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받는 일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심리 상담가의 관점에서 나를 돌보고,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인간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은 이유
행복의 조건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자녀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면서 돈으로 부모 노릇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성과 위주로 판단하는 사람들, 자신의 유능함과 경제력을 무기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 자신의 사회적 위치로 가정에서도 특권과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들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병든 배우자와 아이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깨닫습니다. 인간관계는 지능, 재능, 그리고 성취와는 또 다른 것이라는 것을요.
그럼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행복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무려 85년 동안 장기 추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이 연구에 따르면, 흔히 돈, 명예, 건강,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예측하지만, 예상과 달리 중장년 이후로 갈수록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는 사회적 관계망과 관계의 질이라고 합니다. 주변에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지, 그들과 얼마나 소통을 잘하며 사는지가 행복한 인생의 중요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 tion)에서 정의하는 정신건강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정신건강이란 일상에서 무리 없이 다음 세 가지가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생산적인 활동(직장생활, 학교생활, 육아 등)
변화 또는 건강한 어려움에 대한 적응력
인간관계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험 신호입니다. 하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일상이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생산적인 활동, 즉 학교나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달립니다. 하지만 마음 터놓을 사람이 없거나, 변화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면 심리적으로 그리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바라본다면 그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의외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행복할 것 같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안정된 인간관계와 스트레스 조절능력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서 자신을 다시 회복시키는 탄력성(resilience)을 구성하는 한 축이 대인 관계 능력, 즉 개인의 사회성과 정서 지능(EQ)입니다. 여기서 정서 지능은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존 메이어(John Mayer)와 피터 샐러비(Peter Salovey)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하버드대학교 교수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에 의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정서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그 능력을 높일 수 있는데, 다음 네 가지 주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기조절
사회적 인식
자기 인식
관계 관리
정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자기 객관화를 잘하기(자기 인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립니다(자기 조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잘 읽어 내야 타인의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 즉 공감 능력(사회 인식)이 발달합니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나 갈등을 적절히 조절(관계 관리)하며 다룰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인 문제 또는 갈등을 겪는다면 단순히 관계 내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위의 네 가지 정서적 상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기 사랑과 자기 존중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당신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이며, 당신은 당신일 뿐입니다.
어쩌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다면 참 멋진 일이겠죠.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게슈탈트 기도문, 프리츠 펄스(Fritz Perls), 게슈탈트 심리 이론 창시자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먼 오지에 있는 낯선 이가 아닙니다. 가족, 연인, 직장 동료, 친구 등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살아가야 하는, 가까운 사이인 사람들이죠. 우리는 그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인정을 받고 싶고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 또한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사람마다 원하고 바라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기준과 기대를 채워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고, 또 세상엔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대를 채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의 기준과 인정으로 내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집니다.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세상과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타인의 인정에 한없이 기뻤다가 사랑받지 못한다 느끼면 갑자기 비참해집니다. 나의 에너지와 관심을 타인에게만 집중하기에 늘 지치고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이런 정성을 몰라줄 때가 더 많지요.
전작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에서 밝혔듯이 저는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습니다. 오랜 세월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던 이유도 아버지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고, 자식을 위해 자존심도 굽힐 줄 알고, 돈이나 명예보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바랐던 것입니다. 제가 동네방네 자랑할 수 있는,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딸이 되기를 기대한 아버지처럼 저도 기대가 있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았기에 갈등이 반복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거절이나 미움을 받으면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면 자기 자신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비교, 시기심, 열등감으로 마음고생을 하게 되고, 결국은 관계도 더욱 어려워지지요.
인간관계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관계나 환경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유 없이 사랑을 받기도, 이유 없이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성격적 결함이나 정서적 결핍이 극심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은 이런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킵니다. 항구에 든든히 묶여 있는 배처럼 풍랑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절대로 떠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바람직한 선택과 행동을 하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되 연연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해 줄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나와 먼저 친해지기
나를 알아 가기
자기 객관화: 나를 천천히 관찰해 보기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자주 나오는 질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혈액형과 MBTI에 관심이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듯싶습니다. 혈액형이나 MBTI 성격검사가 유행하는 것도 자신과 타인을 쉽게 알고 싶은 마음이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답게 몇 가지 질문만으로 간단하고 쉽게 나와 타인을 파악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이런 성격검사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아는 방법은 스스로를 잘 관찰하는 것입니다. 명상의 기본도 자신의 신체와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타인을 바라보듯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행동이나 생각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나의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관찰이란 나의 생각이나 예측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행동,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고 공을 좋아하는 아이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관찰이 아닙니다. 관찰은 생각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가 공을 발로 찬다 웃는다 공을 따라 뛴다라고 보이는 대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림은 관찰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흔히 그림 실력은 손재주라고 생각하지만, 그림은 눈으로 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회색으로 보는 그림자 안에도 사실은 차가운 회색과 따뜻한 회색이 있습니다. 이처럼 관찰을 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운동, 악기 연주, 글쓰기, 댄스 등 일상에서 예술적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관찰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집만 보고, 임산부는 아이들과 유모차를 봅니다. 이렇듯 개인의 상황, 관심사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남아프리카의 바다를 헤엄치던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Craig Foster)는 바닷속에서 만난 작은 문어를 1년 동안 관찰하며 특별한 관계를 맺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문어에 전혀 관심 없었던 사람들도 이 다큐를 보면 문어 가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일 주인공이 다이빙을 하며 관찰한 카메라 속 문어는 우리의 상상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영특하고 용감해서 저절로 응원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도 그런 문어를 보면서 삶의 활력을 다시 찾고 일상을 회복합니다. 이것이 관찰과 관심의 힘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찬찬히 관찰하고, 습관적으로 하던 생각과 행동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왜 그런 생각과 언행을 했는지 고민해 보기 바랍니다. 아마도 스스로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관심을 주거나 사랑해 주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관찰을 하다 보면 자신 안에 숨겨진 사랑스러움이나 기특한 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잘 돌봐 주기
뇌가 건강해야 내가 행복하다
십여 년 전에 셋째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심하게 짜증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남편은 최선을 다해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남편이 저를 챙기고 도와주어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면량, 밥 먹을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세 아이 육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에겐 남편의 다정한 말보다는 수면과 건강한 식단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신체적으로도 지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체 건강을 방치하면서 멘털은 굳건하길 바라는 것은 한쪽 바퀴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은 하나입니다. 마음이 건강해지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뇌를 병들게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불규칙적인 수면, 운동 부족,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 게임 등 이 모든 습관은 건강을 망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게 됩니다. 이런 쾌락에 중독된 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지겹다 못해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게 되지요. 이런 관계가 오래 유지되면 자연스럽게 사이는 나빠집니다. 내가 건강해야 타인과도 건강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뇌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건강해지려는 의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면
우리에게 잠은 생존의 필수조건입니다. 잠을 자는 동안 체력을 회복하고, 피로와 스트레스도 감소합니다. 수면의 질은 집중력, 기억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낮에 집중력과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싶다면 반드시 숙면이 필요합니다.
우리 뇌가 충분히 수면하지 못하면 감정을 진정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예민해집니다. 수면 부족이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감정 조절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에서는 숙면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1. 낮에 적정한 자연광을 받는다.
2. 일주일에 5일은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3. 식사는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
4. 자기 전 커피, 담배, 술, 폭식은 피한다.
5. 자기 전 긴장을 완화하는 루틴을 만든다.
6. 잠들기 좋은 환경(1시간 전 미디어 시청 금지, 집의 적정 온도 유지 등)을 조성한다.
이렇게 평소 습관을 잘 관리해 뇌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숙면해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
몸이 피곤하거나 병이 들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비관적인 성격으로 바뀝니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이해하는 여유도 사라지지요. 사랑하는 자녀, 연인이나 친구가 옆에 있어도 그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병들지 않게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적절한 운동은 숙면과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운동을 하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기분전환이 되고, 전두엽이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할 때 생각보다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몸을 움직여 숨이 차기 시작하면 잡념이 떠오르지 않지요. 헬스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이 아니더라도 책상 정리, 청소, 산책 등 몸을 더 자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눈에 드러나는 확실한 보상과 효과가 있는 운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습니다. 날씬한 몸과 튼튼한 체력도 덤으로 얻지요. 몸과 마음의 건강이 좋아지니 인간관계도 더 건강해집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면 어떤 관계도 좋아질 수 없습니다. 요즘 유독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고민이 있다면 나의 건강을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따로 또 함께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
우린 사실 모두 연결되고 싶다
친밀한 관계는 나를 성장하게 한다
살다 보면 내 자신조차 나를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기회조차 없을 때가 있고, 또 힘들게 주어진 기회를 스스로 망쳐 버릴 때도 있지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응원하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면 어떨까요? 저는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뒤 30대 후반에 나름의 꿈을 가지고 미국 심리 상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야심 찬 포부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현실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고, 매일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더듬더듬 발표를 하고, 남들보다 두세 배 이상 시간을 들여 과제와 논문을 해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제 학업 때문에 방치된 세 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당시 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제 공부를 응원하고 도와주었 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저를 믿고 도와주는 듯했지요.
시부모님과 남편은 제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함께 공부하던 미국인 친구는 발표 연습과 과제, 논문 편집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도움이 고마워 저도 꾸역꾸역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공부를 포기했다면 심리 상담가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책을 쓰는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장이었습니다.
인간관계는 늘 내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이들에게서 심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처를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혼자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찾는 것도,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어렵고 힘든 일을 할 때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도전보다는 안전한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홀로 책임지며 사는 사람에게 한 번의 실패는 곧 회복 불가능한 패배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와 양육자들의 헌신으로 성장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계속 성장합니다.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기꺼이 손을 잡아 주고 기댈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 덕분에 꿈을 이루고 앞으로 나아가지요.
이렇듯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붙들어 주며 함께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정신건강과 내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젊고 오래 살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오지 탐험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댄 뷰트너(Dan Buettner)의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Live to 100: The Secrets of Blue Zones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전 세계의 장수촌, 즉 블루존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블루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족이나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입니다.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먹고, 함께 일상을 보내는 든든한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와주고 또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청년과 중장년층의 고독사 비율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타인과 손쉽게 교류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오히려 모든 관계가 단절된 채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이야기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처럼 건강한 인간관계와 신체, 심리 건강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규칙적으로 만나는 친구,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서로의 건강을 챙겨 주고 주기적으로 안부를 물으며 도움을 주고받지요. 이렇게 서로 간의 책임과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관계가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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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