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푸바오’는 가히 슈퍼스타이다. 5분 관람하려고 8시간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화보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SNS에는 사진이 도배되다시피, 관련한 유튜브는 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 푸바오를 보고 우울증이 치유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많다. 왜 푸바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일까?
‘과학의 맛을 알게 해주는 과학저술가’로 통하는 곽재식 저자의 이 책은, KBS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판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되었다. 판다에 관한 논문, 자료기사, 책 등을 섭렵하는 몇 주 동안 이상하리만치 판다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작가는 문득 그 영감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학 기초 지식에서 진화, 한국의 동식물, 판다와 관련된 정치문화사, 생태계 보호까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간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 고민을 일곱 가지의 ‘판다 정신’으로 갈무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람들은 왜 판다를 좋아할까’. ‘판다는 어떤 동물일까’에서 출발한 물음이 개인과 지속 가능한 세계를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 저자 곽재식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된 이후 《지상 최대의 내기》, 《신라 공주 해적전》,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등 다수의 소설을 펴냈다. 인문과학 교양서로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휴가 갈 땐 주기율표》,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외 여러 권, 글 쓰는 이들을 위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최근작으로는 《판다 정신》, 《슈퍼 스페이스 실록》, 《미래 법정》이 있다. 한편 EBS 〈인물사담회〉, KBS 라디오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판다를 만난 것처럼
PART 1 판다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늘 먹고 자고 | 힘을 낭비하면 안 된다
먹는 게 일 | 이왕이면 느긋하고 즐겁게!
겨울잠도 못 자 | 어떻게든 먹고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악명 높은 쓰촨성 산속에서 | 자기만의 길과 방향이 있다
생존을 위한 이동 | 때를 잘 포착해야 한다
구르는 것이 좋아 | 힘도 아끼고 추위도 막고
오물 목욕 | 그래도 참 열심히 사는 방법
판다 Q&A | 푸바오가 크리스마스에 연속으로 20번 구른 이유 외
PART 2 판다는 손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버틴다
호감의 법칙 | 사랑받으면 오래 살아남는다
귀여움의 결정적 이유 | 막대 사탕과 대나무
이상한 돌 이야기 | 동물의 손 그리고 호모에렉투스
호모에렉투스와 현대 인간의 공통점 | 두 발로 걸었더니!
손을 쓴다는 것 | 돌도끼에서 핵폭탄까지
나눔은 손의 본능 | 엄지손가락이 없다면?
판다의 여섯 번째 손가락 | 쓸모없음의 쓸모
진화의 방향 | 판다에게 손으로 무얼 하냐고 물어보면
판다 Q&A | 한국인들은 왜 푸바오를 좋아할까 외
PART 3 판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즐기는 데 집중한다
판다의 소화 마법 | 잡초를 석유처럼 연료로 쓸 수 있을까?
그래도 고기 대신 대나무 | 침착하게 잘 깨물어 먹으면
판다의 비밀 영양제 | 대나무에 없는 건 배 속에 있다
MSG 맛을 못 느끼는 DNA | 판다야말로 가장 정확한 맛 감별사
특별한 입맛의 탄생 | 고기 맛을 몰라 살아남은 건 아닐까
판다 Q&A | 같은 대나무라도 맛이 다 다를까? 외
PART 4 판다는 혼자서도 잘 산다
판다는 크고 강한 동물이다 | 대나무만 있다면 괜찮아
판다 정신 |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판다의 삶
청주 두루봉 동굴곰 | 한반도에는 판다와 비슷한 동물이 없었을까?
판다와 동굴곰의 순하고 둥근 얼굴 | 식성의 영향
생과 사의 법칙 | 작은 판다는 살아남고 큰 동굴곰은 사라졌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살다가… | 판다의 뒷모습에 드리워진 그림자
판다 Q&A | 판다의 검은 볼레로 패션에 숨은 비밀은? 외
PART 5 판다는 싸움을 말린다
중국의 판다 외교 | 나라끼리 주고받은 중요한 선물
링링과 싱싱 | 최초의 동물 외교사절
한국에 처음 온 판다 | IMF를 넘지 못한 밍밍과 리리
22년 만에 다시! | 판다야, 북핵 문제를 부탁해
러바오와 아이바오 | 보잉 747기에 죽순과 대나무를 싣고
아기 판다, 푸바오 | 귀여움이 세계를 구한다
멕시코 판다, 신신 |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운 판다
서른세 살 먹은 판다 | 화려한 인기 뒤에도 삶은 이어진다
판다 Q&A | 판다의 새끼는 왜 작게 태어날까? 외
PART 6 판다는 남의 아류 취급을 받았지만 결국 주류가 된다
판다가 고양이라고? | 중국에서 판다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
쇠를 먹는 신령한 맥 | 조선 시대에 나타난 맥은 판다였을까?
청나라 멸망과 함께 사라진 사불상 | 중국이 역으로 수입한 동물
레서판다 vs 자이언트 판다 | 판다의 원조는 누구일까
판다 같은, 판다 아닌 동물들 | 아메리카너구리, 레서판다, 오소리
암센터에서 연구한 판다 | 자이언트 판다와 레서판다는 어떤 관계일까
아류도 주류가 될 수 있다 |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잘 살다 보면
판다 Q&A 푸바오보다 더 유명한 곰 캐릭터는? 외
PART 7 판다는 살아남는다
걷고 있는 판다 | 세계자연기금의 상징
공존의 이유 | 예산의 얼마를 판다에게 써야 옳을까
생물다양성이 무너지면 | 바이러스 감염병의 공포
자연의 도미노 효과 | 천년 신라가 망한 까닭
판다의 우산 아래서 | 판다 보호 사업의 의미
울산 태화강의 기적 | 경제가 발전할수록 자연은 파괴될까?
반달곰의 우산도 함께 | 씨그늘을 넓혀 주는 반달곰
판다와 설악산 반달곰 | 설악산의 반달곰 그림이 슬픈 이유
한국의 야생 반달곰 복원 사업 | 반달곰아, 지리산에서 잘 살아 보자
1800과 80 | 동물원에서 판다를 보고 집으로 온 뒤
에필로그 | 판다 정신을 돌아보며
생태 감수성을 깨우는 환경공학과 교수 곽재식 작가의 인문과학교양 멀티에세이입니다. 판다의 귀여움 뒤에 감춰진 생태적 특징과 세계사에 끼친 영향, 생물다양성의 가치 등을 통해, 개인의 삶은 물론 지속 가능한 세계에 대한 고민을 돌아보게 합니다.
판다정신
판다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늘 먹고 자고-힘을 낭비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판다가 게으른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판다를 보면 대체로 행동이 느릿느릿해 보인다. 날렵하게 나무를 타고 이동하거나 빠르게 땅을 달리는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먹는 데 소모한다. 동물원의 판다를 촬영한 영상을 보아도 먹는 장면이 많다. 주로 식물을 먹고 사는 판다의 특성상 먹잇감을 사냥하려 애쓰는 모습도 없다. 좋아하는 나무 열매를 먹기 위해 힘들게 높은 곳에 기어 올라가지도 않는다. 다른 초식동물처럼 적의 공격을 피해 열심히 도망 다니거나 숨으려 애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슬렁거리며 걸어가서 먹이를 먹고 또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먹이를 다 먹은 판다가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다의 삶은 먹고 자고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니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말할 법도 하다.
가만 보면, 몇몇 언론 매체는 판다가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을 즐기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둥글둥글 평화로워 보이는 판다가 알고 보면 굉장히 힘겹게 사는 동물이라고 밝히기보다야 별로 걱정거리 없이 산다고 해야 그 모습에 더 어울리고, 더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끔은 판다가 이렇게 게으르고 별 하는 일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혹독한 야생에서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때도 있다. 게으른 판다는 생존경쟁에서 뒤처져 모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니 사람이 나서서 판다를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판다는 정말 게으를까? 그 말은 사실 꽤 오해가 섞인 표현일 수 있다.
판다가 삶의 대부분을 먹고 자는 데 보내는 것은 맞다. 먹고 자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을 보고 게으르다고 말하는 뜻으로 판다가 게으르다고 말할 수는 있다. 분면 판다는 주간 업무 보고서 작성을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한다든가, 급한 고객 주문을 맞추기 위해 철야 작업을 하는 등의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평균 일상과 비교하면 판다는 충분히 게을러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다가 먹고 자고만 한다는 말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판다 입장에서 먹고 자는 것이 그저 문제없이 늘어져 있으면 저절로 풀리는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물 목욕-그래도 참 열심히 사는 방법
저우원량 선생 연구에서는 판다가 오물에 뒹구는 습성이 체온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단, 여름철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산세가 칼날같이 날카로운 사천성 높은 산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판다가 뒹굴기 좋아하는 오물 속에는 베타카리오필렌(beta-caryophyllene) 등 몇 가지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수가 많다. 이 물질은 추위의 고통을 느끼는 신경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뜨거운 느낌이 들거나, 민트 종류를 맛보다 보면 ‘입안이 화한 느낌이 들면서 어째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렇게 어떤 물질이 가진 화학적인 성질이 동물의 뜨겁고 추운 감각을 바꿀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연구는 데이비드 줄리어스 박사의 장기였다. 줄리어스 박사는 이 연구를 포함해 사람이 감각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깊게 연구해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추울 때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땀을 흘리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판다는 오물 속에서 몸에 베타카리오필렌을 묻히면 추위를 덜 느끼게 되므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저우원량 연구팀에서 낸 논문의 결론이었다. 오물 더미에 구르는 판다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지만, 이 역시 게을러 보이면서도 동시에 참 여러 방법으로 열심히 살고자 하는 판다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판다는 손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버틴다
호감의 법칙-사랑받으면 오래 살아남는다
판다는 귀엽다. 이것은 판다의 빼어난 장점이다. 귀여운 모습은 사람에게 호감을 준다. 생명체가 살아남아 널리 퍼져나가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훌륭한 작전이다. 예를 들어 벼나 보리 같은 식물은 끄트머리에 씨앗이 많이 생길 뿐, 흔히 보이는 많은 잡초와 큰 차이가 없는 식물이다. 단, 그 씨앗을 익혀 놓으면 사람 입맛에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이것이 잡초와 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 특징 때문에 벼와 보리를 농작물로 삼아 넓은 땅에 재배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지난 수천 년간 벼와 보리를 더 많이 심고,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갖가지 기술을 개발하며 노력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벼와 보리는 세상의 들판을 온통 뒤덮을 정도로 큰 번영을 이루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어떤 동물은 사람의 호감을 얻으면 그 동물은 굉장히 쉽게 번성할 수 있다. 고양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반도에서는 석기시대 때부터 사람이 개를 기른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그에 비해 같은 시기 고양이의 흔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대개 고양이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점은 삼국시대 이후로 추정하는 것이 중론이다. 불교가 전해지면서 인도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직간접적으로 전해질 때 고양이가 들어왔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고양이는 개와 비교해 보자면 족히 수천 년간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동물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여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교환하는 문화가 생기자, 고양이의 인기는 급격히 높아졌다. 고양이의 겉모습에 대한 사람의 호감이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요즘에는 공공기관의 도시 행정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동물로 고양이가 꼽힌다. 농식품부의 추정치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이 기르는 고양이 숫자는 무려 250만 마리에 달한다. 250만이면 대구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한국에 대구광역시보다 더 큰 ‘고양이 광역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는 인터넷 시대의 유행 덕택에 번성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조직적인 연구에서도 사람은 상대의 겉모습 때문에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자주 인용되는 연구 결과를 꼽아 보자면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활동한 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이 1970년대에 발표한 내용이 유명하다. 머레이비언은 사람이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인상을 평가할 때 말하는 내용은 고작 7%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에 비해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는 인상을 결정하는 데 55%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는 워낙 자주 인용되어 왔기에 최근에는 그 해석에 대한 비판 의견도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겉모습이 불러 일으키는 호감이 논리적인 판단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만은 대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대접을 얻고 싶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해 좋은 대답을 얻으려면,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달콤한 명대사 한 마디를 연습하기보다, 말하는 모습, 표정, 목소리에 더 신경 쓰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표정과 모습이 사람에게 호감을 줄까? 이것은 좀 복잡하고 고민스러운 주제다. 동물 중에서 따져보자면 사람들은 대체로 보드라운 털을 가진 깨끗해 보이는 커다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슴, 기린은 언제 어디서나 인기 있다. 반대로 작고 털이 없고 피부가 미끄러운 동물, 진흙탕이나 냄새나는 장소에 사는 동물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을 확률이 높다. 강아지를 보면 쓰다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개구리나 두꺼비가 나타났을 때 만져 보려 하는 사람은 훨씬 적을 것이다.
물론 이 규칙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개구리나 두꺼비를 나름대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작은 동물로 범위를 좁히면, 귀여움과 징그러움이 아주 약간의 차이로 나뉘는 예도 있다. 들쥐, 다람쥐, 토끼는 다 같은 설치류이며 습성이나 생김새 역시 비슷하다. 그런데 귀가 길고 꼬리가 짧은 토끼와 줄무늬가 있고 꼬리가 두툼한 다람쥐는 많은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는 반면, 그와 조금 다른 모습의 들쥐는 대우가 다르다. 오히려 사람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의 대표이다.
파고들어 볼수록, 귀여움의 원리는 더욱 혼란스럽다. 분명히 많은 사람에게 들쥐는 징그러운 동물에 속한다. 그렇지만 한두 가지 특징을 제외하고는 들쥐와 비슷한 점이 많은 햄스터는 대체로 귀여운 동물로 취급받는다. 나아가 들쥐조차도 모습을 조금만 바꾸어 표현하면, 예를 들어 디즈니 같은 대기업이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잘 꾸미면, 사람들이 귀엽다고 여기는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들쥐를 기르면서 잘 씻겨주고 먹여주고 귀엽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없지 않기는커녕, 과거에 비해 그 숫자가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인 듯하다.
판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즐기는 데 집중한다
특별한 입맛의 탄생-고기 맛을 몰라 살아남은 건 아닐까
판다의 입맛이 왜 고기 맛을 못 느끼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자.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수 저편, 어느 이상한 별이 있다. 어느 날 그 별에서 불길이 세게 치솟으며 우주 사방으로 강한 우주방사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중 한 가닥이 긴 세월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으로 퍼져 1만 3000년 동안 날아간 끝에 하필, 지구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구에서도 하필, 새끼 판다를 임신한 어미 판다에게 떨어졌다. 우주방사선은 새끼 판다 몸에 들어갔다. 또 하필, 새끼 판다의 세포 DNA가 있는 곳에 말이다. 우주방사선이 DNA에 부딪힌다. 그래서 DNA의 염기 한 두개가 망가진다. 판다의 DNA는 약 26억 개의 염기로 되어있는데, 그 많은 염기 중에 하필,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부위에, 1만 3000년 전 어느 별의 폭발에서 나온 그 우주방사선이 적중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판다 한 마리가 고기의 감칠맛을 느끼지 못하는 특이체질로 태어나게 된다.
진화가 일으키는 변화는 이런 식으로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 고기의 감칠맛을 못 느끼는 그 판다는 특별히 고기를 탐내지 않고 그냥 부지런히 대나무만 먹는다. 그에 비해 다른 판다들은 고기가 맛있는 다람쥐나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뛰어다닌다. 그러나 이 시대는 험난한 시대다. 다람쥐를 사냥하려다가 괜히 삐끗해서 다치는 판다도 생기고, 토끼를 사냥하려고 뛰어다니다가 지쳐있을 때 오히려 늑대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잃는 판다도 나온다. 그렇다 보니 그냥 널려 있는 대나무를 먹는 데 집중한 판다, 고기 맛을 느끼지 못하는 판다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 판다는 자손을 남긴다. 자손도 어미 판다를 닮아 MSG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 체질 덕분에 대나무만 열심히 먹기에 역시 잘 살아남아 많은 자손을 퍼뜨린다. MSG맛을 느끼지 못하는 판다는 점점 더 번성하여 결국 지금의 판다가 된다. 이 과정에서 판다는 대나무를 먹는 데 더 집중하게 되고, 몸의 다른 모습도 대나무를 먹기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한다.
판다의 진화가 실제 이렇게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1만 3000년 동안 은하수를 건너온 우주방사선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자외선이 DNA를 바꿔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와 비슷할 것이다. 물론 판다 중에 다른 특이체질로 태어난 개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특이체질이 삶을 사는 데 특별히 도움이 안 되면, 그 판다는 오래 살아남아 새끼를 많이 치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괜히 호랑이 굴에 찾아가서 호랑이를 때리기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특이체질 판다가 탄생했다고 치자. 이런 판다는 불행히도 자신의 특이한 취미 때문에 호랑이의 반격으로 허무하게 일찍 목숨을 잃을 것이다. 자신과 습성이 닮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MSG 맛을 못 느끼는 체질이라고 하면 언뜻 보기에 뭔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체질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판다가 살아남아 널리 퍼져나가기에는 유리했기 때문에 그 특성이 지금껏 유지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대나무를 씹는 판다가 고기를 먹는 불곰과 북극곰을 본다 해도 별로 부러워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한번 해본다. 큰 곰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사냥 솜씨와 거창한 고기로 된 음식을 보면, 그런 모습으로 강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이 가끔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 큰 곰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사냥 솜씨와 거창한 고기로 된 음식을 보면, 그런 모습으로 강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이 가끔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게 높은 위치에 있는 짐승이고, 남들이 다들 우러러보는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과거를 돌아보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고 남들이 더 높은 위치라고 하는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가지려고 애쓰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래야 남들이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차피 고기의 MSG 맛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고기 먹는 사람들이 고기가 더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는 이유로 꼭 고기를 먹으려고 애써야 할까? 비싸고 좋은 상표라고 하니까 나한테 잘 어울리지도 않지만, 심지어 불편하지만, 그저 그 상표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상표가 달린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꼴 같지 않은가? 대나무를 씹어 먹는 게 오히려 더 기분 좋고 부담 없다면, 굳이 고기를 먹으려 들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대나무만 충분히 먹으면서 살면 그게 좋은 것 아닌가? 나는 그런 판다 정신으로 쓸데없이 허상과 같은 목표를 사냥하려고 하던 시절을 반성하고자 한다.
판다는 혼자서도 잘 산다
판다 정신-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판다의 삶
판다는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도 없다. 판다는 혼자 사는 동물이다. 다른 판다가 주위에 없다고 해서 외로워하지도 않고 무리에서 소외당했다고 괴로워하는 법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먹고사는 데 지장도 없고 누가 삶을 크게 방해하는 것도 없는데, 꼭 둘씩, 셋씩 모여 있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다독거려 주는 친구가 없다고 울적해하지도 않고, 다른 판다가 더 많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인기있는 모습을 보더라도 딱히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숲속을 어슬렁거리며 대나무 숲에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가끔 답답하면 나무 위에 올라가 좀 먼 곳을 바라보고, 그러다 다시 출출해지면 대나무나 씹어 먹으면 그만이다. 누구와의 관계가 힘들어졌다고 해서 눈물 흘리지 않는다. 누구는 나보다 높은 위치까지 갔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무리 속에서 서로 비교하며 안달을 내지 않는다. 심지어 판다는 오랫동안 머물 집을 만들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판다도 좋아하는 나무가 있고, 가끔 바위틈 사이의 구멍에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거나 하면서 오래 머무르는 습성은 없다.
생물학 연구 논문을 읽다 보면, 동물의 삶을 너무 사람의 삶처럼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람이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준,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동물의 습성이나 행동을 판단하는 편견이 개입되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는 장면을 관찰한다고 하자. 과학자는 늑대는 사악한 침략자, 토끼는 침략 받는 순박한 피해자라는 시각으로 살펴본다면, 무심코 토끼를 응원하고 늑대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이래서는 늑대의 다양한 습성 중에 어떤 것이 늑대에게 도움이 되고 어떤 것이 늑대에게 불리한 행위인지 냉정하게 관찰할 수 없다.
판다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려 한다면 객관적인 시각이 꼭 필요하다. 판다의 습성을 보고 사람의 삶을 돌이켜본다든가, 판다를 보며 내 인생을 반성하는 것은 별로 과학적인 일이 아니다. 사람의 잣대로 판다의 습성을 함부로 판단하면 판다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판다라는 생명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거라면 어떨까?
판다는 이목을 끌고, 인기가 많은 동물이다. 왜일까? 사람들은 왜 판다를 좋아하고, 판다 구경하는 것을 좋아할까? 이 문제는 판다와 사람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판다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감상을 받느냐 하는 문제다.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는 판다의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풀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판다 정신은 대나무를 먹으며 어슬렁댈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삶의 태도다. 누군가와 싸워 이기겠다고 애쓰지 않고, 누구를 제압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또한 혼자 떨어져 있다고 기운이 쭉 빠지거나 구석에 처박혀 외로워하지 않는다. 나무를 오르내리고, 대나무를 이리저리 꺾어보면서 혼자서도 쉼 없이 세상을 살펴보고 느끼며, 세상과 교류한다.
사람들은 판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여유롭고 평화로우면서도 호기심 넘치는 동물이라고 여긴다. 그저 느릿느릿 움직일 뿐이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삶을 즐기는 태도를 보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판다는 싸움을 말린다
아기 판다 푸바오-귀여움이 세계를 구한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판다를 기르면서 새끼까지 태어난 사례는 드물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한 일이다. 게다가 2020년대 한국은 1990년대에 비해 동물을 좋아하는 문화가 훨씬 더 성장했다. 푸바오의 모습이 인기를 얻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푸바오의 활동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보기 좋은 영상으로 공유되었다. 그 덕분에 판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 수 있었다.
한국에 온 두 번째 판다는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문화적으로도 한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서 파고들었다. 단적인 예로,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공모했는데, 참여 건수가 2만 건이 넘을 정도였다. 이 숫자는 한국 최초의 독자 기술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이름을 지을 때 참여한 사람 숫자의 두 배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요즘 판다 외교에 대한 평가는 좀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 판다 외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중국 정보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은 그때처럼 여러 나라들과 처음 교류하는 ‘알 수 없는 신비의 나라가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가장 많은 나라와 교류하며 가장 많은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다. 따라서 예전과 같은 태도로 다른 나라에 판다를 보내지 않는다. 판다를 받아들이는 다른 나라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그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치 외교의 상황과 맞물려 판다가 고민거리가 되는 사건도 생기는 듯하다. 2023년 미국에서 판다 한 마리가 사망했다. 중국은 그 판다가 왜 사망했는지 중국에서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판다 사망 사건이 미국과 중국의 알력 싸움처럼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한발 물러서서 판다 외교의 처음 의미를 되돌아보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다가 각 나라를 오고 가기 시작한 이유는 어찌 됐든 서로 파괴하고 싸우고 대결하는 대신 친하게 지내는 게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의 죄악을 부르짖기보다는 내 귀여운 모습을 봐달라고 말하는 교류의 방향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판다 정신이라고 부를 만한 태도이다. 즉, 무기나 실력으로 상대를 위협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게 아니라, 매력과 친근함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판다들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외교관과 정치인이 갖가지 복잡한 계산과 수싸움, 전략과 계획으로 판다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정작 판다는 태평하게 비행기 안에서 죽순을 먹으며 ‘알게 뭐냐는 듯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려 보면, 나는 다툼과 화해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 위에 무엇인가 새로운 더 높은 경지를 판다가 얹어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판다는 살아남는다
1800과 80-동물원에서 판다를 보고 집으로 온 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은 반달곰 복원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다양하고 새로운 방안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2006년부터는 반달곰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중단하고, 기호와 숫자로만 반달곰을 표시하자고 결정했다. 반달곰이 사람과 친숙한 관계를 맺는 일을 최대한 차단하자는 목적이었다. 그전까지 ‘만복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반달곰은 이제 RM-02라는 관리번호로만 불렸다.
나는 이 사실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연보호가 얼마나 묘한 관계를 갖는지 좀더 깊이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아끼는 마음은 자연보호에 분명히 중요하다. 또한 동물로부터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이 사람에게 감성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생물다양성의 보존을 위해서 그런 마음과 감성을 어느 선에서 제약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2009년 2월말에야 한국의 반달곰 복원 산업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2005년에 자연으로 나간 반달곰들이 4년이 흐르는 동안 성장해 야생에서 새끼를 친 것이다. 연구원들은 곰들이 겨울잠을 자는 굴을 발견했고, 그곳에 마이크를 들이밀어 혹시 새끼 곰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새끼 곰이 젖을 달라고 보채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린 순간, 모든 연구원이 감격했을 것이다. 몇 년간 반복된 노력 끝에 반달곰이 지리산에 자리 잡고 꾸준히 야생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뜻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때부터는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의 곰들이 지리산을 자신의 터전으로 여기면서 자라나게 되었다.
이후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리산 야생에서 태어난 반달곰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지원과 투자가 꾸준히 이어지면 충실한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한국의 반달곰도 판다 못지않게 잘 보여주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뒤로 20여 년 동안 노력이 이어진 지금, 지리산에는 80마리에 가까운 반달곰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쓰촨성의 판다는 1800마리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귀중한 동물로 관리되며 큰 관심과 투자를 받고 있다. 지리산 반달곰은 80마리라는 숫자에서 이제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고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을 견주어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리고 1800과 80이라는 전혀 다른 숫자에 포함된 그 복잡한 사연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숫자의 차이만큼, 자연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고민할 점이 많은 문제임을 말하고 싶다. 기후변화에서 인구 감소까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변화가 낯선 만큼, 더 깊은 연구와 더 넓은 고려에,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 깊고 넓고 많은 생각이 환경을 위한 더 좋은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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