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지 못해 삶이 몇 번 꺾이는 것을 경험한 작가는, 잘 쉬어야 잘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탐구 끝에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작가에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을 공이라고 한다면, 그 공 안에는 나만 들어갈 수 있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은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공 안에 들어가 있을 땐 나와 관계 맺은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감각도 필요했다. 나는 혼자이고 나는 자유롭다고 느끼는 감각. 단 한 시간이라도, 단 하루라도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걱정과 시름은 내일로 넘기고 마음 놓고 이 시간을 마주하다 보면 내 안에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 생활자』에는 황보름 작가가 잘 쉬고 잘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다듬어가는 과정이 숨김없이 담겨 있다. 점점 ‘혼자 있기의 중수’가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더 ‘열심히’ ‘즐겁게’ 혼자 있으려는 마음을 가져보고, 홀로서기에 수반되는 자잘하면서도 필수적인 살림을 꾸리며 자신의 삶에 질서를 만들어나가기도 한다. 필요와 낭만을 위한 물건들만 갖추어놓은 여유로운 공간 속에서 마음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 저자 황보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매일 읽겠습니다』, 『난생처음 킥복싱』,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
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
내가 있는 곳
혼자 있기의 중수
단출한 관계
타인이란 존재
아침의 리듬
독립의 즐거움
혼술이 좋다
나를 위한 요리
청소와 글쓰기의 연결 고리
어떻게 소설을 썼을까
내가 밤에 먹는 것
세 명의 독자
흐름의 초입
비밀스럽게 살아가기
그날의 산책
6인용 테이블에 앉아
몸을 흔들다 보면
혼자 있어도 함께 있는 듯한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할 때
독자와의 만남
내 집에 놀러 와
혼자 여행을 해야 한다면
스쿼트의 정석
에세이 쓰기의 어려움
내게 맞는 외로움
혼자인 시간에 익숙해지기
친절이 그곳에 남아 있다면
어딘가 갈 곳
잘 쉬고 있다는 대답
치타델레
나의 하루
에필로그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떨어져나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황보름 작가가 자신의 불필요한 것들은 걷어내고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들로 명랑하고 안온하게 내 세계를 채우며 삶을 단순하게 다듬어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단순 생활자
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
회사에 다닌 1년 반 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건, 아침 9시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엑셀을 띄울 때면 내 마음은 집에서 한글을 띄우고 있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가로세로 줄이 촘촘히 그어진 엑셀이 아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도 잡기 힘든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한글을 띄워놓고 하루 종일 막막해하고 싶었다.
회사 그만둘까 봐. 휴대폰에 대고 나는 말했다. 휴대폰 너머의 친구들은 누구 하나 나를 뜯어말리지 않았다. 왜 그만두려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외력에 의해 정신없이 휘둘리던 오뚝이도 다시금 제자리를 찾듯, 친구들이 보기에 나의 자리도 결국은 글 쓰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분명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그만둘까봐”라고 말했건만, 친구들은 내 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그래 참 잘 생각했다며 나의 퇴사를 미리 축하해주었다. 한술 더 떠 퇴사 타이밍을 정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계산 편하게 말일까지 일하고 이번 달은 회사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우니 다음 달에 그만두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거 참 탁월한 조언이라며 장난스레 맞장구쳤다. 어차피 친구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거였다. 결국은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삶이 흘러가게 되리라는 걸.
그리고 친구도 나만큼이나 내가 말하지 않은 불안을 잘 알고 있을 거였다. 30대를 몽땅 글 쓰는 삶에 쏟아붓고 나서야 나는 글로 먹고사는 일의 요원함을 이해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제야 나의 현실로 정확히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뒤늦게 현실을 너무나 제대로 직시한 통에 몇 번은 자다가 헉 소리를 내며 깨기도 했다. 잠에서 깬 나는 속으로 큰일 났다고 되뇌었다. 큰일 났다, 글만 쓰다 마흔이 넘어버렸어, 정말 큰일 났다.
밥벌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작가들의 글은 수도 없이 읽었다. 글로 돈 버는 게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쓴 글이 고봉밥이 되어 나를 살찌우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밥벌이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려보는 순간, 내가 너무 좋아하게 된 이 생활을,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이 생활을 끝내야 할 것 같았으니까.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실은 내내 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미련퉁이처럼 답을 내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보내다 30대를 지나온 것이다. 난 나에게 무책임한 사람인 걸까. 지금은 그렇다 치고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어쩌려고 이럴까. 소식을 넘어 아예 굶게 된다면? 등등의 생각이 서로 치고받으며 머리를 두서없이 장악했고, 이런 나날이 이어지다 어느 날 헉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2021년 1월 1일은 내 인생 최악의 날로 꼽을 만하다.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마음을 앓으며 처음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기 때문이다. 밤을 꼬박 새우며 나는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이젠 허울 좋은 전업작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좋았던 한 시절이 끝난 것이다. 실은 꽈 오래전에 찍어야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찍게 된 마침표, 겉은 작가였지만 속은 백수였던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며 나는 생각했다. 후회할 필요는 없어.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하자. 좋아하는 생활을 이토록 오래 누릴 수 있던 것만으로도 축복인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 그나저나 그런데 이젠 뭘 해서 먹고살지.
그렇게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마침표를 찍은 얼마 후 학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가 다니던 회사에서 사람을 급히 구한다며 면접을 보라고 했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을 일주일 만에 해치우니 며칠 후 등기로 사원증이 날아왔다. 바로 첫 출근일이 정해졌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기다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퇴근만 하다가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나는 좀 허탈해서 웃었다. 수천 권의 책을 팔아야 받을 수 있는 인세가 거기 찍혀 있었다. 월급쟁이의 노동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찌 됐건 척척 밥으로 환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쓴 글을 밥으로 환산하지 못하던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어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팔아 매달 이 정도 돈만 벌 수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그러다 금방 생각을 쫓아냈다. 나는 이미 마침표를 찍었으니까.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 북토크와 인터뷰에서 간간이 말해왔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 나는 몇 년 전에 쓴 소설을 공모전에 출품했다. 몇 개월 후 회사에 앉아 있다가 수상작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제목으로 전자책이 출간되었고, 다음 해인 2022년 1월엔 종이책이 출간되었다.
종이책 출간 이후, 마침표를 힐긋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자꾸만 마침표 이전의 삶을 떠올리게 됐다. 툭하면 가능성을 타진했고, 이내 이건 내가 타진한다고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했다. 가능성을 타진하다 나를 설득하는 일을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했다. 가족과 이야기를 할 때도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혼자 가능성을 타진하다 곧 그들 앞에서 또 나를 설득했다. 아니야, 안 돼, 마침표 찍었잖아, 너 어쩌려고 그래?
또 헉 하면서 일어나려고? 그만, 스톱, 생각 그만. 그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몇 개월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친구 말대로 계산 편하게 말일까지 일하기로 하고, 다만 회사 입장보다 내 입장을 고려해 그달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마침 회사에도 변화가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그만들 수 있었다.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부단히 했던 노력도 만족할 만한 성취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매일 마음을 다스리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다시 불안할 테고, 내 노력의 시간은 또 고봉밥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살고 싶었다. 불안하지만 충만했던 그때처럼.
그럼 이미 찍어놓은 마침표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마침표 뒤에 다음 문장을 이으면 되지. 작가의 특권이라면 본인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마지막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미련이랄 수도 있고, 또 한 번의 실패를 자처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한 사람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 일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작가의 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으로, 이 책처럼.
독립의 즐거움
드디어 혼자 살게 되었다. 20대 중반부터 바라던 독립이 서른 넘어 시작된 ‘삶을 향한 여정(이제부턴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며 작가가 되었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사실상 기나긴 백수의 삶으로 돌입하게 된 여정)으로 가로막힌 바람에, 마흔이 넘어서야 수천 권의 인세에 버금가는 월급 수령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삶을 향한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뜻밖에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면서 공원 뷰까지 얻게 되었다.
K-나이별 퀘스트 깨기에 둔감한 편이라, 이 나이엔 이걸 해야 해,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오진 않았다. 뜨거운 물엔 몸을 담글 엄두를 못 내듯, 나이별 퀘스트 깨기는 내게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주어지는 퀘스트이고, 마지막 퀘스트까지 무사히 깬들 행복할까.
그럼에도 마흔쯤 되면 홀로(독), 서야(립) 한다는 생각은 오래도록 해왔다. 나 혼자만의 퀘스트라고 볼 수 있었다. 마흔이 되면 모든 형태의 홀로서기에 익숙해지고, 때론 버겁더라도 감당하고 또 때론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는 그러고 있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부모를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해 나의 여러 부분이 덜 자라게 되었는데, 그 부분들을 명확히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아쉬움이 이것뿐일까. 혼자 살고 싶다는 건 좀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9시면 잘 준비를 하는 부모와 산다는 건 밤에 편의점에 가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 된다는 말이다. 현관 중문을 여는 순간, 놀란 엄마가 뛰어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왜, 너 어디 가? 무슨 일 있어? 나는 그저 영화를 보다가 맥주 생각이 간절해졌을 뿐이고, 귀찮음을 이겨내며 사러 나가려던 것뿐이건만.
나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고 싶진 않았지만, 이런 순간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맥주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대답한다면 엄마는 뭐라 할까. 이 야밤에 무슨 술이냐며 내 등을 방을 향해 떠밀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디 넣을 데도 없는 건전지 운운하며 집을 나선다. 이런 마흔의 삶. 그 누구도 꿈에 그리지 않던 삶일 것이다. 그래서 난, 수많은 자식이 그러듯, 독립을 꿈꿨다. 밤에 영화를 보다가 맥주가 당길 때 편의점에 가는 일이 누군가의 걱정을 사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드디어 이뤘다. 기쁘게도.
혼자 살게 되니 예상했듯 나의 덜 자란 부분들이 일상에 우수수 떨어졌다. 주로 살림에 관한 것들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부끄럽지만 종량제 봉투도 처음 사봤고, 음식물 쓰레기를 탁월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분리수거 A to Z를 이제야 어설프게나마 마스터했고, 욕실 부문별 청소 방법도 유튜브와 블로그를 오가며 심혈을 기울여 터득했다. 내 방 하나, 내 몸 하나 건사하던 삶에서 더 넓고 많은 것을 건사하는 삶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런데 넘어오고 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복잡해 보이던 것도 알고 나면 간단한 것들이었다. 건사 방법을 아니 머리가 아닌 몸을 쓰며 차례대로 건사하면 됐다. 어차피 내 일이라 생각하면 크게 귀찮지도 않았다.
택배 상자는 바로바로 정리해서 쌓아놓고, 쓰레기가 나오면 즉시 분리수거 박스에 던져놓고, 빨래는 소량 급속 모드를 이용해 오래 묵히지 않고, 설거지는 하루에 한 번 하고, 물티슈는 한번 뽑으면 뽕을 뽑는 의미로 이거저거 다 닦고. 이런 식으로 툭툭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집은 깨끗해졌고, 냉동고엔 소분한 밥이 3단으로 쌓였다.
독립하고 보니 나는 생각보다 더 독립에 적합한 인간이었다. 홀로, 서기에 수반되는 자잘하면서도 필수적인 노동에 물 흐르듯 스며들어 평생을 혼자 살아온 사람처럼 살림을 꾸려가는 걸 보니 그렇다. 살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이었다. 살림은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홀로 선 나는,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탈 없이 적응했다.
공간을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특히 좋다. 혼자 살게 된다면 되도록 집에 뭘 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필요한 것만 있고 거추장스러운 건 없는 공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간. 이 공간에 분위기와 낭만 한 스푼 정도만 얹고 싶었다.
책이 있으니 책장이 필요하고, 밥을 먹거나 글을 써야 하니 테이블이 필요하다. 기대어 쉬어야 하니 소파가 필요하고, 잠을 자야 하니 침대가 필요하다. 여기에 아침을 위해 커피 머신을 들이고, 밤을 위해 조명을 놓는다. 필요와 낭만을 위한 물건들만 갖추어 놓기. 꽉 차지 않아 여유로운 공간을 보면 마음도 덩달아 여유로워진다.
밤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형광등은 끄고 조명으로만 집을 밝힌다. 깨끗하게 정돈된 집이 조명 아래에서 분위기를 뽐낸다. 조명을 받으며 소파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어제 보다 만 영화를 이어 봐도 좋다.
자기 전까지 두세 시간. 내가 만든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다가 잘 수 있다는 이 소소하면서도 커다란 만족.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 움직이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불현듯 벅찬 감정이 몰려온다. 이런 게 행복일까.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나의 시간과 공간이 나의 느슨한 통제하에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독립하길 잘했다.
내가 밤에 먹는 것
늦은 밤. 11시 50분. 6시에 저녁을 먹은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시간. 심야의 허기. 모른 척할 수 없어도 모른 척해야 마땅만 허기. 나는 이 허기를 느끼며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하려 하고 있었다.
음······ 라면?
어차피 나는 지금 졸리므로 이대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잠이 들 테고, 그러면 내일 아침 가볍고도 산뜻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을 테지만, 그럴 테지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어때 뭐, 누가 말리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데, 라면 하나쯤이야 상관없잖아? 안 그래?
독립을 한다고 해서 어떤 떠들썩한 자유를 원하진 않았다. 남들에겐 자유 같아 보이지도 않는, 내가 자유라 해야 남들도 힐긋 찰나적 관심이라도 가져줄 자유. 나는 고작 이런 자유를 꿈꿨다. 그러니까 자정에 라면을 끓여 먹는 일 같은. 예전 같으면 가족을 깨우기 싫어 주린 배를 부여잡는 쪽을 택하고 말았을 테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이 당당히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일 같은. 발소리 하나하나가, 라면을 꺼내고 봉지를 뜯고 수프를 찢는 소리 하나하나가,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켜는 소리 하나 하나가 우레와 같은 소음으로 집 안에 울려 퍼질 것을 우려해 도둑처럼 움직일 필요 없이 더없이 자유롭게 마음껏 소리를 내는 일 같은.
이런 자유 한번 누려보고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실로 나왔다. 거실 불을 켜고 부엌 쪽으로 걸어가며 나는 단호하게 결정했다. 봉지라면이 아닌 컵라면을 먹자. 라면 하나를 다 먹을 자신도 없을 뿐더러, 나는 지금 라면을 배불리 먹기보단 라면을 먹는 행위에 기대를 하고 있는 참이니까. 컵라면 소컵을 꺼내 무신경하게 비닐을 쭉쭉 뜯고 뚜껑을 좌악 열었다. 환경 호르몬이 내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찬장에서 폭이 좁은 그릇을 꺼내 라면을 옮겨 담았다. 수프를 털어 넣으면서는 한 달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컵라면을 굳이 그릇에 옮겨 담는 수고를 하기보단 일주일에 몇 번이고 마시는 맥주를 끊는 게 자신의 몸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 아닐까 생각했지만 곧 잊었다. 부글부글 끓다가 타이밍 좋게 뚝 멈춘 전기 포트를 들고 물을 부었다. 3분. 타이머 버튼을 눌렀다.
거실 테이블에 테이블 매트를 깔고 젓가락을 놓고 라면 그릇을 올렸다. 김치도 예쁘게 썰어 라면 옆에 두었다. 그리고 경건한 몸가짐으로 의자에 앉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 나는 태블릿을 터치해 감정 소모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을 고른 후 기다렸다. 라면이 다 익을 때까지.
타이머가 울렸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살살 풀고는 입에 넣었다. 야밤에 먹는 라면 맛은 당연히도 아는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보다 맛은 덜했다. 엄청 배가 고픈 상태도 아니었고 조금 졸리기도 했으므로 미각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자유는 그 자체로 달콤한 것이니까. 나는 예능을 보며 라면 면발을 조금씩 들어서 천천히 먹었다. 해외 여행지의 어느 야외 펍에서는 맥주를 원샷 하게 되지 않듯, 라면을 급히 먹고 싶지 않았다. 뭔가 이 분위기를, 이 시간을, 이 마음을, 이 소리를 그리고 이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라면 면발을 다 먹고 국물을 반 정도 호로록거리고 나니 15분이 지나 있었다. 순간 이게 뭐라고 이토록 경건한 마음으로 임했나 싶었다. 평생을 주야장천 먹은 라면이면서. 그래도 오늘 먹은 라면은 분명 다른 라면이었다.
자정의 라면이었고, 당당한 라면이었고, 눈치 보지 않는 라면이었으며, 마음이 이끄는 라면이었고, 무신경한 라면이었다. 절제하지 않은 라면이었고, 선택할 수 있는 라면이었으며, 무엇보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라면이었다.
혼자 여행을 해야 한다면
제주도를 한 달 혼자 여행한 적이 있다. 혼자선 당일치기 여행도 한 적 없으면서 무턱대고 왕복 비행기표를 끊고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제주도 해안가를 따라 열 개 남짓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매일 달렸다. 처음엔 혼자 밥 먹는 것도 어색하더니 혼밥 몇 번 만에 해물뚝배기에 맥주도 시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끝자락엔 처음으로 10킬로미터를 달려봤고 여행을 다녀와선 마라톤 대회에서 10킬로미터 완주도 했다.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한,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한 달 여행 후 나는 다신 혼자 여행을 하지 않았다. 그 여행이 내게 알려준 건,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그리 맞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었기에. 낯선 환경을 감당하는 힘이 내겐 별로 없는 것 같다. 낯선 환경이 주는 설렘보단 불안함이 더 크게 작용한다. 설레긴 한데 불안한 마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기에 며칠에 한 번씩 게스트하우스를 옮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일은 끝까지 내게 미션으로 남았다. 미션을 수행하면서는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매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해야 한다면 혼자 하는 여행보다 함께 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낯선 환경에 불안해질 때 낯익은 눈이 내 눈을 바라봐줄 수 있도록. 여행지의 모든 것이 낯설어도 하나만큼은 낯설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만약 동행 없이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면 나는 기어코 그곳을 낯익게 만들어버리고 싶다. 매일 낯선 거리를 찾아 나서는 대신, 낯선 거리를 가고 또 가서 낯익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외국 도시로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한곳에 머물며 같은 골목을 매일 걸어 다니고 싶다. 이왕이면 단골 식당, 단골 카페도 만들면서. 불안이 서서히 걷혀 그곳을 설레하며 바라볼 수 있도록.
치타델레
온종일 휴대폰 속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내 안으로 그들의 생각과 욕망이 쉽게 침투해온다. 어느덧 나는 그들이 욕망하는 걸 욕망하고, 그들이 말하는 걸 말하고, 그들의 의견을 내 다음번 의견으로 쓰기 위해 기억해둔다. 안 그러려 해도 자꾸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몽테뉴를 떠올린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몽테뉴 평전 『위로하는 정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서른여덟 살에 몽테뉴는 세상에서 물러나서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누구도 섬기지 않게 되었다.”
서른여덟 살에 세상에서 물러난 몽테뉴가 숨어 들어간 곳은 그만의 서재, 치타델레. 아버지에게서 성을 물려받은 몽테뉴는 성 안 가장 쓸모없는 공간을 골라 그곳을 자기만의 서재로 삼는다.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그곳에서 그는 책 읽고 공상하고 글 쓰고 잠을 잤다. 몽테뉴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도 그곳에 발을 들이지 못했고, 그는 원할 때만 치타델레를 벗어났다.
치타델레는 작업실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외부 세계와의 작별을 의미했다. 몽테뉴는 실제 마흔여덟 살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치타델레에서 홀로 보낸다. 그곳에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탐구했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타델레란, 괴테가 말한 “내적인 자아,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아”를 뜻한다.
몽테뉴를 떠올릴 때면 나의 치타델레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 나도 나에게 집중한다. 내 생각, 감정, 느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것을 바라본다. 그럴 때면 가늘고 연약하지만 그 끝은 내게 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나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들이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당겨 나에게 들려준다. 나의 치타델레에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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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