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지은이 : 패트리샤 박 (지은이), 신혜연 (옮긴이)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4년 09월




  • 한국계 아르헨티나계 미국인인 고등학생 알레한드라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퀸스에서 느끼는 소속감의 부재와 인종차별,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갈등을 겪습니다. 소설은 알레한드라의 일상과 그녀가 겪는 고난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루며, 친구 로럴과의 관계를 통해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나의 배경 이야기

    내 이름은 알레한드라 김(Alejandra Kim). 선생님들은 늘 출석부에서 잘못 적힌 글자라도 발견한 것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어김없이 내 얼굴과 출석부를 번갈아 쳐다보느라 바쁘다. 지극히 한국적인 내 얼굴이 지극히 스페인적인 내 이름과 잘 연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하루 여덟 번, 여덟 명의 선생님과 겪는다고 생각해 보라. 어이쿠! 이게 바로 퀘이커 오츠(Quaker Oats)에서의 내 일상이다.


    사실 스페인에서 알레한드라라는 이름은 미국의 제시카만큼이나 흔하다.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에르메네힐다(Hermenegilda)나 소치틀(xochitl) 같은 흔치 않은 이름을 지어 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이름을 난도질할 수많은 방법을 기어이 찾아낸다. 예를 들면 다음처럼 말이다.


    1. 앨리 - 존 – 드러(Alley-JOHN-druh)

    대학 입시를 지도하는 랜디바도 선생님은 스페인어 기초조차 배운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2. 알렉산드라(Alexandra)

    2학년 때 미국 역사를 가르쳤던 슈워츠 선생님은 어이없게도 내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꿔 버렸다. 마치 오래전 앨리스 아일랜드 이민국 심사관처럼 말이다.


    3. 아-레 - 하아아아아안 – 두라(Ah-leh-CHHHHHAN-durah!)

    3학년 때 물리 선생님이었던 샌더스 선생님의 발음이다. 엄밀히 따지면 맞는 발음이기는 하다. 세 번째 음절을 하누카(Chanukah)를 말할 때처럼 하라고 발음했으니까(하누카에 k가 한 개였나, 두 개였나? 어쨌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거라고 믿는다).


    참고로 나는 내 이름을 그냥 "아-레이-한-드라"라고 발음한다. 사람들한테는 보통 "앨라이(Ally)"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나는 그냥 쉽게 미국식으로 "앨리(Alley)"라고 소개한다.


    아빠는 늘 나를 "알레하-야(Alela-ya)"라고 불렀다. 만일 내가 도미니카인이나 푸에르토리코인, 콜롬비아인이나 멕시코인이었다면 적어도 뉴욕에서 미 헨떼(Mi gente), 즉 동족을 만나 어느 정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인종 차별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이곳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이 많지 않다. 부모님의 부모님들도 모두 원래 북아메리카를 목표로 삼았다가 남아메리카로 휩쓸려가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였다.


    처음에 그들은 농지 경작과 거주를 위해 파타고니아로 보내졌지만 그 땅은 사실상 황량한 사막이었다. 기대와 다름을 깨달은 한국인 이민자들은 도망치듯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백구라는 빈민가 판자촌에 정착해 온종일 옷 꿰매는 일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유지했다.


    부유한 나라에서나 문제시되는, 주문한 감자튀김에 케첩이 빠졌다든가 하는 일로 화가 날 때마다 나는 잠깐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한다. 아빠는 빈민가에서 자랐고, 친부모에 의해 아동 노동을 강요받으며 노동력 착취의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는 사실을.


    이민자의 자녀라면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평생 엄청난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어쨌든, 엄마와 아빠는 백구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원래 아는 사이였다가 성인이 된 후 이곳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이야기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역사책 하나를 쓰고도 남는다고.



    퀘이커 오츠

    어쨌든, 여름 방학이 끝나고 퀘이커 오츠에서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그 첫날이다. 모두 4학년(대체로 미국 고등학교 과정은 4년 과정이다) 선택 과목인 창의적 글쓰기 수업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 뭐가 됐든, 나는 그냥 그렇다. 토프(Taupe,회갈색) 수업 시간에 선택 과목을 하나 들어야 해서 이 과목을 듣는 것뿐이었다. 퀘이커 오츠는 수업 시간표를 숫자 대신 색으로 구분한다. 숫자에 따라 위계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모토, 즉 "우리는 모든 유형의 학습자에게 특권을 부여한다"에 따른 것이다.


    퀘이커 오츠는 학생들에게 선택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한다. 대개 부수입을 얻으려는 컬럼비아대나 뉴욕대 겸임 교수들이다. 소문으로는 우리 학교 강의료가 후하기도 하고, 그들이 워낙 박봉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모두 교실에 앉아 선택 과목 강사,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Jonathan Brooks James)라는 소설가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중이다.


    그때 클레어가 내 책상에 몸을 기대며 말을 걸어 왔다. "세상에, 《비커밍 브루클린(Becoming Brooklyn)》, 그거 정말 완벽한 작품인데. 그 작가가 강사라니, 우리 진짜 운 좋다." 그러고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덧붙였다. "아, 맞다, 앨리. 너는 독서랑 거리가 멀지."


    퀘이커 오츠에서는 다들 "따로 몰두하는 일(Thing)" 하나씩은 갖고 있다. 클레어 데브로는 우리 학교 문예지 <앙뉘(Ennui)>의 편집장이다. 로럴에게는 사회적 활동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녀는 차세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 미국의 대법관으로 양성 평등과 소수자를 위한 판결을 이끌었다를 꿈꾸고 있다.


    심지어 잭슨 하이츠에 사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 빌리 디아즈조차도 그런 "일"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쓰레기처럼 굴지 못 하게 막는 것"이다. 추측하건대 세상을 조금 덜 형편없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 같다.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그저 그런 게 있는 척할 뿐이다. 무슨 말이냐면, 보통 나는 로럴의 일을 돕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사람들이 관심 있는 척하지만, 곧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수많은 전단을 만들며 보냈다.


    클레어가 교실 앞쪽을 보며 소리쳤다. "세상에, 정말 그 사람이잖아!" 진짜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는 꼭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 같은 모습이었다. 딱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다운 생김새였다. 맨발에 로퍼까지, 그냥 봐도 프레피(Preppy)였다.


    "공책이랑 펜 꺼내세요." 그가 말했다. 인사나 자기소개, 수업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 같은 건 없었다.


    다들 급히 노트북을 꺼냈다.


    "누구든 전자 기기를 꺼내면 자동 낙제 처리합니다."


    클레어는 유감스러운 듯 노트북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책상 위에 이미 종이와 펜이 준비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었다. 사촌인 마이클 오빠한테 물려받은 노트북이 있긴 했지만, 매일 지하철에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투박한 데다 배터리도 채 5분을 넘기지 못하는 고물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조너선 제임스 브룩스가 말했다. "빈 종이를 두려워하면 안 돼요. 20분 동안 자유롭게 써 보세요. 대신 나의 여름 방학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헛소리 같은 건 당연히 안 되니까, 써도 되냐고 묻지도 마세요."


    다행이었다. 그랬다간 방학 내내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윤아 고모와 개리 고모부의 세탁소에서 일한 이야기나 써야 했을 것이다. 윤아 고모는 아빠의 누나다. 나는 수업료에 보태고 그 외에 책값과 현장 학습비 등을 내기 위해 고모네 세탁소에서 일했다. 일하는 동안 나는 학교 친구들과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거의 매일 신께 기도했다.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가 낡아 빠진 가죽 가방에서 무언가 적힌 종이를 한 뭉치 꺼내더니 크게 X표를 치면서 한숨을 쉬었다. 양말을 신지 않은 그의 맨발이 로퍼 안에서 질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20분이 지났다. 마침내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K로 시작되는 이름이 불릴 순서가 되자 가슴이 조이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출석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말을 멈췄다. 오, 그럼 그렇지. 올 것이 또 왔구나. 나는 이 순간을 빨리 넘기고 싶어서 재빨리 손을 들었다.


    하지만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는 내 이름은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다문화로 접근하면 대학 가는 데는 아무 문제 없겠네." 그것도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이다. 이런, 아닐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아니, 잠깐. 아닌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말투가 어찌나 힙스터답게 즉흥적이고 냉소적이고 퉁명스러운지, 웃지 않으면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같이 웃고 말았다.


    뭐, 별일 아니었다. 시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가고,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며, 마약성 진통제 문제로 온 나라가 난리인 마당에, 이런 바보 같은 공격성 발언이 뭐 그리 대수라고.


    게다가 같이 웃어 버렸으니, 괜찮다고 인정해 버린 셈이었다. 교실 전체가 킥킥거릴 뿐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서지 않았다. 차라리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가 예전의 다른 선생님들처럼 엉터리로라도 내 이름을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크래프트 치즈와 원더 식빵

    로럴이 도시락을 열었다. "오늘은 뭐야?" 내가 물었다. 로럴, 아니, 로럴네 도우미 아줌마는 항상 유리 용기에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그걸 작은 보온 가방에 담아 매일 열차로 실어 나른다. 오늘은 구운 흑마늘 후무스를 곁들인 퀴노아에 디저트는 금귤 세 알과 발로나(Valrhona) 다크 초콜릿 두 조각이었다. 로럴은 그물망으로 된 주머니에 셀러리 스틱을 간식으로 갖고 다녔는데, 솔직히 환기 안 된 지하철 냄새가 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로럴에게 내 도시락을 보여 주었다. 오스카 마이어(Oscar Mayer) 햄에 크래프트 아메리칸(Kraft American) 치즈 가공품을 얹어 랩으로 대충 싼 질척한 화이트 브레드와 우츠(Utz) 포테이토 칩이다. 내 점심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겉면에 적힌 초라한 흰색 비닐봉지 안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져갈 점심을 직접 준비한다. 전에는 아빠가 만들어 주곤 했었지만.


    이곳 아이들이 점심으로 무얼 먹는지 보면 많은 걸 알 수 있다. 테니스부 주장 마야 창은 녹즙과 콜리플라워 라이스를 번갈아 먹는다. 조시 벅은 맥도널드를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는 기이한 시도"라고 깎아내리면서도 정작 빅맥에 푹 빠져 있다. 그러면서 우긴다. 그건 전혀 기이하지 않으며 진짜 사랑이라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파머 그래닛 운영자를 엄마로 둔 첼시 브래번은 엄마가 매일 소꼬리찜이나 오리 콩피(Confit, 오리나 거위 고기를 오랫동안 기름에 절여 만드는 프랑스 요리) 같은 남은 음식을 싸 준다고 불평이다(이건 확실히 부유한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고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초미적분학 시간에 첼시의 도시락이 가방 안에서 엎어지는 바람에 교실 안에 냄새가 진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은 그녀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트리니다드 출신 도우미가 준비한 철저한 채식 도시락을 먹는 로럴, 마트 표 원더(Wonder) 식빵에 크래프트(Kraft)치즈를 얹어 먹는 내가 있다.


    퀘이커 오츠에서는 무엇을 먹느냐가 곧 자신이었다.



    잭슨 하이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로럴과 함께 지하철 F선을 타러 이스트 브로드웨이역까지 걸어갔다. "왜 이쪽으로 가?" 로럴이 물었다. "보통은 6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거나 5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하지만 반대쪽이 더 빠른데. 기억 안 나? 2학년 때 시간 재 봤던 거."


    로럴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나한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는 걸.


    "7호선이 지금 보수 공사 중이거든."


    거짓말을 했더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로럴이 부르기 전에 발길을 재촉해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우리의 열차 선로는 말 그대로 여기에서 갈라진다. 로럴은 F선을 타고 시내인 브루클린으로, 나는 시 외곽인 퀸스로 간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방향 차이, 그 이상이다. 마치 삶의 갈림길 같달까. 여기서 우리는 퀘이커 오츠가 우릴 하나로 묶기 전 각자 속했던 세계로 돌아간다.


    로럴은, F선을 타고 가다가 7번가에서 내려 우거진 가로수 길과 아름답게 복원된 유서 깊은 브라운스톤 건물들을 지나 농장 직거래 유기농 레스토랑과 바로 깎은 양털로 만든 옷을 400달러에 파는 고급의류 부티크를 지난다. 그곳 의 흑인 보모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보다 비싼 유아차에 백인 아기들을 태우고 다닌다.


    나는 시 외곽으로 향하는 F선을 타고 다른 승객들과 함께 헤럴드 스퀘어와 브라이언트 파크, 록펠러 센터를 지난다. 퀸스를 향해 동쪽으로 갈수록 열차 안 승객들의 피부색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바뀐다. 맨해튼을 벗어날 즈음이면 백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열차는 지하에서 동쪽으로 가고 있다. 7호선 지상 구간에서는 앞쪽으로 이스트강이 보인다. 퍽 감동적인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뉴욕의 진짜 풍경이 아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 높이 솟은 미드타운의 스카이라인은 모두 뒤에 있으니까.


    45분 후, 나는 마침내 74번가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오자 편안하면서도 두려운, 익숙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익숙한 곳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몸에서 긴장이 풀린다. 나는 똑같은 모양으로 줄지어 자리한 적갈색(빌리의 표현에 따르면 "똥색") 벽돌 아파트 건물들을 지난다. 이 건물 중 하나가 우리 집이다. 삐걱거리는 금속제 로비 문을 열자마자 고추며 카레, 생선튀김, 간장 등 온갖 요리 냄새가 훅 끼쳐 온다. 끈적거리는 베이지색 엘리베이터는 여기저기 벗겨져 지저분하다. 묵은 칠을 다 긁어내고 새로 칠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도, 건물 관리인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계속해서 묵은 칠 위에 새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 댄다. 2B호. 우리 집이다. 나는 현관 잠금장치에 열쇠를 꽂는다. 아빠는 늘 자물쇠에 녹 방지제를 발라 두곤 했었다. 지금 그 방지제는 통째 싱크대 수납장 안에서 녹슬고 있다. 가슴이 조여 온다. 집 안에는 거대한 검정 가죽 소파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윤아 고모가 내게 물려준 소파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엄마와 밤새 싸운 후 종일 기대 자곤 했던 낡은 가죽 쿠션에는 지금도 움푹 팬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아빠가 여전히 이곳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빠는 없다. 아빠는 여덟 달 전 7호선 선로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진솔한 대화

    집에 와 보니 엄마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뜯어보지도 않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청구서가 다 뜯어진 채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는 손에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알레하-야, 할 얘기가 있어. 중요한 거야."


    엄마는 나를 알레하- 야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아빠만 그렇게 불렀었다.


    "이미 와이더에 가기로 마음먹은 거 알아."

    "엄마, 난......"

    "내 말 더 들어 봐. 대학 가려고 학자금 대출까지 알아볼

    필요 없어. 자, 받아!"


    엄마가 내게 봉투를 밀었다. 열어 보니,코퍼럴 생명 보험 회사에서 지급한 30만 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내 앞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수표를 내려다봤다. "이해가 안 가네."


    "네 아빠가 생명 보험에 가입해 뒀나 봐." 엄마가 설명했다. "네 아빠는 뭐든 비밀리에 했어. 요 노 테니아 니 이데아(Yo no tenia ni idea, 난 전혀 몰랐어)." 엄마는 턱 밑에서 손등을 튕겨 자신이 몰랐음을 강조했다.


    나도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닿았지만, 지금까지 식탁만 차지할 뿐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던 그 모든 우편물을 떠올렸다. 끝없이 밀려드는 슬픔처럼, 작은 둔덕만 하던 우편물 더미는 언덕이, 그리고 그 언덕은 산이 되어버렸다.


    엄마와 나는 그 아래,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사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수표 받아, 에일." 엄마가 말했다. "이걸로 가고 싶은 대학에 가. 그리고 무엇을 하든, 네 아빠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해. 아빠가 널 보면 정말 자랑스러워할 거야, 우리 딸. 넌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이 수표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랜디바도 선생님이 뭐라고 했더라? 연간 학비 지불 능력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 보험금이 거기에 포함된 게 틀림없었다.


    갑자기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빠가 내 대학 진학 때문에 일부러?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 내가 입을 열었다. "작년에 아빠한테, 대학 탐방 가는 것 때문에......"


    엄마가 내 낯빛이 어두워지는 걸 봤다. "쉿, 미 아모르(Mi amor, 내 사랑), 아니야, 아니야. 말 안 해도 돼." 엄마가 급히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 되돌리고 싶어, 엄마!" 나는 소리쳤다. "아빠한테 미안하단 말도 못 했단 말이야."

    "그건 아무 상관 없어. 네가...... 아빠한테 무슨 말을 했든. 내가 장담해."


    엄마가 분홍빛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 수표가 네 아빠를 대신해 줄 순 없겠지. 능카Nunca(절대). 후안은 우리한테 돌아오지 않을 거고, 우린 그걸 받아들여야 해. 후안은 우리가 과거에 갇혀 살길 원하지 않을 거야. 미래를 보며 살길 원하지."


    꿈을 크게 가지렴, 알레하-야. 나는 아빠의 말을 늘 품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와이더에 가는 걸 원치 않았잖아." 내가 말했다. "내가 큰 실수하는 거라면서."

    "난 네가 멀리 가는 게 싫었어. 푼토Punto(그게 다야)." 엄마가 말했다. "널 볼 수 없을 거고, 잘 지내는지 확인도 할 수 없을 거고."


    "그런데 왜 마음이 바뀐 거야?"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네 고모랑 얘기한 게 도움이 된 건지도 모르지." 엄마가 인정했다.


    "윤아 고모?" 나는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엄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침이 되면 고모한테 전화해서 잊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기로 다짐했다. 엄마가 물을 끓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살펴봤다. 잭슨 하이츠 주거 서비스에서 보낸, 매입 수수료 체계를 알리는 서류였다.



    협동조합 형태로 바뀐다던 빌리의 말이 맞았다. 너도 걔네하고 똑같아. 빌리의 말이 머릿속에서 크게 메아리쳤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더 크게 맞받아쳤다. 꼭 그렇진 않아.


    엄마가 차를 가져왔다. "이 우편물은 뭐야?" 내가 물었다. "네가 걱정할 건 아니야." 엄마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난 네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엄마."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행복했어?"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잖아. 윤아 고모가 장례식장에서 엄마한테 했던 말이다.


    엄마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엄마가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드디어 솔직히 털어놓을 순간이 왔다고 느끼는 것도. 솔직하지 않으면 내가 자신의 헛소리를 간파하리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난 미국에 혼자 건너왔어. 너무 무섭고 고향이 그리웠지." 엄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여기서 네 아빠를 다시 만났을 때...... 친숙하게 느껴졌어. 떠나온 고향이 생각났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머그잔의 온기가 유지되도록, 차갑게 식지 않도록 두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엄마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나라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 알레하? 양키들은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무시해.” 엄마는 목소리를 바꾸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네? 뭐라고 하셨나요?"


    엄마가 뉴욕 사람 흉내 내는 걸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아빠 아니었으면 난 길을 잃었을 거야. 어떨 땐 우리 둘이 우주에 맞서는 기분이었어."

    엄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잘 몰랐다. 아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엄마의 과거는 다 아빠한테서 들은 것이었다.


    엄마가 나한테 마음을 털어놓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 음악 기억하지? 재즈. 그게 내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곤 했어. 하지만 후안은 결코 자기 꿈대로 살지 못했어.” 엄마가 머그잔을 부드럽게 감쌌다. "고모 말은 사실이 아니야. 난 후안한테 별로 좋은사람이 아니었어. 후안이 나한테 너무 좋은 사람이었지."


    엄마가 먼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엄마는 복도에 걸린 시청 앞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다른 시간, 다른 장소, 젊고 아름다웠지만 외로웠던 시절로 빠져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아빠가 엄마의 외로움을 없애 주었다는 걸.


    "후안은...... 정말 온화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자신의 가슴을 때렸다. 나는 엄마가 다시 자신을 때리지 못하도록 엄마의 주먹을 잡았다.


    "난 후안에게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그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어. 그런 사고로 죽게 만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용서할 수 있겠어?"


    하지만 엄마, 엄마도 알잖아요, 그거 사고 아니었던 거. 그 사진, 그 먼 장소와 시간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 어스름한 빛이 스쳤다. 엄마의 눈은 지금 눈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빠의 죽음을 설명하는 엄마의 말이 맞지 않다는 걸 나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내 방식으로 아파할 수 있게 내버려둘 순 없을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엄마는 여전히 사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추억에 잠긴 얼굴이었다. 이 집은 여전히 아빠로 가득했다. 나는 우리의 빈 머그잔과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은 서류, 그리고 너무 큰 포마이카 식탁을 차례로 훑어봤다. 우린 다시는 이 식탁에 가족으로서 함께 앉는 일이 없을 터였다. 아빠가 유령이 되어 앉아 있는 듯 여전히 푹 꺼진 낡은 소파와 비상구에서 녹슬어 가는 낡은 숯불 화로를 바라봤다. 사방으로 불법 개축한 임대 주택의 벽이 보였다. 이곳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집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오직 마리아 이네스 몬토야 공원과 잭슨 하이츠의 비스듬한 풍경과 일몰, 켜져 있을 때보다 깜박거릴 때가 더 많은 가로등, 멀리서 덜컹거리며 달리는 7호선 열차가 다였지만, 이제 내 눈에는 그 너머 훨씬 먼 곳의 세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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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