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네과일
 
지은이 : 김도영 (지은이)
출판사 : 필름(Feelm)
출판일 : 2023년 07월




  • 첫 플리마켓에서 백화점 팝업 스토어까지 84일 만에 해낸 ‘김씨네과일’ 대표 김도영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습니다. 나만의 브랜드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책입니다.


    김씨네 과일


    일, 논리보다 중요한 것들

    좋아하지 않는 일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2019년 2월,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전공인 광고를 살려서 업계에 취직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 작업을 이어가면서 프리랜서의 길을 가느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가족의 걱정을 스스로 등에 업고, 나 자신을 취준생으로 여기며 이력서를 썼다.


    내가 처음 지원한 곳은 GS 계열의 스포츠 마케팅 관련 자리였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축구와 관련된 마케팅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충분히 내가 열정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나의 머릿속 아이디어들을 포토샵으로 구현해 첨부했다.


    나름 자신 있게 1차 발표를 기다렸다. 정성과 열정에 창의력까지 보여줬다고 믿었다. 한 번쯤 만나서 이야기 들어볼 가치는 충분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으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탈락이었고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불합격이 나에게 다가온 순간, 나의 모든 것이 오기로 변했다.


    ‘취업하는 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이것도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럼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 하지 뭐.


    그렇게 지금의 길로 첫발을 떼게 되었다.


    오기가 결심으로 바뀐 지 3년이 지났지만 갖고 싶었던 티셔츠 인쇄 기계를 구매할 능력이 없었다. 생각도 못 하던 차에 가족들이 먼저 도와줄 테니 구매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이야기했다. 기계가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축구화를 신은 호날두, 총을 든 람보, 마이크를 든 빈지노라고 느껴졌다. 프린터 판매·유통 업체에 연락해서 누나와 함께 찾아갔다. 캐피탈을 끼고 구매하기로 하고 대출 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는 중 전화가 왔다. 대출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무력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먹지도 않는 막걸리를 시켜서 들이켰다.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기계를 구매했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한가득 업고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했다. 우연하게도 기계가 작업실에 들어온 날이 내가 야심을 가득 안고 2019년 사업자를 냈던 날과 같은 4월 15일이었다.


    기계 성능 테스트 겸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티셔츠에 인쇄하고 싶은 이미지를 알려주면 바로 인쇄해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토마토를 이야기해서 인쇄를 해보니 왜 이렇게 귀여운지. 언제 한번 시리즈로 만들어봐야지 생각했다.


    어느 날, 이전 한 촬영에서 인연이 됐던 GQ 에디터에게 연락이 왔다. 곧 플리마켓을 열 건데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했다. 마침 일이 없던 차라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토마토가 떠올랐다. 저번에 생각했던 시리즈를 만들어야지. 채소를 할까, 과일을 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과일이 더 사랑스러울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플리마켓이니까 재밌게 팔고 싶은데.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과일은 보통 바구니에 넣어서 파니까 나도 바구니에 담아서 팔아야겠다. 택배로 시킨 빨간 바구니와 노란 바구니가 작업실에 도착했고, 인쇄한 키위 티셔츠를 빨간 바구니에 처음 담아보는 순간 완벽한 귀여움을 느꼈다.


    플리마켓에 몇 번 참여해본 바로, 담아갈 봉투를 판매자가 준비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친김에 검은 봉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큰 고민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까. 일반적인 티셔츠 포장에서 사용하는 OPP비닐과 검은 봉지 중에 깊은 고민을 했다. 결국 검은 봉지를 준비해서 플리마켓에 나갔다.


    수염이 있고 세련된 한 남자가 첫 손님으로 왔고 나는 티셔츠를 돌돌 만 뒤에 슬쩍 눈치를 보고 조심히 검은 봉지에 담았다. 순간 그 손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이었고 나는 속으로 ‘됐다. 이거 맞다라고 말했다.


    나를 찾아오던 마니아층이 주를 이루던 평소 고객층과 다르게 지나다가 우연히 본 사람들이 티셔츠를 계속해서 구매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결국 플리마켓이 끝나기 전에 가져왔던 재고 약 100장을 판매하고 가장 먼저 장사를 마쳤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기계를 산 지 한 달 만인 5월 15일이었다.


    “따라오세요”가 아닌 “나 내 길 갈 거야”

    어떤 남자가 KBS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따라오라고 하면 안 따라오고 “내 갈 길을 갈 거야”라고 하면 따라온다고. 너무 멋진 말이다. 그 남자가 바로 나다. 내가 수많은 경험을 조합해서 만든 나침반 같은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걸 의도해서 만들어냈을 때 사람들은 쉽게 눈치채고 관심을 돌렸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었을 때 같이 좋아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티셔츠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내 직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그래픽디자이너라는 꼬리표를 달 만큼의 기술은 없고 그래픽아티스트라는 말에도 핵심인 티셔츠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다. 티셔츠 아티스트라는 말은 있지도 않고 그럼 대체 내 직업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금은 김씨네과일 사장 혹은 대표, 자영업자, 개인사업자 등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티셔츠를 만드는 내 일에 대해 정확히 이름 붙일 말이 없다. 그래픽에 대한 기술, 의류에 대한 기술도 뛰어나지 않으니까. 내 직업은 이름도, 역할도, 벌이도 애매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따라 수년간 맨땅에 헤딩했는데 김씨네과일이 이렇게 안 됐으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비전을 생각했다면 도전하지 못했을 것 같다.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이 당시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덤볐지. 지금의 내 모습이 우연에 가까울지 필연에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노력을 바탕으로 이룬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을 연료로 태웠다. 문과 중에 가장 창의적인 과를 골라 광고과에 갔지만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티셔츠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는 티셔츠를 만들어서 직접 광고하고 있다.


    브랜딩이 겁이 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성공한 김씨네과일로 기억하지만 실패한 경험이 정말 많다. 팝업 전날 저녁 코로나 2단계로 올라가서 행사 기간 동안 매장에는 파리도 안 날렸었다. 물론 파리가 없을 계절이기는 했지만. 코로나 와중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다. 며칠 밤을 새우고, 코로나 지원금까지 다 넣어가면서 팝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내 코로나 지원금 300만 원은 커다란 재고 박스가 되어 작업실로 다시 돌아왔다. 내 지원금 300만 원.


    나의 돈은 티셔츠로 변한 채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은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나는 아등바등했다. 여러 번의 온라인 판매를 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팝업을 준비할 시간에 집에서 잠만 잤어도 지금보다 돈이 많았겠구나. 물론 돈 이상으로 귀한 경험이었지만 그 당시는 무척이나 절망스러웠다. 이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사업에 있어서 노력한 만큼 안 좋은 결과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였다.


    내가 정말 관심 있는 부분이지만 가장 고민하면서 또 걱정하는 게 브랜딩이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비출지, 김씨네과일을 어떤 브랜드를 비출지 고민은 항상 하는데 항상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과 맞게 브랜딩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의도한 부분들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의해서 더 많이 채워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한테 멋있게 보이려 노력한다고 그 사람이 멋있게 볼까? 오히려 진심이 그 사람을 더 반하게 할 거다. 브랜딩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내가 가진 본연의 것을 더 보여주고 본질적인 부분을 채워나갈 때 멋있는 사람 혹은 멋있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본이 없어서, 경험이 없어서, 능력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다면 당장 걱정을 집어치우고 몸부터 던지길 바란다. 원래 라이터가 없으면 나무로 불 피우는 거고, 마이크가 없으면 목청이라도 뽑는 거다. 돈이 없으면 용기가 자산이다. 경험이 없으면 실패가 자산이다. 두려워할 건 두려움뿐이다.

    물론 래퍼들 중에서도 프리스타일을 유독 잘하는 래퍼가 있고 프리스타일이 아닐 때 훨씬 좋은 래퍼가 있다. 나처럼 한 마디, 두 마디 흐름에 따라 채워가는 스타일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리 세워놓은 계획대로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다 시도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김씨네과일이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생계 수단이 된 뒤로 나는 항상 두려웠다. 작년까지는 벌지도 못하던 액수의 돈이 매달 고정 지출로 나가는데 이걸 내가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언제까지 관심을 가져줄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지막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결과는 내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후회 없이 해봐야지. 후회가 없기 위해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돈을 좇다 행복을 놓치진 말아야지.



    행복, 브랜드답게 말고 사람답게

    복싱처럼 힘을 빼고 덤벼야 할 때가 있다

    좋은 편지지에 예쁜 글씨로 쓴 편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메모지에 휘갈긴 몇 줄로도 감동할 수 있다. 진심만 있다면. 난 김씨네과일로 그걸 증명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시즌도 없고 매장도 없던 하나의 프로젝트가 솔직함을 무기로 브랜드가 되었다. 특이한 콘셉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콘셉트도 만들어 둔 게 아니라 하면서 만들어진 것. 가진 대로 다 보여줬고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그것에 감동했다.


    그동안 얼마나 얽매였는가.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척하고 싶어서 판넬로 집을 짓고 그걸 브랜드라고 보여준 셈이다. 하루아침에 콘크리트 건물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에는 모닥불이라도 피우고부터 시작하는 건데 그걸 몰랐다.


    무섭게도 나는 복싱부 출신이다. 중학교 때 2주간 복싱부에 속해있었다. 14일의 시간 동안 기억 안 날 만큼 줄넘기와 스텝으로 단련했다. 사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의 반대로 중도 하차했지만 나의 복싱 경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힘을 빼는 것이다. 있는 힘껏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힘은 빼고 정확한 근육의 쓰임을 통해 최상의 타격을 주는 것이다. 이건 인생을 관통하는 논리였다.


    당장 한주먹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면 좋겠지만 우선 가볍게 한 방 한 방 쌓아가며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결정타를 날릴 순간은 분명 눈에 보일 것이다. 물론 나는 스파링 경험이 없어서 글러브를 끼고 싸운 적은 없지만 맨주먹으로 사회와 싸우면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을 상대로 복싱을 한 걸까. 욕심부려 주먹을 크게 휘둘렀는데 되려 빈틈을 주고 된통 두드려 맞은 적 또한 많다.


    그런데 김씨네과일은 정말이지 온몸에 힘을 빼고 휘둘렀다. 과일티, 바구니, 박스, 검은 봉지, 용일이. 힘을 전혀 주지 않고 날리는 한 타, 한 타가 정확히 꽂혔다. 리듬이 좋았을까, 내공의 힘일까. 내가 봤을 땐 다마스로 KO승이 났던 것 같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소문이 나고 수많은 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무대도 커지고 판매 수익도 파이트머니처럼 쭉쭉 올라갔다. 그러는 중 욕심도 조금씩 생겨났다.


    관중을 의식하듯 사람들의 반응까지 신경 쓰게 되니 어디에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브랜드들과 일하면서 계약서를 자주 썼고 그 안에서 실수하며 배우는 것들도 정말 많았다. 진심으로 승부 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판단했다가 틀린 적도 많았다.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욕심들이었지만 그 욕심들이 발목을 잡았다.


    욕심 없이 덤빈 일이 잘되고, 그러면서 욕심이 생겨나고, 이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지면서 실패가 일어나고.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는 게 사람 아닐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과 꺾였지만 계속하는 마음. 힘이 들어가면 다시 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자.


    김씨네과일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완벽한 콘셉트를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로 이해한다. 사람들은 모를 테지만 나는 혹여라도 불필요한 콘셉트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까 봐 정말 많이 걱정한다.


    장사 첫날은 콘셉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휘감았다. 정글모, 선글라스, 바라클라바, 팔토시, 장갑, 조끼, 복대에 정말 코스프레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장사 때부터 덜어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정말 필요한 조끼만 필수로 남겼다. 영수증 용지와 현금을 보관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우리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상에 살기보다는 정말 이 현실을 살아가길 원했다. 장사꾼처럼 보이기보다는 장사꾼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항상 기획에 있어서 어떤 콘셉트를 더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두 번, 세 번 고민한다. 힘이 들어가면 들어간 힘만큼 오히려 무리를 줄 수 있으니까.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기 위해 고뇌한다. 우리의 영향이었던 건지는 증명할 수 없지만 지난 여름 시장 콘셉트의 마케팅, 브랜딩이 우후죽순 일어났다. 내부적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매력을 느끼기 힘든 것들이 많았고 외부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도 충분히 즐기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했을 땐 그 사람들은 시장 사람의 옷을 빌려 입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시장 사람의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시장 사람이 되고 싶다. 장사는 시장에서 하지 않지만 시장 사람들처럼 진심으로 승부하고 꾸며내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다.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벌고 싶다고,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받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솔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



    성공, 포기하지 않으면 되니까

    기회와 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써보고 들어본 브랜드들에서 하루에 몇 통씩 협업 문의 메일이 왔다. 가전, 자동차, 의류, 식품 가리지 않고 연락이 왔다. 과일 티셔츠가 가지고 있는 포맷이 여러 방식으로 응용 가능한 점이 큰 강점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쏟아지는 기회들은 마치 지난 몇 년간 받지 못했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이 한 번에 몰려오는 기분 좋은 소나기 같았다.


    나는 그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잠을 줄이고, 휴식을 포기하면서 최대한 많은 일을 잡으려 했다. 물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한해서만 그랬다. 한창 일이 바빠지기 시작한 6월, 7월쯤에는 내가 글을 못 읽었다. 간판 같은 건 문제 없었지만 긴 글, 특히 계약서 한 줄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계약 한 줄 한 줄이 나의 하루 이틀을 떠나 한 달, 두 달, 반년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이 들어올 때는 몰랐지만 수많은 협업을 거치고 나니 나에게 연락이 오는 것까지는 기회가 맞지만, 어떤 계약을 맺고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그걸 몰랐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거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규모의 브랜드라면 무조건 기회라고 판단했었다.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왜 그땐 몰랐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떤 브랜드랑 일을 하든 간에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게 아닌 서로 이용하는 관계를 갖는 약속을 하는 것일 뿐인데 내가 너무 낭만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브랜드였지만 협업 이후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 브랜드가 하나 있다.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똑똑하지 못했고 이성적이고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지금보다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직원 수가 몇 천배 차이 나는 기업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던 나는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낙관적으로 판단해가면서 협업을 이어가려 했다.


    혹시 누군가가 규모에 의한 차이로 계약에서 스스로 우위를 내주려 한다든가, 결정권을 스스로 넘겨준다거나 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말고 끝까지 내가 지켜야 할 권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난 몇 년간 일을 하면서 어떤 기회를 잡고 싶은 욕심에 내 가치를 낮춘 적이 많다.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이 가장 크게 든다.


    나를 가장 인정해 줄 수 있는 건 난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어찌 됐든 기회라는 건 찾아왔을 때나 기회지, 어떻게 내가 끌고 가는지에 따라 나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 잡은 기회도 계속 살펴보고 놓친 기회는 후회하지 말자. 기회가 아니었을 거다.


    ‘전화위복은 참 멋진 말이다. 공감이 정말 많이 돼서 어려운 상황에서 힘이 된다. 오히려 위기라고 판단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만들어져 기회 이상의 기회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지레 겁먹었다가 사실 별 위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던 적도 있다. 중요한 핵심은 내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위기라는 것은 어쩌면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더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이뤄 냈을 때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축구에서도 후반 추가 시간에 실점 기회를 막아내고 역습에 성공해 극적인 승리를 얻는 장면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자랑이지만 ‘내가 직접 봤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포르투갈전 승리가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어쩌면 이런 것들 전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일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지. 결국은 모든 일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내 역할을 다한 이상 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내 노력을 스스로 인정해주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또다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많은 성공을 했다는 것은 많은 실패를 했다는 것이니까, 많은 실패라는 건 곧 찾아올 성공의 신호다. 원하는 게 있다면 이룰 때까지 계속하는 것 말고는 생각해야 할 것이 없다. 일에 있어서 분석은 필요하지만 고민은 필요 없다.


    모든 일에 완벽한 컨디션이 있을까? 항상 바람 부는 방향에 맞춰 걷는다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내가 흔들리면 모든 게 흔들리는 것이니까 마음이 흔들릴수록 더 자신을 가지고 집중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도 돌격하는 정신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기회는 사람이 위기에 빠진 것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위기는 상황을 더 멋있게 꾸며주는 극적 요소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기회냐 위기냐 상관없이 내 본분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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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