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의 재발견 | ||||
지은이 : 스콧 영 저자(글) · 정지현 번역 | ||||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 ||||
출판일 : 2024년 12월 |
■ 책 소개
지식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에도 세계에 존재하는 지식은 대부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많은 지식이 전문가들의 머릿속에 갇혀 있고 대개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또한 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기보다는 집단에 널리 퍼진 관행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다.
1980년에 나온 다큐멘터리에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레너드 리드(Leonard Read)의 초기 논문에 나오는 나무 연필을 예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 연필을 혼자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충격적인 발언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나무를 자르려면 톱이 필요하고, 톱을 만들려면 강철이 필요하고, 강철은 철광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무, 페인트, 접착제, 흑연을 제조하려면 모두 엄청나게 복잡한 공급망이 필요하다. 연필처럼 단순한 물건을 만드는 지식조차도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는 집단들이 가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하나로 모을 때 필요한 집단이 더욱더 분산되면서, 개인의 성취도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책에 담긴 지식의 접근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되지만, 어떤 분야에 대한 암묵적인 이해는 여전히 외부 세계와 격리된 전문가 공동체에 존재한다. 말하자면 지식이 존재하는 환경에 대한 접근성이 무언가를 숙달하는 데 커다란 난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배우는 환경 조건은 첫 단계일 뿐이다. 기술을 익히려면 단순한 관찰이 아닌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학습에서 여러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반복적인 연습은 작업을 수행하는 정신적 노력을 줄인다. 테트리스 플레이어들이 게임하는 동안 fMRI(자기공명영상)로 그들의 뇌 활동을 관찰한 연구가 있다.
성과가 뛰어날수록 뇌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플레이어들이 게임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뇌의 신경 활동은 감소했다. 이는 우리가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신경계를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면허를 따고 몇 년간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전에는 운전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 없이도 능숙하게 해낸다. 운전하면서 손과 발을 움직이는 동안 다른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기술의 구성 요소를 자동화하는 능력은 대부분의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단순히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과제를 전문가 수준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복적인 연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개 피드백이 없으면 실력 향상이 불가능하다. 일찍이 1931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특정한 길이의 선을 그리는 연습을 시켰다. 놀랍게도 피험자들은 그 기술을 3,000번이나 연습했는데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전문성을 다루는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은 음악, 체스, 운동, 의학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자들이 어떻게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즉각적인 피드백이 핵심이었다. 양질의 즉각적인 피드백은 우수한 운동선수와 음악가가 기술을 심화하는 토대가 된다.
피드백이 부재할 경우 실력이 나빠지는 원인이 된다. 체계적인 검토 연구에 따르면 경력이 오래된 의사일수록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발견됐다. 환자의 예후는 의사가 개입한 정도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달라지며, 치료에서 모범 사례와 구식 기술을 적용한 경우의 차이는 대조군이 신중하게 설계된 실험에서만 발견됐다. 이 고르지 않은 피드백은 에릭슨이 지속적인 숙달에 핵심적이라고 주장한 의도적 연습을 실행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자아 개념이 자존감 등과는 다르다. 우선 자아 개념은 전체적인 속성으로,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견해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다. 자존감이 높거나 긍정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도 특정 과제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낮을 수 있다.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자신의 운동 신경을 높게 평가하더라도 수학 시험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프로그래밍의 천재라고 생각해도 무대에서 발표하는 상상만 하면 위축될 수도 있다. 자기효능감은 개인의 정체성보다 훨씬 다채로운 요소들로 이루어지며 상황과 과제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밴듀라의 주장대로 특정 행동에 대한 자기효능감은 그 행동과 관련된 동기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준다.
대리 경험은 타인이 성공하거나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미 살펴보았듯, 타인을 통한 학습은 학습의 기술에서 중요한 인지적 요소를 형성한다. 어떤 기술을 수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알아내는 것보다 지시와 예시를 통해서 훨씬 더 빨리 배울 수 있다. 밴듀라는 그런 경험이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의 성공을 목격할 때, 특히 그 성공을 모방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생길 때, 같은 행동을 취하려는 동기가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역할 모델, 특히 우리가 자신을 대입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기술을 설명할 뿐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자기효능감을 심어 주고, 나아가 똑같은 결과를 성취하려는 동기를 준다. 한편 개인적 숙달은 성공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특히 강력한 동기다. 대리 경험으로 하는 성공은 자신과 역할 모델 사이의 인지된 차이점 때문에 무시될 수 있지만, 직접 경험하는 성공만큼 자신감을 크게 높여주는 것은 없다.
바람직한 난이도는 보기만 하는 연습과 직접 해보는 연습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문제 해결 패턴을 직접 볼 기회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대개는 추가적인 인지 부하가 따를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유용한 전략을 끝까지 학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도움이 되는 힌트에 항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깨달음을 내면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려면 예제 보기, 문제 해결하기, 피드백 받기의 세 가지 요소를 합쳐서 연습 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주기를 반복적으로 오가면 성공적인 학습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버틀러는 신인 작가들에게 조언할 때 비슷한 과정을 적용한다. “나는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쓸 이야기는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품을 참고하라고 말한다. 대여섯 개 작품의 시작 부분을 모방하는 것이다.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똑같이 따라 하도록 말이다.”
그녀는 이 전략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작품의 시작 부분을 모방한다는 점이 아니다. 최소한 대여섯 개 작품을 모방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핵심은 무엇이 가능한가를 배우는 것이다. 흔히 작가들의 문제는 너무 많이 알거나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가능성의 바다에 압도당한다. 그 광활한 바다에서 필요한 것만 가져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이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연구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다룰 때 가능한 선택지의 예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을 쌓을 때의 첫 단계는 예제를 참고하는 것이다.
길고 강력한 드라이브로 유명했던 우즈는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은 동작으로 공을 칠 때 최대 시속 200마일의 속도에 이르도록 했다. 하지만 그 힘을 내기 위해 고관절을 너무 빨리 돌려서 팔이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런 지연된 동작 때문에 우즈의 클럽 페이스는 바깥쪽을 향했다. 이를 교정하지 않으면 공이 페어웨이에서 멀리 떨어진 오른쪽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우즈는 운동감각적 직관으로 스윙 도중에 일어나는 이 불일치를 교정할 수 있었다. 팔이 멈출 때마다 두 손을 살짝 비틀어 클럽 페이스를 회전시켜서 공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즉흥적인 행동은 운과 정확성에 달려 있었다. 그는 마스터스에서 신기록을 거둔 우승을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완벽한 타이밍 덕분에 우승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승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즈는 스윙을 바꾸면서 천재적인 운동 능력에 꾸준한 실행력까지 더하게 됐다.
탈학습의 어려움은 운동 기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67년에 심리학자 폴 피츠(Paul Fitts)와 마이클 포즈너(Michael Posner)는 운동 숙련도가 발달하는 방법에 대한 유력한 가설을 제안했는데 학습의 과정이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1. 인지 단계: 과제가 무엇이고, 어떤 기술이 필요하며, 그 기술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이해하는 노력이 이루어지는 단계다. 학습자는 올바른 기술을 파악하기 위해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움직임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2. 연상 단계: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이뤄진 후에 학습자는 다양한 시도를 취한다. 해당 단계에서 가장 큰 오류들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면서 더 매끄러운 수행이 가능해진다. 3. 자율 단계: 오류가 제거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기술을 수행하게 된다. 해당 단계에 이르면 첫 단계에서 학습한 명시적인 설명을 잊었을 수도 있다. 기술 수행은 의식적인 통제에 의존하지 않는, 거의 반사 반응과 같이 이뤄진다.
초보 골퍼의 경우, 스윙에서 아직 인지 단계에 머물러 있다. 좋은 코치는 그 선수가 만들어내야 하는 대략적인 움직임을 안내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선수는 성과를 내는 명확한 규칙들을 익히고 떠올릴 것이다. 공을 친 후에 너무 빨리 고개를 들지 않는다거나 백스윙에서 몸을 충분히 회전시키는 것 등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초보 선수는 다양한 조건에서 연습하면서 연상 단계로 넘어간다.
여러 조건에 맞춰서 움직임을 조정하므로 우든클럽과 아이언클럽으로 모두 스윙할 줄 알고, 페어웨이와 러프에서 모두 정확한 샷을 날리기 위해 힘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마지막으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연습할수록 세부적인 사항은 의식에서 사라진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신체 움직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율적인 기술을 방해할 수 있다. 움직임을 실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움직임의 목표에 외부적으로 집중해야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존의 사고 습관은 수행을 방해할 수 있다. 독창적인 시도를 하려 해도 익숙한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과제의 제약 조건을 바꿔서 이전의 방식으로 기술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하게 만들면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제약은 특정 행동을 금지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세이를 쓸 때 수식하는 품사를 쓰지 않거나 색깔을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행동의 필요조건에 제약을 둔다. 만일 작은 사이즈의 테니스 라켓 앞면으로만 공을 치는 연습을 한다면 정사이즈로 된 라켓의 중앙으로 공을 제대로 치게 될 것이다. 제약은 매우 잘 설계된 연습이 갖춘 특징이다. 유용한 해결책의 탐색 공간은 무척 크기 때문에 제약이 없다면 진부한 생각이 독창적인 선택지를 찾는 일을 제압하기 쉽다.
궁극적으로 잘 익힌 기술을 완전히 바꾸는 일은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 우수한 골프 선수 중에서 기본 동작을 자주 바꾸고도 계속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우즈가 뛰어난 운동 기술과 직업정신으로 지극히 낮은 확률을 극복했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존의 것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시작하는 방법보다 기존 방식의 토대를 보강하거나 수정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
골프 스윙이든 과학적인 관점이든, 가장 안전한 선택은 변화를 원활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무작정 골짜기 밑까지 다시 내려가지 말고 산과 산 사이의 등성이를 찾아보는 것이다. 배의 나무판자를 하나씩 교체해서 원래 구조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면서 탈바꿈한 테세우스의 배처럼, 기초를 한꺼번에 완전히 허물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 바꿔 나갈 때 관점의 급진적인 변화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