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동안 우리 곁에서 세상에 대한 ‘바라봄’을 시로 전해 온 나태주 시인, 이번에는 그가 시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버킷 리스트를 독자에게 전한다.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겪었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해 13년째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투병하며 첫날처럼 마지막 날을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단 걸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이며 죽음 역시 삶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 흔히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버킷 리스트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교수형을 집행할 때 쓰이기 시작했다는 가설이다. 목을 매단 죄수의 발 아래 놓인 뒤집어진 양동이(Bucket)를 발로 차 교수형을 집행한 데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태주는 우리에게 죽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작은 것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는 의미의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다정히 건넨다.
■ 저자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출간한 후 『풀꽃』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고, 산문집 그림시집 동화집 등 150여 권을 출간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 「풀꽃」을 발표해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과 함께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소월시문학상,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부터는 공주에서 ‘나태주 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하며 풀꽃문학상을 제정·시상하고 있다.
■ 역자 지연리
서양화와 조형 미술을 공부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시작으로 『북극허풍담』 등 다수의 서적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유리 갑옷』 『작은 것들을 위한 시:BTS 노래산문』 외 여러 도서에 그림을 그렸다. 저서로 『작고 아름다운 니체의 철학수업』 『작고 이름다운 아들러의 행복수업』 등이 있다. 2004년 정헌 메세나 청년 작가상, 2020년 눈높이 아동문학대전 그림책 대상을 수상했다.
50여 년 동안 삶의 깊은 통찰을 시로 표현해 온 나태주 시인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백합니다. 시인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놓쳤던 청춘의 발자국과 “첫 문장”을 다시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엮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과 통찰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다시금 삶의 본질을 되새기도록 이끌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
버킷 리스트 1 내가 세상에 나와 해 보지 못한 일
버킷 리스트 1 _ 지금이라도
너에게 사랑 받고 싶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너를
사랑하고 싶다.
버킷 리스트 2 _ 5분만
그래, 오래 오래
그래, 많이 많이
신록이 저렇게 숨 가쁘게
푸르러 오는데
빈 공원 벤치 위에서
시 1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텁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노랑
딸아이를 생각하며 꽃을 샀다
지금은 먼 곳에 있어
꽃을 받을 수 없는 그 아이
우리는 비탈길을 걸으면서
다리가 후들거렸지
딸아이 방에 꽃을 꽂아 본다
빈방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봄이다, 프리지아.
혼자서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라.
딸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너보다 더 예쁜 꽃을
본 일이 없단다.
시간
저녁
만남이 너무 짧고
꿈만 같아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단다
그래도 너는 나에게
봄을 허락하는 아이
그봄으로 하여
오늘 다시 내가
꽃을 피우기도 했단다.
버킷 리스트 2 내가 세상에 와서 가장 많이 해 본 일멈춰야 산다
초록도 지치면 감옥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초록
산도 들도 개울도 초록
골짜기며 마을까지도
우북이 초록이 자라
앞을 가린 어둠, 아니면 절벽
아무리 좋은 노래도 끝까지 좋을 순 없고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끝까지 지치지 않을 순 없는 일
멈추어라 멈춰라
멈춰서 네 발밑을 살피고
숨결을 살펴야 산다
그래야 네가 살고 나도 산다.
금학동 귀로
개구리 운다
청개구리 운다
집이 가까워졌나 보다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늘도 늦었나 보다
물소리 들린다
맑은 물소리 들린다
집 식구들 기다리겠다.
눈부신 세상
멀리서 보면 때로 세상은
조그맣고 사랑스럽다
따뜻하기까지 하다
나는 손을 들어
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자다가 깨어난 아이처럼
세상은 배시시 눈을 뜨고
나를 향해 웃음 지어 보인다
세상도 눈이 부신가 보다.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혼자 있는 날
아침에도 너를 생각하고
저녁에도 너를 생각하고
한낮에도 너를 생각한다
보이는 것마다 너의 모습
들리는 것마다 너의 목소리
너, 지금
어디 있느냐?
행복 1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우리들의 푸른 지구 3
너의 목소리 출렁
하늘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너의 웃음 고웁게
지구의 마음에 무늬를 만들고
너의 기도 두 손을 모아서
우주의 심장에 붉은 등불을 밝힌다.
버킷 리스트 3 내가 세상에 나와 꼭 해 보고 싶은 일
눈감는 시간
아들아
소리 내어 울지 마라
울 힘이 있거든
그 힘으로 용서해라
그리고 너 자신 편안해져라
그것이 비로소 평화이고
사랑이고
인생의 완성이란다.
초등학교 선생님
아이들 몽당연필이나
깎아 주면서
아이들 철없는 인사나 받아 가면서
한 세상 억울한 생각도 없이
살다 갈 수만 있다면
시골 아이들 손톱이나 깎아 주면서
때 묻고 흙 묻은 발이나
씻어 주면서 그렇게
살다 갈 수만 있다면.
한밤중에
한밤중에
까닭없이
잠이 깨었다
우연히 방안의
화분에 눈길이 갔다
바짝 말라 있는 화분
어, 너였구나
네가 목이 말라 나를
깨웠구나.
완성
집에 밥이 있어도 나는
아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사람
내가 데려다 주지 않으면 아내는
서울 딸네 집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면서
반편이 인간으로 완성되고 말았다.
맑은 날
오늘 날이 맑아서
네가 올 줄 알았다
어려서 외갓집에 찾아가면
외할머니 오두막집 문 열고
나오시면서 하시던 말씀
오늘은 멀리서 찾아온
젊고도 어여쁜 너에게
되풀이 그 말을 들려준다
오늘 날이 맑아서
네가 올 줄 알았다.
나이
아이가 아이를 보면
몇 살이냐고 묻고
할머니도 아이를 만나면
몇 살이냐 묻는다
아이는 제 나이와
같은가 알아보려고 그러고
할머니는 손자 나이와
다른가 알아보려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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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