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법
 
지은이 : 김진 (지은이)
출판사 : 윌북
출판일 : 2023년 11월




  • 파리1대학 수업 현장에서 직접 길어온, 우리가 사랑하는 그림들의 놀라운 비밀! 파리1대학 예술 수업에서 실제로 다뤘던 작품을 중심으로, 그 안에 숨겨진 작가의 뒷이야기와 예술계 이슈를 담았습니다.


    그림 읽는 법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두려움은 때로 아름다움이 된다

    스위스 태생이지만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가,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가 1781년 그린 <악몽>. 우리는 그림을 보자마자 깊고 어두운 배경과 축 늘어져 누워 있는 여인의 얇고 새하얀 의상이 주는 명암의 대조에 집중하게 됩니다. 깊은 잠에 빠진 여인은 마치 침대에서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악몽이 그를 사로잡아 깊은 심연에 빠지게 했고, 가슴 위에는 괴물이 쪼그리고 앉아 눈을 부릅뜨고 감상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괴물과 눈이 마주치는 순 간, 우리는 마치 이 상황을 몰래 지켜보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지요. 뒤로 비치는 그림자는 이 괴물이 단순히 상상이 아닌 실재의 존재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섬뜩한 형상은 고딕 양식의 성당 장식에 자주 보이는 석루조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독일 민속에서 이 형상은 잠자는 여성을 범하는 악마를 뜻한다고 하네요. 뒤쪽의 붉은 커튼 사이로는 고개를 내민 말의 머리가 보입니다.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악몽 속에서는 어떤 게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죠.


    이 작품은 단순히 순수함을 상징하는 여인이 나쁜 꿈을 꾸고 있는 장면이 아니라, 잠든 여성의 방에 침입하는 악마와 그에 의해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여인의 공포를 이야기합니다. 은구슬 모양의 눈을 한 말의 머리, 가슴 위에 올라탄 괴물은 비이성적인 존재이자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감상자들은 마치 자신이 그림 속의 여인이라도 된 듯 상상에 빠지고, 더 나아가 자신이 겪었던 가위눌림, 악몽 등을 떠올리며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윽고 이것은 그림일 뿐이며, 재현된 장면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감상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새삼 깨달으며 안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다음 다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자신의 감정을 뒤흔든 강력한 장면과 인물에 매료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동시에 여전히 두려움의 감정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되죠. 이는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낄 수 있는 숭고의 감정으로 정의됩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판단하고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서양철학자들에게 오랜 연구 주제였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철학자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미적 판단은 아름다움(The Beautiful)과 숭고(The Sublime)로 나뉜다고 정의 내렸습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관련된 것으로 우리를 기분 좋고 편안하게 해주는 감정인 데 반해, 숭고는 고통과 두려움,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낯선 감정을 야기합니다. 자아 보존, 생명 유지 등과 연결되어 인간을 감정적으로 격렬하게 만들지요.


    버크의 숭고론에 따르면 숭고의 지배적인 감정은 공포이며, 사람들은 공포가 안도로 전환될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공포는 생리적으로 근육의 긴장과 수축을 자아내는데, 이것이 해소되면서 숭고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왜 우리는 고통이 재현된 작품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걸까요? 재현된 고뇌와 재난은 관람자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황홀감을 선사합니다. 숭고는 이해하기 어렵고 강력하며 공허하거나 무한에 가까운 광대한 상황을 기반으로 합니다. 즉 아름다움과 상반되는 추함조차도 미적 감상의 한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명백함이야말로 훌륭한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이성주의자와 고전주의자들을 공격하고, 명백한 것보다는 무한한 것이야말로 훌륭하고 고상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영국인들의 미적 취미에 큰 영향을 주었고, 18세기 초 고전적 형식주의로부터 후반의 낭만주의로의 전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퓌슬리가 버크의 책을 읽었는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의 감정을 제대로 선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퓌슬리는 차갑고 정적인 신고전주의에서 화가의 격동적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낭만주의로 전환을 이끌었다고 평가받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는 왜 프랑스 파리에 있을까</P> 프랑스어로 라 조콩드 라고 불리는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503년에서 1506년 사이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세로 77센티미터, 가로 53센티미터 크기로, 얇은 포플러 나무판 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기도 하죠.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6번 방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 화가였던 다빈치가 피렌체에서 작업한 작품이 어쩌다 루브르에 걸리게 된 걸까요?


    루브르 박물관은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힙니다. 2017년에는 81만 명, 2018년에는 1020만 명, 2019년엔 960만 명의 관람객이 루브르를 찾았다고 하는데요. 이들 중 대다수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겁니다. 이 그림은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에 어마어마한 관광 수입을 안겨주고 있죠.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프랑스에 <모나리자>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돌려줄 수 없다면 몇 달만이라도 대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요. 이에 루브르 박물관 회화 담당 책임자는 작품의 상태가 좋지 않아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게 되면 파손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동하기에 적절치 않다며 거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나리자〉를 실물로 보고 싶다면, 무조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야만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프랑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대여하거나 돌려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프랑스 문화 유산법에 따라 이 작품을 사거나 판매할 수 없다는 법만 있을 뿐, 국외 이동제한법은 없다고 합니다. 사거나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금액적 가치를 추정하기도 어렵겠지요.


    모나리자가 탄생한 16세기 초의 화가들은 오늘날처럼 자신의 자연스러운 예술적 충동의 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교황청이나 국가 또는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의 주문을 받아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화가가 미리 그림을 그린 후 전시회나 홍보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금액을 홍정하고 작품을 완성하여 전달한 후 작품값을 받았던 것이죠. <모나리자> 역시 당시 부유한 직물 상인이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가 다빈치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한 것이었죠. 그렇다면 주문 제작된 이 초상화는 왜 조콘도 부부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프랑스로 옮겨와 루브르에 전시되게 된 걸까요?


    당시 다빈치는 수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자 부인의 개인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흔쾌히 수락하지요. 그러나 작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렌체 베키오 궁전으로부터 궁전 안에 앙기아리 전투 장면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리자 부인의 초상화 제작은 뒤로 밀리게 됩니다. 당시 궁전 측은 앙기아리 전투 그림을 1505년 2월까지 끝내달라며 높은 착수금을 지급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이 일로 다빈치는 1506년에야 <모나리자>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의뢰인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에게 그림을 전달하지 않고 평생 자신이 소장하게 됩니다. 자신의 주문이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결국 3년이 지나 그림을 받게 되어 화가 난 조콘도가 그림값을 지불하지 않았던 걸까요? 어쩌면 다빈치가 이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흔히 쓰이던 초상화 화풍과 달리, 다빈치 특유의 공기원근법을 적용한 색다른 시도였기에 애착이 생겼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 명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1516년 겨울, 63세의 다빈치는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가 그를 초청했기 때문이죠. 다빈치는 이 제안을 아주 반갑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보티첼리, 라파엘과의 경쟁 관계에도 신물이 났을 테고 자신을 둘러싼 나쁜 소문에서도 벗어나고 싶었을 테니까요. 일설에 의하면, 다빈치는 평소 아끼던 두 제자를 데리고 프랑수아 1세가 보내준 호송대와 함께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건너 프랑스로 갔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증명할 공식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당시 다빈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 개의 작품을 가지고 떠났다고 하는데요. 바로 <모나리자>, <세례 요한>, <성 안나와 성모자>입니다.


    이 세 작품은 현재 모두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젊은 왕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를 환영하며 앙부아즈에 거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데생, 회화, 문학, 음악, 해부학, 군사학, 건축, 시 쓰기 등 원하는 작업을 마음껏 하라고 격려했고 생활과 작업에 필요한 비용을 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죠. 프랑스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다빈치가 자신이 가져온 세 점의 작품을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로 건넸으리라 추측합니다.


    그 후 다빈치는 프랑스에 온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1519년 5월 2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프랑수아 1세는 이 소식을 듣고 깊이 슬퍼하며 애도했다고 합니다.


    1518년, 모나리자는 국가 수집품으로 지정됩니다. 그리고 퐁텐블로궁으로 옮겨진 다음, 다시 베르사유 궁전에 보관되다가 1802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1911년 8월 21일 도둑맞았다가 1914년 1 월 4일 다시 루브르에 걸린 후, 1963년 미국에, 1974년 일본에 잠깐 대여된 것 외에는 줄곧 루브르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애니시 커푸어 - 이제부터 나만 쓰는 블랙

    2018년 8월 13일, 포르투갈 포르투에 위치한 세할베스 미술관의 특별 전시에서 한 60대 이탈리아인 관람객이 바닥에 설치된 미술작품에 발을 헛디뎌 빠지면서 다치는 일이 벌어집니다. 문제의 미술작품은 인도 출신 영국 아티스트 애니시 커푸어의 〈림보로의 하강Descent Into Limbo>이었죠. 착시 현상을 이용한 이 작품은 바닥에 큰 원 모양으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것으로, 단순한 색칠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전시는 <애니시 커푸어의 작업, 생각, 실험Anish Kapoor : Works, Thoughts, Experiments>이라는 제목으로 56점의 작품이 전시된 특별전이었는데요, 그중 한 작품에서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이 소식을 듣고 그저 검게 칠해 눈의 착시를 일으켰을 뿐인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넘어져 사고가 나다니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사실 깊이 2.5미터에 달하는 수직 통로로, 안쪽에 특수 물질 페인트를 발라 인간의 눈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바닥에 있는 원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서 그냥 평평한 검은 원을 색칠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림보로의 하강>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우리는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림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림보는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를 미처 알지 못하고 원죄 상태를 유지한 채 죽은 이들이 머물게 되는 지하 세계를 뜻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서는 사람들의 무의식이 포개지는 무한한 공간으로 등장하기도 하죠. <림보로의 하강>은 끝없이 무한한 깊이라고 인식되는 착시를 이용한 작품으로, 제목이 작품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1992년 애니시 커푸어가 독일 카셀 지역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회인 도큐멘타에서 가장 처음 발표한 것으로, 가로세로와 높이 각 6미터의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바닥 중앙에 땅을 파 원형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안쪽에는 블랙 페인트를 칠한 설치미술 작품이었습니다. 커푸어는 이 작품을 땅의 구멍이 아닌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검은색으로 칠해지긴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어둡게 보였길래 감상자가 바로 앞에 서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헛디뎌 빠지게 된 것일까요? 비밀은 반타블랙에 있습니다. 이 색은 애니시 커푸어가 2016년 2월 예술적 용도로는 전 세계에서 자신만 쓸 수 있는 독점 사용권을 구매했다고 밝힌,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입니다.


    반타블랙은 영국 나노 기술회사인 서리 나노시스템즈가 2012년에 개발한 물질입니다. 이것은 마치 숲속의 나무처럼 촘촘하게 뭉친 탄소 나노 튜브들로 이루어진 신소재로, 물체의 표면에 바르거나 스프레이 형식으로 뿌리면 99.965퍼센트의 빛을 흡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물질이었다고 하죠. 빛이 표면에 닿으면 탄소 나노 튜브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에 이 물질이 칠해진 표면에는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눈으로는 물체의 굴곡을 전혀 파악할 수 없습니다.


    애니시 커푸어는 1992년 처음 발표한 <림보로의 하강>을 세할베스 미술관의 특별 전시 작품으로 다시 만들며 바닥에 구멍을 파내고 안쪽으로 이 반타블랙을 칠하여 그 깊이를 파악하기 어려운 무한한 어둠의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이 작품 옆에는 주의 메시지와 안전요원이 있었지만, 접근을 막는 울타리는 없었다고 합니다. 추락한 관람객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당일에 퇴원했다고 하는데요, 이 관람객은 짧게나마 <림보로의 하강> 이라는 작품 제목과 꼭 맞는 경험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발견은 예술작품의 발전과 다양화에 크게 기여합니다. 중세에는 템페라나 프레스코화가 주를 이루었지만, 15세기 얀 반 에이크가 유화를 개발한 후 또 다른 흐름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죠. 신소재, 신물질의 개발은 과학, 의료뿐 아니라 미술의 발전에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누군가가 돈으로 어떤 물질의 독점적 사용의 권리를 구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상에 개발되지 않은 새로운 색깔이 더 있을까 의문스럽긴 하지만,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더 신선하고 흥미로운 시도로 예술적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해주기를 바라봅니다.


    백남준 – 제가 예술이 사기라고 했다고요?

    저는 종종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고 했다며 현대미술은 사기라고 말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현대미술 작품이 천문학적 금액에 낙찰되거나 판매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댓글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부정적인 내용이지요. 대중은 유독 현대미술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마저 듭니다. 현대미술 시장은 돈 많은 투자자, 업계 사람들만의 리그이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무시하고 소외시킨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백남준은 왜 "예술은 사기"라고 말했을까요? 사기의 사전적 정의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입니다. 백남준은 정말로 예술은 나쁜 꾀로 남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먼저, "예술은 사기"라는 말의 진의를 파악해보겠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백남준은 1984년 6월 22일에 한국에 입국한 뒤 열린 인터뷰에서 "전위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실은 나도 알 수 없다"라며 "삼라만상 온갖 잡념을 쓸어 넣은 심오하고 희귀한 세계 "밋밋한 이 세계에 양념과 같은 것 "건조한 세상이 재미없어서 예술이 때로 비정상으로 보이고 때로 위대해 보이지만, 사실 예술은 사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추상화나 비디오아트, 설치미술, 전위적 퍼포먼스를 보면서 "이게 예술이야?"라고 되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위예술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 어떤 명확한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에서 "예술은 사기"라는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겠지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어느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백남준은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 붙였습니다.


    전위예술은 한 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의 실험이기도 합니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가 힘들지요. 어느 시대든 예술가의 속도가 자동차로 달리는 것이라면 대중의 속도는 느린 버스로 가는 정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그가 한 말을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을 하고 있으며, 그렇게 예술가가 제시한 새로운 결과물로 관람자는 충격에 빠지고 작품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뜻과 의도를 봐도 봐도 알 수 없을 때, 또는 마침내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겨우 알아차렸을 때 관람자는 마치 사기를 당한 것처럼‘ 혼란스럽고 얼떨떨한 기분이 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술이란 반이 사기이며, 속이고 속는 것이다. 이 말에서 예술은 현실, 또는 상상을 재현하여 표현한 것이며, 이는 실제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은 또한 개념미술의 창시로 손꼽히는 프랑스 아티스트 마르셀 뒤샹에 대해 "세계에서 제일 큰 사기꾼은 마르셀 뒤샹이다. 그는 사기를 철학화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사기라는 표현이 들어가네요. 자, 이제 여러분은 백남준이 말하는 사기가 일반적으로 뜻하는 사기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으시겠죠?


    백남준이 큰 사기꾼이라고 칭한 뒤샹에 대해 알아볼까요? 1917년, 뒤샹은 웬 남자 소변기 하나를 전시장에 가져다놓고 <샘>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예술 창작 과정에 개입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형체를 만들어서 현실 또는 상상을 재현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뒤샹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기성품을 사서 본래의 용도(남자 소변기)를 지우고 새로운 개념(샘)을 입혀 대중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샘이 아닌 것을 가져다 놓고 샘이라고 하니, 대중의 입장에서는 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겠죠. 뒤샹의 이러한 시도는 미술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예술은 성경, 신화, 역사적 사건, 영웅, 초상, 정물 등을 주제로 한 특정 서사를 과장된 표현으로 묘사했습니다. 국가나 종교가 이를 이용하여 대중을 뜻대로 이끌고 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그림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려 한 것이죠. 하지만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은 이를 본격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이나 신화와 같은 과장되고 공상적인 이야기보다 다큐멘터리, 실화 탐사 르포처럼 당대의 실생활을 담아 내는 사실주의가 나타났지요. 이후에는 인상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림을 정해진 형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규칙에서 탈피하게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점차 자신의 주관적 감상, 인상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이 등장하면서 예술은 기존의 "미술이라면 그래야 한다"라는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을 모두 거부합니다. 아티스트의 주관성과 실험 정신이 작품에 담기게 된 것이죠. 이렇게 급진적인 전위예술, 즉 아방가르드 예술의 시대가 열립니다. 본래 아방가르드란 프랑스어에서 온 군사 용어로, 군대가 진격할 때 정찰 및 보호를 위해 가장 최전방에 선 무리를 뜻했습니다. 오래된 관습을 거부하고 반동과 혁신을 이끌며 최전선에서 실험을 하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붙은 것이지요.


    특히 191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등장한 다다이즘은 당대 최고의 반란으로 평가됩니다. 아티스트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미술의 권위와 속박에 대한 거부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겪은 인간성 말살에 대한 실망과 공포 등으로 인해 과거를 최대한 부정하고 깨부수려는 욕구가 생겨났죠. 이후 미술은 반란과 부정을 거듭하며 팝아트를 거쳐 개념미술로 발전해갑니다.


    1960년대에 백남준은 세계 최초로 비디오아트를 착안하고 플럭서스라는 예술 모임에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플럭서스는 흐름,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존의 모든 관념을 부정하고 음악, 퍼포먼스, 이미지, 비디오 등으로 다양한 실험적 예술을 진행했습니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내놓았고, 요제프 보이스는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물질과 정신세계의 연결을 시도하고자 했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 계속해서 의미 없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음악과 미학, 미술사를 전공한 백남준은 예술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무당으로 칭하며 스스로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중재자로 존재하길 바랐습니다. 감상자들은 끊임없이 변화되는 화면을 보며 현재의 세계와 현재가 아닌 세계를 비교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됩니다. 이처럼 플럭서스 아티스트들이 고안해낸 장치에 따라 감상자는 정신적 동요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기존에 있는 것을 똑같이 모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현실을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그려내는 작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예술 형태죠.


    백남준은 형태를 정확히 또는 아름답게 묘사하고 재현하기를 벗어난 20세기 초 현대미술이 기존의 예술 질서를 전복해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라는 뜻이 아니죠. 기존에 없던 새로움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하라는 점에서 사기라고 칭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으시겠죠? 현대미술에서는 어떻게 아름답게 그려내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똑같게, 또는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기술일 뿐이며 이러한 기술은 카메라나 포토샵, 컴퓨터가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티스트라기보다 기술자에 가깝습니다. 눈치채셨다시피 현대미술의 핵심은 작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입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티스트는 형식과 재료까지 얼마든지 자유롭게 결정합니다.


    현대미술을 보면서 아름답지 못하고 과도하게 철학적이며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려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술이란 어떤 실재, 현상을 아름답게 모방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디까지가 예술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 경계는 감상자 각자가 정하는 것이죠. 물론 현대미술에서도 많은 아티스트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인물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개념미술적 현대미술은 아름다운 구도, 색깔, 묘사에서 벗어나 글보다 강한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죠.


    자, 이제 백남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셨나요? 이를 제대로 깨달았다면, 여러분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지네요. 이 책을 덮은 뒤 예술을 읽는 눈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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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