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지은이 : 고명환 (지은이)
출판사 : 라곰
출판일 : 2024년 08월




  • 고전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삶의 내공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길잡이입니다. 매일 10분씩 긍정적인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며 삶을 바꾼 저자의 이야기가 우리를 성장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

    하루를 살더라도 내 의지로 살 것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 『돈키호테』. 읽어보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돈키호테』는 내가 강연 때마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이다.


    『돈키호테』는 아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바로 돈키호테의 나이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나이를 쉰에 가까웠고로 설정했다. 왜 하필 쉰이었을까?


    16세기 유럽인의 평균 수명나이가 30~40세임을 감안하면 쉰이라는 나이는 지금 기준으로 90세 이상이다. 90세면 죽음에 가까운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죽기 직전에 돈키호테는 깨닫는다. 본인이 기사로 태어났음을.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고 말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90세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직관이 생긴 것이다. 이전까지의 자신이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린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직관이다. 책의 힘이다. 돈키호테는 읽고 싶은 기사 소설을 구입하느라 수많은 밭을 팔아버릴 정도였다고 할 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 이렇게 책을 읽은 돈키호테는 결국 자신이 남을 도와주고 악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기사로 태어났음을 깨닫는다.


    16세기 유럽의 산속은 늑대, 곰 등의 맹수와 산적들 때문에 하루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돈키호테가 모험을 떠나려 하자 친척과 하인 등 주변 모든 사람이 말렸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어쩌면 그 모험이 하루를 넘기지 못할 줄을 돈키호테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알았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하루를 살아도 내가 믿고 내가 깨닫고 내가 결정한 삶을 살아야 함을. 그 신념 앞에서 죽음도 두렵지 않음을. 좀 더 살기 위해 몸보신하며 누워 있는 것보다 어딘가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 사람들을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게 중요함을.


    인간은 안정을 원한다. 그런데 진정한 안정은 어떤 상태인가? 가만히 있는 것인가? 인간은 계속 변화하는 동물이다. 변화는 움직임이다. 자전거가 계속 움직여 앞으로 나아갈 때 안정적인 것처럼 인간 역시 계속 움직여야 안정적이다. 한자리에 머물러 안주하면 녹슬어버리는 게 인간이다. 고로 인간에게 진정한 안정은 움직임이다.


    나 역시 교통사고로 죽음 앞까지 갔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34년간 끌려다니며 살아왔음을. 남의 눈치 보며, 남이 시키는 대로, 남들이 옳다고 말해주는 방향으로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그냥 휩쓸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다. 기적이 일어나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했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직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깨달았다.


    돈키호테는 책을 읽고 깨달았다.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지는 게 훨씬 아름다운 삶이라는 사실을. 조카딸과 시종이 해주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좀 더 오래 살아보려고 함은 그저 녹슬어가는 것이지 진정으로 삶을 사는 게 아님을 깨쳤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떠났다. 잘 죽기 위해서.


    나도 이 마음을 너무도 이해한다. 나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휴양지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쉬고 즐기며 생을 마감하지는 않겠다. 죽는 날까지 메밀국수를 반죽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고, 사색하겠다. 죽음 앞에 가보니 어영부영 녹슬어버리는 삶이 가장 후회되는 삶이었다.


    하루를 살아도 나로 살아야 한다. 나로 산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삶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의 모습처럼 살과 뼈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순간까지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내딛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닳아서 없어질 때 후회가 없다.


    유언이 끝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트를 걷어붙이며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443쪽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가 서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한다. 조르바는 죽는 순간 1초도 녹슬지 않도록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걸어가 먼 산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서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고전은 연결된다. 돈키호테가 맞이하고 싶은 죽음이 바로 이런 죽음이다. 이런 삶을 살아온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돈키호테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늙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와 함께 모험을 향해 드디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외쳤을 것이다.


    "나는 자유다. 하루를 살아도 이게 자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늘 불행한 이유

    종종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프랜차이즈를 공격적으로 확장하지 않느냐고, 그 정도 브랜드 파워면 못해도 600개 매장은 만들었을 텐데 왜 안 하냐고.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땐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지 잠깐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막연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 속도로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에밀』을 읽고 그 점이 확실하게 증명됐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 루소가 쓴 『에밀』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 지침서로 손꼽히는 책이다. 『에밀』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우리의 불행은 욕망과 능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다. ··· 『에밀』 62쪽


    욕망을 능력 아래 둬야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하다. 욕망이 능력을 넘어버리면 그때부터 고통이고 지옥이다. 가진 능력에 비해 욕망이 크다면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는 약하고, 욕망에 비해 가진 능력이 크다면 벌레와 같은 미물일지라도 그 존재는 강하다고 루소가 말했다.


    루소의 문장을 내 상황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나는 누구인가? 내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난 아직 600개 프랜차이즈를 할 능력이 안 된다. ... 명환 생각


    이건 위대한 깨달음이다. 내가 늘 행복한 이유는 자기 능력 안에서 욕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단지 속도가 느린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라 여겼었는데, 그보다는 능력 안에서 욕망을 이뤄나간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듯하다.


    자신의 능력은 10억만큼인데 100억을 원하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스럽다. 능력을 키우지 않고 욕망에 따라 100억 원을 원하면 매일 긍정 확언을 아무리 외쳐봐도 소용없다. 능력 안에서 긍정 확언을 외쳐 야 이뤄진다. 자기 능력의 크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몇 년 뒤에 자격증을 따고 승진하게 되면이라고 계산하지 마라. 그건 그때 가서 다시 계산하고, 지금 당장 얼마짜리인가 계산해보자. 그리고 답이 나오면 스스로 인정하라. "나는 100만 원짜리구나. 오케이, 좋았어. 그럼 이제 욕망하기 전에 능력부터 크게 만들자"라고.


    인간은 이렇게 발전한다. 능력을 먼저 키우고 그 안에서 욕망한 후에 이루면 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된다. 능력 안에서 욕망해야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심지어 능력이 넘치는 슈퍼 영웅이라 할지라도 자기 능력 이상을 욕망하면 불행하다. 절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지치고 고통스럽다. 자신의 능력치를 잘 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나를 믿는 것과 능력을 과신하는 것은 다르다.


    가진 능력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다가 불행해진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능력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자기 능력 안에서 얼마든지 위대하게 살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부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 안에서 남을 돕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며 행복하게 사는 거인들도 많다.


    욕망은 끝이 없다. 어디선가 멈출 수 있어야 한다. 그 경계선이 바로 능력이다. 나의 능력을 알고 그 안에서 욕망한다면 벌레가 사자보다 위대하다.


    얼마나 소유할 것인가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최고의 책이다. 이 책은 이미 제목에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느라 첫 장을 넘길 수 없었다.


    얼마만큼을 소유하면 내 존재가 행복할까? 과연 소유가 존재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소유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소유한 것으로 내 존재 또는 타인의 존재를 평가할 수 있는가? 사랑은 소유인가, 존재인가? 종교란 내가 신을 소유한 것인가, 신이 나를 소유한 것인가? 내 안에 신이 존재하는가, 내가 신 안에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만들어준 『소유냐 존재냐』는 제목만으로 이미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소유냐 존재냐,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소유가 무조건 나쁘고 존재가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균형. 결국은 균형이다.


    처음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을 때 나는 소유 30퍼센트, 존재 70퍼센트로 살겠다고 결정했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은 소유 1퍼센트, 존재 99퍼센트 느낌으로 살고 싶다. (돈을) 많이 가지지 않으려 해야, (자유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다시 읽어보면 깨닫는 부분이 달라진다. 이미 스스로 그만큼 발전하고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고전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읽을수록 내공이 쌓인다.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고 몸값도 높아진다.


    소유는 정지된 것이고, 존재는 움직이는 것이다. 독서에서 소유는 암기고, 존재는 깨달음이다. 콘텐츠에서 소유는 모방이고, 존재는 창조다. 사람에서 소유는 꼰대고, 존재는 청춘이다.


    사랑이 그토록 힘든 이유는 사랑의 본질은 존재인데 사람들은 소유하려 들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집에 살지만 각자 스스로 존재해야 하는데 서로 소유하려 들고 소유 당하

    려 한다. 소유하는 순간 사랑은 시든다. 꽃을 소유하기 위해 땅에서 뿌리째 뽑아 손아귀에 쥐어보라. 그 꽃은 금방 시들어 죽는다. 꽃을 땅에 존재하게 놔두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이 사랑이다. 꽃잎이 떨어지고 새싹이 자라나는 과정을 사람이 방해하면 안 된다.


    당신은 배우자를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가? 그 사람이 가진 것(소유)과 그 사람의 됨됨이(존재)를 몇 대 몇으로 보고 평가하는가? 많은 사람이 소유에 훨씬 비중을 많이 둔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아보면 소유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서로의 존재가 맞지 않으면 소유가 아무리 많아도 잘 살 수 없다. 어쩌면 이 때문에 이혼율이 높아졌으리라.


    돈은 움직인다. 그래서 돈을 좇아 소유하려 하면 돈이 벌리지 않는다. 돈은 계속 움직이게 해줘야 한다. 내게 들어온 돈을 꽉 쥐고 있으면 뿌리 뽑힌 꽃처럼 시들어버린다. 돈을 선순환으로 움직이게 보내줘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이 타인을 위해 돈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지구를 위해,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돈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흘러간 돈은 스스로 성장해 내게로 돌아와 품 안에 존재하게 된다.


    돈은 염소다. 방목하는 염소들이 어느새 새끼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망갈까 걱정하지 마라. 아끼고 사랑하고 예뻐해주되 가두지 마라. 갇힌 염소는 새끼를 낳을 수 없다. 나가서 짝을 만나야 새끼를 낳을 것 아닌가.


    기꺼이 내어주면 돈은 저절로 성장하고 식구를 늘려서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 그때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또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이것이 선순환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고 돈을 좇지 말라는 말이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서 돈이 저절로 벌리는 원리다.


    소유와 존재에 대한 당신만의 기준을 만들자.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법칙은 없다. 단, 공통된 진리는 있다. 반드시 소유의 비율이 존재의 비율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 『소유냐 존재냐』는 제목만 알아도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돈이 되는 고전이다.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밖으로 나가면 반드시 무언가를 얻는다

    아테나이와 스파르타가 싸운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 책은 8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책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이 책을 쓴 투퀴디데스는 기원전 460년경 살았다. 무려 2400년에 살았던 사람이 하는 말인데도 마치 지금의 나에게 하는 조언처럼 느껴진다. 투퀴디데스는 후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전쟁사를 기록했을 것이다.그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반복될 미래사다. 인간의 행동은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투퀴디데스는 24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천 년 전 인간의 행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역사 속에 기록된 인간이 어떤 사건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앎으로써 현재에 대한 해답을 찾고 미래까지 대비할 수 있다.


    주식 하면 일인자로 생각나는 투자가 워런 버핏은 "나는 인문학을 통해 주가를 예측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주식을 살 것인지, 어떤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돈을 벌고 싶은 만큼 벌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요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시 읽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위함이다.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전쟁을 살펴보면서 전쟁 중이나 전쟁 후 사람들이 움직였던 방향을 알면 현재 사람들이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이는 방향을 안다는 것은 부동산, 주식, 상품 판매의 흐름을 예측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혹자가 "당신은 돈 때문에 책을 읽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제발 돈 때문에라도 책을 읽으세요."라고 답하겠다. 물론 독서에는 그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다. 독서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책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완성된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독서하는 시간 자체가 가장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고통이 따른다. 돈을 벌겠다는 목표도 좋으니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말한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감히 얘기하는데 독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쾌락이다. 욕심이 사라지고 사랑이 충만해진다. 읽던 책의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는다. 비유와 상징, 은유로 압축된 문장이 나라는 압축 해제 파일을 통해 가슴속에 알알이 다운로드된다. 그 문장들은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뒤집히게 하고,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 순간 나에게는 시간마저 압축하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산다. 연기를 하고, 메밀국수 사업을 하고, 책을 쓰고, 강연하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많은 일을 하지만 나는 늘 여유롭다. 한 번도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이런 능력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살 수 없다. 오로지 책을 읽고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자신 안에 역량으로 쌓이는 것이다. 역량이 쌓인 사람은 빈손으로 지구 어딜 가도 거기서 부(富)를 일으킬 수 있다. 얼마나 멋진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보면 코린토스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보다 왜 주변국이 더 강한지 대중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이 날카롭다. 우리는 주춤거리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집을 비우고 나가면 가진 것을 잃게 될까 걱정하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가면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고.


    마치 지금의 우리에게 하는 말 같지 않은가. 2400년 전에도 인간 행동의 핵심은 실행이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깨닫는다. 아, 실패하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게 무조건 유익하구나.


    이 책을 읽고 또 심장이 뒤집힌 나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좋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현재의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깨달은 자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동안 움직이지 않던 몸이 절로 움직여진다. 이것이 책의 힘이다. 그저 오늘 당장 실행해야지하고 마음만 먹는다고 행동에 옮겨지지 않는다. 여러분도 경험해봤을 것이다. 심장이 뒤집히지 않으면 절대 꾸준한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2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머뭇거리지 말라고. 늑장 부리지 말라고, 움직이지 않으면 무조건 손해라고.


    그래서 투퀴디데스는 위대한 역사가로 칭송받는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남은 생애를 바쳐 역사를 기록했다. 책을 읽으면 느껴진다. 만약 타인을 위해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출세를 위해 글을 썼다면 2400년이 지난 지금 이미 투퀴디데스의 이름은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 역사의 진리다.


    역사는 결국 돌고 돈다. 고전을 읽으며 과거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역시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고전은 미래의 답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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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