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츠나구 2
 
지은이 : 츠지무라 미즈키
출판사 : 리드리드출판
출판일 : 2023년 10월




  • 사자 츠나구 1의 후속작으로 작품 속 시간은 전작으로부터 7년 후의 이야기이며, 오랜 세월 츠나구로 지낸 다정한 할머니로부터 그 역할을 물려받은 고등학생 시부야 아유미의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사자 츠나구 2: 인연이 이어주는 만남과 마음


    바다는 아무 일 없이 평온했습니다

    시부야 아유미는 시나가와의 호텔 라운지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직 한 번,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츠나구로서 의뢰인 앞에 앉아 조용히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의뢰인은 시게타 쇼이치와 미사토 부부였다.


    그들 부부는 5년 전, 바다에 빠져 숨진 딸 메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츠나구에게 의뢰하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아유미가 설명하기도 전에 한 명의 망자는 오직 한 사람만 만날 수 있다는 규칙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아내인 미사토가 메이와 만나려고 합니다.”


    남편 쇼이치가 말했다.


    메이와 만나길 바란다는 아내 미사토는 요즘도 계속 딸을 잃는 꿈을 꾼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아유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꿈은 실제로 메이를 잃을 때의 상황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바다에 뛰어들지도 않았고 정말 메이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남편도 메이에게서 눈을 떼고 있었으니까요.”


    아유미는 맞장구조차 치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들도 아유미에게 딱히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게타 부부가 가지고 온 사진 속에는 바닷가의 제방을 배경으로 모자를 쓴 세 가족이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시게타 부부는 아직 젊은 모습이었고 지금 아유미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으로 딸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있었다.


    딸 메이는 당시 여섯 살로 이듬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였다. 조그마한 얼굴에 작은 손. 빨간 깅엄체크의 멜빵바지가 너무나도 아이다운 모습이었다.


    쇼이치의 옆에서 미사토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바다에 빠지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요. 사라졌다는 것을 알자마자 만약의 경우를 위해 허둥지둥 바다 쪽을 살폈지만, 바다는 아무 일 없이 평온했습니다. 그때 바로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저희는 ‘메이는 절대 바다로 가지 않았다., ‘바다는 아닐 테니 유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찾아달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얘기지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아유미가 마침내 맞장구를 치자, 미사토의 시선이 이번에는 아유미 쪽을 향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메이는 밤이 되어서야 결국 바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지요.”


    “저는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수색했던 사람들이 옳았던 거예요. 메이는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희박해 사고사로 처리되었습니다.”


    ‘사건과 유괴.


    당시 시게타 부부는 그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경찰에게도 그렇게 울며 매달렸을 것이다. 딸을 잃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부부는 그나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만큼 감정에 매듭이 지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껴지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뒤 미사토가 고개를 들었다.


    “메이는 제방 위에서 균형을 잡고 걷기도 했고, 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어요. 메이에게 조심하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위험한 일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 주의를 주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무섭다는 건 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갔던 곳이었고 만약 메이가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빠르게 대응하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 쇼이치가 아유미를 바라보았다.


    “메이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츠나구에 관한 이야기는 메이를 잃었을 때부터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처럼 사고로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들의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서 몇몇 사람에게 죽은 아이와 만나게 해주는 ‘츠나구라는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알겠습니다.”


    아유미가 대답했다.


    “두 분의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에 시게타 부부가 도착했다. 아유미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딘 아내 마사토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게타 부부의 딸 메이는 8층의 805호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유미는 작은 아이를 호텔 방에 혼자 두고 나오려니 가슴이 아팠다. 어서 빨리 메이에게 엄마를 데려다주고 싶었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했다.


    “따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네.”


    대답하는 미사토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메이가 기다린다는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쪽을 보고 있는 작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메이다. 미사토를 올려다보는 메이가 서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날과 똑같은 빨간색 깅엄체크의 멜빵바지를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메이가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아 있다!

    한 번 보고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메이였다.

    정말 그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메이!”


    이름을 부르는 미사토의 목소리에 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엄마!”


    크게 소리친 메이가 미사토의 품으로 달려들자, 미사토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미사토가 딸을 와락 껴안았다.


    그동안 여기에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그날 시야에서 놓쳐버린 딸을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미사토는 두 손으로 메이의 작고 따뜻한 몸을 놓지 못했다.


    바다에서 찾은 딸의 창백한 뺨과 입술, 메이의 마지막 모습을 잊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오늘 온기를 지닌 딸이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물속에서 드디어 이 아이를 붙잡았다는 생각에 큰 소리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사토는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오늘 이곳에 온 메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지,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사고에 관한 이야기나 사과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해, 메이. 엄마가 널 살펴보지 못했어. 엄마는 계속 메이와 함께 있고 싶었어.”


    미사토가 강한 힘으로 메이를 끌어안자, 꽉 끌어안을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메이가 투정을 부리며 중얼거렸다.


    “풀어줘, 나갈래.”


    이 목소리도 그리웠다. 그리운 목소리였지만 마치 어제까지 여기에 있었던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왔다.


    “미안.”


    미사토가 웃으며 말했다. 사과는 했지만 메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미안, 엄마가 메이 좀 안을게.”


    마르지 않는 눈물을 겨우 닦아낸 미사토가 메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메이의 눈이 고요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메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엄마.”


    “응?”


    속삭이는 메이의 목소리에 미사토가 대답했다. 메이가 미사토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물었다.


    “여기 아가 있어?”


    순간 숨이 막혔다. 미사토는 얼굴을 뒤로 떼고 메이를 바라보았다. 메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미사토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메이가 살아 있을 때부터 여동생을 갖고 싶다며 자주 했던 행동이다. 그때 배 속에는 아직 아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응, 여기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답에 오히려 질문한 메이가 놀랐다.


    “정말?”


    크게 소리친 메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미사토의 얼굴과 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말 있어? 와, 신난다! 여동생이 있는 거야?”

    “아직 여동생인지, 남동생인지는 몰라.”


    “와, 메이는 여동생이 좋아! 무조건 여동생으로 할래!”

    “만져 볼래?”

    “응!”


    활기차게 대답한 메이는 손가락 하나로 미사토의 배를 콕콕 찌르다가 다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런 메이의 모습에 미사토는 눈물을 참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조금 더 제대로 만져 봐.”

    “아, 아가가 기분이 좋대.”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메이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 얼굴을 향해 미사토가 말했다.


    “메이, 엄마에게 아가가 있어도 괜찮아?”


    메이가 활짝 웃으며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엄!”


    미사토는 눈을 감았다. 오래도록 뜨지 않았다. 꼭 감은 눈동자 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 자신은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메이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고 지금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이 아이는 미사토가 원하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환영일지도 모른다.


    미사토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마워.”


    그렇게 말한 미사토가 힘껏 메이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메이!”

    “엄마, 숨 막혀.”


    그렇게 투정을 부렸지만 메이는 웃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며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 메이가 사라질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침대 위에서 메이와 뒹굴고 놀면서 시계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유나.”


    메이가 미사토의 배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미사토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메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여동생 이름이라며 알려주었다.


    “유나, 유나.”


    메이는 몇 번이나 미사토에게 말했다.


    커튼 뒤로 점점 하얗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미사토는 이런 상황에서도 무의식중에 메이를 재우지 않고 밤을 새우게 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미사토 품에 안겨 있던 메이가 중얼거렸다.


    “엄마, 나 졸려.”

    “이제 자자.”


    그것이 메이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커튼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에 어느새인가 품 안이 허전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품 안에 아무것도 없지만 아직 온기는 남아 있었다.


    미사토는 메이와 닿았던 모든 곳이 반짝반짝 빛나고 따뜻한 온기가 되어 아직 자신의 품 안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


    오전 5시를 넘길 무렵, 로비에 사십 대 정도의 살짝 찢어진 눈이 매력적인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가녀린 몸에 정장 바지를 맵시 있게 입고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아유미는 한눈에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성도 아유미와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가볍게 인사했다. 도키코의 둘째 딸이자 에이코의 여동생 히로코일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로비 한편의 의자에 앉았다. 아유미는 다가가 인사를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냥 도키코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로비에는 그녀 말고도 시게타 미사토의 남편 쇼이치가 의자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밤새 아유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얼굴 앞에 손을 모으고 시간을 견뎌내려는 듯 계속 앉아 있었다.


    6시를 넘길 무렵, 시게타 미사토가 먼저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사토를 발견한 쇼이치가 아유미보다 먼저 재빠르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기척에 당황한 아유미도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게타 미사토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눈물로 젖어 있었다. 쇼이치는 그런 미사토를 보고 말을 잃었다. 아내의 표정이 촉진제가 된 듯 쇼이치의 눈도 빨갛게 물들었다.


    “메이를 만났어.”


    미사토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가방에는 ‘임산부 먼저라고 적힌 임산부 배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방에 올라갈 때 감추듯 가방 안쪽으로 넣은 배지가 지금은 확실히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랬구나.”


    아내의 어깨를 꼭 끌어안은 쇼이치가 말했다. 그 짧은 대답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른 미사토가 고개를 들고 아유미를 바라보았다.


    “고맙, 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사토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 쇼이치와 함께 두 사람 앞에 선 아유미를 향해 나란히 허리를 숙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유미는 쇼이치와 미사토를 프런트 앞쪽의 소파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자 미사토가 조금 진정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엄마.”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아유미는 짧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앗.”


    시게타 미사토보다 조금 늦게 오가사와라 도키코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같은 날 진행한 의뢰인이 재회를 마친 뒤 우연히 마주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 아유미는 누구에게 가야 할지 망설였다. 두 의뢰인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유미를 보지 못한 듯 도키코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 히로코. 일찍 왔구나. 고마워.”

    “어휴, 엄마. 밤을 새우다니, 괜찮아? 피곤하지 않아?”

    “무슨 소리니. 너보다 내가 훨씬 더 야행성이라는 거 잊었어?”


    가볍게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유미는 그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히로코가 시게타 부부 옆 넓은 소파로 도키코를 이끌었다.


    “어라?”

    도키코의 시선이 먼저 앉아 있던 시게타 부부에 머물렀다.


    방금까지 울고 있던 미사토는 이제 거의 안정을 찾은 듯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앉아 있었다.


    안경 너머로 시게타 부부를 바라보던 도키코의 시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유미는 알 수 없었다.


    도키코가 미사토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일이 있네요.”


    도키코가 미사토의 가방에 달린 임산부 배지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란 듯 미사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키코를 바라보았다.


    “축하해요. 건강한 아이를 낳길 바랍니다.”


    도키코는 딸과의 재회를 마치고 벅차오르는 가슴에 그렇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키코 정도 연배의 사람이 하는 말은 불쾌하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게 여운을 남긴다.

    그 말을 듣고 살짝 입술을 깨문 미사토가 말했다. 다시 감정이 복받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어요.”


    아유미도, 미사토의 남편인 쇼이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나는 노부인을 올려다본 미사토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참 뒤에나 입을 열었다.


    “자신이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도키코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도키코의 옆에 선 히로코도 숨을 참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깜짝 놀랄 만큼 밝은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그럼요, 괜찮아요. 당신은 무조건 괜찮아!”


    도키코의 목소리였다. 그녀답게 활기차고 생기발랄한 한낮의 태양과 같은 목소리였다.

    도키코가 미사토의 어깨를 톡톡 가볍게 토닥였다.


    “저 같은 사람이면 그런 걱정을 하겠지만 당신들이라면 분명 괜찮을 거예요. 기대가 되네요.”


    아마도 그 말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옆에 있던 히로코가 도키코를 나무랐다.


    “엄마, 실례잖아. 얼른 가자.”

    “아, 미안해요.”


    도키코가 히로코와 함께 나란히 걸어갔다.


    여전히 아유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도키코가 히로코에게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소파를 지나쳐 그대로 물을 마실 수 있는 프런트 근처의 라운지 쪽으로 가버렸다.


    아유미는 조금 전 순식간에 일어난 그들의 짧은 만남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 깊은 곳에서 할머니의 말씀이 뜨겁게 차올랐다.


    츠나구와 의뢰인은 모두 ‘인연에 의해 이어진다.


    도키코와 미사토, 두 엄마의 방금과 같은 찰나의 해후도 모두 ‘인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유미는 그들의 짧은 대화가 오늘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집에 가기 전에 아침을 먹고 들어갈까?”


    사이 좋게 나란히 라운지로 향하는 도키코와 히로코 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에서 아유미는 벌써 잊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상외로 히로코가 시게타 부부와 아유미의 분위기를 보고 눈치껏 행동했을 수도 있다.


    도키코에게는 나중에 천천히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시게타 부부는 아유미가 다가올 때까지도 도키코 모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사토가 말했다.


    “저런 훌륭한 따님을 둔 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사실 도키코에게 또 한 명의 딸이 있었다는 것을 알 길이 없는 시게타 부부가 넋을 잃고 도키코 모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시게타 부부도 아기를 기다리는 금실이 좋은 부부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밝은 호텔의 로비에서 아유미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미사토와 도키코가 만난 메이와 에이코, 두 ‘장녀가 부디 어딘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기를—.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