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정원은 넓고 화려해 눈에 띄지만, 누군가의 정원은 비교적 작고 소박해 눈길을 끌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고 소박하다고 해서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지런히 땅을 다진 뒤, 씨앗을 심고 단단하고 윤기있게 일구어간다면 그 어떤 정원보다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는 싹이 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정원을 보고 시기하며 욕심내기보다 내 정원을 사랑하고 정성껏 돌보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일구어가다 보면 ‘때’는 찾아온다. “우리 모두 각자의 때를 품고 있다. 하지만, 꽃이 피지 않는 순간도 마땅히 아름답다”는 저자의 말처럼, 꽃을 피우기 위해 땅을 다지고 씨앗을 심고 흙을 덮고 물을 주는 모든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멋진 일이다.
저자 역시 오랜 시간 싹이 나길 기다리며 자신의 정원을 정성껏 돌보았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은 흘러가는데, 도무지 싹은 자라나지 않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새로운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껏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깝더라도 지난 씨앗은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이 책은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꿈꿔왔던 목표(꿈)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결국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흘러가는 대로만 살지 않기 위해, 나의 본질을 알아차리기 위해, 불안이라는 파도를 이겨내기 위해, 삶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배우고 성장하고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 먼 미래의 울창한 정원만을 상상하느라 오늘의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며, 생각처럼 피어나지 않는 꽃을 바라보며 낙심하고 있을 우리에게, 누구나 자기만의 ‘때’가 있고 비로소 그 ‘때’가 왔을 때, 정원 가득 당신만의 멋진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따듯한 응원이 담겨 있다.
■ 저자 윤수빈(유어셀린)
미로에서 길을 잃는 것을 계획하고,
날아올라 결국 길을 만드는 사람.
6년간 준비하던 공중파 아나운서가 아닌
세상을 무대로 영감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겠다 선언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이자 10만 인플루언서 ‘유어셀린’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업과 콘텐츠로 맑은 삶을 나누는 과정을 즐긴다.
인스타그램 your_celine_
유튜브 유어셀린YourCeline
■ 차례
프롤로그
1장
시시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에게
착함의 정도
긍정에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현명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
말 한마디가 돈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
사실 너한테 지독한 열등감을 느꼈어
미친 듯이 사랑하지 말자
글쓰기와 운동의 공통점
공감의 타이밍
이상하고 다정한 사람
맑은 부러움 모으기
청소를 어떻게 그렇게 자주 하세요?
2장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자
나의 흔한 이름에 대하여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나를 괴롭힌 건 비관이 아니라 낙관이었다
진심이 묻어난 태도는 대체로 순간이다
나의 본질을 눈치채는 방법
우리는 모두 우아한 스쿠터를 타고 있다
친구인데 존댓말 합니다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
나와 유쾌하게 지내는 방법
싫은 소리 잘하고 계세요?
불안이라는 파도를 만났을 때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삶
3장
오늘의 날씨 맑음
일상에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
기분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왜 큰딸들은 엄마에게 툭툭거릴까
고민을 가볍게 들어주는 사람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
내가 빵을 만드는 이유
비범함은 결핍에서 피어난다
행복을 보물찾기하듯 모으는 방법
귀인을 알아보는 시그널
궤도 바깥으로 벗어나는 용기
청춘을 음미하는 법
내가 그려 나가는 세계
Interview
오늘도 부지런히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고 있을 당신에게 전하는 다정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10만 인플루언서이자 프리랜서 아나운서, 크리에이터를 위한 클래스 ‘뉴온’ 대표 등 그 누구보다 견고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유어셀린’ 윤수빈 작가의 첫 번째 책입니다.
때가 되면 너의 정원에 꽃이 필 거야
이상하고 다정한 사람
나는 커피 맛에 예민하지 않다. 불과 몇 달 전에서야 미간의 주름 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줄 알게 되었고, 라테는 쓰지 않으면 맛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커피는 달랐다. 정말 맛있었다. 눅진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커피 위를 한껏 감싸고 있는데, 겉면에 눈이 내린 듯 슈가 파우더가 뿌려져 있었다. 이 음료의 이름은 언더스노우이다. 이 음료는 빨대를 사용하면 안 된다. 유리잔 위에 입술을 포개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 적당히 쌉싸름한 커피 맛이 달콤한 크림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재료의 밀도 차이가 주는 환상적인 팀워크다. 보통의 카페에서는 아인슈페너로 불린다. 이 커피를 좋아하는 이상하고 다정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 소재의 대학임에도 근처에 갖춰진 식당, 카페, 병원이 귀했다. 2학년 즈음 학교 건너편에 아늑한 카페가 하나 생겼다. 존재 자체가 반가웠고, 시간을 내어 자주 가곤 했다. 장소가 좋아서, 언더스노우가 좋아서였다. 친구에게 그 음료를 소개해주고 싶어 데려간 날이었다. 언더스노우 1+1이라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벤트 안내 문구 옆으로 한 문장이 덧붙여 있었다.
“나 없는 곳에서 아프지 말아요.”
자세히 보니 그 이벤트의 주최자는 카페 사장님이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의 사장님(?)이었다. 이분을 감히 이상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칭하고자 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직업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는 요즘, 이분이 계속 떠올랐다.
덧붙여진 문장을 보고 이분의 직업을 유추한 사람도 있을 텐데, 학교 근처의 유일한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이다. 잠시뿐이었지만 선생님을 만나본 사람으로서, 어른으로서 존경하고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이 메시지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유머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뵌 건 대학교 2학년 가을 즈음이었다. 당시 교내 방송국 생활에 파릇한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중이염이 찾아와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겁에 질린 채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작은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고, 내부는 아담했다. 선생님은 어디가 아픈지 물으셨고, 나는 “귀가 안 들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내 귀에 손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들리느냐고 물었다. “네, 조금 들려요”라는 내 말에 선생님은 “아우, 증말!! 깜짝 놀랐네! 왜 귀가 안 들린다 그래요?”라고 말하시며, 당사자인 나보다 더 놀란 듯 보였다. 범상치 않은 선생님이었다.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어떤 심각한 상황을 말해도 항상 침착했는데. 환자인 나보다 더 호들갑이셨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래요. 언 놈이야?”
“네에… 네?”
“어떤 놈이 힘들게 해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뭐, 방송국 때문에 그래요?”
“오! 어떻게 아셨어요?!”
“뭘 어떻게 알아요. 옷에 쓰여 있잖아요. 근데 학교 방송국에서 뭘 하길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렇다. 그때 나는 방송국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 뒤로도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셨다. 방송국은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동네의 작은 병원이라 환자가 밀려 있지 않은 덕에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보통의 경험에 의하면, 진료실에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을, 의사는 환자의 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곳의 진료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은 환자들을 환자 이전에 사람으로 대해주셨다. 해결책 이전에 왜 이런 아픔이 생겼는지 궁금해하셨다. 형식적인 질문들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 나오는 관심이었다. 병원에 오는 아픈 사람들과 웃음이 오고 가는 이상한 곳이었다
사실 학교 내에도 의무실이 있어,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까지 찾아갈 일이 잦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학년이 되었고, 감기 기운으로 인해 병원을 찾았다. 몸은 아프지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료실로 들어가 선생님을 마주했는데, 선생님이 적어놓으신 진료 차트에는 3년 전 나눴던 대화의 키워드들이 적혀있었다. 그 단어들은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서로를 이어주는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왔다며 나를 반겨주셨다. 그날은 내가 준비 중이었던 해외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셨다. 변함없는 모습이셨다. 졸업을 한 지금 학교를 떠올릴 때면, 다시 만나 뵙고 싶은 분이다. 선생님께서는 아실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한 번이라도 만났던 학교 학생들은 모두 좋은 기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잠깐의 인연으로 스쳐 지나갈 한 명의 학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남겨주셨다. 긴 시간이 지난 현재는 다른 곳으로 병원을 옮기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선생님이 환자에게 주는 것은 비단 처방전뿐만이 아니다.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 다정함, 그리고 위로를 전해주었다. 가끔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나도 선생님처럼 다소 이상하지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선생님만큼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니기에 웃음을 전하진 못하더라도, 따듯한 말과 미소는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다채로운 방법으로, 때론 귀엽기도 했으면 좋겠다. 직업이 명함이 아닌 수단으로써 백번 발휘되기 위해 끊임없이 베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카페에서 신메뉴가 나온 날이었다. 수많은 주문과 레시피들로 헷갈린 나머지 실수로 딸기 프라페 위 토핑을 잘못 얹게 되었고, 주문한 손님에게 말했다. “제가 토핑을 잘못 올려드렸는데, 다시 만들어드려도 괜찮을까요?” 여성 손님은 프라페를 한 번 바라보고는 “괜찮아요. 이게 더 예쁜데요? 잘 마실게요”라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분명한 실수였지만, 바쁜 알바생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날은 약국에서 일을 하던 날이었다. 매주 주말, 근처 병원을 방문한 후에 처방전을 들고 오시는 할머님이 계셨다. 어느 날은 처방전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보니까 아픈 게 다 낫는 거 같어. 이제 그만 와도 될 것 같아.” (데스크에 있다 보니, 나를 약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셨다.) 엄연히 몸이 아픈 것이 낫는 일은 자신의 기쁨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할머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을 한 칸씩 남겨놓는 사람들은 말속에 타인의 덕이 들어가 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같은 상황을 다른 태도로 대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전 시간 가게를 나설 때 건네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누군가의 실수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너그럽게 관용하는 태도가 그릇을 보여준다.
싫은 소리 잘하고 계세요?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싫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나만의 삶을 지킬 수도 없다.
일례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서글서글함을 떠올려볼 수 있다. 만약 모두에게 사랑받고픈 욕망이 커져 자신의 감정까지 퇴색시킨 경우라면, 적절한 때에 표출되지 못하고 쌓인 부스러기 같은 감정들이 단단히 뭉쳐 목구멍을 턱 막아버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이 선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로서는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이를 존중해 주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때, 저 사람은 왜 나의 호의를 권리라고 여기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의 문을 걸어 닫는 경우가 있다. 조용히 멀어지는 건 자유다. 하지만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은 어렵다.
상대방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오히려 높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품위가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많다. 나 또한 상대의 배려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었을 거라 고백한다. 때문에 무작정 나의 권리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욕심일 수 있다. 우리는 싫은 소리를 당당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 좋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포장하고 넘기려는 태도는 습관일 가능성이 높다.
나를 지키는 단단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은 바로 감정 존중이다. 상황이나 상대의 태도로 인해 불쾌함을 느낀 순간, 감정보다 관계의 온전함에 완벽한 무게를 둔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성숙한 태도가 아니냐 물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나의 상황과 불합리함을 느끼는 감정들을 젠틀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상대에게 감사함을 불러올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착각하지 말자.
상상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합리적인 이유로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정돈된 문장으로 전달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미안함일 것이다. 혹은 부끄러움일 수도 있다. 당신이 상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만큼, 상대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이 강렬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상대방이 부정적인 감정을 단지 분노로만 느끼는 미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넘어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른 상대방의 평온한 반응에 싱거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말해야 안다. 물론 그럼에도 모든 배려를 무시하는 저렴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배제하고 말이다.
기분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기분은 매일 아침 배달되는 편지와도 같다. 오늘 아침은 착 하고 커튼을 열듯 가벼이 눈꺼풀이 떠졌을 수도, 지난밤 께름칙한 악몽을 꾸었을 수도, 애써 무시했던 감정들이 옷자락에 물감이 스며들듯 퍼져나갔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온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 기분의 이유는 따져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어제와 비슷한 듯 다른 하루를 버텨내듯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기분이 안 좋다면 안 좋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말이다.
기분이란 건, 곧 감정의 기후를 의미한다. 날씨처럼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이를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좋은 날의 기준은 내가 만든 것뿐이다. 기분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대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기분에 복종하는 삶은 거두어야 한다.
매일의 하루는 분명하게 다르다. 어떤 인문학자는 수면을 죽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죽음과 탄생으로 반복된다. 우리는 매일 밤 짧은 죽음을 지나 새로운 탄생인 아침을 맞이한다. 어제의 하루를 잘 개어두고, 오늘의 새로운 하루를 행복하게 조각하는 것이, 보다 이로운 삶을 만드는 법이다. 부지런하게 나의 기분을 관리할수록 더 크고 단단한 행복의 파이가 만들어진다.
지혜롭게 기분을 관리하는 첫 번째 방법은, 기분의 모양을 떠올리는 것이다.
자, 오늘 당신의 기분은 어떤 모양인가? 정답은 각자에게 있다. 몽글몽글한 구름 모양, 찝찝하게 엉겨 붙은 머리카락 모양, 가지런히 정리된 접시 모양일 수도 있다. 그러한 모양이 생겨난 이유를 찬찬히 떠올려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기분은 기후와도 같아서 내 의지대로 고를 수는 없지만, 이유 없는 기분은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의 총합에 대한 결과물이다. 다만 그 시간이 찰나일 수도, 혹은 인지하지 못할 만큼 길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기분 편지가 배달된 이유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면, 왜 기분이 좋지?라고 생각해 보자. 어젯밤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자존감을 올려주었는지, 오늘 기대되는 일이 있는지 말이다. 이유를 찾았다면 이러한 기분 편지를 배달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하며, 행복한 기운을 만끽하자. 에너지는 비슷한 에너지를 끌어오기 마련이다.
반대로 기분이 안 좋다면, 왜 기분이 안 좋지?라고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잘 관리해야 하는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이 대부분이다. 그저 나쁘기만 한 기분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면, 하루의 다양한 일들을 망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분일수록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이유를 찾았다면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자. 나라는 자아를 제외하고 상황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부정적인 기분이 강할수록,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상황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부정적인 기분 자체를 받아들이기 전에, 상황을 인정하자.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소한 긍정들을 모아가는 것이다. 사소하고 귀여운 행복들을 나에게 선물하자. 이 두 가지 연습을 반복하면 감정에 지지 않는 단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려 나가는 세계
우리는 모두 도화지 위에 태어났다. 삶이란 각자의 그림을 한땀 한땀 정성스레 그려가는 것이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림은 그를 설명한다. 화가 김환기. 그의 경이로운 작품 앞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두 발로 서 있을 뿐이었다. 넓은 미술관의 빈 공간에서 그 작품들을 두 눈에 품고자 했지만, 오히려 뒤덮여 버리고 말았다. 그림이 말하는 삶의 빛깔을 어느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었다.
환기 미술관의 꼭대기 층에는 그의 대표작들이 모여있다. 그중 한 작품을 보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앞면이 아닌, 캔버스의 뒷모습이었다. 그곳에는 그의 고민과 문지름과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스케치의 시작과 작품의 얼굴은 달랐다.
가만 보면 우리의 일도 그렇다. 시작할 때 예상했던 모습과 끝날 때의 모습이 같지 않은 경우가 더욱 흔하다. 시간의 흐름은 다양한 관계, 다양한 감정을 낳는다. 그 사이, 예상치 못한 흐름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끝까지 놓지 않으면, 이내 상상한 것보다 더 멋진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그리던 붓질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고귀한 작품이다.
결국 보여지는 건 최종의 아름다움이겠지만, 캔버스 뒷머리에 창작의 응어리가 남긴 흔적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김환기 작가의 추상화에는 대부분 이름이 없다. <19-Ⅶ-71#209>와 같이 번호 형태로 되어 있다. 1,000작이 넘는 그의 작품들에 일일이 이름을 붙일 수 없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거나 마친 날짜 그리고 미국에서 몇 번째 작품인지 같은 정보들로 작품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것에 이름을 붙였다. 바로 물감이다. 그는 투박한 물감 병에 손수 이름을 지었다. 작품의 이름보다 정성을 쏟았던 건 빛깔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유효 기간이 너무도 짧은 인간을 대신해 오래도록 남겨진 그림들의 본질은 물감인 것이다. 처음부터 작품에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물감에 이름을 붙여보자. 지금 당장하고 있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다. 앞면과 뒷면이 다른 캔버스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된다. 그러니 그럴싸한 미래의 이정표가 아닌, 현재 가진 것들의 빛깔에 애정 어린 이름을 지어주자. 그렇게 나만의 물감으로 여러 그림을 찬찬히 그려 나가다 보면 진하게 자리하는 작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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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