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온도
 
지은이 : 오지브로(이태윤) (지은이)
출판사 : 여니북스
출판일 : 2023년 12월




  • 텐트없이 야외에서 자는 비박(biwak)을 인생 버킷 리스트로 꼽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유튜버 ‘오지브로’가 비박의 낭만과 추억을 날 것 그대로 전해드립니다.


    정상의 온도


    오늘도 나는 산으로 간다

    내가 비박을 하는 이유

    좀 과장해서 말하면 비박은 이제 나에게 공기, 음식 다음으로 중요한 삶의 가치가 되었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산의 경치를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비박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나는 산에 오르고 비박을 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면서 비박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비박을 하지 않을 때는 보통 좀 뛰거나 근력운동을 하는데 비박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꾸준히 운동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축구 유학을 하며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운동도 힘들었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기도 힘들고 어렵게 어렵게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지인을 따라 무작정 산행을 떠났다. 그때 난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 자존감이 바닥 아니 지하로 떨어졌을 때 비박을 하면서 무언가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해냈기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비박은 내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매주 비박을 떠나는 것은 이제 내 삶의 리추얼이 되었다. 다른 이들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듯 나는 산에 오른다. 그리고 정상 또는 그 부근에 박지를 정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온다. 매주 유튜브 영상을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약간의 압박감도 있지만, 꼭 그런 이유로 산행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박을 그만둘 것이다. 조금 과장하면 비박이 힘들면 힘들수록 내가 얻는 에너지의 양이 커진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편하기는 한데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냥 잘 쉬고 왔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산에서 힘들게 지내고 내려오면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아 두고두고 살아갈 힘이 된다.


    정말 숨이 까딱까딱 넘어갈 정도로 힘이 들 때면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국토 종주를 할 때도 그랬고, 비까지 내리는 무더운 여름, 내 몸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비인지 모를 정도로 힘들 때도 그랬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와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어느 순간 인터넷으로 비박할 산을 찾아보게 된다. 힘듦이 생의 에너지를 북돋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비박을 그만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적어도 나는 비박을 하면서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려움과 고통에 익숙해지고, 견뎌낼 힘을 얻는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들어야 힘이 생긴다. 힘들게 고생하면 그만큼 값진 게 없다는 게 내가 산을 통해 온몸으로 겪은 교훈이기도 하다. 누구도 텐트에서 자는 것을 비박이라 하지는 않는다. 텐트에서 잘 때와 비박을 할 때의 감정은 천양지차다. 나도 사람인지라 텐트에서 자면 안락하고 벌레와 해충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비박을 했을 때 쌓을 수 있는 추억은 텐트에서 잤을 때의 편안함과는 바꿀 수 없다.


    비박을 할 때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텐트에서 자면 벌레도 안 들어오고, 야생동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추위도 막아주지만 뭔가 해냈다는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 나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서 그것을 이겨내고 이를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 오히려 가족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고된 비박을 하는 이유다.


    비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가을은 비박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비박러들이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듯 봄이 되면 산과 들로 배낭을 메고 박지를 찾아 떠난다. 나 역시 봄을 좋아한다. 특히 가을과 달리 뱀이 없어서 좋다. 간혹 있다 하더라도 동면에서 깬 뱀들은 독이 적고 활동성이 떨어져서 혹시나 산에서 만나더라도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4월까지는 산 정상에서 비박을 해도 그렇게 춥지 않으며, 침낭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해 행복감을 느낄 정도다. 땀이 나지도, 춥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3월의 봄은 겨울과 살짝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금 싸늘한 기온은 오히려 몸을 살짝 긴장시켜 옷을 한 겹 더 입는 것만으로도 편안하다.


    여느 비박러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 여름은 한 단어로 고통의 계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며, 비박하기에 최악의 조건을 갖춘 시기다. 푹푹 찌는 무더위, 수시로 내리는 비, 언제 나 타날지 모르는 독이 오른 뱀, 보이지도 않는 작고 귀찮고 성가신 진드기와 벌레 등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여름에도 산을 찾는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온도와 감정 때문이다. 대부분의 비박러들은 장마까지 겹치는 여름철을 피한다. 나 역시 이 시기에 산에 오르면 여느 때보다 몇 배 더 힘들지만, 고통이 주는 묘한 쾌감과 성취감 때문에 매주 산을 오른다.


    산을 반쯤 오르면 ‘내가 왜 왔을까 하는 후회를 할 때도 있지만, 정상 박지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맥주 한 캔은 세상의 주인공이 바로 나임을 증명해준다. 비박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계절은 누구도 예외 없이 가을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가을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산 전체가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이 들 때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그림 속을 내가 걷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나를 들뜨게 만드는 가을은 가장 매력적인 계절임이 틀림없다. 겨울이 곧 올 거라는 기대감까지 더해지면 가을 산행은 더 흥이 난다. 단순히 가을이 좋다기보다는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산 냄새 때문에 더 사랑한다.


    여름의 산과 가을의 산은 풀, 흙, 나무, 공기에 이르기까지 그 냄새가 정말 다르다. 여름과 달리 온도가 살짝 떨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산의 냄새 때문에 가을이 더 좋다. 겨울 역시 산행하기에 아름다운 계절이다. 추위로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힐 때면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산의 풍광을 경험하게 된다. 자연과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또 한 번 경험한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차디찬 겨울바람에 코가 시리면서 느끼는 이 감정은 약간의 고통을 동반한 짜릿함이다. 보통은 이런 상태가 고통일 수 있으나, 내게는 감격이다. 이 맛에 겨울 산행을 떠난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추위를 동반한 적절한 고통이 너무 감격스럽고 짜릿해서 울컥할 때도 있다. 특히 온통 하얀 설산에 해가 걸릴 때의 풍광을 마주할 때면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보물을 발견한 듯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적당한 추위와 감내할 만한 고통은 산행을 아름답고 맛나게 하는 양념과 같다.



    포기하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영하 20도, 설동에서 보내는 하룻밤

    설동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어떤 느낌일까. ‘설동(雪洞). ‘눈 속을 파서 만든 구덩이라는 의미와는 달리 그 안은 텐트를 치는 것보다 더 따뜻하다. 영하 20℃의 날씨라도 설동 내부 온도는 0℃로 유지된다. 텐트보다 설동이 더 따뜻한 이유다. 더욱이 사람의 온기가 설동 안을 데우면서 따뜻함은 배가 된다.겨울 산은 복병이 많다. 저체온증은 물론 동상과 화이트아웃에 대해서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빙벽 등반이 겨울 산행의 전부라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겨울 산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설산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등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설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 속을 걸을 때는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눈 속에 나뭇가지가 있을 수 있고, 작은 바위나 돌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면 스틱을 이용해 체중을 앞에 두고 나아간다. 무릎으로 눈을 치우듯 헤치듯 가고 허벅지로 눈을 밀며 나아가는 게 좋다. 잘 녹는 눈이더라도 바람까지 불면 눈이 몸에 달라붙기도 한다. 그럴 때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진다. 또한 빛의 반사가 심해 꼭 고글을 쓰는 게 좋다. 눈 때문에 눈이 부셔 방향 감각을 잃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간혹 깊은 눈 속을 거닐다가 작은 골짜기 같은 곳에 빠져 다리를 다치기도 한다. 보통은 작은 눈삽을 가져가는데 한번은 커다란 눈삽을 가져갔다. 설동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자연과 한몸이 되어줄 설동에서의 하룻밤이 설렌다. 설동은 두껍게 만들어야 잘 녹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다. 함께한 동생이 생긴 거와는 달리 겁이 많다. 무너지면 그 무게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동생의 걱정 때문에 위쪽을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상은 위쪽이 두꺼울수록 설동은 더 튼튼하고 안전하다.


    설동을 만드느라 삽질을 열심히 했더니 목이 타 술 한잔하고 싶어서 준비해간 동동주를 꺼내서 마셨다. 그러나 생각보다 동동주의 양이 많고 춥기도 해서 반도 못 마셨다. 비록 다 비우지는 못했지만, 옥수수 동동주는 정말 시원했고 맛도 끝내줬다. 겨울에는 밖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정말 고된 일이기 때문에 겨울 산행을 가면 최대한 물을 적게 마신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전투 식량인 라면밥을 먹었는데 과연 끝내주는 맛이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몰려왔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아늑한 집에서 자도 이렇게 편히 깊은 잠을 자기는 힘들 텐데 말이다.


    어제 동생이 깜빡하고 바지를 밖에 두었는데 꽁꽁 얼어 있었다. 그 모양이 너무 우스워 우리 둘은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아침이 되니 예상대로 설동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설동이 곧 무너질 거 같아서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설동에 있다가 밖에 나오니 너무 추워서 다리가 달달 떨렸다. 설동 안과 밖의 온도 차는 거의 20°C 이상이었다. 겨울 산행을 떠났을 때 설동을 잘 만드는 팁을 소개하자면 땅에 눈을 두껍고 단단하게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을 조심스럽게 파내면 된다. 보통은 한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들어야 사람 온기만으로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오지브로 들개로 산다는 것

    유튜브와 오지브로의 의미

    인터넷에서 내 기사를 찾아보았다. ‘쉽게 가지 못하는 오지를 탐험하며 날 것 그대로의 여행에 도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튜브에서는 깨알같이 유익한 정보부터 출처도 알 수 없는 터무니없는 것까지 온갖 세상 정보를 망라한다. 공중파나 케이블에서는 다룰 수 없는 수위의 예능, 코미디, 다큐 등을 누구나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담긴 콘텐츠의 바다 속에서 전업 유튜버로 살아가기란 직장 생활을 하는 것 이상으로 업무량도 많고 극심한 스트레스가 따른다. 직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적든 많든 간에 월급이 나오지만 유튜버 대부분은 수익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유튜버가 되기는 쉬워도 그 세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수익을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만 그만큼 쉽게 떠난다. 나 역시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본업이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목표 없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기왕 시작한 것이니 반드시 3년 안에 전업 유튜버가 되자는 다짐을 하며 이 바다에 발을 담갔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두고 몇날 며칠을 생각했다. 답은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날 것 그대로 현장을 보여주는 비박으로 마음이 정해졌다. 다행히 당시 현장 일을 그만둘 즈음 과거 다녔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 이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업무라 쉬는 날에는 유튜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오지브로라는 이름에 대해 오해가 있어 잠시 설명하면, 우선 ‘오지는 두메산골이라는 의미의 ‘오지라는 한자와 ‘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알차다라는 ‘오지다에서 두 글자를 따온 중의적인 의미다. ‘브로는 흔히 알고 있는 ‘브라더와 ‘로맨스의 앞 글자 하나씩 딴 것으로 친척 형과 함께하기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박을 하려면 오지를 다녀야 하므로 괜찮은 이름 같았다. ‘오지브로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우리의 1차 성공 목표는 구독자 3만 명을 달성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렇듯 오지브로는 혼자가 아닌 두 명의 남자가 시작한 것이다. 낚시를 좋아했던 형과 비박을 즐기던 내가 함께할 수 있는 것 은 낚시를 떠나 비박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쉬는 날이면 온전히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영상을 찍고 편집한 결과물을 보니 우리가 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구독자 3만 명은 고사하고 300명도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낚시 자체가 따분한 것인데, 말주변이 없는 남자 둘이 하는 말을 듣자니 이건 정말 눈 뜨고 봐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영상을 찍는 것도 어려웠지만, 편집은 몇 배로 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는 것이어서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고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우리는 낚시 비박을 계속했고 꾸준히 영상도 올렸다. 한마디로 낚시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아니 내가 말을 하는 자체가 지루했다. 신기한 것은 영상 중에 간혹 재미난 것도 있어서 조회 수가 처음으로 1,000회가 넘는 것도 나왔다. 비웃을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1,000회이라는 숫자는 지금으로 치면 100만 회 이상의 느낌이었다. 이러다 대박이 나나 싶었는데,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 뒤로는 어떤 발전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함께했던 친척 형은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나 혼자 비박을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혼자 산으로 비박을 가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훨씬 편했다. 산을 오르는 것, 비박하는 것, 촬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산이 궁합이 맞나 싶을 정도로 힘든 만큼 성취감과 즐거움도 커갔다. 산을 담은 비박 영상이 하나둘 쌓여가면서 구독자는 1차 목표 로 했던 3만을 넘어 어느새 정말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한 10만명이라는 숫자를 찍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실버 버튼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가슴 벅찼는지 모른다. 이렇게 유튜브는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 공은 모두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구독자에게 있다.


    산정상에서 눈폭풍을 만나 영하 12도에서 나홀로 생존하기

    사람들이 내가 찍은 영상을 왜 좋아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지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위로를 얻고,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기에 좋아하는 건 아닐까. 오지브로의 유튜브 영상 가운데에는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많았음에도 광고가 전혀 없는 기이한 콘텐츠가 하나 있다. 유튜브의 정책상 영상 길이가 8분 이상이어야 광고가 붙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기도 하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광고가 붙어야 제작자에게 수익이 가는 거니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애석하지만 구독자들은 광고 방해 없이 편안하게 영상을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영상 때문에 구독자들이 더 행복하고 힐링이 되었다면 창작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산행을 떠나기 전에 기상예보를 확인했는데 적설량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산행을 시작해 보니 이미 산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눈도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 나는 카메라 삼각대를 메고 가야 해서 등산 스틱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눈이 올 때는 안전하게 오르기 위해 꼭 스틱을 사용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였다. 쌓인 눈과 내리는 눈 때문에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틱은 안전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움푹 팬 바닥을 미리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틱에 의지해 걸으면 한결 걸음이 가벼워진다.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든 여정이었으나 별다른 부상이나 무리 없이 정상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박지를 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구름이 몰려와 위험하다 싶어 아래로 조금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강한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릴 줄 알았다면 비비색을 준비했겠지만, 기상예보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간단한 장비만 챙겨온 것이 큰 패착이었다. 평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게 내 오랜 신념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러다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미 손과 발은 꽁꽁 얼어 동상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우선 바위 아래에 우의를 펴고 그 위에 매트를 깔아 쉴 곳을 마련했다. 바위 둘레에 다이소에서 구매한 천막까지 두르니 제법 그럴싸한 자연인의 집이 완성됐다. 천막에 들어가 손과 발을 확인하니 다행히 동상까지는 아니었으나, 칼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잔혹 그 자체였다. 이런 추위에도 땀이 흘렀는지 내의가 다 젖어 있었다. 이때 마른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다. 옷을 갈아입고 모닥불이라도 피우고 싶었지만, 국내 산에서는 불을 피우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핫팩 여러 개로 언 몸을 녹일 수밖에 없었다.


    바닥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육포와 아몬드를 먹었다. 그런데도 너무 배가 고팠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고 싶었지만, 밖에 나가 소변을 보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면을 부셔 허기진 배를 채웠다. 평소 같으면 별맛이 없었겠지만,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어 일단 잠자리에 들었지만 너무 추워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저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도 추위에 덜덜 떨었더니 온몸이 쑤셨고, 따뜻한 아침 해가 그리웠다.


    드디어 아침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추웠고, 등산화는 꽁꽁 얼어서 하는 수 없이 핫팩을 넣고 신었다. 아침밥은 건너뛰더라도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 물을 찾았는데, 물도 꽁꽁 얼어버려서 녹일 수도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하산을 시작하려는데, 저 멀리서 한 줄 기 빛이 보였다. 꽁꽁 언 발을 내딛어 본능적으로 빛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하늘이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는지 일출이라는 선물을 내리셨다. 산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다시 감사하게 됐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럴 때는 가족이 더 보고 싶다. 특히 부모님이 그리웠다. 이렇게 힘든 비박을 하고 나면 가족애가 절로 생긴다. 힘들면 힘들수록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더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비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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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