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풀꽃처럼 우리 곁의 작고 여린 존재들을 노래해 온 시인, 나태주의 신작시집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가 출간되었다. 하루하루 있는 힘껏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온기 어린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2023년 5월부터 2024년 5월에 걸쳐 새롭게 써내려간 작품 178편을 담았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시인의 따뜻한 봄볕 같은 시선이 시집 곳곳에 녹아 있다.
■ 저자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출간한 후 『풀꽃』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고, 산문집 그림시집 동화집 등 150여 권을 출간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 「풀꽃」을 발표해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과 함께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소월시문학상,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부터는 공주에서 ‘나태주 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하며 풀꽃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 차례
서시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1부 안녕 안녕, 오늘아
하늘 쾌청/아침에 일어나/안녕 안녕, 오늘아/나의 꿈/변명/입안의 향내/달항아리 1/버킷 리스트 1 -지금이라도/버킷 리스트 2 -5분만/비밀/연정/아침 기도/화분 식물/다리에게 칭찬/돌멩이/호수/집이 가까워졌다/아픈 손가락/얼음새/저녁 어스름/마음의 의자 하나/하루하루/마지막 말/타이스의 명상곡/사람을 안는다는 것 -전진영 님/그 집 1/그 집 2/코미디/기지개/어쩌면 좋으냐/장마철/불면증/광야의 입/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생의 일/홍수/멈춰야 산다
그대 거기/그냥/감사해 고마워 -군남초등학교 7회 졸업생들을 만나/다쿠보쿠 씨여 안녕/지나가는 길 -허미정에게 1/사랑이란다 -허미정에게 2/서로가 강아지/그때 그곳에 -북해도 하코다테에서, 김미라 씨에게/욘니의 기차/연말 인사/우는 것도 힘이다/호칭/서풍/손도장 -날마다 우리는 이별하면서 산다/변신/엄마는 그런 사람/엄마의 축사/어린이날 -어린이날 축하드립니다/카톡 인사/큰 소리로 -윤효 시인에게/처음으로/하늘 인사/일보다 사람이/더러는/정신 좀 차려라/후회/눈감는 시간/교사들을 위하여/선물 -반경환 평론가/이별 -반경환 평론가/봄비/새벽잠 깨어/다시 새벽잠 깨어/지우지 못한다/반투명쯤/바람결에 전해요 -흰 구름 여사에게/총각 시절/너는 지금/숟가락/외할머니/날이 저물었나 보자/청유형으로 -정용숙 시인에게/축복 -문기찬 · 김영은 결혼에/말씀의 힘이라도 빌려서 -2024년 신년시
4부 그대는 시인
노래하고 숨는 새/일생/시인인 나에게/달밤/달항아리 2/어법/연애 감정/키스/흰 구름님에게/명예/말을 타고 꽃밭 가니 -박방영 화백 그림/당분간 1/당분간 2/문득/천일홍/책/시의 끝/100년 아버지/시인/동행/그래/카톡 안부/시인 생활/내 마음의 아버지/춘추/섭섭한 말씀/그대는 시인/포기/시의 어머니 -김남조 선생님 소천에/그러하듯이/100프로/중얼중얼/윤슬 앞 1/윤슬 앞 2/민들레 시학/소나무에 대한 감상/시에 필요한 것/젊은 시인에게/뚝/신은 등 뒤에 있다/거꾸로 사계/시인 기도/문학강연/어떤 시인에게/강연장에서/늙은 기도/고마운 일/마지막 꿈
시인의 말 -시 쓰기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태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줍니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시들이 큰 힘이 될 거예요.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물하는 책입니다.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서시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우리는 누구나 돌아가는 사람들
하루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부모님에게로 친구들에게로 돌아가고
끝내는 영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왔고
그들로부터 왔고
또 영원에서 왔고
우리 자신 영원이니까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낡은 침대와 밝은 불빛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편안한 불빛 속으로 나 돌아간다
안녕 안녕, 오늘아.
1부 안녕 안녕, 오늘아
다리에게 칭찬
오늘도 하루를 걸어서
다리가 부었다
오른쪽 다리를 따라 다니느라
왼쪽 다리가 더 부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부은 다리가 내리고
하루치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겠지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냐
이거야말로 지상의 행운
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다는 건
축복이고 감사다
어디를 걷든지 그것은
지구를 걷는다는 것
강가를 걷든 공원 길을 걷든
사람들 북적대는 시장 길을 걷든
그것은 지구의 등허리 맨살을
밟는다는 것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냐
거룩한 일이냐
오늘도 부은 다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했네
고마워 고마워 머리 조아려
다리에게 칭찬한다.
집이 가까워졌다
가자 집으로 가자
날 어둡고 다리 아프고
지쳤지만
서둘 일은 없다
그럴수록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가자
아쉬워할 일도 없다
그만큼이 최선이었고
그만큼이 한계였다
가자 집으로 가자
사막을 건너듯
힘들게 견뎌온 하루
그 모든 하루가
거의 바닥이 나고 있다
서둘 일은 없다
집이 보다 가까워졌다
어머니 기다리고 계시겠지
할머니도 그 옆에 계시겠지
어린 동생들 반겨주겠지.
멈춰야 산다
초록도 지치면 감옥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초록
산도 들도 개울도 초록
골짜기며 마을까지도
우북이 초록이 자라
앞을 가린 어둠, 아니면 절벽
아무리 좋은 노래도 끝까지 좋을 순 없고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끝까지 지치지 않을 순 없는 일
멈추어라 멈춰라
멈춰서 네 발밑을 살피고
숨결을 살펴야 산다
그래야 네가 살고 나도 산다.
2부 나, 왔어요 내가 왔어요
신호등 앞
교통 신호등이 열리고
신호등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출렁 쓸려나간다
바닷가에 물러나는
썰물 한가지다
이 많은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왜 이리 바쁘게 힘들게 한꺼번에
무너지는 물결일까?
과연 이들은 살아 있는 물고기들일까?
살아서 자기 힘으로 자기 뜻으로
힘차게 지느러미 움직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들일까?
아무래도 아닐 거라는 생각
나는 신호등이 다시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한다.
다행한 일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
너를 가슴에 안고 잘게
정말로 네가 옆에 있으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겠지만
네 생각 네 사랑
네 모습만 내 마음 거울에 남았으니
얼마든지 너를 안고
밤새도록 잘 수 있단다
그래서 또 다행한 일이야.
저녁이 온다는 것
예전엔 저녁이 오는 것을
저녁노을이나
달빛이나 별빛이
알려주었다
하늘의 빛을 따라
그리
멀리 멀리까지 가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의 불빛이
저녁이 오는 걸 알려준다
단독주택이든 아파트든
창문에 밝은 불이 켜지면
아 저기 저 불빛 아래
사람들이 있겠구나
하루의 고단한 일정을 접고
밥을 먹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이야기하거나
그러겠구나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충분히 따스해지고
내일을 다시 살 소망을 얻는다.
인생 회고
잘사는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인생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되는 것은 없는 것
무언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만 가능하다
나로서 우선은 자동차 갖기
좋은 집에서 살기
좋은 음식 먹기
좋은 옷 입기를 포기하고
남 앞에서 떵떵거리며 잘난 체하기 같은 것들도 포기
해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고요히 혼자 앉아서 구름 보며 생각하기
아내와 손잡고 동네 골목길 산책하기
종이에 연필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여름날 삼베옷 입고 모자 쓰고 큰 가방 메고 자전거
타고
공주 제민천 길 달리기
그늘이 그리운 날 루치아의 뜰 찻집에 들러 홍차 마시기
하다 햇빛이 그리운 날 눈썹달 찻집에 들러 커피 라떼 사서
마시기
가끔은 아이맘 사진관에 들러 사진 인화하기
공주 거리의 조그만 갤러리에 그림 구경하러 다니기
어렵게 얻은 자발적 고독
그렇게 사는 것만이 정말로 내가 잘 사는 인생이었다.
3부 바람결에 전해요지나가는 길 –허미정에게 1
봄날에
눈부신 봄날
개울가 외딴집
머리칼 빠글빠글
귀여운 아이야
이 봄에 지고 남은 꽃
내년에도 피고
그다음 해에도
또 핀다는 걸
의심하지 말아라
오늘 부는 싱그러운 바람
조곤조곤 정다운 물소리가
너를 좋은 나라로
데리고 가줄 것을 믿는다.
우는 것도 힘이다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다고?
세상이
왜 이러느냐고?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고?
그렇다면 울어라
소리 내어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어라
우는 것도 힘이고
능력이다
우는 힘으로 부디
씩씩하게 더 잘 살아라.
4부 그대는 시인
당분간 2
날씨 느닷없이 쌀쌀해지니
서둘러진다
무슨 일인가 해야만 할 것 같고
누군가 만나야 할 것만 같고
무슨 말인가를 또
해야만 할 것 같고
어디론지 정처 없이
떠나야 할 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지고 복작거린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서성이는 날이 좀
내게 있어도 좋겠다.
책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
아니, 첫마디 말 하나
단어 하나 쓰기가 어렵다
무어라 쓸까?
생각 끝에 인생이라고 써본다
그런 다음 기억,
그리고 나라고 써본다
그렇구나!
책은 내 인생의 기억을
쓰는 것이었구나.
춘추
점점 봄과 가을이 빨리
지나간다
머리를 잠깐 보였는가 하면
이내 꼬리를 보인다
아 그래서 옛 어른들도
당신들 나이를 봄과 가을
춘추라 불렀던 것일까
봄과 가을은 빨리 지나간다
그처럼 너희의 날들도
빨리 지나가리라.
포기
끝내 포기하지 못할 것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한다
그것이 나의 삶이었고 나의 일생
끝내 내가 포기하지 못한 것은
시 쓰는 일 시인으로의 삶
밤에 고요히 맑은 등불 아래
혼자 앉아
소리 내어 시를 읽고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위해
낮 시간 사람들을 덜 만나려 했고
격한 몸놀림을 피했으며
술과 음식을 과하게 먹는 것을
조심했다
나아가 집과 옷과 음식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자동차 타기도 포기했다
그것이 내 초라한 인생의 좌표
그렇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일은 역시
시 쓰는 일이고 시인이 되는 일
그래서 끝내 나는
가난한 시인 조그만 시인이기를 잘했다.
그러하듯이
아내가 입만 열면 버리겠다고
벼르는 내 낡은 양복저고리
연한 브라운 톤의 골덴 양복
여보 그러지 말아요
그 옷만 입으면 10년 전 20년 전
나를 찾은 것 같아 반갑고 기쁘고
눈물겹기까지 하답니다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더 낡아 입을 수 없을 때까지
입을 거예요
내 인생이 그러하고
당신 인생 또한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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