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행복수업
 
지은이 : 김지수 (지은이), 나태주 (인터뷰이)
출판사 : 열림원
출판일 : 2024년 04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작가 김지수와 ‘풀꽃시인’ 나태주가 만나 봄 한철 행복수업 에세이를 전합니다. 세대를 초월해 ‘상대방을 살린’ 우정의 기록이자, ‘너무 애쓰다 지친’ 모든 어른에게 가장 촉촉하고 다정한 응원가를 바칩니다.


    나태주의 행복수업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가장 예쁜 봄이 오고 있다

    시인 나태주의 말년은 극진한 사랑과 인정으로 매일이 구름 속의 산책처럼 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풀꽃문학관으로 나비처럼 찾아들었고, 큰 출판사 사장들은 어디선가 찾은 원고 뭉치를 들고 와서 그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가 쓴 시도 그가 쓴 추천사도 ‘나태주의 얼굴을 달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서점가로 흘러들었다. 태권도 발차기를 하는 젊은 트로트 가수와 함께 나태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의 입가는 화사해졌다.


    초등학생 아이도 중학생 아이도 나태주의 시를 외웠지만, 노인과 평론가들은 나태주의 시를 몰랐다. 젊은이들은 나태주의 시를 동요처럼 부르고 랩처럼 읊었다. 그의 언어는 새털처럼 가벼워, 평론가들이 작업 도구로 쓰는 복잡하고 무거운 엔진을 달지 않고도 공기 중으로 사뿐사뿐 날아다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에서


    어여쁜 말은 민들레 홀씨처럼 사방에 퍼졌다. 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다. 시인을 꿈꾸었지만 스무 살 넘어 시 한편 못 쓰고 바쁘게 살던 지수는, 어느 날 지쳐서 축 처진 어깨를 끌고 태주가 있는 공주로 떠났다. 정신의 아버지처럼 따르던 스승을 잃은 뒤였고, 극심한 번아웃으로 다니던 직장도 놓은 후였다.


    공주는커녕 무수리도 못 되는 지수를 그가 공주로 대접해줄까. 공주는 어머니 뱃속 같은 분지라는데, 태중 같은 아늑한 곳에서 그는 또 어떤 꽃밭, 어떤 풀밭을 가꾸고 있을까.


    태주가 머무는 풀꽃문학관은 전통 깊은 공주사대부고와 세무서 사이에 끼어 있었다. 위용이 남다른 두 거인 사이에 끼인 채, 검은색의 낡은 목재 건물은 봉황산 밑에 새초롬했다.


    풀꽃문학관은 전국에서 가장 밝고 작은 응급실이어서 그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금세 알아보았다.


    ‘좋아요! 좋아요! 디지털 아멘으로 유지되는 서울, 너무 똑똑해서 똑같아지는 파워풀한 포식자의 도시에서 힘주고 버텨 온 지수는 적당히 힘을 뺀 공주의 느슨한 공기에 당황했다.


    골목골목 눈 닿는 곳마다 꽃과 시가 쌓여 수북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이 도시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듯 서점 주인도, 사진관 주인도, 찻집 주인도 서로에게 사근사근했다.


    태주가 지수를 처음 데리고 간 곳은 카페 ‘루치아의 뜰이었다. 루치아의 뜰로 앞장설 때 태주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탕 가게로 안내하는 아이 같았다. 언뜻 보면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구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은은한 공기의 주인을 고요라 할까, 공손이라 할까. 남자는 여자를 섬기고, 여자는 꽃을 섬기고, 꽃은 고양이를 섬기는······ 그것이 이곳의 보이지 않는 질서고 위계였다.


    지수가 신기한 듯 물었다.


    “공주의 남자들은 어쩜 이리 여성에게 다감한가요?”


    “출신이 부마잖아요. 공주의 남자니까······ 하하. 여자를 공주로 모시고 살 운명인 거죠. 왜냐하면 여성이 편안해야 도시가 예쁘고 반듯합니다.”


    “선생님도 공주를 모시고 사세요?”


    “그럼요. 우리 집사람 김성예를 모시고 살죠. 김성예는 밤에 일어나 오줌누러 가다가 내가 글 쓰고 있는 걸 보면, 깜짝 놀라 혼을 냅니다. ‘너, 죽을래? 그러면 나는 죽지 않고 아침에 다시 일어나서 집사람한테 돈을 줘요.”


    “돈을요?”


    돈이라는 말에 지수의 귀가 쫑긋해졌다.


    “내 소원은 김성예에게 매일 돈 주는 거예요. 내가 그 사람한테 해줄 게 없어요. 돈 주는 것밖에는.”

    “얼마나요?”


    “5천원이든, 1만원이든 줘요. 우리 집사람이 돈이 좀 있어요. 제법 있죠. 나는 돈이 없어. 그런데 내 아내는 돈을 잘 몰라요. 그래서 내가 관리를 해줍니다. 돈의 주인은 아내인데, 나는 아내의 돈을 받아서 다시 아내에게 주는 거예요. 웃기죠? 왜냐면 나는 돈에서 해방되고 싶어요. 그래서 모이면 다 남에게 흘려보냅니다. 그 덕에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옷, 좋은 옷, 좋은 차...... 웬만한 것에서는 다 해방이 됐어요.”


    꽃은 알아도 돈은 모를 것 같았던 풀꽃시인은 이후로도 자주 돈 얘기를 꺼냈다. 돈에 밝아야 꽃이 썩지 않았으므로.


    “그런데 딱 하나 해방이 안 되는 게 있었어요.”

    “그게 뭐죠?”


    그가 모자를 만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랑!”

    “사랑......?”

    “연모의 마음, 호기심의 마음, 여성을 아끼는 마음, 처음 본 마음이지요.”


    태주에게 사랑은 ‘처음 본 너와 같은 말이었다.


    “처음 본 듯 봐야 예쁘게 보입니다. 처음 본 것처럼 봐야,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어요. 이 봄도 그렇지 않아요? 저기 산봉우리를 보세요! 끄트머리 나무 얼굴이 살짝 부었죠? 얼마나 귀여워요. 내 일생에 처음 보는 봄이에요.”


    “봄은…… 80년째 보셨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설렌……다고요?”


    “그럼요. 작년 봄은 이미 지나간 봄이고 내년 봄은 아직 안온 봄이니, 나하고 관계없어요. 지금 오는 봄이 내 봄이에요. 그대와 같이 맞이한 첫봄이죠. 산등성이가 저렇게 부풀어 오르는 모양을, 그 봄을 우리가 처음 보고 있잖아요. 여지껏 만나본 봄 중에, 가장 예쁜 봄이 오고 있어요.”


    서울에도 공주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나는 왜 이다지도 작은가

    후회해도 괜찮다

    매주 월요일 공주로 가는 길은 지수에게 편안한 루틴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뒤로 그는 자유인이 되었고, 그토록 그립고 두려웠던 자유와 함께 ‘작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물을 마시고 한 움큼의 영양제를 밥처럼 씹어 먹고 전철을 타고 회사로 달려 나가던 28년 동안의 삶.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삶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기를 쓰고 지냈던 시간들. 돌아보면 28년이 아니라, 전 생애를 ‘남들처럼 살기 위해, 트랙에 올라서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바이러스의 시간이 지난 후 ‘대퇴사는 하나의 물결이 되어 이곳저곳에서 출렁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거나 떠날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미래는 예측불허이기에 유한한 인생, 남은 시간을 ‘사축 인간으로 보내는 대신 또 다른 선택지를 찾는 쪽에 주사위를 던졌다.


    후회.


    특별히 후회라는 단어가 돌멩이로 채운 우물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나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뼈저린 후회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을 때,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용서할 수 있겠나? 그렇게 시간을 뒤섞는 인간만의 내러티브 능력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다. 때마침 『후회의 재발견』(한국경제신문, 2022)이라는 책을 쓴 사려 깊은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인터뷰이로 나타난 것은 행운이었다.


    지수가 물었다.


    “후회란 무엇인가?”

    “후회는 삶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건강하고 본질적인 충동이다. 후회는 생계보다는 삶에 대해, 나 자신의 진실에 관해 묻는 출발점이다.”


    “전 세계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후회에 대해 털어놓았다지? 사람들은 주로 어떤 것을 후회했나?”

    “수많은 후회가 있었으나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절대적이었다. 이미 한 행동은 바로잡거나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그 사람과 결혼한 건 후회하지만, 적어도 예쁜 두 아이를 얻었지 같은 식으로, 무행동에 대한 후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이 들수록 회한은 커진다.”


    “내게 무엇을 조언하고 싶은가?”

    “후회를 최소화하려 들지 말고 최적화하라. 두려워서 결정을 미루지 말라. 실행하지 못한 것, 옳은 일을 하지 못한 것, 아끼는 사람에게 손 내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해라. 하루라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인생은 얼마간의 후회를 쌓는 일이라는 걸.”


    후회가 나쁜 것이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회하고 산다는 현자의 대답은 크게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후회는 생계보다는 삶에 대해, 나 자신의 진실에 대해 묻는 출발점이 된다는 말에 지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생계가, 운명이 저만치 앞서서 내 멱살을 쥐고 끌고 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이제는 잡아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을.


    ‘후회해도 괜찮아로 마음의 방향을 바꾸자, 배짱 있고 마음 넉넉한 친구와 같이 걷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게 서툰 지수를 태주는 엉뚱하지만 특별한 친구라고 불렀다. 기차역 레일 위에 세워진 ‘공주라는 푯말은 노랑과 파랑이 어우러져 어여뻤고, 북풍에서 동풍으로 느릿느릿 이동하는 바람이 뺨에 닿아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역을 지나치지 않고 제때 내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한 시간 반은 짧은 시간이라 책이나 스마트폰에 정신줄을 놓다가는 다음 역에 내려 혼비백산할 수도 있다).


    택시를 타고 공주 시내로 들어가는 길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 공주 밤을 사 갈까?

    ‘밤을 넣은 막걸리는 맛있을까?


    이토록 아무런 대비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 한나절 동안 먹고 마시고 정처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 사람이 나태주라는 것. 그것만으로 행복감이 차올랐다.


    풀꽃문학관은 변함없이 작고 옹골차고 나무 냄새가 가득한 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흰 담벼락 밑으로 담쟁이가 연초록 꼬리를 드리웠고, 담 아래로 고양이가 한가롭게 기지개를 켰다.


    선생은 풀꽃문학관의 풍금이 있는 방으로 나를 들일 때마다 살짝 허둥댔다. 내가 묻히고 온 서울의 주파수가 그의 몸에 닿아 저릿거리는 것만 같았다.


    해가 좋으니 운암리로 가자며, 차에 올라탔다. 그의 곁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온갖 사무를 처리하는 Y의 흰색 프라이드 승용차였다. 우리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논밭이 평화로웠다.



    그냥, 살면 돼요

    복수초야, 깽깽이풀아, 다녀올게

    “자동차를 얻어 타고 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윤동주 시비가 있는 곳에서 만날까?”


    태주는 한껏 들뜬 채로 말했다. 지난번 헤어지면서 태주는 지수가 사는 서울로 오기로 약속했다. 이야기했듯이 태주는 공주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이곳 사람들은 사뿐사뿐 걸으면서 양팔을 앞뒤로 크게 흔드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즐거워했다. 태주는 다짐하듯 말하곤 했다.


    “나는 내가 망하는 법을 알아요. 벤츠를 사서 타고 공주 시내를 한 바퀴 휘 돌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표정이 변할거야. 하지만 나는 원시인입니다. 원래 걸어 다니는 시인. 어디를 가도 날이 저물면 기어이 밤 버스를 타고 걸어서 공주로 돌아오지요.”


    공주와 달리 서울은 엄청나게 크고 바쁘고 복잡하고 자아도취적이다. 태주가 벤츠를 타고 다니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든 군복을 입든 심지어 사자탈을 쓰고 다닌다 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서울은 태주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이 많았고, 벤츠와 BMW는 자전거만큼 흔했다. 사람들은 유명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올리느라 다들 너무 바빴다. 인플루언서 혹은 팔로워, 맞팔 혹은 댓글로 서로를 부풀리며 한계 없이 자가 증식해 나갔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언론사에서 일할 때 지수는 자신이 링 위의 복서 같다고 생각했다. 카페인과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붓고 링 위에 올라 ‘선방을 날려 상대를 제압해야 살아남는 복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신문사의 모든 데스크는 (독자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특종 보도와 ‘단독 보도에 열을 올렸고, 경쟁사에 첫 보도를 빼앗기는 일명 ‘물먹는 일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해외 유명 인사를 단독 인터뷰하기 위해 해당 에이전시에 다른 언론사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압력을 넣었고, 1분이라도 먼저 노출되기 위해 한 줄짜리 기사를 내보내는 일도 흔했다. 성정이 순한 사람조차 점점 맹수가 되어,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다른 기자들을 물먹일 때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힘을 전시하고 그 힘의 결과를 느끼는 것. 그것이 이 세계를 돌리는 가장 중요한 물리 법칙이었다. 서울의 상징인 남산서울타워와 롯데월드타워를 볼 때면 지수는 한없이 높아져서 구름을 찌를 것 같은 이 도시의 야망이 떠올라 음지 식물처럼 움츠러들었다.


    공주를 떠나는 날 아침 태주는 정원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부상과 신발과 물 대는 호스를 정성 들여 청소했다. 살뜰한 손길로 최근에 돋아난 수선화의 싹들도 뽑았다. 손에 익은 정원 일이 그날 아침엔 유난히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세우고 모자를 쓰고 나서는 그만 울고만 싶어졌다.


    “복수초야, 깽깽이풀아. 다녀올게.”


    Y가 운전하는 흰색 아반떼를 타고 태주는 상경했다. 지수는 약속된 평창동 찻집에서 태주를 기다렸다. 공주 풀꽃문학관의 언덕과 비교하면, 이곳은 왕복 8차선 도로처럼 커 보였다. 카페 맞은편 서울 옥션 앞길은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법석이었다.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든 스태프와 긴장한 빛이 역력한 신인 연기자, 촬영 스케줄표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조연출, 하역 중인 덤프트럭까지 뒤엉켜 언덕을 올라온 택시 기사들이 혀를 차며 차를 돌려 나갔다.


    태주의 길도 수난이었다. 서울 톨게이트를 진입하는 도중 Y가 운전하는 차가 옆 차선의 차와 부딪혀 백미러가 깨지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Y는 백미러를 수리하러 가야 했기에 태주는 택시를 잡아타고 혼자 평창동으로 들어왔다. 북악산의 기세가 드높아 문인, 음악가, 화가 등 기가 강한 예술가들이 정착해서 산다는 이곳 평창동엔 미술관과 화랑, 저택과 문학관 등의 위용이 대단했다.


    점심을 함께하기로 한 한식집 마당에 도착하니 태주가 엉거주춤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나무와 식물이 자신의 방패막이라도 되는 듯. 서울의 번쩍거림, 서울의 속도, 서울의 스펙터클, 서울의 숨은 공격성에 그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태주는 혼이 빠진 것 같은 얼굴로 식사를 마쳤다. 고추장 양념을 한 부드러운 돼지고기, 대나무 채반 위에 놓인 향긋한 보쌈, 신선한 채소와 된장, 고소한 콩밥, 누룽지, 묵무침, 파전까지 테이블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졌지만, 태주의 젓가락은 밥과 국 사이를 오가며 허둥댔다. 그가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Y선생은 아직 안 왔지요?”

    “네. 아직 안 왔어요”


    시끌벅적한 식당을 나와 태주와 지수는 ‘이어령길이라는 팻말이 붙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태주와 함께 ‘이어령길을 걸으며 이어령 선생이 살아계실 때 마지막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지수는 이 언덕길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수업은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단풍이 들고,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듬해 새로운 봄을 맞기 전에 스승의 죽음과 함께 수업은 끝이 났다.


    태주와 함께 ‘이어령길을 걸으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지수에게 이어령은 크고 명료한 생각의 스승이었고, 나태주는 웃기고 다정한 느낌의 아버지였다. 이어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동작이 컸고 나태주는 희극 배우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했다. 이어령의 눈은 예지로 번뜩였고 나태주의 눈은 물기로 촉촉했다.


    이어령은 평생토록 죽음과 나와 우주를 탐구한 넉넉한 에고이스트였고, 나태주는 평생 너와 꽃과 사랑에 몰두한 로맨티스트였다. 이어령은 진선미의 높은 언어를, 나태주는 의식주의 생활 언어를 사용했으나, 둘 다 영성을 통과하는 은유의 달인이었다.


    어휘의 총량이 무한대인 지식인과 기억의 총량이 무한대인 시인 사이에서 지수는 전극이 다른 경이를 느꼈다. 두 사람 다 충청도 사람이었고 유머가 풍부했고 키가 작았다. 무엇보다 남겨질 후대를 지극히 사랑했다.


    2022년 2월, 이어령 선생이 떠난 후 태주는 풀꽃문학관 서가 한 칸에 이어령의 책들을 사다가 꽂아놓고 그 앞을 서성거렸다. 영혼의 친구를 잃은 것 같아 한동안 말을 잃고 허둥거렸다. 「우상의 파괴」 칼럼으로 스물두 살에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어령에 비해, 나태주는 70대에 이르러서야 ‘풀꽃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생전에 이어령이 출간한 180권이 넘는 책 중에, 태주는 그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를 여는 서문을 가장 좋아했다. 먼저 하늘로 떠난 딸 이민아에게 전하는 말이자 이어령이 입으로 토해 낸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태주도 아들과 딸에게 미리 유언 시를 써놓았다. 지수는 이어령의 유언 시와 나태주의 「유언시」를 비교해서 읽을 때마다 그 멀고도 아득한 거리에 놀라곤 했다.


    아들아 딸아, 지구라는 별에서 너희들

    애비로 만난 행운을 감사한다


    (…)


    아들아, 이후에도 애비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딸아, 네가 나서서 애비의 글이나 인생을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작품은 내가 숨이 있을 때도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내가 지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나의 것이 아니다


    (…)


    부디 너희들도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날들

    잘 지내다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담에 다시 만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오늘 이어령 선생의 자택을 겸한 영인문학관 부근을 태주와 함께 걸어가고 있자니,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목울대가 따끔거렸다.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멀리서 불어 온 바람이 둘 사이를 부드럽게 감싸며 지나갔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