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지은이 : 마이아 에켈뢰브(역:이유진)
출판사 : 교유서가
출판일 : 2022년 08월




  • 살기 위해 펜을 들었으나<br>백지 앞에서 가장 행복했고 진솔했던 <br>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의 희망 이야기<br><br>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br>여성 청소노동자의 순수한 인간적 기록<br><br>마이아 에켈레브가 남긴 유일한 작품으로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청소노동자로서의 삶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한다. 복지사회 스웨덴 저소득층의 고단한 일상은 물론 다섯 남매의 한부모로서 자신의 문제들과 기쁜 일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가장 개인적인 글은 정치적인 문학이 되어 일반적 관점과는 또다른 계급 관점을 보여주며 자신을 응시하고, 사회를 비추며, 세계를 성찰한다. <br>질박한 글 속에는 저자의 날카로운 논평과 저임금 여성 청소노동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60년대 스웨덴 노동계급의 일상을 가장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br>이 책은 1970년 스웨덴의 출판사 라벤 오크 셰그렌이 주관한 소설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출간과 함께 선풍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 타계 2년 전인 1987년 스웨덴 노동문학상인 이바르 루유한손 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스웨덴 1000대 고전’에 선정되었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에켈뢰브 가족

    마이아: 어머니(1918년생. 1940년 결혼, 1957년 이혼 후 다섯 남매 부양)

    스티그: 맏이(1941년 생, 군과 동거중)

    부릿: 둘째이며 고명딸(1943년생, 유고슬라비아 출신 페테르와 동거중)

    얀과 울라: 쌍둥이(1945년생)

    라슈: 막내(1950년생)


    *군: 마이아의 여동생, 스티그와 동거중인 군과 동명이인

    *릴메타: 마이아의 여동생

    *마그다: 스톡홀름에 사는 마이아의 큰언니


    오래전 어느 날이 기억난다

    해는 이글거리고 쌍둥이 유아차는 끌기 무겁다.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가 탄 유아차 옆에서 걷는다. 아이들 모두 칭얼대며 투정을 부린다. 피곤해 죽겠다. 우리는 4시간 동안 진료소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기 전에 아이들이 맞아야 할 주사는 엄청나게 많다.


    언덕은 가파르고 몸은 좋지 못하다. 끌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었다. 4년 동안 아이 넷.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거의 다 올라가자 자전거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벨을 울린다. 자전거에서 내리는 이웃에게 인사한다.


    “마이아, 지금요.” 이웃이 소리를 지른다. “지금 시청 사회복지과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지금 그날을 되씹으며 내 이웃이 스웨덴 사회의 시민들이 받을 사회적 혜택에 대해 신문에서 읽었따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택보조금, 육아수당 등등.


    그때는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사회복지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웃은 굉장히 새된 목소리로 나에게 스웨덴 사회의 구조 일부를 소리 높여 설명해주었다.


    “마이아는 자격이 충분해요.” 이웃은 재차 말했다. “돈이 없으면 사회복지과에 가요. 장작과 먹을거리와 옷 살 돈을 받을 수 있어요.”


    “그에 관한 법이 있어요.” 이웃은 거듭 말했다.


    저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3일 후 병원 진료를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쌍둥이 아들은 사시가 있어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했다.


    난생처음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사회복지과에 갔다. 나는 전혀 근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사회복지과가 있던 경찰서 청사 복도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 모두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행복의 빛이 미래에 드리워져 있었다. 미래에는 그 누구도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을 걱정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을 터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었다. ‘사무소가 진료비를 지불한다고 적힌 쪽지를 받았다. 어레브루오 가는 일은 아마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이었다. 안과에도 자주 가게 되었다. 쌍둥이에게 안경을 맞춰주어야 했다. 안경 안쪽에는 정상적인 눈을 위한 안대가 붙어 있을 터였다. 일종의 테이프를 많이 사야 했다. 쌍둥이는 툭하면 안경과 안대를 망가뜨렸다. 수도 없이 참으며 수선을 한 후에야 쌍둥이는 이것들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쌍둥이는 여섯 살 때까지 안경과 안대를 써야 했다. 그리고 나서 사시안이 교정되었다.


    1953년 한국 위기

    아동복지 담당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말한다. 담당공무원은 퇴근하고 나는 그 책상에 앉아 있다(나는 저녁에 시청 사무실 몇 군데를 청소한다).


    출근할 때 나는 다섯 아이 모두 겨울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 손에 펜을 쥔 채 앉아 있지만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다.


    마침내 나는 재빨리 “바지 한 벌과 재킷 한 벌”이라고 적는다.


    내가 바꾸고 싶은 것

    만일 사람마다 삶을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 자기를 위해 길을 밝혀줄 불빛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내 빛은 오랫동안 작가 하리 마틴손이었다. 마틴손은 굴욕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굴욕을 견뎌낼 것이다… 마틴손은 저 밖에 서서 부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밖에서 그 일을 해낼 것이다. 마틴손은 무기력해지지 않고 가장 비천한 일들을 해냈다. 따라서 나 역시 청소용 양동이에 익사하지 않고 내가 맡은 청소부 일을 해낼 것이다.


    어떤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다”가 분명하다. 먹고살 정도로 돈벌이가 괜찮은 직업은 ‘자기 남편을 먹여 살리지 못할 정도로 벌이가 아주 형편없는 직업보다 더 좋다.


    일부 사람만이 살아가기 위해 구걸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법에 따르면 옳다.


    똑똑한 머리와 날카로운 팔꿈치를 갖춘 사람, 그런 사람은 급여 계층구조 맨 꼭대기에 올라갈 것이다. 어쩌면 덜 똑똑한 머리와 그리 날카롭지 않은 팔꿈치를 부여받은 사람, 그런 사람은 법에 따르면 아주 높은 급여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구걸을 해야 한다. 법은 그런 것이다. 법은 친절하기까지 하다. 빈민 구제라는 말은 사회복지라는 말로 바뀌었다. 신청자 귀에는 빈민 구제만큼이나 나쁘게 들리는 센소리 명칭이다.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욕으로 가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늘 존재할 것이다.


    1965년 8월 28일

    어휴,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해가 빛나도 기분이 무겁고 경제적 문제는 이 가련한 사람을 짓누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기를 잘 벗어나기도 한다. 어쨌든 초과근무까지 해서 청소를 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어렵다(벌이가 너무 박하다)……. 어쨌든 정오에 요양원에 갔다. 그곳에서는 스타케 여사에게 동생이 찾아왔다. 헤들룬드 여사도 방문객을 맞았다. 하지만 그래도 두 분은 내가 가서 기뻐했다. 병동은 사우나처럼 더웠으며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을 때 이 무너진 사람들을 보면 우울해진다. 하지만 방문하고 나서 기분이 나아졌다.


    1965년 10월 1일

    월요일 오후에 스티그와 군이 왔다. 스티그는 합리화에 대해 쓴 독자 투고를 읽으려고 왔을 뿐이라고 했다. 스티그는 글을 읽고 나서 껄껄 웃었다. 생명보험 해지에 대해 실망했다 나와 스티그 모두 그랬다. 23년 동안 착실히 납부했는데, 고작 300크루나를 돌려받아 조금 실망스러웠다. “두 분의 생명이 보호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세요.” 보험담당자가 말했다 –우리처럼 없이 사는 사람들은 늘 그렇다. 스티그가 군을 만나서 기쁘다. 둘은 참 잘 어울린다.


    1966년 2월 8일

    한 달 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몹시 춥고 끔찍했다. 추위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을까봐 매일 걱정이다. 그런 일은 겨울에 일어났다.


    1966년 총선 한 주 전에 드는 생각과 고민.


    아, 그런 한 주다.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닌다. 나는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전에는 투표방법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총선 토론을 들었고 정당들의 홍보물을 읽었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인데, 좀더 성숙한 자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표하라”고 속삭인다. 일요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투표를 안 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할까? 아니다. 그러면 나중에 스스로에게 화를 많이 내거나 총선일 투표 마감 때 닥치는 대로 투표하겠지……. 유권자라면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독재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러면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터다.


    오늘 저녁에 해결책을 찾았다. 기회가 되는 대로 정당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정당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할 것이다. 어렵더라도 경제학 강의를 들어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스웨덴의 무역수지, 경상수지, 경제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는 더 나은 투표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할 시간을 어떻게 내야 할까?


    나는 일기를 계속 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좀더 편안해질 것이다. 오늘 저녁은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을 생각이다. <푸쿠스>를 보고 일찍 잔 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 빌리다니! …… 누구에게? 아무도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1917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가장 높은 계급부터 가장 낮은 계급까지 모든 인간은 경제적 투쟁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권리인 것을 얻거나 자신의 권리가 아닌 것을 유지하려는 투쟁이다. 현실 또는 우리의 바람에서는 물질적 소유물이 우리의 인생관을 지배하며 대개 모든 너그럽고 창조적인 충동은 제외한다.


    소유하고 유지하려는 열렬한 욕망. 소유병은 전쟁의 극히 중요한 원인이자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정치세계를 괴롭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버트런드 러셀을 읽어라. 그러면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11월의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니, 이날은 평범한 월요일이 아니다-이미 금요일 저녁에 시작되었다. 얀이 웁살라에서 전화했다.


    “엄마,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에 엄마 기사가 나왔어요.”

    “무슨 말이니!”

    “네, 칼스쿠가에서 대학과정 역사학 강의를 듣는 청소부라고요.”

    “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제 회의에 교육청 대표단이 이곳에 있었어. 우리는 학교를 쉬었지.”

    “엄마, 엄마 얘기는 딱 한 줄 나오지만, 엄마가 분명해요.”


    1966년 12월 15일

    성녀 루치아 축일이 지났다……. 나는 비가탄에 있는 브릿의 집에서 루치아 역할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늦잠을 자버렸다. 이보다 더 가련한 루치아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저녁이다. 라슈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달 말 라슈는 우체국 일을 그만둔다. 아, 저 아이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라슈는 잠을 청하기 어렵다며 초조해했다.


    우리 아이들이 잘 살기를. 나는 참으로 멋진 아이들을 두었다. 정말 훌륭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내가 과잉보호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많은 ‘위대한 사람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 아이들이 ‘위대하게 될지, 아닐지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은 너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역할이자 가장 어려운 직업은 엄마로 사는 일 같다. 일종의 책임이 생기고 날마다 무능력을 실감한다. 모성의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적어도 몇 분 정도는 그럴 것이다.


    1967년 6월 26일</P> 오늘은 평생 많은 일을 한 핀란드 노부인에 대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어떻게 노부인의 삶이 의미가 있는 일로 가득했는지를 들었을 때 놀랐다. 노부인은 농업에 종사했고 국회에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서 농업협동조합을 세웠다. 나는 내 나름의 노력이 점점 더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에게 유용한 더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큰 지금, 정치 활동에 참여할 시간이 있지만 나는 진취적이지 않을뿐더러 어떤 단체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아마도 청소부로 계속 살 것이다. 청소하는 일이 정말 좋다. (늘 일을 하면서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꽤 독립적이고 옆에서 폭발하는 반장도 없다. 압력계도 없다.


    살아갈 수 있도록 급여는 좀더 많기는 해야 하지만 그런 점이 모든 것을 상쇄한다.


    지금 라슈와 나는 커피를 마셨다. 울라는 예테보리에서 왔고 내가 롤빵을 구워서 기뻐했다. 결제해야 하는 청구서가 많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급여가 더 많은 다른 일을 구해야 한다. 사회복지과에도 가고 싶지 않다. 새벽 4시에 그곳에 가서 청소한다. ‘죄인의 의자에 앉아 구걸하느니 그곳에서 청소하는 편이 더 낫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슴속에 항상 큰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식으로 낭비할 때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청소부로 산다는 것

    제길, 만일 대부분의 사람이 직업을 청소부로 상상한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저 말은 기분이 나쁘다. 먼지와 더러운 구정물 냄새가 느껴지다시피 한다. 아픈 허리와 튼 손도 생각한다. 이 일은 저임금 직업군에 속한다. 아마도 온갖 힘든 작업은 다 할 것이다. 청소부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고된 일이라 누구라도 끝낼 수가 없다……. 건강해야 한다. 온 몸이 부서진다(닳아빠진 허리와 부어터진 손, 아픈 무릎의 대가는 누가 치를까?)


    더 이상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 좀더 쉬운 청소 작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로 먹고살아야 한다면 더 쉬운 작업과 더 힘든 작업 모두 맡아야 한다. 허리를 곧게 펴고 일해야 한다. 해야 할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진절머리가 나도 이 일은 중요하다고 여긴다……. 만일 모든 것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황폐해진다. 환경미화원들이 일주일 동안 파업했을 때 뉴욕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아무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면 도시는 이내 파괴된다.


    생일을 맞기 전에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 직장에서 청소를 했다. 14일 동안 휴가를 보냈다. 집에서 청소를 해야 하지만 집 청소는 ‘인형의 집 청소라고 부른다.


    월요일 저녁</P> 책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보통 스웨덴 아주머니의 일상? 어느 청소부의 일기? 아니면 나의 의사소통 방식?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책 생각을 할 때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왜 머릿속에서 그런 정신나간 생각이 떠오를 것이었을까. 도서관 한 곳을 청소하며 출판시장이 어떻게 홍수에 잠겼는지 생각한다. 책을 내는 일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지구는 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부활절 후

    살면서 여러 번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딱하게 여겼다. 대신 내가 딱하게 여기고 싶었던 이들은 그들이었다. 그들보다 없이 살아도 내 삶은 그들보다 훨씬, 훨씬 더 넉넉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삶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들이 고대하는 것은 무엇일까(고독 속에서 곰곰이 생각한다). 그렇다. 그들의 소유욕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같은 멋진 감성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죽어 있는 것을 소유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나보다 더욱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책……. 책을 곁에 둔다면 외롭지 않다. 독방에 갇혀 있어도 고독하지 않다. 책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책과 함께하지 않아도 내면에는 책이 있는 셈이다. 책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만일 접촉 결여와 고독이 고립, 침잠과 똑같았다면 이는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찰하는 것이다-지켜보는 것, 주의하는 것, 공감 능력이다. 접촉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얀 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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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