있다면? 엄마들이 만들어주는 집밥처럼 외국 음식이지만 불필요한 조미료나 첨가물을 넣지 않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살림 잘하고 야무진 외국인 주부가 사는 집에 들러 한끼 잘 얻어먹고 나오는, 그런 느낌이 드는 가게가 있다면?


    한류는 유행이 아니라 이제 문화로 정착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와 경험도 20년 전보다 훨씬 나아져 한국 음식을 찾는 일본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도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한국 사람인 나, 주부의 입장에서 가족과 함께 한 끼 제대로 먹고 싶어 찾게 되는 한국 음식점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푸짐한 한정식까진 아니더라도 비빔밥, 찌개 백반 같은 간단한 음식도 마음에 들게 만들어 내놓는 가게가 참 없다.


    그나마 조금 괜찮은 한국 음식이나 한국식의 중국 음식을 먹으려면 도쿄 도심이나 신오쿠보까지 맘먹고 나가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가게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것 이 지금의 윤카페를 꿈꾸게 된 이유였다. 가정의 맛, 청결, 친절, 사람을 소중하게, 이 네 가지를 기본으로 지키는 가게(이젠 영업 이념이 된 네 가지 원칙). 한국인 가정의 평범한 주부가 차려주는 정갈한 식사를, 소박하지만 청결한 공간에서, 따뜻하고 친절한 한국식 서비스를 받으며, 안심하고 한 끼 먹을 수 있는 그런 가게.


    나만의 체력 관리 비법

    창업을 결심하고 난 뒤 가사 분담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체력 관리였다. 부모님이 마지막을 보낸 병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나는 건강과 체력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해마다 근육양이 줄어든다. 노인이라도 평소 가벼운 운동으로 기본적인 체력을 유지하고 근육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정신력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이 모두는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기본적인 체력과 지구력은 있지만 집안일만 해도 매일이 버겁고 힘든 내가 과연 운동을 할 수 있는 걸까? 마침 파트타임으로 다니던 직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함께 모여 점심을 먹을 때면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몇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 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하던 사람도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운동 효과가 있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다. 운동화를 새로 한 켤레 사서 시간만 나면 걷기 시작했다. 욕심내지 않고 처음엔 2킬로만 걸어보고 다음날엔 같은 2킬로 거리라도 조금 빨리 걸어 소요 시간을 단축시켜보고 하는데, 아니 이게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지는 게 아닌가! 몇 주일 꾸준히 하다 보니 다리 근육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같고, 걷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무엇보다 지겹고 귀찮기만 하던 집안일도 의욕적으로 단숨에 해치우게 된 게 좋았다.


    내 가게를 꿈꾸는 분이라면 다른 복잡한 것들을 준비하고 고민하기에 앞서 체력을 기르라고 꼭 조언해주고 싶다. 운동이 일상이 되면, 삶이 달라진다. 체력이 일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도 배우고 돈도 벌고

    이제 체력도 장착했으니 실전으로 돌입했다. 틈만 나면 괜찮은 가게를 검색하고 알바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당시 나에게 깔맞춤인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도쿄 순두부. 한국의 찌개 요리인 순두부 전문점으로 일본 전국 대형 백화점에 30개가 넘는 점포가 입점해 있었다. 중국, 대만, 베트남 등에도 체인점을 늘려가는 회사였다. 한국 순두부 요리가 메인이지만 일본 기업답게 손님이 국물의 베이스가 되는 스프 종류나 매운 정도를 각 단계별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돋보였다. 폭풍 검색을 거쳐 마침 우리집에서 전철로 8분 거리의 백화점에 체인점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시작한 백화점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겨우 1년 동안이었지만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일본 내에서 한국 음식이 어떻게 인식되고 소비되고 있는지, 어떤 메뉴와 맛과 서비스를 원하는지, 주문이 밀려올 때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직원들 간의 팀워크는 어떻게 다져지는지, 체력과 정신력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매출과 재료비와 인건비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점장과 요리장, 대학생 알바생들이 어마어마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면접을 볼 때 점장이 ‘루미네라는 이 백화점이 일본 기업 중에서는 서비스 수준이 아주 높은 편이라 여기서 일을 배우면 어딜 가서도 뒤지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사실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을 갓 넘긴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을 보며 진짜 일을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배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게 상황에도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고, 그러면서도 대기 중인 손님들과 농담을 나누며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고, 조리 담당 직원이 구원 요청을 하면 단숨에 달려가 요리 하나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들의 대단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자기가 담당한 일을 완벽하게 해냄과 동시에, 나같이 어리바리한 신참 직원들의 실수까지 바로잡아주고 알기 쉽게 가르쳐준다.


    40대 후반에 갓 스물이 넘은, 몸도 뇌도 생각도 쌩쌩하고 빠릿빠릿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름 생각만은 젊게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실제 젊은이들 속에 있다 보니 내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가게를 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주방 청소나 설거지 같은 아무리 힘들고 사소한 일도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해냈다.


    카페나 음식점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꼭 현장에서 먼저 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주 잘되는 가게라면 왜 이 가게에 손님이 많이 오는지, 주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사장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이 일이 정말 맞는지,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



    나만의 창업 비결 -‘넘버원보다 ‘온리 원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20년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도쿄의 마치다 시에 있는 작은 건물을 내 이름으로 계약했다. 전 주인에게 지불한 권리금, 부동산 계약에 필요한 보증금, 화재보험금, 몇 달치 월세 등을 합해 3,500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난 뒤 가게는 드디어 내 명의가 되었다. 보건소에서 개업 허가를 받고 세무서에 개업 신청서를 제출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나는 그제야 일본 사회를 제대로 경험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 며느리가 아니라 진짜 내가 된 것이다. 그것도 외국에서.


    1층은 카페, 2층은 한국어 교실

    내가 계약하기 전 2년 정도 한국 식당으로 운영되었던 이 가게는 밤 11시까지 영업을 했다고 한다. 일본 내에 있는 한국 식당들이 거의 그렇듯이 저녁에는 삼겹살에 술을 먹는 손님들이 많다. 그래선지 계약을 하고 완전한 내 가게가 되어 다시 살펴본 가게 내부는, 내가 손님처럼 와서 구경하듯 봤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홀 식탁은 물론 주방 전체가 기름때 범벅이었다.


    남편과 나는 긴 장화를 신고 특수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일단 청소부터 시작했다. 주방 설비들을 조금씩 옮기며 정리를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곳의 위생 수준은 끔찍할 정도였다.


    오래된 건물이긴 했지만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한 편인데도 관리를 제대로 못 해 2년도 안 되어 가게 문을 닫고 만 것이다. 내가 만약 이곳을 정리하고 떠날 때는 정성스럽게 잘 관리해서 마무리를 잘하고 다음 사람에게 이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겨우겨우 1층 청소와 정리를 끝내고 나니 이제 2층. 그곳은 교실이나 회의 공간으로만 사용했는지 리모델링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간단하게 쓸고 닦는 정도만으로 청소는 끝났다.


    오픈하고 1년 동안은 전 가게 주인이 남기고 떠난 문제들이 틈만 나면 드러났다. 코로나와 함께 그 문제들은 나를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게 했다. 선심 쓰듯 가게에 남기고 간 커다란 TV는 전원을 연결하고 보니 고장이 나 있었고 업무용 냉장고는 너무 낡아 쓰기가 두려웠다. 한마디로 전 주인은 쓰레기를 남기고 간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러워도 상심해 있을 새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오픈 당시는 몹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일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 채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수많은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교차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열심히 한 달 장사를 하고 났더니, 세상이 갑자기 난리가 났다.


    오픈 한 달 만에 덮친 코로나 사태

    2020년 4월, 일본에서는 ‘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었다. 잠시 유행하다 잠잠해질 거란 예상과는 달리 사태는 심각했다. 일본 정부는 각 음식점과 백화점 등에 임시휴업을 하거나 야간시간 단축 영업을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며칠 고민하다 우리 가게도 저녁 5시까지로 영업 시간을 단축, 테이크아웃 영업만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4월 초부터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긴급사태 기간이 시작됐다. 나와 조리가 어느 정도 가능한 주부 직원 한 사람만으로 인원을 줄여 테이크아웃 영업을 시작했다.


    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고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도 거의 재택근무를 하면서 차차 도시락이나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러 손님들이 가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워낙 많고 테이크아웃 영업을 하는 가게도 많지 않다 보니 배달 음식이나 도시락을 찾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음식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가게는 손에 꼽을 정도라 승산이 있어 보였다. 가격을 저렴하게 내린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는데 하나 살 걸 두 개, 세 개 골라 다양하게 맛을 보고 다음 주문으로 이어졌다.


    김밥, 야채전, 김치전, 잡채, 양념치킨, 김치찌개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흰 밥 위에 김자반을 뿌리고 잡채, 전, 양념치킨, 삼색나물, 김치로 구성된 도시락이었다. 하나의 도시락으로 우리 가게의 기본 메뉴들을 다 맛볼 수 있고 가격까지 부담 없으니 손님 입장에서도 득이 되고 가게 입장에서도 한번에 음식 맛을 소개할 수 있어 윈윈이 되는 효자 메뉴였다.


    다른 가게에는 없는 한국 요리 테이크아웃은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직원과 나, 둘이서 점심 먹을 새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리를 하고 또 했다. 4월 말부터 5월 초 기간은 일본의 황금연휴로 사람들이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시기이다. 여행도 못 가고 친구나 친지들과도만날 수 없고 아이들까지 집안에서 갇혀 긴 연휴를 보내게 된 터라 테이크아웃 음식이 인기였다. 이 연휴 기간 동안, 가게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다. 만드는 대로 팔리고 가게 밖에서 1시간 가까지 기다렸다 사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너무 맛있다며 거의 매일 음식을 사러 오는 손님들, 감염 위험 때문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도시락을 기다리는 임산부 손님, 매일 비빔밥을 사러 오셨던 90세가 넘은 할아버지 손님, 곧 결혼할 예정이었는데 약혼자가 인도에 있어 생이별 중인 아가씨 손님…. 장애 아이가 있어 외출이 어려운 이웃집 손님에겐 직접 배달도 해드렸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더 살갑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시원한 쥬스나 커피를 두고 가시는 손님도 있었고, 윤카페 도시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작은 선물도 주시고, 아침에 출근하면 가게 입구에 ‘어제 잘 먹었어요라는 메모와 함께 초콜릿이 든 작은 쇼핑백이 걸려 있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이렇게 달콤한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싶어 신기하고 이상하지만, 뿌듯하고 보람된 시간들이었다.


    ‘넘버원보다 ‘온리 원의 시대

    글로벌 기업 ‘켈리델리 창업자 켈리 최는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매일매일 변합니다. 세상이 변하는 이상 기회는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도전하는 이유는 세상이 매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창업자들은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형용사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에 소비자가 반응하게 만드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모두, 그저 ‘자기다운 것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이 가진 경쟁력은 무엇일까. 유명했던 음식점들도 줄줄이 폐업하는 시대에 코로나의 위기마저 뚫고 외국인에다 중년의 여성이며, 창업 왕초보에 요리와 연관된 자격증도 하나 없는, 좋은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3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요리가 일본 사회에 붐을 일으킨 것은 한참 되었지만 가까운 곳에서 마음에 드는 한국 음식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나는 이 부분을 공략했고, 저렴한 대중 식당의 한국 요리 이미지를 좀 더 깔끔하고 감성적인 카페 분위기에서 먹는 요리로 콘셉트를 정했다. 한국인 주부가 사는 가정집에 놀러가 따뜻하고 정갈한 한 끼 식가와 차를 대접받을 수 있는 가게. 가게에 들어서면 깨끗한 앞치마를 한 주부가 손님을 맞이하고, 푸근하지만 세련된 한국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우리 가게에 대한 리뷰나 동네에 난 소문을 들어보면, 지금 가게를 찾는 손님들 대부분이 내가 의도했던 이런 부분을 그대로 느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없는 것을 일단 찾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기본적인 성공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윤카페를 운영하는 일은 결국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브랜드라고 해서 이 업계에서 넘버원이 되는 게 목표는 아니다. 등수로 따진다면 나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화려한 경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넘버원이 아닌 ‘온리 원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남들 하는 거, 사는거 훔쳐보고 질투할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 그것만이 온리 원이 되는 지름길이다. 내가 유심히 지켜본 가게 주인들의 공통점을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자기다움이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시대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도 넘버원이 되기보다 온리 원이 되도록 하는 교육과 환경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안에 있는 온리 원을 찾는 것!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삶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고 있다. 시대가 변하는 이상, 나에게도 기회는 온다.



    창업 후 달라진 것들과 ‘윤카페의 미래

    도쿄에서 윤식당처럼 살아요

    나영석 피디가 기획한 예능 프로 <삼시세끼>가 다양한 시리즈로 인기를 끌더니, <윤식당>과 <윤스테이>, 2023년에는 BTS의 V까지 합류한 <서진이네>로 이어졌다. 해외에서 작고 예쁜 식당을 하며 현지에서 직접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의 로망을 실현해주는 데까지 진화한 것이다.


    <윤식당>의 부엌은 멍하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새로운 곳으로 살러 간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영화 <카모메 식당>처럼 한 번쯤 낯선 나라에 가서 아기자기한 부엌에서 요리를 해보았으면, 예쁜 식당의 주인도 되어본다면 하는 낭만적인 상상들. 그러다 보면 뽀샤시한 그 화면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현지에서 식당 허가를 받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조리 자격증은 있을까? 영업 허가 과정은 제대로 밟았을까?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저 정도 준비만으로 덜컥 시작해도 되나? 현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방송이 그려내는 모습은 얼마나 소꿉장난 같을까? 주부인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모습은 너무 어설퍼 보였는데 어쩌면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윤식당>이란 예능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소설에서 그려낸 부엌은 이국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반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의 부엌은 그리 아름답지도 설레지도 않는 공간이다. 20년차 주부인 나에겐 온갖 정신 질환이 발병하는 진원지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요리를좋아하지만 식구들의 끼니를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매일매일 차리다 보면 밥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강박증처럼 신경이 예민해지고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곤 한다.


    가게 일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대학생이 된 큰아이가 남편과 함께 저녁 차리는 걸 많이 도와준다. 일주일에 두어 번 나는 차려주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도 늘 쉽지가 않다. 오늘 저녁을 대충 잘 넘겨도 내일 저녁이, 모레 저녁이 또 걱정이다.


    사는 게 이런데 <윤식당> 속의 부엌을 또 넋 놓고 들여다보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지극히 사는 냄새 가득한 우리들 부엌이라 해도 때 되면 밥 짓는 냄새가 솔솔 나고 국이나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풍경은 힘든 일상 속의 고맙고 소중한 풍경이다.


    ‘윤카페를 오픈하고부터는 아이와 남편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에 가족들을 끼워 맞추려고 하지도 않고 집을 나의 취향대로 유지하려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우리집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곳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정리정돈과 청결이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 해도 대충대충이 편한 아이들과 남편은 그들이 만족하는 대로 집을 사용하고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청결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은 강박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편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게 편하고 아무리 좋다 해도 함께 사는 식구들이 지나치다고 느끼거나 불편해한다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잔소리와 간섭을 하지 않으니 가족과의 관계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걸 느낀다.


    전업주부 시절엔 가족에 대한 집착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것 같다. 가족과 더 잘 지내기 위해서라도 가족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제력과 사회성을 가지는 만큼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내버려두되 항상 지켜보기.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부모의 이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게를 한다는 건 치열한 현실이다. 그러나 <윤식당> 스페인 편에서 그랬듯이 푸르고 멋진 해변가를 달리며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박서준처럼, 아름다운 타일 바닥의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는 정유미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그런 반짝이는 일상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의 윤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가득하고, 맛좋은 커피도 충분하고, 단골손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다 주는 일본 전국 각지의 다양한 디저트들, 무엇보다 마음씨 착하고 성실한 직원들과 마음 맞는 한국 손님들과 한국어 교실 수강생들, 이쁜 한국 그림책들과 내가 쓴 책들, 읽은 책들, 귀여운 조명과 소품들, 좋은 음악들. 그렇다. 지금 나는 도쿄에서 <윤식당>처럼 살고 있다. 꿈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된 윤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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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