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유쾌한 반란
 
지은이 : 와다 히데키 (지은이), 김소영 (옮긴이)
출판사 : 지니의서재
출판일 : 2024년 11월




  • "나이 주박"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이를 핑계로 자기 자유를 제한하는 자세가 마음과 몸의 노화를 촉진한다고 강조합니다. 30여 년간 고령자들을 진찰한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노년을 새롭고 활기찬 제2의 청춘으로 살아가는 노하우를 공유하며,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삶을 제안합니다.


    나이? 유쾌한 반란


    마음의 노화란 무엇인가

    마음은 왜 부자유를 견뎌낼까

    우리에게 자유는 매우 중요하다. 세대나 나이를 떠나 마음에 날개를 단 듯 여유가 생기고, 무엇보다 자, 한번 해 볼까.라는 의욕이 생긴다.


    그런데 마음의 자유는 의외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마음이야 항상 자유로운 거 아닌가?라며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속박당하지도 않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육체적인 자유와 비교하면 막연해서 알기 어려운 것이 바로 마음의 자유다. 그 까다로운 부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이에 대한 기준을 지금까지 예로 들었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나이에 대한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진다.


    상대방의 나이, 자신의 나이에 대한 기준이다. 이 기준이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나이의 주박도 강해진다. 상대방이나 자신을 자꾸만 실제 나이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에 맞는 행동을 스스로 강요한다. 내가 이 나이 먹고라는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노화다. 마음이 늙으면 사는 모습도 늙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먼저 실제 나이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면 외모도 마음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라간다.



    마음은 신체보다 빨리 늙기 시작한다

    기존의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마라

    마음의 노화는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한다. 뇌가 늙었을 리 없는 10대나 20대들도 마음의 자유를 봉인하려 할 때가 있다.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속으로 삼키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꾹 참으며 주변에 맞춰 행동한다. 모두 다 마음의 자유를 묶으려는 행동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교육 자체가 마음의 자유를 억눌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아이는 착한 아이,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착한 아이, 무리 안에서 튀지 않고 사회의 도덕을 지키는 아이는 착한 아이···.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흐름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어진다.


    고등 교육은 원래 그때까지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추리하고 또 시험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위에서 주입하는 이론이나 학설을 고스란히 외운다. 아무리 자유로운 발상을 해도 이론이나 학설에서 벗어나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로 인해 마음의 자유를 억누른 채로 사회에 나가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면 이번에는 협동심을 운운하니, 여기서도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며 주변에 맞춰야 오래 살아남는다. 이러니 세상의 풍조나 상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동조 압력에도 간단히 무너지는 것이다.


    주변에 맞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안전하다.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고 튀는 일도 없다. 무의식중에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도 마음의 노화가 나타났다는 증거로 보인다. 왜냐하면 설레거나 두근거리는 일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 다들 비난하겠지?

    그래도 공감해 줄 사람이 한 명은 있지 않을까?


    이 두 질문 중 어느 쪽이 더 설레는가. 분명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마음이 늙으면 그렇게 설레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안전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이의 주박에 붙들리기 쉬운 사람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익숙한 세계를 고른다. 식당에 갔을 때 처음 보는 요리와 익숙한 요리가 메뉴에 있으면 익숙한 쪽을 선택한다. 양념이나 재료, 맛을 알아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맛이 없어 못 먹을 일은 없다.


    여행이나 독서도 마찬가지다. 들어 본 적 없는 장소보다는 몇 번 가 봤던 관광지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역과 온천을 고른다. 독서할 때도 익숙한 작가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고른다. 크게 기대를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고령자라도 젊게 사는 사람들은 다르다. 결과를 아는 세계보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더 선호한다. 예를 들어 다 같이 식사하러 갔을 때 처음 보는 메뉴를 발견하면 이건 뭐지? 먹어 볼까?라며 흥미를 느낀다.


    주변에서 "시키지 마. 남기면 아깝잖아. "라며 나무라도 "그럼 같이 먹어 줘."라고 유쾌하게 답한다. 결과는 물론 다양하다. 생각지 못한 맛을 만나 기뻐할 수도 있고 입에 맞지 않아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굴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새로운 메뉴에 도전한다. 여행이나 독서나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안정감보다 미지의 경험이나 세계를 더 흥미로워한다. 매사에 두근두근 설레는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고령자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결과가 보이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소소한 데서 마음이 젊은지 늙었는지 나타나는 것 아닐까?



    꼰대의 정체

    미움받는 꼰대는 되지 말자

    참 이상하다. 이제 상대의 나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맞이하게 됐는데 왜 굳이 자신이 나서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관계를 만들까? 만약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나이가 더 많다는 걸 알아도 딱히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다. 방금 말했듯이 무리하는 거겠지?라거나 젊게 보이려고 애쓰네.라는 생각만 한다. 다시 말해 경멸감이나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이의 주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다. 상대가 자신보다 젊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거들먹거리고 싶어진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은 이해하더라도 자신이 연장자이니 과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이상한 심리다. 나이가 무슨 대수인가. 나이에는 상하 관계가 있다. 나이 많은 게 더 위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자신보다 연장자를 공경해야 한다.


    이 장유유서는 유교에서 가르치는 도덕 중 하나지만 자신이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고 우쭐대는 심리는 유교 사상과 다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상대를 깔아뭉개려는 것이다. 나이 많은 것을 무기로 생각하면 그저 외골수 고집 센 고령자가 될 뿐이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꼰대가 탄생한다.



    늙은 고독에는 불행만 있을까

    진정한 자유가 노화를 좌우한다

    직장에는 긴 세월 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이어지는 데다가 상하 관계이기도 하니 틀림없이 마음이 압박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년이 되면 한순간에 싹 사라진다. 동시에 할당량이나 책임감도 사라진다. 이런 것들도 마음에 압력을 가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해방감이 생길 것이다. 물론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할 수 있다. 재고용이든 재취업이든 70대가 되어도 일을 계속 이어간다. 하지만 그때는 새로 생기는 인간관계나 할당량, 책임감의 정도가 예전에 비하면 확연히 줄어든다.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안식처가 사라졌다는 불안감에만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행동의 반경이 줄어드니 조금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체력이 떨어져 행동반경이 줄어들었다.

    건강 검진을 받았더니 수치가 높게 나와서 식사를 제한하거나 약을 먹는 일이 늘어났다.

    귀가 잘 들리지 않거나 시력이 떨어져 생활이 불편해졌다.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신체적 노화는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아무래도 틀어박혀서 생활하게 된다. 조금도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 신체의 부자유에 속한다. 90대 나이에 신체의 부자유를 제대로 실감한다면 몰라도 아직 건강한 70대에 벌써 일흔이 넘었네. 라며 늙음을 한탄하며 살게 된다. 나이의 주박, 마음의 노화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속박해 온 조직이나 인간관계에서 벗어났다면, 그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마음껏 느껴 보자. 크게 발돋움하면서 "오늘부터 자유다!"라고 소리쳐도 좋다.


    사소한 몸의 부자유가 늘어났다 해도 그보다 훨씬 큰 자유를 얻었으니 우선 기뻐하자.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자, 이제부터 뭘 할까?라며 설레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마음이 젊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해 보고 싶은 일은 아직도 많다

    실패가 두렵다고 도전에 브레이크 걸지 마라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을 그려 보자.


    간단하다. 지금까지도 꼭 해 보고 싶어 계획했던 일들이 몇 가지 있다면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면 된다.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일이나 최근에 꿈꾸게 된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해도 좋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써 내려가다 보면 자꾸만 "그런데..."라는 말이 발목을 잡는다.


    나이, 체력적 불안, 금전적 제약, 주변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경우도 있다.


    이 나이에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실패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폐만 끼칠 거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비웃음만 사겠지.


    이런 걱정뿐만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이미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며 결단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비해 실패하거나 중간에 도망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위험 요소나 불안 요소를 하나씩 적어 보고 대책도 세워 보자. 그러면 걱정거리가 줄줄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체력이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돈을 쓸 여유도 없다.


    이렇게 착실하게 살아왔는데 말년에 실패하거나 비웃음을 사는 추태는 부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 라는 것은 계획을 단념할 변명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유복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패턴인데, 스스로 일찌감치 매듭을 지어 버리기도 한다.


    나이를 따지거나 자신이 해 왔던 일을 열거해 보고, 수중에 있는 부동산이나 재직 당시의 지위를 떠올린다. 큰 실적을 올렸던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성취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룬 게 많으니 이거면 됐지.라는 마음도 생긴다.

    이제부터 여생이라 생각하고 유유자적 사는 게 최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바라는 것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담담히 산다. 이게 바로 성공한 사람들의 여유다. 이건 이것대로 행복한 고령자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소망이나 자유를 꾹 누르고 버텨야 했던 일도 많았을 것이다. 혹은 남는 재산을 마음껏 다 써버리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이는 복에 겨운 일이 아니라 인내하며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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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