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새의 사체들과 함께 발견된 3세 남자아이와 1세 여자아이. 이상한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웃들의 제보로 구출된 그들은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고 새의 날갯짓을 따라 하며 걸을 때도 새처럼 총총거렸다. 남매의 엄마 나토리는 자녀를 집에 방치해 두고 새모이만 준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동 보호시설에 살던 ‘새장 사건’의 피해자 남매는 다시 누군가에게 유괴되어 실종되고 말았다.
국가와 사회, 심지어 혈연에게서도 버림받은 무호적자들이 모인 공동체 ‘유토피아’는 그들만의 국가, 안식처를 꿈꾼다. 살인미수 사건을 추적하는 여형사 리호코는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의 단서를 쫓다가 ‘유토피아’의 존재를 발견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건이 서로 얽히면서 수수께끼 같던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나가고 어두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여 더욱 안타까운 마음과 끔찍함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감정을 건드리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 저자 츠지도 유메
1992년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츠지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필명의 ‘츠지도’는 출신 지명을 땄고, ‘유메’는 서클 별명에서 유래한다. 제1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사라진 나에게》란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고 2015년 데뷔하였다. 2022년에는 《새장》으로 제24회 오야부 하루히코 문학상을 수상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나와 그녀의 왼손》, 《짝사랑 탐정 오이카케 히나코》, 《지금, 죽는 꿈을 꾸었습니까》 등이 있다. 일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역자 장하나
일본어를 공부하다 문득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책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사양》, 《달려라 메로스》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prologue
새장 문이 열린 후
#1 유토피아에 살다
#2 그들만의 유토피아
#3 모두의 유토피아를 위하여
epilogue
열린 새장 밖으로 날다
살인 미수 사건의 용의자가 무호적자인 가운데 과거 일본을 들썩이게 한 ‘새장 사건’과의 공통점이 드러나는데…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우수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츠지도 유메의 역작과 만나보세요.
그림자 인간
prologue
새장 문이 열린 후
1996년 5월, 리호코 나이 여섯 살. 그날의 거실은 유난히 어두웠다. 주홍빛 노을이 물든 레이스 커튼만 유일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리호코는 무릎을 껴안고 카펫 위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주쿠 구내의 빌라에 갇혀 지내던 세 살 남자아이와 한 살 여자아이가 구조된 사건으로, 경시청은 오늘 두 아이의 어머니인 나토리 히로코 씨를 감금 용의자로 재체포했습니다. 이달 5일, 두 자녀만 두고 수일 동안 집을 비워 양육을 방임한 나토리 씨는 보호 책임자 유기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현장에는 새의 사체들이 흩어져 있고, 아이들이 새의 모이와 물에 입을 댄 흔적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말을 전혀 하지 못했으며, 신체 발육도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안쪽의 방문 손잡이가 제거된 점으로 보아, 나토리 씨는 수년간 아이들을 새와 함께 이 방에 감금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여섯 살이지만 생각만큼은 무척 어른스러운 리코호에게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리호코는 만약 자신이 그 집의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작은 새와 함께 더러운 방안을 돌아다니며 어쩌다 한번 얼굴을 들이미는 엄마에게 먹이를 달라고 입을 달싹거리는 모습.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짓을 저지른 어른이 지금 여기 일본에 있다니. 리호코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던 ‘새장 사건의 두 피해 아동이 누군가에게 유괴당했다. 이 사건은 빌라에서 그 아이들이 구조되었을 때보다 더 크게 다뤄져서 몇 날 며칠 보도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미제 사건으로 수사본부가 해체되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유난히 정이 많았던 리호코는 또 한 번 불쌍한 그 새장 속 아이들이 떠올라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1 유토피아에 살다
엿새에 한 번 있는 당직 날 밤. 모리가키 리호코는 무전기를 들고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사 차량의 조수석에 뛰어오르니, 신입 하야시베 가이토는 운전석에 이미 타고 있다. 형사과에 배속된 지 막 2주가 지난 참이라, 아직은 심야 현장 출동에 익숙지 않을 터였다. 필시 긴장하고 있겠거니 했는데 돌아보는 얼굴이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사건 현장은 한적한 주택가였다. 이 시간대에는 취객 싸움이나 자전거 도난 피해 건으로, JR 가마타 역 주변의 번화가로 출동하는 일이 많은데 의외의 곳에서 사건이 터져 좀 의아했다.
리호코가 침울한 기분에 잠긴 사이, 하야시베가 운전하는 차가 주택가의 한적한 좁은 길로 들어섰다.
“수고하십니다.”
안면이 있는 지역과 경찰이다.
“이 근처 아파트에 사나 본데요. 갑자기 뒤에서 습격당했답니다. 흉기인 칼은 범인이 떨어뜨리고 갔고요. 저기.”
“아, 범인 말인데요. 혹 그 사람일 수도….”
남자가 입을 뗐다.
“아까 술집에서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어요. 이제 그만하자고, 끝내자고 했는데 가게를 나와서도 집요하게 쫓아와서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갔거든요.”
“그 사람 이름이 뭔가요?” 리호코는 빠르게 되물었다.
“가나우치 하나. 나랑 같은 스물여섯인데 동안이에요. 긴 갈색 머리에 말랐고 키는 작아요. 아마 처음부터 칼을 준비했을지도.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죽일 생각으로.”
남자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리호코도 남자의 시선을 따라 홱 뒤돌아봤다.
5미터쯤 떨어진 사거리에 몸집이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밝은 하늘색 상의와 하얀색 롱스커트 차림에 긴 갈색 머리가 어깨에 드리워져 있다. 전봇대에 숨어 이쪽을 살피던 그녀는 리호코와 눈이 마주치자 뒤로 성큼 물러섰다.
“가나우치 하나 씨 맞으시죠? 협조 좀 해주시겠습니까?”
***
그런데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암초에 부딪혔다.
“호적이 없어?”
리호코는 진술조서의 첫 번째 항목인 ‘본적조차 기재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이 돼요? 본적을 모르면 우리가 알아볼 테니, 우선 신분증 좀 보여 주시죠. 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 주세요. 보험증 같은 거라도요.”
“없어요. 아무것도.”
***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당신은 사이토 도시키 씨와 교제하고 있었죠. 그런데 오늘 밤 데이트 약속 장소인 술집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고 화가 났어요. 그래서 사이토 씨를 몰래 따라가 죽일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요. 맞습니까?”
“네.”
“얼마 전에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제가 무호적자라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고 털어놓으니 갑자기 태도가 냉정해졌어요.”
“그래서 욱하는 마음에 죽이려 했다는 건가요?”
“네. 도시를 무척 좋아했으니까요. 어차피 끝날 바에야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야 했어요.”
“그런데 범행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 왜죠?”
“그렇게 도망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말주변은 서툰데 아주 솔직했다. 성과 본적을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거짓말 같을 정도였다.
***
성씨나 본적 등 모든 것이 미상인 채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다. 일말의 찝찝함은 남았으나 솔직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피해자가 분명히 죄를 인정했으니까. 호적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되어 처벌받게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가 범행을 전면 부인한다고 검사가 전화하기 전까지는.
나는 사이토 도시키의 상해와 전혀 무관하다. 현장에 나타난 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리호코와 하야시베는 “경찰이 너무 무서워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사건 현장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도망친 것도 그 때문이다, 피해자의 집 앞에 간 것은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려 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칼에 찔린 사실은 모르는 일이다.”라는 하나의 검찰 조사 진술을 듣고 분노를 감출 길이 없었다.
***
복잡한 마음으로 형사과가 있는 3층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 유치계로 가자 안면이 있는 여성 담당관이 맞아 주었다.
“이제 막 짐 반환이 끝난 참입니다.”
하나는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메고 무료하게 서 있었다. 체포할 때 입고 있던 밝은 하늘색 니트에 흰색 꽃무늬 롱스커트 차림이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빼면 수수한 인상이다. 26세라는 추정 나이는 작고 동안인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주뼛주뼛하는 모습이 부모가 마중 나오기를 기다리는 가출한 여고생처럼 보였다.
“갈까요?” 리호코는 가벼운 어조로 하나를 계단으로 이끌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녀는 넓은 길 한복판에 섰다. 눈이 부신지 눈을 가늘게 뜨고 도로를 오가는 차를 잠시 바라본 후 리호코를 돌아보았다.
“저, 어디로 가나요?”
“어디든요. 이제 석방됐으니까 자유예요. 난 하나 씨가 평소 어디서 지내는지만 확인하면 바로 돌아갈 테니까.”
올 때 경찰차를 타고 와 방향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나는 잠시 망설인 뒤, JR 가마타 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
리호코는 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서 주춤거렸다. 리호코는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멈춰서서 조금 전 하나가 사라진 PC방 입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대로 얼마나 있었을까.
계단을 내려온 여성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낯익은 흰색 꽃무늬 롱스커트가 밤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형사의 습성상 재빨리 몸을 숨겼다. 잠시 숨을 죽이고 역 쪽으로 걸어가는 인파 속에서 키 작은 하나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리호코는 황급히 뒤쫓았다.
그녀가 땅거미에 휩쓸리듯, 한 공장 부지로 사라진 것은 역에서 15분 남짓 걸은 후였다. 리호코는 발을 멈추고 문기둥에 표시된 회사 이름을 확인했다.
“가나우치 식품 주식회사.”
하나가 입구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따스한 느낌의 노란 빛이 확 밝혀지더니 “하나!”, “돌아왔구나!”라는 남녀의 함성이 들려왔다. 리호코는 미닫이문이 닫히자마자 창고 앞으로 달려갔다. 입구의 문은 오랜 세월 탓에 헐거워져 빼꼼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한쪽 눈을 대고 창고 안을 들여다봤다. 청년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남녀 대여섯이 돌아온 하나를 둘러싸고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좌탁 위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놓여 있고, 올려진 냄비에서 익어가는 채소 냄새가 먹음직스럽게 풍겼다. 컵라면 용기, 나무젓가락, 음식 쓰레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회색 카펫이 깔린 바닥에는 3인용 소파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만화책이 엎어져 있다.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텔레비전 소리도 들려왔다.
공간 안쪽에는 하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바닥과 커튼 사이 틈으로 이불 몇 채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천장에 로프를 둘러쳐 커튼을 십자 형태로 나눈 몇 개의 방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다.
리호코는 지금 식품 공장 부지의 구석에 있는 허름한 창고가 아니라 대가족이 모인 밝은 거실을 들여다본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진술이… 거짓말이었다는 거야? 주소 미상의 홈리스가 아니라 여기서?”
리호코는 무심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구시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리호코는 소름이 끼쳤다. 황급히 미닫이문에서 홱 물러서 뒤를 돌아봤다. 짧게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서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눈빛의 남자였다.
수염 탓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리호코가 보기에 자기 또래쯤으로 보였다. 남자치고는 긴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 옆으로 흘러내리고 얇은 입술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그 색채 없는 눈이 리호코의 전신을 관찰하듯 위아래로 움직였다. 리히코는 식품 공장 관계자에게 들켰을 때를 대비해 변명거리는 생각해뒀는데 식은땀만 흐를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묘한 아우라를 내뿜는 남자였다.
잘생긴 얼굴인데 멋있다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리호코는 자기 존재가 말살된 듯한 공포심을 느꼈다. 그는 숨을 작게 내쉬더니 “경찰?” 하며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리호코의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나가 미행당한 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남자는 체념한 듯 천천히 미닫이문을 열었다. 창고 안의 따스한 노란 빛이 남자와 리호코에게 쏟아졌다. 떠들썩하던 소리가 단박에 조용해졌다. 좌탁 옆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리호코를 보고 “누구야!”라고 겁먹은 듯 소리쳤다. 무리의 중심에 있던 하나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형사님이 어떻게!”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녀의 가느다란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리호코의 옆에 서 있던 수염 난 남자가 낯빛을 잃은 하나에게 말했다.
“하나, 설마 했는데. 석방되고 경찰서에서 여기로 바로 온 거야?”
“아니야! 일단 PC방에 들어갔다고. 나올 때도 형사님이 돌아갔는지 분명 확인했어.”
“그럼 예상이 빗나간 거네. 경찰이 여기까지 왔으니.”
남자가 냉정하게 말했다.
리호코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자각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창고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튼으로 칸칸이 분리된 안쪽 공간과 벽 가에는 낡은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반대편 구석에는 도마며 칼꽂이 같은 조리 도구가 늘어선 기다란 탁자와 오래돼 보이는 세탁기가 있다.
***
돌아보니 입구 옆 벽에 가느다란 글씨로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여기는 수호받는 유토피아.
형제의 은혜에는 은혜를,
원수에게는 자애를,
힘을 제하고 합을 유지하라!
—유토피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말의 울림이 어쩐지 불길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 종종 신흥 종교 단체들이 즐겨 쓰는 말이 아니던가? 그들은 폐쇄된 사회의 이상한 집단생활을 자신들만의 이상향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언니, 하나 언니, 누구야?”
리호코는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리는 창고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천장에서 내려온 하얀 커튼을 밀어젖히고 얼굴을 내민 건 아직 어린 여자아이였다. 세 살 아니 두 살쯤 되었을까. 발음은 또박또박했으나 몸집은 리호코의 딸 유나와 비슷해 보였다. 저런 어린아이가 이런 데서 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나 씨. 여기가 사는 곳이에요? 왜 조사 당시 말하지 않았죠?”
리호코의 말투에는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가족? 가나우치란 성이 혹시 여기 창업주와 가족이라서?”
“아니, 아니에요. 그건 제가 멋대로 붙인 성이에요.”
“술집을 전전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어요? 여기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건가요?”
“죄송한데 나가서 얘기해요!”
하나가 리호코의 어깨를 밀며 창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유토피아라는 게 대체 뭐죠? 종교? 이 창고에서 신자들이 집단생활하는 건가요?”
“아니에요! 종교!” 하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같은 처지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살고 있을 뿐이에요. 정말 그게 다예요.”
“같은 처지? 무호적자?”
“맞아요. 바깥세상에서는 평범하게 살 수 없으니까, 서로 도우며 살고 있어요. 여기 공장에서 일하고 부지 내 창고에서 지내는 것뿐이라고요. 나쁜 건 아니잖아요?”
나쁜 건 아니다. 무호적자들이 사회 보험도 없이 공장에서 일한다, 거주용이 아닌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중에는 미취학 아동까지 있다.
이 몇몇 가지만 봐도 저촉되는 법률이 수두룩하다. 건축기준법, 소방법, 근로기준법, 건강보험법, 소득세법, 호적법, 학교교육법 등 리호코가 대충 생각해낸 법만도 이만큼이다.
그런데 하나를 포함해 그 차가운 눈빛의 남자와 창고 안에서 본 예닐곱 명의 남녀가 전원 무호적이라니. 사실인 것 같지만 지금 사회 제도를 생각하면 믿기 힘들었다.
무호적자의 유토피아. 세상의 도움 없이 자기들끼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폐쇄된 이상향.
“우리가 안심하고 살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 제발 못 본 척해주세요. 안 그러면 저, 료한테 되게 혼나요.”
하나는 겁먹은 목소리로 거듭 고개를 숙였다. 료는 조금 전 창고 앞에서 리호코에게 말을 건 그 수염 기른 남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
—그날, 거실은 유난히 어두웠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리호코는 믿을 수 없는 학대 뉴스를 봤다.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부모의 육아 방임. 그날 리호코는 부모님이 그 뉴스를 보며 농담하는 것을 듣고 속이 울렁거렸다. 화면을 가리키며 가엾다고 소리쳤다. 펑펑 울면서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터뜨렸었다.
그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세월이 흘러도 트라우마처럼 낙인으로 찍힌 탓인지, 버려진 아이들만 보면 자동으로 ‘새장 사건 후 실종된 남매가 떠올랐다.
새와 함께 좁은 방에 갇혀 사육된 남매는 리호코보다 조금 어렸다. 분명 오빠인 남자아이가 세 살, 동생인 여자아이가 한 살이라고 보도되었다. 뉴스에 반복적으로 나온 그 충격적인 학대 내용은 일본 전역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렸다.
구조된 아이들은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일 년 뒤, 심리상담사를 가장한 누군가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되었다. 유괴 사실을 뒤늦게 발견해 신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경찰 수사는 난항을 겪었고, 필사적으로 수사에 나섰던 특별수사본부도 점차 축소되더니 끝내 범인의 덜미를 잡지 못한 채 해체되었다.
학대, 유괴, 그리고 미궁에 빠진 사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세상 사람들 기억에 각인되었다. 어린 남매를 봤다는 목격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일본에 남매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범행 목적이나 동기 등 밝혀진 것 하나 없이 ‘새장 사건 남매 사망설만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리호코도 그렇게 생각했다. 새장 사건은 이미 25년 전에 끝난 사건이고, 유괴된 남매가 이제 와 살아서 발견될 리 없다고.
하지만 혹 ‘그 창고에서라면….
식품 공장 부지 안에 있는 유토피아.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무호적자들을 수호하는 공간. 그곳에서라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자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나이도 거의 일치한다. 스물일곱, 스물여섯. 하지만 그건 당시 체격으로 미루어 역산한 추정 나이일 뿐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본인들도 모른다.
리호코의 심장이 갑자기 쿵쾅쿵쾅 격한 소리를 냈다.
밤의 어둠 속으로 리호코의 거친 숨이 빨려 들어갔다.
불투명한 신원과 성장 과정, 연령과 성별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무호적 남매.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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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