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빈자리를 메꾸는 방식은 다양하다. 먼저 떠난 사람의 복수를 대신하겠다고 마음먹기도 하고, 소중했던 만큼 기억 속에서 빨리 지우기도 하고, 악연이었던 사람을 끝까지 챙기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정답일 수 없지만 각자만의 해답을 찾는 여정을 로터스 택시가 함께한다. 끝내 택시는 손님의 장소만 옮겨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가진 삶의 방향까지도 바꿔준다. ‘로터스(lotus)’라는 이름답게 진흙에서 피는 연꽃처럼 죽음 위에 꽃핀 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이 책은 ‘유령이 타는 택시’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으로 기존의 힐링 판타지와는 다른 장르적 재미를 전달한다. 손님들의 비밀스러운 사연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들의 정체가 밝혀질 때 반전의 즐거움도 전한다. 고정된 장소가 아닌 이동 수단이 주는 공간의 매력도 상당하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과연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을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돈다.
소설은 손님들의 안타까운 사연에서 끝나지 않고 그 너머 따뜻함을 포착한다. 택시라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판타지는 손님들의 슬픔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틔워준다. 소설은 택시에서 내린 손님들의 가벼워진 발걸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물한다.
■ 저자 가토 겐
저자 가토 겐은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다.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중퇴했다. 현재 일본추리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산으로 사라진 여인들의 기록’으로 제4회 현대장편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모리오카의 사와야 서점이 주최하는 ‘사와야 베스트’에 ‘울며 부른 사람’이 1위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에 출판된 ‘아내의 유언’은 서점직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주요 작품으로 ‘뱀의 도행’, ‘와타누키 식당 이야기’, ‘히카게 여관으로 오세요’, ‘미안해’ 등이 있다. 서투르면서도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이야기로 세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로 알려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역자 양지윤
역자 양지윤은 우연히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매료되어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도 단골 동네 책방을 수시로 들락날락할 만큼 책과 책방을 좋아한다.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에세이 ‘사서의 일’을 썼으며, ‘앞으로의 책방 독본’, ‘빨강머리 앤이 가르쳐준 소중한 것’,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외모 대여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앞으로도 오래 책을 만지며 살아가고 싶다.
■ 차례
제1장 사나다
제2장 다도코로
제3장 오가와도 전통 과자점
제4장 기쓰 씨와 일행들
옮긴이의 말
주인의 복수를 위해 택시에 탄 고양이 손님, 남겨진 부모의 마음을 달래고 싶은 어린이 손님 등 유령 손님을 태운 택시를 통해 기묘하지만 애틋한 힐링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이끕니다.
로터스 택시에는 특별한 손님이 탑니다
사나다
사거리 신호등 옆에서 제 택시를 잡아 세운 손님은 자그마한 여자였어요. 잘 생각은 안 나는데 회색빛 여름용 니트에 하얀 바지 차림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아마도요.
좋았어, 오늘도 한 건 했네. 들뜬 마음으로 택시를 가까이 세웠는데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뿔싸, 낭패구나 싶었어요. 여자 뒤에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거든요. 그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거였죠.
“뭐 하는 짓이야, 난 택시 안 불렀는데.”
순간 깨달았죠. 어지간히 취했나 보네.
널찍한 번화가에 있는 S역에서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은 거리. 장소도 그렇거니와 이런 시간이니까요. 취객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질 나쁜 손님한테 걸린 느낌이었죠.
마지못해 문을 열었더니 여자가 남자를 향해 말했어요.
“타.”
“싫어!”
아저씨가 악을 썼어요.
“꺼져, 이 고양이 귀신아.”
고양이 귀신이라니. 아저씨, 표현 한번 기가 막히네.
무서운 눈의 여자는 등을 구부린 채 전투태세에 들어간 고양잇과의 동물처럼 보였거든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저씨는 뒷좌석으로 굴러 들어갔어요.
“A하라 역으로 가주세요.”
뒤이어 스르륵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했어요.
전철 선로를 따라 G대로 서쪽 길에서 동쪽 길을 향해 자동차는 씽씽 달려갔어요.
“주정뱅이는 질색이에요.”
여자는 쓰디쓴 것을 뱉어내 듯이 말했어요.
“술 같은 거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어요.”
“맞는 말씀이세요. 저도 술은 못하지만 삶이 따분하지는 않거든요.”
“볕을 쬐거나 낮잠을 잘 수 있다면 즐거움은 무한대예요.”
“손님, 아직 젊으신데도 취미가 소박하시네요.”
“젊지도 않아요. 상당히 나이를 먹었어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젊어 보이세요.”
“젊음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기적으로 한바탕 뛰어요.”
“한바탕 뛰신다고요?”
“충동적으로 집 안을 뛰어다녀요. 그뿐이에요.”
농담인가 싶었죠. 하지만 여자의 표정은 그야말로 진지했어요.
“그런데요, 그런 식으로 집 안을 한바탕 뛰어다니면 난장판이 되지 않나요?”
“맞아요. 책장 위에서는 책이 떨어지고 사이드테이블 위의 꽃병은 쓰러지죠. 마루에 놓인 각 휴지는 제 발차기로 찌그러지고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가족분이 말리시진 않나요?”
“제가 한바탕 뛰고 나면 사나다는 화를 내요.”
사나다. 이름이 아니라 성씨네.
성씨로 부르는 걸 보니 가족은 아니라는 소린데. 애인이나 친구인 건가. 이성일까, 동성일까. 물어봐도 되려나. 아냐, 쓸데없는 질문은 자제하고 지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편이 낫겠어.
“사나다는 늘 툴툴대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그럼요,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하지만 용서해줘요.”
여자가 살짝 웃고 있네?
“좋은 분이네요.”
“좋은 녀석이죠.”
I야 역을 지나치자 도로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바뀌었어요. 맞은편에서 대형트레일러가 굉음을 울리며 올라오더니 택시와 스쳐 지나갔어요. 순간 헤드라이트 불빛이 찌르듯이 택시 안을 비추었어요.
“요괴......”
여자가 중얼거렸어요.
“네?”
“자동차는 요괴와 닮았어요. 눈을 번쩍이며 캄캄한 밤을 거칠게 달려와 인간을 죽이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인간뿐만이 아니에요. 고양이도 죽이죠. 참혹해요.”
“종종 발견한답니다. 이 근처 도로에서 차에 치인 오리도 본 적 있어요.”
“거만한 인간들이야말로 요괴예요.”
여자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어요.
“난 옳아. 절대 틀리는 법이 없지. 실패는 다 네 탓이야. 난 아니라고. 네가 나빠. 난 옳으니까. 틀릴 리가 없어. 철부지 어린애처럼 우기는 꼴이라니. 이 바퀴벌레 같은 늙은이도 그런 인간 중 하나예요.”
여자는 단맛이 사라진 껌을 뱉어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이 공벌레 같은 늙은이도 가게에만 들어가면 태도가 고압적으로 바뀌어요. 남의 흠을 들춰내서 호들갑을 피우죠. 그러면서 자기 실수는 절대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 인간이에요.”
“직장에서는 어떤가요?”
“당연히 미운털이 박혔죠. 그나마 회사에선 아직 설 자리가 있으니까 할 일이 없어도 끈덕지게 남아 있다가 야근하는 척을 해요. 그래서 저녁은 회사에서 먹죠. 거의 메뉴는 편의점 주먹밥이나 카레 맛 컵라면이고.”
“집이나 회사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기분 전환하러 갈 생각은 안 하시나 봐요.”
“고작 고민했다는 게 이런 식으로 술에 취하는 거예요. 그러려고 매일 저녁 식비를 절약한다고도 할 수 있죠.”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원기를 보충한 뒤 밤마다 술집에 드나드는 거군요. 어떤 생활일지 알 만하네요. 어쨌든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니 다행이에요. 어떤 가게에 가시나요?”
“마마가 철부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에요.”
“보육원이요?”
“옛날식의 한물간 술집 있잖아요.”
“안성맞춤이네요.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받으시는.......”
“전혀요. 그 가게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라서 이제껏 몇 번이나 출입 금지 명령을 당했어요. 오늘 밤에도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쫓겨난 참이에요.”
네?
이야기 속 아저씨에 대해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으세요, 유리아 씨?
유리아 씨의 가게가 있는 곳은 M대로에서 구석으로 들어간 자그마한 외길 골목이니까, 아저씨와 여자 손님을 태운 사거리 편의점 바로 뒤쪽이네요.
떡 벌어진 체격에 키는 그리 크지 않고 흰머리가 섞였는데 머리숱이 살짝 적은 편이고 괄괄한 목소리에 술버릇이 나빠 보이는, 쉰 이상 일흔 이하쯤 되는 아저씨였어요.
그러셨군요, 유리아 씨가 일하는 가게의 단골이셨다니.
에비사와 씨라고요? 글쎄요, 이름까지는 여쭤보지 않았어요. 여자도 그 이름으로 아저씨를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계속 ‘장구벌레니 ‘꼽등이니 ‘구더기니 ‘바퀴벌레니 ‘기생충이니 ‘공벌레 따위로 불렀거든요. 직접 말을 걸 때도 ‘이봐라든가 ‘너라고 했어요.
유리아 씨한테도 미움받고 계셨네요, 에비사와 씨. 그렇겠죠. 가게 측으로부터 몇 번이나 출입 금지 명령을 당했다고 하셨으니.
저런, 가게 여직원한테도 거친 말을 내뱉거나 별거 아닌 일로 깐죽깐죽 불평이나 해댔군요. 그런데도 술에 취하면 기분 나쁘게 만지면서 작업을 거나 싶더니 계산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비싸다는 둥 사기라는 둥 돈을 못 내겠다는 둥 투덜거리곤 했단 말이죠.
왼편으로 돔구장의 지붕과 전구 장식으로 불을 밝힌 K 유원지의 제트코스터가 희뿌옇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전 비교적 말이 많은 편인데 형은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거의 말없이 살아왔어요. 그래서 엄마는 재미가 없었나 봐요. 여자애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말을 입에 달고 사세요. 여자끼리는 사이좋게 외출하거나 수다를 떨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잘 잤니? ‘오늘 뭐 할까? 같은 기운 넘치는 대화도 절로 나오겠죠. 아버지나 저나 형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어쨌든 인기척 정도가 최선이니까요.”
“사나다와 난 같은 여자끼리여도 아침 인사로 기운을 얻거나 하진 않아요. 아침 댓바람부터 ‘잘 잤어? 하늘이 무척 맑네! ‘우리 둘 다 컨디션 최고야! ‘그럼 밖으로 나갈까! 같은 경박한 인사가 가능하기나 해요?”
오호라, 사나다 씨가 여자였군.
“목청으로 그르렁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힐끗 시선을 교환하는 정도가 딱 적당하죠.”
제 귀를 의심했어요.
“우리 두 사람만큼의 애정이 없더라도 서로 그르렁 소리를 나누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이 징그러운 놈의 집에서는 그런 소리조차 없거든요.”
“가족 간에 인사도 안 하는 건가요?”
“서로 무시해버려요.”
“그렇군요.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술을 마시고 싶어질 만도 하겠어요.”
“그래서 그날 토요일 밤에도 회사 근처 가게로 향한 거예요.”
“출근하는 것처럼 일부러 전철을 타고 가게까지 가셨다고요?”
“전철을 탔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죠.”
번쩍. 여자의 눈이 백미러 속에서 번득이는 것 같았어요.
“이 지네 같은 놈은 차를 끌고 갔어요.”
“음주운전이잖아요.”
“맞아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음주운전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이 독나방 같은 녀석도 마찬가지예요. 음주운전을 반복해도 이제껏 무사고였죠.”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문 법이죠. 이대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인데 일이 터지고 나면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미 저질렀어요.”
“네?”
S바시 다리 사거리에서 저는 자동차를 멈췄어요.
“여기예요.”
백미러 속에서 여자가 제 눈을 똑바로 바라봤어요.
“여기에서 사고를 일으켰어요.”
신호등 아래의 가드레일 옆에 말라비틀어진 노란색과 보라색 국화 꽃다발이 놓여 있었어요. 여자의 말대로 인명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입간판도 있었어요.
[1월 21일, 심야에 발생한 뺑소니 사고의 목격자를 찾습니다.]
사거리를 건너자마자 아저씨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어요.
“여기가 어디야.”
“이제 막 S바시 다리를 지났지.”
“S바시 다리?”
아저씨가 눈을 떴어요. 아무래도 완전히 잠이 깬 것 같았어요.
“넌 누구지?”
“이 얼굴을 잊은 건가.”
아저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여자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어요.
“1월 21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크게 찢어진 입, 번뜩이는 눈동자.
“추운 날이었지. 새벽녘까지 비가 왔어. 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지. 날이 개서 다행이라며 사나다는 기뻐하는 눈치였어. 이제 창가에 볕이 충분히 비치겠네. 일광욕을 할 수 있겠다. 다행이야. 커튼을 열어두고 나갈게.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으렴. 그렇게 말하고 내 등을 쓰다듬었어. 난 겨울에 하는 일광욕을 유난히 좋아했지. 사나다는 그걸 알고 있었어. 나에 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었어.”
번뜩이는 눈동자가 아저씨를 날카롭게 노려봤어요.
“차라리 날이 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온종일 비가 왔어야 했어. 그랬다면 사나다가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A하라 역에서 집까지 걸어왔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야. 네놈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아저씨는 떨기 시작했어요.
“S바시 다리 사거리에서 넌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를 들이받았어. 사나다를 친 거지.”
아저씨가 목구멍을 쥐어짜듯이 비명을 질렀어요.
여자의 오른팔이 스르르 늘어나더니 아저씨의 목덜미를 움켜잡았어요.
“네가 차로 들이받아 엉망진창으로 부숴버린 사나다를 돌려놔.”
순간 좀 전에 지나쳤던, 도로 쪽으로 난 M바시 다리 근처의 경찰서가 떠올랐어요. 전 S대로를 우회하기로 했죠.
“내리세요!”
뒷좌석에서 아저씨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던 여자가 동작을 멈췄어요.
“아저씨, 당신 말이야.”
손님에 대한 배려 따위는 전혀 없었죠. 전 거칠게 내뱉었어요.
“저쪽 건물로 들어가서 본인이 뺑소니범이라고 자수해.”
“네놈도 죽고 싶은 거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낮고 굵은 목소리로 위협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엄청나게 무서웠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 짜냈죠.
“이딴 놈을 죽인다면 사나다 씨를 만날 수 없게 된다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여자가 힘을 빼는 게 느껴졌어요.
“가!”
택시에서 굴러떨어진 아저씨는 인도에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아저씨는 기어가듯 경찰서 입구로 들어갔어요. 저도 그 뒤를 쫓아갔죠.
아저씨가 술술 자백했기 때문에 제게는 꼬치꼬치 자초지종을 캐묻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래저래 시간을 빼앗기는 바람에 새벽 무렵이 다 되어서야 경찰서에서 나왔어요.
하늘은 짙푸른 색이었고 경찰서 위쪽이 어렴풋이 밝아 오고 있었어요. 여자가 택시 옆에 서서 무서운 눈초리로 기다리고 있었죠.
“죽이고 싶으셨을 텐데 훼방을 놔버렸네요. 그래도 저 녀석은 이것으로 죗값을 치를 거예요.”
“아무리 속죄한다 해도 사나다는 돌아오지 않아.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사나다 씨는 지금 천국에 있어요.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죠. 언젠가는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저 남자를 죽여버리면 천국에는 갈 수 없어요. 저 남자랑 똑같이 지옥에 떨어진다고요. 사나다 씨와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거죠.”
“사나다가 천국에 있다는 거지.”
여자의 시선이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럼요.”
“사나다가 보고 싶어.”
“진심으로 사나다 씨를 소중히 여기셨군요.”
“사랑받고 있었으니까. 나도.......”
그 사람, 네코마타가 저와 시선을 맞춘 건 처음이었어요.
“사랑했어.”
새벽녘의 푸르른 공기 속으로.
여자의 모습은 사라져갔어요.
여자가 서 있던 주변에 자그마한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어요.
회색과 검은색 줄무늬의 앙상한 고양이 사체. 돌아오지 않는 인간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고양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네코마타가 되어버린 고양이. 지금은 평범한 고양이로 되돌아와 기력이 다한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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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