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곤충사회의 경이로움에서 시작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보고서”다. 오랜 유전자의 역사 끄트머리에 우연의 확률로 생겨난 인간, 자신들을 최후의 위험으로 몰아넣은 인간. 그러나 동시에 유일하게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탐구하는 인간.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곁에 두고 배우며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다.
■ 저자 최재천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평생 자연을 관찰해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왔다. 2019년에는 세계 동물행동학자 500여 명을 이끌고 총괄 편집장으로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을 편찬했다. 『다윈의 사도들』 『다윈 지능』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의 공부』 『통섭의 식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저를 출간했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2020년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개설해 인간과 자연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차례
머리말_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사회
1부_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솔제니친의 질문에 답하는 첫 수업
모든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의 결과물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찰스 다윈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
2부_ 이것이 호모 심비우스의 정신입니다
개미에게 배우는 지혜
닮은 듯 다른 진사회성 곤충의 세계
어느 생태학자의 고민
3부_ 자연은 순수를 혐오합니다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
인간 없는 세상
맺음말_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습니다
‘2밀리미터의 작고 아름다운’ 곤충사회의 경이로움에서 시작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끊임없이 자연을 곁에 두고 배우고,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는 동행이자 지침서입니다.
최재천의 곤충사회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모든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의 결과물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엉뚱한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방황을 해봐라!”
설마 제가 이렇게 여러분 시간 다 뺏어놓으면서 “방탕하게 삽시다!” 이런 얘기는 안 하겠지만, 젊을 때 남의 얘기만 듣고 일찌감치 한길로만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답답해요. 이다음에 중년이 되었을 때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후회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생의 초반부에 방황하는 게 훗날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좀 드려볼까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을 모셔놓고, 시간 낭비하면서 살아지는 대로 사시라는, 그런 강의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비 오면 기어나와서 괜히 우리 발에 밟히는 지렁이, 그 지렁이들은 아마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겠죠. 비 오니까 목욕이나 하자고 나오는 게 아니고, 굴 안에 물이 들어와서 할 수 없이 기어 나왔다가 우리에게 밟혀 죽는 거예요. 그런 삶은 살아지는 삶이겠죠.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자기 인생을 기획할 줄 아는 동물일 겁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이 하라는 대로 하지 말고, 부모님이 시키는 인생 그대로 따라 살지 말고 멋있게 내 인생을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그런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생각해보니까, 부자로 사는 인생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일찌감치 그리 안 하기로 마음먹고 살았지만.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한 덕에 가끔 모교에 갑니다. 몇 년 전에 갔을 때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 옆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들은 얘기들이 참 가관이더라고요. 이놈들이 “학교 언제 그만둘까?” 이러길래 무슨 얘기인가 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하버드대학 역사상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처럼 언제 중퇴할까,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그 둘이 졸업을 안 했잖아요. 중퇴를 하건 말건 부자로 한번 살아보는 것, 멋진 인생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인생만 최고의 인생은 아니겠죠.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인생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조금 쑥스럽지만 제 삶의 이력을 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하고, 지금은 환경부가 충남 서천에 만든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제가 시쳇말로 완벽한 ‘엄친아잖아요. 그런데 이런 것만 보시면 안 돼요.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죠.
저 고백하렵니다. 저는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진 사람이에요. 서울대 의예과를 지원했는데 보기 좋게 낙방해서 재수하고, 재수하는 동안 공부가 손에 안 잡혀 종로 뒷골목을 누비다가 시험에 또 떨어졌습니다. 삼수하려다가 운 좋게 2지망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원하는 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을 참 재미없게 했습니다. 이런 공부 해서 먹고살 수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허구한 날 수업에도 안 들어가고 동아리 활동하거나 남의 과 수업이나 듣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제가 동물학자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소개팅에도 안 나갔습니다. 마주 앉은 여학생들에게 동물학과라고 얘기하면, “요즘 우리 집 부엌에 쥐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데······” 이런 얘기만 해서 정말 가기 싫었어요. 언제 한번은 정말 예쁜 숙대 여학생이 나왔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어느 과냐고 물어보길래 동물학과라고 대답했더니 이 학생이 갑자기 괴테 얘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왜 괴테 얘기를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물학과를 독문학과로 잘못 들은 거예요. 차마 그 여학생에게 독문학과가 아니고 동물학과라고 정정할 용기가 안 나서 그날 두 시간을 괴테,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얘기만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애프터를 신청할 용기도 없어서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지질하게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백발의 미국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들고 오신 편지를 읽어보니까 하루살이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랍니다. 그 하찮은 곤충을 채집하러 한국에 오셨대요. 한국계 미국인 교수님에게서 제가 조수를 할 거라는 소개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저는 수업을 다 빼먹고 그분의 조수를 했습니다.
차를 한 대 렌트해서 그분이 몰고, 저는 조수석에 앉아 개울물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때는 그냥 “This way! That way!” 이러면서 손가락질하며 다녔는데, 운전하다 개울물만 보이면 그분은 그냥 차 세우고 들어가셔요. 신발도 안 벗고 바지도 안 걷고 그냥 들어가셔요. 동방예의지국의 청년인 제가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바지 걷고 들어가려 하면 나오시더라고요. 들어가셔서는 돌을 뒤집으면서 그 밑에 기어다니는 하루살이 유충을 채집해서 알코올 병에 넣는 거예요.
일주일을 보좌하면서 따라다니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저 영감님은 저 나이에 할 짓이 얼마나 없으면 한국까지 와서 개울물에나 첨벙거리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마지막 날 저녁을 사주실 때 그 짧은 영어로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선생님은 왜 사모님과 한국까지 오셔서 관광도 한 번 안 하시고 개울물만 첨벙거리셨습니까?”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선생님은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제가 영어가 안 되는구나, 싶어서 말씀을 좀 달리 해서 드렸어요. 그제야 자신이 뭔가 착각했다는 걸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동물학과를 다녔지만, 저희 과의 교수님들은 대부분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실험하시는 분들이었어요. 동물학이라고 하면 기린 쫓아다니고 곤충 잡는 걸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실험실에서 화학 실험만 하시더라고요. 재미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별로 공부할 맛도 안 났어요. 그러니 “이분은 생물학과 교수인데 왜 이런 짓을 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분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난 다음 저는 그분에게 “선생님처럼 되고 싶습니다”라며 고백했어요.
“그냥 선생님처럼 되는 방법만 가르쳐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 없고, 매일같이 개울물 첨벙거리면서 먹고 살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되는 겁니까?”
제가 그때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목록을 가보로 남겨 놓으려고 했는데 이사 다니면서 잃어버렸어요. 선생님이 제게 미국에 오려면 토플(TOEFLE)이라는 시험을 봐야 한다, GRE도 봐야 한다고 쓰시고, 그런 다음 지도교수님으로 모시고 싶은 분들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며 아홉 개 대학을 쭉 적어주셨어요. 맨 위에 하버드대학교를 쓰면서 저를 흘끔 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꼭 가야 한다는 게 아니라 좋은 학교 순서로 써야 하니까 쓰는 거다”라고 저를 아주 무시하는 발언을 하셨어요. 그러고는 하버드에는 윌슨 교수가 있다고 적으시고 그 밑으로 나머지 여덟 개 대학을 적어주셨어요.
그렇게 제가 그분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갔어요. 성적도 안 좋아서 거의 서른 곳에 지원서를 냈고 그중 두 군데가 돼서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하버드대학의 윌슨 교수님 제자가 되어 그분의 연구실에 책상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편지를 쓴 겁니다.
“조지 선생님, 제가 지금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하버드대학의 윌슨 교수님 연구실에 와 앉아 있습니다.”
미국에서 편지가 가는 데 이틀이 걸립니다. 이틀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제이, 진짜 네가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다” 하시면서 마치 당신 아들 일인 것처럼 좋아하셨어요.
그분이 그때 왜 저한테 오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세계 백 개국 이상을 돌아다니시면서 왜 하필이면 그때 한국에 오시기로 결정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분이 학회에 갔다가 왜 하필이면 한국계 미국인 교수님을 만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분이 왜 그 교수님에게 다음 달에 아시아권을 돈다는 얘기를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우연이 다 들어맞아서 그분이 제 앞에 나타나주신 겁니다. 직접 오셔서 제 미래를 보여주신 겁니다. 과학자가 이런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다른 설명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분은 신이 제게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방황하는 최재천이에게 가서 그의 미래를 보여 주고 와라.” 그래서 저한테 다녀가신 것 같아요.
제가 바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의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는 가능하면 가려고 합니다. 가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 오늘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온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서 저 때문에 딱 한 명이라도 인생의 길을 찾는다면 저는 너무너무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이것이 호모 심비우스의 정신입니다
어느 생태학자의 고민
제가 별일을 다 하고 사는데, 혼자서 새로운 학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안 따라주는데 ‘의생학이라는 학문을 하나 만들었어요. 요즘 ‘생체모방이라는 말을 가끔 들으시죠? 연꽃잎 위에 물방울이 번지지 않고 말리는 걸 이용해서 물체의 표면을 만든다든지 자연에서 모방하는 일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그걸 좀 더 체계적으로, 진화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해서 제가 의생학을 구상했습니다. 의자가 ‘헤아릴 의자입니다. 의성어, 의태어 할 때. 다른 말로 하면 흉내 낸다는 뜻입니다. 자연을 흉내 내는 학문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학문이다, 자연을 표절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개념 중에 자연 모방(biomimicry)이라는 말이 있어요. 자연에서 우리가 가져다 쓸 게, 배울 게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방이나 신발에 찍찍이(velcro) 많이 붙어 있죠? 우리가 발명한 게 아닙니다. 도꼬마리 같은 식물이 동물의 털에 자기 씨앗을 붙여서 멀리 이동시키려고 개발해놓은 겁니다. 그걸 우리가 그대로 베꼈습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굉장히 비슷하게 베껴서 쓰는 겁니다. 이건 표절이죠, 사실은. 우리끼리는 표절하면 큰일 납니다. 잘못하면 감옥 갑니다. 표절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자연을 표절하는 건 합법입니다. 자연이 우리를 고소하지 않아요. 자연은 마구 베껴도 된다는 겁니다. 저는 자연을 한번 열심히 베껴보자, 이런 얘기를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 이 자연 표절을 기가 막히게 잘한 사람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스탠퍼드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던 시절에 천장에 붙어 기어 다니는 도마뱀붙이(Gecko)의 발바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그 발바닥에 나 있는 털들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그랬더니 유리나 타일처럼 미끄러운 벽면을 빠른 속도로 쫙 기어오르더라는 겁니다. 『타임』에서 해마다 ‘그해의 발명이라고 뽑는 게 있는데, 2006년에 거기 뽑혔습니다. 그래서 김상배 박사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하버드대학 연구소를 거쳐서 지금은 MIT 기계공학과의 교수로 있습니다.
자연을 표절하는 건 엄연한 발명입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아주 정말, 아주 훌륭한 연구를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일본은 신칸센 고속철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표면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밤에 소리도 없이 날아다니는 올빼미의 깃털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모양은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가져다가 그대로 베껴서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우리가 많은 걸 베끼고 삽니다.
코끼리가 코로 웬만한 걸 다 하잖아요. 통나무도 들어 올려요. 코끼리 코는 굉장한 힘과 유연함을 가진 아주 기가 막힌 기관입니다. 그 코끼리의 코를 연구해서 지금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보트는 물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죠? 보트를 타서 물에 안 빠지고 빨리 달리려고 물을 튀기면서 가잖아요.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어떤 회사가 발상의 전환을 일으킨 겁니다. “물에 빠지면 왜 안 되는데?” 돌고래 보트를 만들어냈습니다. 모양도 돌고래처럼 예쁘게 만들었고, 행동도 정말 돌고래 같습니다. 솟구쳤다가 자맥질했다가 해요. 그런 거 200대 정도를 소양호에 풀어놓으면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지 않아요? 상관없습니다. 없어서 못 판답니다. 대박을 친 겁니다. 자연을 베끼면 때로 이렇게 대박을 칩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지만, 박쥐는 암흑 속에서도 날아다니잖아요. 물체를 피해 다니고, 자기가 먹고 싶은 나방 같은 것도 잡아먹어요. 깜깜한데 어떻게 가능한가? 초음파를 내보내고 그 초음파가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걸 받아서 다 보고 다닌다는 거죠. 박쥐의 초음파 메커니즘(sonar echolocation), 그 메커니즘을 이용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지팡이를 개발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얘기죠.
우리는 하늘의 주인이 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새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모습을 슬로 비디오로 보면, 새들이 그렇게 유연하지 못해요. 내려올 때 땅에 곤두박질하며 날개를 부딪히기도 해요. 특히, 저 바닷가 절벽에 사는 새들을 보면 착륙할 때 말도 아닙니다. 절벽의 좁은 곳에 내려야 하니까 급정거를 해야 하잖아요. 거의 와서 쾅 부딪혀요. 부딪혀서 서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부딪혀 자기 알을 자기 발로 차서 알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깨지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진짜로 유연한 비행을 하는 건 박쥐입니다. 저 넓은 날개로 유연하게 급정거하고 급회전하는 걸 잘합니다. 그래서 미국 공군에서는 박쥐를 이용해 작은 정찰기를 만들어서 적진에 날려 보내려 연구합니다.
여러분이 취직하면 회사에서 큰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맨날 난리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삶의 대부분이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이에요. 그렇죠? 아이디어가 매일 술술 잘 나오나요? 그러면 왜 아이디어를 짜낸다는 표현까지 쓰겠어요. 어쩌다가 하나 짜서 꺼내놨어요. 꺼내서 회장님 드리니까 회장님이 “좋았어. 제품 만들어서 내일부터 팔아” 이렇게 하시나요. 이거 될까, 검증하라고 하죠. 사회에서 먹힐까, 시장에서 통할까. 이 검증, 잘못하면 5년, 10년씩 걸리는 겁니다.
다윈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들은 수천만 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이미 다 거쳤다는 겁니다. 검증에서 실패한 놈들은 다 멸종했어요. 그래서 안 보여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까치, 은행나무, 개미들은 다 그 혹독한 검증을 거친 것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그들이 뭘 갖고 있나를 들여다보고 그걸 가져다가, 그냥 주워다가 우리 입맛에 맞게 조금만 각색하면 그 아이디어가 여러분이 애써 짜낸 아이디어보다 대부분 훨씬 탁월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베끼자는 겁니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표절하자는 겁니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를 제가 주워 갔다고 해서 자연이 제게 “내 걸 가져갔으면 돈을 내야 할 것 아니야” 그런 소리 안 합니다. 거저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일찌감치, 벌써 2006년에 제 연구실에다 ‘의생학 연구센터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연구센터가 만들어진 건 아니고, 간판만 걸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일단 간판만 걸었는데요, 제 연구실에는 ‘통섭원이라는 조직이 있어서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여러 가지 토론을 합니다. 제 연구실의 이름은 행동생태연구실로서 자연의 온갖 다양한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의생학 연구센터라는 걸 함께 운영하는 겁니다.
거기에 기업이 찾아옵니다. 기업이 와서 “우리가 이런 걸 풀어내야 하는데, 자연에 좋은 아이디어 없겠습니까?” 하면 우리랑 만나요. 그거에 딱 맞는 답을 금방 내놓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대부분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귀뚜라미는 어떨까요?” “꿀벌은 어떨까요?” “혹시 애기똥풀은 어떨까요?” 이렇게 자꾸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거 한번 들여다볼까요?”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공학을 하시는 엔지니어들을 함께 동석시킵니다. 그랬더니 둘이 얘기하다가 뭔가 될 듯하면 엔지니어들이 가져다가 뚝딱뚝딱 만들어와서 또 얘기가 시작됩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기가 막힌 대박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해보는 겁니다.
자연을 우리 마음대로, 자연에 있는 걸 막 갈아엎고 우리가 필요한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들여다보고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자연에 순응해서 그 친구들처럼 우리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게 바로 의생학입니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도 자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호모 심비우스의 시대에 정말 해볼 만한 연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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