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의 가르침 (화이트 에디션)
 
지은이 : 세이노(SayNo) (지은이)
출판사 : 데이원
출판일 : 2023년 03월




  •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 세이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와 성공에 대한 통찰을 전합니다.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이번 정식 출간본은 저자의 최신 생각을 담아 인생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수준이라는 것을 “지워 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2022 삶이 그대를 속이면 분노하라

    1948년 가난한 어촌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식당 등에서 일하였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폭력이 심한 남편을 피해 단돈 100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식모살이를 떠난 여자.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며 대학을 다녔고, 76년 미美 육군에 들어가 소령으로 예편, 50세가 넘은 나이에 하버드 박사과정에 다니는 여자, 서진규. 그녀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읽어라―에서 ‘이만큼 성공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반항심과 복수심이다.라고 쓰고 있다.


    수차례 그래미상과 MTV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몇 개씩 수상한 미국의 백인 랩 가수 에미넴(Eminem). 그 역시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생후 5개월 만에 아버지는 도망갔고,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는 완전 떠돌이였다. 당연히 그의 노래에는 어머니나 애인에게 쌍욕을 퍼붓는 내용이 나오며, 대부분의 가사는 아주 반항적이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며 욕으로 도배되어 있어 2000년 미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꼽힐 정도였다.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에미넴의 앨범을 즐겨 듣곤 했음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히 유감이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도 미운 사람이나 짜증나는 사회를 없애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는가? 나는 학창 시절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을 죽이고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자기 방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심정을 이해하는가?


    그러나 그렇게나 세상을 욕하고 가래침을 줄곧 뱉었지만 정작 나 자신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눈이 시뻘겋게 일확천금만을 노리며 한탕 할 기회만 노렸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꿈틀거리기만 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다시 어제였다. 조그마한 차이도 없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나의 삶이 너무나도 한심하였고 끝내는 저주스러웠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분노하였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5월의 찬란한 햇살 밑에서 향긋한 꽃 내음을 그대로 들이마시며 어깨를 펴고 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만일 당신이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것들에 현혹되어 채팅, 게임, 공짜 사이트, 복권, 유명 브랜드 상품, TV, 술, 도박, 경마 등 일확천금과 한탕주의의 망상에만 몽롱하게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이 바로 그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이다. 그렇게 삶에 질질 끌려다니며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들이여. 이제는 그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아라. 비겁하게 외면하지 말라. 그 삶이 자랑스러운가? 이제는 그 삶에 대해 분노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돈독이 올라야 부자가 되는 줄 아는가? 투자 기법을 몰라서 부자가 못 되는 줄 아는가? 절대 아니다.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꿈 깨라. 쇠고랑을 찰 기회만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광고만 보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여. 메일만 보내면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떠드는 자들이여. 편안하게 빨리 돈 벌고 싶어서 애를 태우는 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한시라도 빨리 그 허황된 몽상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피와 땀과 눈물과 시간 없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 같은 순간적인 인스턴트 재테크 지식만 찾는다. 자기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투자 기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재에 밝지 못한 때문으로 치부해 버린다. 당신 생각대로라면 이른바 재테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이어야 하는데 그들의 평균 재산은 다른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삶의 노예가 되어 자기 생활과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2022 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마라

    사람들은 ‘하면 된다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군 제대 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학생도 아니었다. 홀로 세상에 던져진 가난한 청년에게 ‘하면 된다라는 말은 정말 사기나 다름없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 벅차게 안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라면 살 돈도 없어서 라면 스프만을 얻어다가 양은냄비에 물을 붓고 연탄불 위에 끓인 뒤 거기에 다 식어 빠진 밥을 김치도 없이 계속 먹어 보아라.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살맛이 나겠는가.


    스물세 살의 어느 우울한 봄날이었다.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는 남의 집 차고에서 살면서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미군 부대 물건 판매 등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의 어느 여름날, 나는 허름하지만 마당까지 있는 집과 자가용을 처음 샀다. 융자를 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나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 될 것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망, 좌절이 절망 속에서 계속 쌓이면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는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처한 고통이나 위기 상황, 상실감 등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잘못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오해했었으니까.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떨어지던 중 비쩍 마른 두 팔로 온 힘을 다해 세상 속으로 날갯짓을 시작하였을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절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우리는 왜 절망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현재의 처지에 비추어 미리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류대를 못 다닌다고 해서 10년 후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의 빚을 5년 후에도 못 갚을 것이라고, 지금의 봉급으로는 평생 남들처럼 못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여 체념한다. 지금 가난하므로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미리 계산기를 두들겨 대면서 미래의 삶에 절망적인 번호를 매기고 만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러저러하므로 5년 후, 10년 후에도 이러저러할 것이기에 희망이 없다고? 너무 계산이 빠른 것 아닌가?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신의 영역인 미래를 스스로 투시하고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나 절망적이었던 내가 부자로 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 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절대로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는 따위의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 그것 역시 미래 방정식에 현재의 시간을 대입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며, 패자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뭘 배우든지 간에, 뭘 하든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미래는 그 암흑의 빗장을 서서히 열어 주기 시작할 것이며 조만간 그 빗장 너머에서 비치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2 일의 종류에 따라 부자 되는 길이 다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재테크 기법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재테크 기법은 달라져야 한다. 나는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만 볼 때 이 세상의 일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첫째,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봉급이 인상되는 일이 있다.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 등과 같은 직업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데, 본인이 노력을 많이 하여도 경제적 대가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비슷한 대가를 받기 십상이다. 승진 역시 공정치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계발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이런 일에 종사할 경우에는 젊었을 때부터 남에게 돈을 주고 시키는 일들을 직접 배워서 실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도꼭지 하나도 직접 갈 수 있어야 하며 옷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재테크에 일찍 눈을 떠야 하며 빚을 지면 절대 안 된다. 젊었을 때 악착같이 절약하고 투자는 보수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모험적 투자가 잘못되었을 경우 그 손해를 만회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재테크를 통해 종잣돈이 마련되면 부업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투자가 더 좋다고 믿으며, 때문에 주식보다는 부동산 투자를 권유한다.


    둘째,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일에 대한 대가가 사회적으로 거의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일이 있다. 경비, 운전기사, 건설 노동자, 농부, 식당 종업원, 급사, 말단 사원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초보자와 경험자가 받는 보수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큰 것은 아니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과 연관된 모든 일들을 스스로 배워 나가야 몸값이 올라간다. 즉,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몫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주어진 것만 하면 절대 안 된다. “경리 업무뿐 아니라 세무, 회계, 컴퓨터 실무에 대해서도 도사가 되어라. 당신이 없으면 회사가 마비될 정도로 일을 하고 지식을 쌓아라.” 주어진 일 이상을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재테크보다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같은 일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이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 있다. 능력별 대우를 실시하는 회사도 이 부류이고 의사, 변호사, 학원강사, 건축사, 영업사원 등처럼 한 가지 지식을 계속 우려먹는 경우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수입이 고객의 숫자에 비례하여 늘어나므로 무엇보다도 고객에게서 신뢰감을 받아야 한다.


    전문직업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도록 만들어야 하므로 때로는 언론 플레이도 필요하고 고객이 갖는 이미지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책을 직접 출간하는 일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수익 창출을 직접 이룩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여야 몸값이 비싸진다. 일을 통해 종잣돈을 마련한 뒤에는 전통적인 포트폴리오(현금, 동산, 주식에 골고루 투자하는 것)에 따라 재산 증식을 꾀하는 것이 좋다.


    넷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 곧 경쟁자에 의하여 잡아먹히게 되는 일이 있다. 열심히 경쟁자를 따돌려야 하므로 일에 미쳐야 한다. 사업가, 장사꾼이 이 부류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경험이 중시되며 돈의 흐름이나 속성에 대하여서는 물론,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여야 한다. 이런 부류의 일은 혼자서 시작하여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 나갈 수도 있으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 밑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경쟁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경쟁자들을 따돌릴 줄 안다. 이런 일에 종사하려면 실제 전투에 하루라도 빨리 참가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사람들은 일 자체를 통해서도 큰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 번 돈을 갖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여 부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만든 주식을 공개하여 부자가 되기도 한다. 부자들은 대부분이 네 번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다.


    한창 잘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알거지가 되는 경우 역시 이 부류에서 제일 많다. 사업이 기반을 잡으면 가족이 살고 있는 집만큼은 사업의 승패와 무관하도록 만들고 아예 없는 재산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사업체의 시재(cash flow)도 직접 챙겨야 한다. 특히 가장 잘될 때가 가장 망하기 쉬운 때라는 것도 잊지 마라.


    다섯째,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영역이 조금씩 더 넓혀지거나 하던 일이 다른 일로 바뀌는 일이 있다.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봉급생활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자기 몸값을 계속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 첨단 직종이나 컴퓨터 관련 직종의 경우는 물론이고 다른 일반 직종에서도 신입 사원 당시에 갖고 있던 지식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만 한다면 퇴출 대상 1호가 된다. 우선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귀신이 되면서 상급자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사장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직장이라고 하여 등한시하면 절대 안 된다.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회에 나와 독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자로 가는 길목에서

    돈, 똑바로 알자

    2022 돈에 대한 위선을 버려라

    내가 가난하였을 때 이 사회에서 이른바 존경받는다는 사람들은 내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어느 일을 하든지 간에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이 즐겨 들려주던 예화는 “두 명의 석공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은 부처님을 위한 석탑을 만든다는 보람을 갖고 일을 하기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석공이 아니었다. 폼 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자기들은 챙길 것 다 챙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 그건 위선이며 자기기만이다. 보람을 느끼라고? 프랜치스처럼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나도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일한 대가로 받는 보수가 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면 그는 대가를 보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일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은 꺼려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미화시키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는 아름답다. 프로 선수는 돈 때문에 뛴다. 또 돈 때문에 뛰기에 프로가 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받고자 더 많이 노력한다. 프로 선수에게 돈은 그 노력에 대한 대가이며 자기만큼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별을 원하는 자존심이며 명예이다. 돈을 적게 받으면 당연히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명예에 금이 간다.


    나는 그런 위선자들 가운데서 능력 있는 프로를 보지 못했다.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삶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낮게 날면서 벌레부터 먼저 잡아먹자고 작심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다. 월 스트리트 금융기관들에서 신입 사원 면접을 볼 때 지원 사유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답하면 모조리 불합격이다. 돈을 벌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만 합격된다. 부자가 되려면 돈에 대한 가식을 버리고 프로가 되라. 배고픈 갈매기는 높이 날려고 해도 기운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려면

    2022 변화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

    부자들에게는 불행하고 가난하였던 과거가, 나의 경우도 그렇듯이 종종 훈장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담은 불행한 상황을 자기 힘으로 역전시켜 행복한 상황으로 만든 사례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난하여 끼니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는데 노력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곧 그들의 삶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었음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푸세식 변소에서 냄새를 참으며 용변을 보던 사람이 수세식 양변기에서 쾌적하게 용변을 본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돈이 많아지면 불편하고 구차한 환경이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변할 뿐이다. 생활 수준이 높다고 해서 높은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 주고 나서 “꿈을 가져라” 혹은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종종 마치 명예나 지위, 돈, 학벌 등에 대한 꿈과 야망이 성취되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성공하게 되면 기쁨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잠시뿐이며 그 어떤 성공이건 간에 결코 행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성취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뿐이지 그 성취감이 행복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갔다고 해서 행복해졌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이 버는 돈의 액수가 작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신이 돈을 얼마나 벌든 간에 삶에 변화가 없고 뿌듯함이 없다면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증가시키는 노력을 할 때 행복은 매일같이 주어지는 법이며 덤으로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 변화의 방향을 어느 쪽에다 두는가에 있다.


    돈과 관련되지 않은 것에 그 방향을 두고 있다면 당연히 돈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변화가 주는 뿌듯함은 곧 돈 문제로 인하여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실한 신앙인들처럼 자족과 감사의 생활을 영위하며 살 ‘자신이 있다면(사도 바울같이 말이다) 계속 그렇게 돈과 거리를 두고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의 한 형태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받는 쪽에다 변화의 방향을 두고 있다면 그 대가 자체보다는 변화의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 관심을 두어라. 그렇게 하면 행복감과 뿌듯함을 매일 맛볼 수 있고 돈은 저만치에서 뒤따라오게 된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여 삶과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 언제나 나는 뿌듯함과 행복감에 충만하였다. 30대 초에 내가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가 새벽 4시에 사무실을 나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집으로 가면서 어둠 속에서 느꼈던 그 가슴 뿌듯함을, 20대에 내가 밤을 새워 가며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새벽녘이 밝아 오는 가운데 끝냈을 때 느꼈던 그 환희에 찬 뿌듯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돈? 돈은 그 뒤에서 성큼성큼 따라왔다.



    삶의 전반에 조언이 필요할 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2022 외로움을 즐겨라

    우리가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노라고 굳게 결심한 이후 우리의 발길을 가장 방해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부자가 되고자 마음 굳게 먹었음에도 그 굳은 결심을 산산조각 깨뜨려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그 어떤 목표이든 간에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수없이 겪었을 통과의례이다.


    혼자서 노력하는 과정 중에 창밖에 비치는 찬란한 햇빛, 하얗게 쌓인 눈, 후드득 떨어지는 소나기, 그런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때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 보고 싶은 얼굴 등등이 스스로를 외롭게 하고, 이어서 “내가 도대체 꼭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장담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정진하는 과정을 이미 시작하였거나 시작하려고 한다면 이제 곧 문득문득 외로워질 것임을.


    아, 하지만 명심해라. 이해인 수녀마저도 〈존재 그 쓸쓸한 자리〉에서 이렇게 시를 읊고 있다는 것을―“누구 하나 내 고독의 술잔에 눈물 한 방울 채워 주지 않거늘. …매일 아침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거늘, 그래도 외로운 거야 욕심이겠지. 그런 외로움도, 그런 쓸쓸함도 없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


    그러므로 이제는 고독과 외로움을 친구로 삼아라.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고?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전혜린이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에서 말하듯 “가끔 몹시도 피곤할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 사람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당신이 외로움에 징징거리며 질질 짠다면, 적어도 당신이 꿈꾸는 어떤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간 것임을 알아라.


    당신이 외롭게 살고자 할 때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은 놀랍게도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당신의 옛 생활을 알기에 “새삼스레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하면서 발목을 붙잡는다. 부자가 되려면 외로움을 이겨 내야 한다. 친구는 당신에게 부자가 될 기회를 주지 못한다. 오히려 웃고 떠들며 이른바 정을 쌓으면서 부자가 될 시간만 빼앗아 간다. 그러므로 몇 년간만이라도 만나지 말고 외롭게 노력하라. 정 친구들이 그리우면 이메일을 보내라. 글솜씨도 좋아진다.


    외로움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파테마타 마테마타(pathemata mathemata)라는 말을 하곤 했다는데 고통으로부터 배운다는 뜻이다. 외로움의 고통을 즐겨라. 그 고통 없이 부자가 되는 테크닉을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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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