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의 작품 중에 이 작품은 특별하다. 소소한 일상, 행복, 평범함이라는 주제로 친숙한 마스다 미리 작가가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반전은 그가 가진 힘의 모습이다. 이는 곧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갖고 있는 힘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감동이 천천히 밀려와 오랫동안 머문다.
『누구나의 일생』은 30대 일러스트레이터 나쓰코의 이야기이다. 시간적 배경은 코로나 시기로, 마스다 미리 작가가 그려왔던 일상의 소중함이 더욱 와닿던 때이다. 이 시기 우리는 일상적으로 더 이상 못하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상은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마스다 미리는 두 세계를 모두 다루기에, 일상에서 일생을 그리는 작가로 나아간다. 우리에게 삶이 있듯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그린다. 그래서 내일이 오늘처럼 평온하리라 더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절망 없이 오늘을 살 수 있는 것, 그런 오늘이 모여 한 일생이 되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의 주인공 나쓰코는 낮에는 도넛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만화를 그려 인터넷에 올린다. 그의 만화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실현된다. 소금쟁이가 되고 싶다고 농담인 듯 말하던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주고, 동료 알바 대학생이 코로나 시기로 인해 누리지 못했던 대학생활을 그린다. 현실에서 전하지 못한 자신의 진심을 또박또박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마스다 미리가 전하는 인생론과 만난다. 사는 동안 우리가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면,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과 전하지 못하는 진심은 없다는 것. 당장, 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전해진다는 희망.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당신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곧 인생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 속에서 마스다 미리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 듯, 어느새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 저자 마스다 미리
1969년 오사카 출생의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의 이야기를 정중하고 담백하게 묘사한다. 대표작으로 30대 싱글 여성의 일상을 다룬 만화 〈수짱 시리즈〉가 있으며, 최근작으로는 『누구나의 일생』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 『미우라 씨의 친구』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수짱 시리즈〉 〈우리 누나 시리즈〉 『오늘도 상처 받았나요?』(원제 스낵 키즈츠키)가 영상화되었다.
■ 역자 박정임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지바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전문번역가로 일하면서 능내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한다.
옮긴 책으로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와 『미우라 씨의 친구』 등을 비롯해 〈미야자와 겐지 전집〉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고독한 미식가』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등이 있다.
■ 차례
1. 껌 뽑기기계
2. 캠핑
3. 과일 샌드위치
4. 분재
5. 빙수
6. 레코드
7. 마트료시카
8. 커피
9. 케이크
10. 명절음식
11. 장갑
12. 오르골
13. 연필깎이
14. 푸딩 아라모드
15. 탬버린
16. 복을 부르는 고양이 인형
17. 아이스크림
18. 지갑
19. 망원경
20. 도넛
마지막. 호두
평범한 오늘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태도가 곧 행복입니다. 단단한 우리의 삶은 유명인사의 명언 한 줄로 행복해지거나 변화를 맞이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꾸준하게 행복을 말해온 마스다 미리의 인생론과 행복론을 만나보세요.
누구나의 일생
캠핑
예컨대 지구에 의문의 바이러스가 확산됐다고 치고
모든 대학 강의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들뜬 마음으로 대학생이 됐는데 학교에 전혀 갈 수 없게 된다.
다양한 동아리를 둘러보거나
새로운 친구들과 캠핑을 간다는 등
꿈꿔왔던 일상이 전부 멈춘 상태로
4년을 보낸 청년들이 있다면
‘후우 하고 한숨이 날 것 같은 느낌이야.
가혹하다고 할까, 서운하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그 의문의 바이러스가 진정되고
그리고 사회인으로 세상에 나갔을 때
‘불쌍한 대학생활을 보낸 세대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이 더 싫을지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일러두고 싶군.
마트료시카
어렸을 때부터 수차례 경험했는데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른이 됐는데도 힘들고 불안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예컨대
마트료시카처럼
수많은 자신이 더해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더해져 온 자신을
하나하나 열었을 때 나오는
가장 작은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감기로 열이 나서 누워 있는 나
조그마한 나
‘혼자 두지 마.
그런 기분일 것 같아.
그런 기분을, 혼자는 싫다는 어렸을 때의 기분을
가슴 깊숙이 남겨둔 채
어른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장갑
자신이 그걸로 좋다면 좋은 거야.
인생에 대의명분은 없어도 돼.
내 마음은 누가 결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설령 그것이 조금씩 모습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것처럼 보여도
내게는 같은 거야.
오하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장갑을 뜨기 시작했다고 해도
내 안에서는 연결되는 거야.
오르골
그림이란 대체 뭘까.
자신을 알리고 싶은 마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 그림을 보고 즐거워해주길 바라서?
‘좋아한다는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오르골 속의 발레리나처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 그대로
난 계속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몰라.
그 뚜껑이 닫히고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 좋아할 자신은 있지만.
푸딩 아라모드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질문이
시시하게 느껴져.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보다
죽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 분하고
허무하고 슬퍼.
길모퉁이의 고등학생
산책 중인 유치원생
대부분의 사람
그리고
나 자신.
이유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빼앗기고
방금까지 누군가와
같이 웃던 시간까지
사라진다면?
마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달개비꽃처럼.
소중한 것은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자유
그때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뒀어? 회사는?
계속 방에만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직장 내
인간관계에 지쳤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속에서 끓어올라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와도
나의 세계는
나의 방이 전부였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렇다고
될 대로 돼라는
마음도 아닌 채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고등학교 때 입었던 멜빵바지가 생각났고
왠지 입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멜빵바지가 갑옷처럼 여겨졌습니다.
나를 지켜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편의점 갔다 올게.”
나는 반년 만에 밖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갑옷을 입고 있잖아.
“나쓰코!! 나도 편의점에 갈 거야. 아이스크림 사려고.”
언니가 허름한 실내복 차림으로 황급히 뛰어나와
고등학교 때의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이유도 묻지 않고
뒤를 따라와 주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아침
아빠가 갑자기 주방에 서 계셨습니다.
요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던 아빠가
아침밥을 준비하고 계셔서
그래서 놀려주려고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세상에는 농담을 해서는 안 되는
뒷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좋은 냄새~ 배고파.”
이후, 아빠가
아침저녁밥을 차려주셨고
무슨 생각이 있으셨겠지,
하고 이유는 묻지 않았습니다.
도넛
조금씩
집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을
그 당시의 나는
먼 미래 따위
생각할 수 없었고
겨우 30분 앞의 자신을 생각할 여유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도넛 가게 앞을 지나갔습니다.
‘스토로베리도 좋은데. 초콜릿으로 할까
케이스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도넛을 보고 있으니
‘제로? 제로!
그래 나도 지금은 제로야. 하하하
나는 초콜릿 도넛을 한 개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태양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인가…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됐어.
도넛이 제로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나도
제로부터 시작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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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