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관계가 어려운 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다독인다. 특히 관계를 잇기 위한 ‘요령’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태도’를 제시한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 감정을 숨기기보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태도, 그리고 상처를 피하기보다 다시 연결하려는 용기까지, 관계를 대하는 근본적인 관점을 바꾸도록 이끌어 준다.
■ 저자 조에스더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사람에게 닿는 말을 연구하며, 단절된 사람과 사람, 말과 마음을 연결해 온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입니다.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정치인, CEO 등 다양한 전문직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 감정관리를 주제로 컨설팅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에게는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는 소통을, 성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업과 역할에 맞는 의사소통의 본질과 대화 방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상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처세술이나 요령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 본질을 탐구하고,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다정하게 연결되는 법을 심리학적 통찰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책은 ‘관계가 어려운 사람’에서 시작해 ‘내가 어려운 이유’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선’을 넓힌 뒤, 결국 ‘대화라는 연결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줬을까?
“아니, 왜 자꾸 문을 열어주는 거야? 한 번 속았으면 다음엔 조심해야지.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성인이 되어 《백설공주》를 다시 읽어보니, 이 이야기는 단순히 착하고 순수한 백설공주와 그녀를 죽이려 하는 나쁜 왕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백설공주와 ‘거울’이라는 타인의 인정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가여운 왕비의 스토리는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백설공주의 행동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난쟁이들이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그녀는 변장을 바꿔 찾아오는 왕비에게 세 번이나 다시 문을 열어줍니다. 처음에는 ‘착해서 그렇겠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착한 게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상담하다 보니, 상처받을 줄 뻔히 알면서도 다시 관계의 문을 여는 백설공주가 동화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현실 속 우리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백설공주처럼 거절이 어려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도 했고, 왕비처럼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고립이라는 공포, 소속감이라는 본능
우리는 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다시 마음의 문을 여는 걸까요? 위험하다는 걸 알면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마땅한데, 그들을 내 삶의 경계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설공주는 왕비를 피해 깊은 숲속으로 도망쳐 난쟁이들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익숙했던 왕궁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된 채 낯선 난쟁이들의 집에 얹혀살게 된 거죠. 게다가 난쟁이들은 이른 새벽에 광산으로 일하러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으니, 백설공주는 목숨은 건졌지만 정서적으로는 극심한 고립상태였을 겁니다. 적막한 숲속에서 종일 말 한마디 섞을 사람조차 없는 상황. 그럴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면, 그것은 위험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일한 관계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아마 공주의 마음속에는 두 목소리가 싸우고 있었을 겁니다.
“저 사람, 어딘가 수상해. 지난번에도 큰일 날 뻔했잖아.”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나를 도우러 온 걸지도 몰라. 이렇게까지 정성을 다해 찾아올 리가 없지 않을까?”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어리석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와 마크 리어리(Mark Leary)는 “인간에게 안정적인 관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지속적이고 믿을 수 있는 관계 속에 있어야 신체적·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 때 뇌에서 물리적 통증과 같은 수준의 고통을 유발하며, 고립감이 극에 달하면 뇌는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했습니다.
외로움이 극심해지면 머리로는 ‘이 관계는 위험하다’는 경고등을 켜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더 크게 작동하는 겁니다. 어쩌면 공주는 위험을 향해 문을 연 게 아니라 고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간절함을 향해 문을 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뇌의 착각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뇌의 독특한 ‘낙관편향(Optimism Bias)’ 때문입니다.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뉴스에서 매일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도,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세상은 공정하다는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이 더해지면 판단은 더욱 흐려집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설마 또 나쁜 일이 생기겠어?” “착하게 살면 결국 복을 받겠지”와 같은 생각이 대표적입니다. 어쩌면 백설공주의 마음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설마 또 나를 해치러 오겠어?”라며 왕비에게 문을 열어줬을 수 있습니다. 위험을 모른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뇌의 낙관적인 착각이 더 크게 작동한 겁니다.
트라우마의 반복과 사랑받고 싶은 결말
트라우마 연구자 주디스 허먼(Judith Lewis Herman)은 사람들이 위험한 관계로 반복해서 들어가는 패턴에 대해 “오랫동안 가까운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을 경우,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지고, 언젠가는 나를 진짜 사랑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여길 떠나면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백설공주에게 왕비는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엄마이자 보호자였던 존재였습니다.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애착 대상에게 배신당한 끔찍한 경험입니다.
이런 상처를 입은 사람의 무의식은 그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기보다 ‘다시 돌아가서 이번에는 사랑받는 결말’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공주는 숲속 오두막을 찾아온 낯선 여인(변장한 왕비)에게서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그림자’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문을 열어주면 이번만큼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을까?’ ‘내가 더 착하게 굴면 이 관계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머리로는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가슴 깊은 곳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는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을 확인받기’ 위해 다시 한번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는 겁니다.
우리 내면에도 이런 백설공주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지?’라고 자책하기보다는, 문을 열어준 나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따스한 마음으로 들여다보세요. 내 영혼이 과거의 상처받았던 장면을 다시 불러내어 이번에는 다른 결말로 만들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의 신호등, 감정
“화가 나면 주체가 안 돼요. 그래서 웬만하면 꾹 참으려고 해요.”
“누가 차갑게 조금이라도 서운한 말을 하면 눈물이 나요. 울고 싶지 않은데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러요.”
“힘들던 초보가 부서지더니 벌써 지 1년이 지났어요. 그런데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슬퍼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감정이라는 문제 앞에서 서툴기만 합니다.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국영수는 배웠지만 ‘내 안의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분노가 치밀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도 감정이라는 숙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어린아이가 되는 겁니다.
나쁜 감정은 없다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운, 기쁜, 설레는 감정 같은 긍정 감정(Positive Emotion)을 느끼며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슬픈, 우울한, 화가 난’ 것 같은 부정 감정(Negative Emotion)은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 한다고 여기며 불편해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려 보세요.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5가지 감정(기쁨, 슬픔, 공포, 혐오, 분노)이 함께 살아갑니다. 그중 기쁨이는 라일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슬픔이가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원을 그려 가두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기쁨이의 생각처럼 슬픔이 사라지면 완벽한 행복이 찾아올까요? 영화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줍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라일리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고 고립되어 버립니다. 결국 라일리를 구한 것은 억지로 웃는 기쁨이가 아니라, 부모님 품에서 엉엉 울며 자신의 힘겨움을 털어놓게 만든 슬픔이였습니다.
슬픔이 없으면 진짜 위로도, 깊은 공감도, 관계의 회복도 불가능합니다. 슬픔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있어야 기쁨의 빛깔도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니 ‘부정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행복하다’는 믿음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오해입니다.
감정은 나를 지키는 ‘신호등’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좋다, 그르다로 나누기보다, 우리에게 어떤 필요와 가치가 중요한지 알려 주는 정보라고 말합니다. 도로 위의 신호등을 떠올려 보세요. 빨간불은 나쁜 신호이고, 초록불은 좋은 신호인가요? 아닙니다. 빨간불은 “위험하니 멈추세요”라는 신호이고, 초록불은 “안전하니 지나가도 좋습니다”라는 안내일 뿐입니다. 둘 다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필수적인 정보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함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지금 당신은 너무 지쳐 있어요. 충전이 필요해요”라고 알려주는 빨간불입니다. 설렘은 “당신은 지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군요”라고 알려주는 초록불입니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이 1년 넘게 지속된다면 그것은 내가 나약하거나 감정적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말해 주는 신호입니다. 나의 의견만 유난히 무시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낀다면 내가 속이 좁거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도 존중받고 싶다”는 정당한 욕구가 좌절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감정은 내 안의 ‘나’가 보내는 가장 솔직한 메시지입니다.
뇌과학자 매슈 리버먼(Matthew Lieberman)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Labeling) 뇌에서 공포와 불안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활성도는 낮아지고,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즉,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뇌는 ‘감정에 휘둘리는 상태’에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되는 겁니다.
1) 감정에 이름 붙이기
상사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 기분이 상한 상황을 예로 들어봅시다. 이때 뭉뚱그려 ‘기분 나빠’라고 하기보다, 지금 느끼는 감정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찾아봅니다.
2) 소리 내어 (혹은 속으로) 말해 보기
내 안의 감정들의 이름을 찾아주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불편함이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나고 불편한 마음이 명료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지금 무시당한 것 같아서 ‘화’가 나고, 혹시 내가 실수했나 싶어 ‘불안’해.”
사랑하는 사람이 화가 나 보이면 우리는 “화났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여”라고 묻습니다. 이처럼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려 주고 말로 확인해 줄 때, 상대는 “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구나”라고 느낍니다. 이 다정한 작업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대화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분 대신 기본을 갖춰, 나를 주장하기
어른의 자기주장
어린아이일 때는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기분을 마음대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나의 권리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타인의 권리와 감정도 존중하는 태도를 ‘자기주장(Assertiveness)’이라고 부릅니다.
자기주장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고, 그것을 나와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 감정과 경계를 지키는 경험이 쌓여, 스스로를 더 존중하게 됩니다.
자기주장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표현할 때 대체로 3가지 스타일 중 하나를 사용합니다.
1) 소극적 자기표현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 욕구와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계를 깨뜨릴까 두려워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서운함이 쌓여 어느 순간 사소한 일에도 크게 폭발하거나, 조용히 거리를 두며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괜찮아요” 대신 “저는 이렇게 해주면 좋겠습니다”와 같은 요청을 한마디로 말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2) 공격적 자기표현
내 감정과 욕구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상대의 권리와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침범하는 방식입니다. 공격적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은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믿음이 강해서 말이 빠르고 단정적이며, 비난·명령·평가가 섞이기 쉽습니다. 자신감이 있어 보여서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만, 상대는 상처를 받고 관계 안에는 두려움과 반감이 남습니다.
그래서 공격적 자기표현은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의 협력자원을 소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비난 대신 “나는 지금 ○○가 필요하다”처럼 ‘나’를 주어로 요청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3) 자기주장적 자기표현
내 감정과 욕구를 분명히 표현하면서도, 상대의 상황과 감정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점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라,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겁니다.
자기주장적 자기표현은 “저는 ○○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어렵습니다”처럼 주어가 분명하고 구체적입니다. 또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상황과 영향을 설명하며, 가능한 대안을 함께 제안합니다. 이런 방식의 대화는 상대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협상 가능한 지점을 찾기 쉬워집니다. 자기주장적 자기표현의 출발점은 “지금은 어렵습니다. 대신 ○○는 가능합니다”와 같이 짧고 단단한 한 문장입니다.
기본을 갖춰 나를 주장하기
자기주장은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감정과 욕구를 분명히 드러내는 말하기입니다. 그래서 강하게 말하는 법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대화의 기본을 갖추는 일입니다.
1단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보기
의견이 다를 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불만, 비난, 서운함입니다. 이때 그 말을 즉시 쏟아내기보다 잠시 멈추고, 불편한 아래에 있는 진짜 욕구를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나는 지금 무엇이 불편한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라고 물어보세요. 욕구가 분명해지면 대화는 공격이 아니라 ‘부탁’이 됩니다.
“나는 일정에 관해 미리 상의받고 싶다.”
“이 관계에서 나도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다.”
2단계) 대화를 요청하기
상대가 바쁘거나 집중이 어려운 상황에서 바로 핵심 이야기를 꺼내면 내용이 맞더라도 공격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대화를 ‘요청’하는 말 한마디가 상대와 나에게 안전한 대화의 틀을 만들고,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전쟁이 아니라 대화임을 알려줍니다.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있는데, 언제쯤 괜찮으세요?”
“일정을 정하고 싶은데, 5분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3단계) 상대의 입장과 의도 인정하기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의 의도까지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의 상황을 먼저 인정해 주면 상대는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방어심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는 비굴한 게 아니라 대화의 문을 여는 지혜로움입니다.
“요즘 회사 일이 밀려서 바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건 이해해요.”
“아이 학교 때문에 이사 문제가 복잡해진 것도 알고 있어요.”
4단계) 비난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자기주장은 상대를 탓하거나 몰아세우는 말하기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이 힘들며, 무엇을 바라는지를 분명하게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맨날 피하기만 해요”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들어요” 같은 비난형 표현은 상대를 자극하고 대화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이런 말은 문제를 풀기보다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자기주장의 목적은 상대를 평가하는 데 있지 않고, 내 감정과 욕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를 판단하는 말보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은 맨날 피하기만 해요.”
→ “이사 문제가 계속 미뤄지다 보니 마음이 많이 불안해요.”
“김 대리가 이러니까 일이 진척이 없어요.”
→ “이번 주 안에는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정해 봅시다.”
나를 주장하는 연습은 어느 날 갑자기 잘하게 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카페에서 원하지 않는 음료가 나왔을 때,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때, 친구와의 약속이 너무 부담스러울 때처럼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최고의 대화 연습실입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상대에게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게 돕는 힌트’를 주는 친절한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