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따스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가 8년 만에 전하는 신작 시집. ‘위로 시인’이자 ‘치유 시인’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맑게 닦인 백 편의 시가 담겼다. 1부와 2부는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만으로 엮었다.
■ 저자 이해인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에 몸담고 있으며 1968년에 첫 서원을, 1976년에 종신 서원을 하였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래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로써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영문학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민들레의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작은 기도』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이해인 시 전집 1·2』 등이 있고, 시산문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꽃잎 한 장처럼』, 산문집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쁨이 열리는 창』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영혼의 정원』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 등이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1부 내 몸의 사계절
햇빛 향기 · 햇빛 주사 · 슬픈 날은 · 내 몸의 사계절 · 고운 시간 · 비 오는 날 · 이명 · 약이 내게 와서 · 태풍이 지나고 · 어느 날 꽃과의 대화 · 여름 일기 · 여름 일기?비의 말 · 손님맞이 · 그리움 일기 · 이름 부르기 · 다시 꾸는 꿈 · 꿈 일기 1 · 천국 가는 길 · 고백 · 아픈 근황 · 행복한 근황 · 광안리에서 · 겨울 일기 · 얼음예찬 · 파김치를 먹으며 · 맛동산을 먹으며 · 어묵을 보내며 · 우정 일기 · 열매를 줍다 · 좋다 좋다 그래 그래
2부 맨발로 잔디밭을
햇빛 일기 2 · 혼자 웃는 날 · 천국에 대한 생각 · 참된 위로 · 코로나 격리 후기 · 양말을 빨면서 · 아픈 날의 일기 2 · 노년 일기 · 이별 일기?허수녀님께 · 그리운 나라 1 · 엄마 · 맨발로 잔디밭을 · 나의 취미는 · 최근에 기뻤던 일 · 독을 빼는 일 · 통증 단상 2 · 이별학교 · 정인 수녀님 · 바다 일기 · 그리운 나라 2 · 꿈 일기?카드를 사며 · 꿈 일기 2 · 슬픈 날 나비에게 · 뼈아픈 날의 일기 · 채혈 일기 · 잠에게 · 노년의 기도 일기 · 작은 결심 · 눈물 한 방울?어머니 선종 16주기에 · 식물원 일기
3부 좀 어떠세요?
싱겁게 더 싱겁게 · 병원에서 · 좀 어떠세요? · 아픈 날의 기도 · 아픈 이들을 위해 · 마음이 아플 때 · 통증 단상 1 · 낯설다 · 이별의 아픔 · 눈물의 만남 · 상처의 교훈 · 퇴원 후에 · 슬픈 사람들에겐 · 위로의 방법 · 위로자의 기도 · 햇빛 일기 1 · 새로운 맛 · 환자의 편지 · 환자의 기도 · 간병인의 기도 · 의사의 기도 · 약 먹을 때 하는 기도 · 아픈 날의 일기 1 · 고맙다는 말
4부 촛불 켜는 아침
가을 편지 · 촛불 켜는 아침 · 병상 일기 1 · 병상 일기 2 · 병상 일기 3 · 슬픈 날의 편지 · 사라지는 침묵 속에서 · 비가 전하는 말 · 물망초 · 바닷가에서 · 어떤 보물 · 꽃의 말 · 여정 · 인생학교 · 눈물의 힘 · 비 오는 날의 일기
추천의 글_ 황인숙 (시인)
추천의 글_ 양은주 (암재활 전문의)
수도자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따스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가 8년 만에 신작 시집을 전합니다. ‘위로 시인’이자 ‘치유 시인’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맑게 닦인 백 편의 시가 담겼습니다.
이해인의 햇빛 일기
1부 내 몸의 사계절
햇빛 향기
오랜 장마 끝에
마당에 나가
빨래를 널다
처음으로 만난
햇빛의 고요
햇빛의 만남
하도 황홀하여 눈이 멀 뻔했네
다시 한번
살아 있는 기쁨
숨을 쉬는 희망
자꾸자꾸 웃음이 나오네
햇빛 주사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듯이
내 몸이 힘들고 우울할 땐
햇빛 주사를 자주 맞는다
차가운 몸이 이내 따뜻해지고
우울한 맘이 이내 밝아지는
햇빛 한줄기의 주사
고맙다고 고맙다고
목례를 하면
먼 곳에 있는 해님이
다정히 웃는다
복도를 걸어갈 때도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나를
생명의 빛으로 초대하는
나의 햇빛 한줄기로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내 몸의 사계절
친구야 내 몸에도 사계절이 있단다
항상 설레이는 시인으로 살고 싶은
나의 마음과 찬미를 노래하는 나의 입은
봄인 것 같고
항상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가슴은 여름인 것 같고
항상 단풍빛의 그리움을 안고 사는 나의 마음과
고독이 출렁이는 나의 눈은 가을인 것 같고
항상 참을성 있게 비워두고 싶은 나의 마음과
차디찬 손은 겨울인 것 같고
이렇게 말해도 말이 되는 걸까?
이름 부르기
부르는 이름에
대답할 수 없는 미안한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죽은 이들은 가끔
사랑하는 이들의
꿈속에 나타나 이름을 불러주나보다
나는 오늘도
꽃에게 나비에게 나무에게
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새삼 행복하다
겨울 일기
몹시 추운 오늘
하늘과 바다는
더욱 푸른빛으로
나를 설레게 하네
학교에서 집에 오다
꽁꽁 언 두 손을 비비며
추워서 울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고
수녀원에 와서
마음의 추위를
기도의 난로로 녹이며
기쁘게 살아온 내가 보이고
봄 여름 가을도 아름답지만
겨울은 매운 바람과
모진 추위로
인내의 덕을 키워준
나의 선생님
차갑고도 뜨거운
‘계절 수련장이었지
2부 맨발로 잔디밭을
햇빛 일기 2
오늘도
어서 오세요
비 온 뒤에 만나니
더욱 반갑네요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손 흔드는 아침
햇빛으로
얼굴을 씻고
손을 씻고
마음을 씻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도 내게
햇빛으로 웃어줄 거라
미리 미리
행복합니다
참된 위로
굳이
위로라는 말을 강조하진 말고
그냥 그냥 가만히
위로해주길 바라
위로하는 것도
위로받는 것도
너무 강조학더나
소문 내다보면
오히려 부담이 되고
몸도 마음도
피곤해지니까
가만히
있는 듯 없는 듯
위로도 하고
위로도 받는
그런 세상을 그리워하게 돼
맨발로 잔디밭을
엄마
오늘은 맨발로 잔디밭을 걸으니
꽃밭의 나비들도
저를 눈여겨보구요
엄마가 낳아주고 길러주신
하얀 두 발이
초록의 잔디 위에서
처음 본 듯
아름답게 보였어요
인생여정
사계절의 먼 길을 걸어오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잔잔한 미소로
저의 두 발을 향해
인사도 하고 싶네요
바다 일기
수평선이 보고 싶어
바닷가에 나가
그냥
바다! 라고
가만히 말했을 뿐인데
가슴이 뛰다 못해
눈물이 나네
달려오는 파도에게
그냥
파도야! 라고 불렀을 뿐인데
또 눈물이 나네
집에 돌아와서
왜 그럴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지
꿈결에 흘리는
나의 혼잣말
산다는 건 언제나
끝없는 그리움이어서
그러나 실은
언젠가는 꼭
끝나게 될 그리움이어서
그래서 눈물이 난 것이라고
작은 결심
세상에 머물
생의 길이가
조금씩 더 짧아질수록
나는
마음이 날씨를
밝게 가꾸고
변덕을 피해야겠다
사랑의 폭을
관대함으로
넓혀가야겠다
새롭게 만나는
시간의 결을
조심조심
맑고 곱게
가꾸어가야겠다
그리고 기도의 지향을
단순하게 정해야겠다
오늘은
이 결심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분하다
3부 좀 어떠세요?
햇빛 일기 1
오늘도
한줄이 햇빛이
고맙고 고마운
위로가 되네
살아갈수록
마음은 따뜻해도
몸이 추워서
얼음인 나에게
햇빛은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천상의
밝고 맑은 말을
안고 와
포근히
앉아서
나를 웃게 만들지
또
하루를
살아야겠다
4부 촛불 켜는 아침
촛불 켜는 아침
밭은기침 콜록이며
겨울을 앓고 있는 너를 위해
하얀 팔목의 나무처럼
나도 일어섰다
대신 울어줄 수 없는
이웃의 낯선 슬픔까지도
일제히 불러모아
나를 흔들어 깨우던
저 바람 소리
새로 태어나는 아침마다
나는 왜 이리 목이 아픈가
비가 전하는 말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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