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야 사람에게 꼭 ‘지는 날’만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기다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기는 날이 오기도 한다.”
계약직으로 방송 생활을 시작해 특별채용으로 MBC 아나운서가 된 김수지. 동기 중에서도 가장 늦게 방송을 시작했다. 가까스로 정식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아나운서국에서도 여전히 ‘걱정거리’였다. “진행을 안정적으로 잘하긴 하는데 확 시선을 잡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고, 이렇게 가다가는 기죽어서 하던 것도 더 못하게 되지 않을까 위태로워 보이는 신입사원.” 동기들이 선배들에게 방송 피드백을 받을 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묘한 질투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버티기. 시간이 흐르고 큰 방송을 하나둘 경험하면서 언제 불안했냐는 듯 무대를 신나게 누볐다. “자연히 ‘내 방송’이 찾아오는 것처럼 어쩌면 ‘때’라는 건 그냥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누구나 한 조각은 뺄 수 있는 젠가처럼.”
작사가로서도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자, 7년째 뉴스를 진행하면서도 뉴스에 ‘관심 있는 척’ 한다는 짓궂은 농담을 듣기도 했다. 소위 작사 일이 ‘대박’이 나면 그쪽으로 옮겨 가지 않을까 하는 시선 역시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즉, “어디서든 욕먹기 좋은 포지션”이었다. 내심 억울하기도 했지만, 누굴 탓할 일도 아니었다. 스스로 어느 한쪽에 소홀해지는 걸 경계해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다 쓰곤 했으니까. 그래서 다짐했다. 200퍼센트의 힘으로 나아겠다고.
■ 저자 김수지
MBC 아나운서이자 작사가. 2017년 MBC에 입사해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 TV 뉴스와 〈우연한 하루, 김수지입니다〉 〈비포선라이즈, 김수지입니다〉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1년 작사가로 데뷔해 레드벨벳, 윤하, 박정현 등의 앨범에 참여했다. 결핍을 원동력 삼아 어린 시절부터 꿈꾼 두 가지 직업을 모두 가졌다. 이 행운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남은 생의 목표다.
■ 차례
prologue
Chapter 1.좌절은 뉴스가 끝나고
intro. 열심히 사는 사람은 때론 비참함을 느낀다
모든 것은 기세다
반전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고생에도 정량이 있을까?
실패의 총량
행복의 반대말은 비교
애쓰지 않음으로 견디는 법
너희들 것이니까
N잡러가 된다는 것
200%로 살아가야지
때로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 불안한 건 간절하기 때문
입스는 그냥 지나가는 거야
Chapter 2. 결핍은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는다
intro. 빠져서도 안 되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넓은 슬픔
부족함 없이 사랑받고 자란 딸이라는 이미지에 대하여
낯선 온도에 숨이 막혀도 워밍업 없이 가보고 싶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아버지는 뭐 하시니?
놓지 못하는 마음
자기 연민에 취하지 않기
우리에겐 빈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도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Chapter 3. 어른에게 필요한 투명한 용기
intro.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삶
맞서지 않고 피해 가는 고양이처럼
마른 가지 안에서 발버둥 치는 새순의 시간
행복 민감도가 높은 사람
엄마의 외로움은 가슴에 사무쳐서
갖기도 전에 갖지 못할까 봐 겁내는 사람
가끔은 친절하지 않을 용기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낯선 길에서 행복을 줍게 될 수도 있으니까
Chapter 4.. 내 삶의 원칙들
intro. 조금은 덜 상처받고 싶어서 만든 인생의 원칙
자기 관리: 끼니는 꼭 챙긴다
자존감: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하기
일: 스스로에게 당당한 마음으로
사회생활: 권위에 약해지지 말자
관계: 관여하지 않는다
감정: 새드 엔딩은 굳이 보지 않아
소통: 진심을 말하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
소비: 웬만하면 새 물건을 사지 않는다
여행: 완벽한 자유를 추구할 것
김수지 아나운서는 어린 시절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꿈꾸었던 미래를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불안과 좌절을 겪으며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온 과정이 투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에세이로,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삶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자는 삶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하자고 독려합니다.
때로는 워밍업 없이 가보고 싶어
좌절은 뉴스가 끝나고
실패의 총량
"그때는 왜 안 됐던 것 같아?"
뒤늦게 꿈을 이룬 내 이야기를 들은 주변인들이 가끔 묻는다.
작사가라는 꿈을 이루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열세 살부터 작사가라는 꿈을 꾸었고 서른셋 에 이루었으니 꼬박 20년이 걸린 셈이다. 대학 생활과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사실상 잊고 있었기에 15년 이상을 들어내긴 해야 하지만, 작사에 대한 마음은 적당한 바람과 빗물만 만나면 언제든지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처럼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도전하고도 작사가가 안 됐는데, 지금은 뭐가 달라졌길래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그때는 잘 못 썼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아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실력 외에 다른 많은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자란 나에게 남다른 표현력은 없었다. 그냥 무엇이든 쓰기 좋아했고 낙서처럼 적어둔 메모들을 모아서 오디션 응시랍시고 낸 게 전부다. 중학생 때도, 조금 더 머리가 큰 고등학생 때도 그건 마찬가지다. 사랑 한번 해보지 않고 이렇다 할 충격적 감정을 경험하지도 않은 내게 음악에 얹을 만한 좋은 표현이랄 게 딱히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는, 바로 나는, 정말로 더 자라야만 했던 것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흘러야 하는 시간 이 필요했다.
또 하나, 나는 쉽게 건방을 떠는 사람이다. 대체로 많은 것을 어렵게 손에 넣었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 있었던 거지, 쉽게 가진 것에 대해서는 영 겸손할 줄을 모른다. 오래 걸려야만 소중함을 알고 고생을 해야 착해진다. 살면서 꽤 자주 따스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마음을 다쳐봤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뿐 본성은 그렇게 순하지를 못하다. 성격의 모서리를 조금이나마 깎아내야 세상에 섞일 수 있었을 테니 오래 굴러야만 했던 것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밤은 책이다》라는 책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그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괴로울 때마다 이 지난한 시간이 내 목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양만큼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그건 5천 원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셔야 하는 당연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치러야 할 값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숙명을 이고 가는 인간처럼 퍽 순응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가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모두 채워야 하는 실패의 총량이 있는 게 아닐까. 일종의 빚을 지고 태어난 우리는 실패하면서 흘린 눈물로 그 빚을 갚아나가야 하고, 그래야만 원하는 걸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대신 그 양은 모두 공평하게 주어져서 어린 시절이 조금 고되다면 노년은 평안할 것이고, 유난히 실패의 경험이 적다면 훗날 고생을 하게 될지어다... 하는 나만의 미신 같은 것.
"요즘은 왜 가사 선택을 잘 못 받는 것 같지?"
아프지만 스스로에게 묻는다.
"잘 썼으면 됐겠지."
더 성숙해지라고 주어지는 시간, 정해진 총량을 채워야만 해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필수 불가결한 시간. 이 원칙에 따르면 한 번 더 실패한 오늘이 어제의 나보다 성공에 가까울 것이다.
결핍은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는다
낯선 온도에 숨이 막혀도 워밍업 없이 가보고 싶어
어떤 일이든 기세 좋게 뛰어드는 일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발표가 제일 두려웠고, 성적도 어중간해 1등을 꿈꾸기엔 언제나 부족했다.
일단 해보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에 미친 듯이 빠져 있던 나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은 물론,인터넷 소설 커뮤니티에서 연재되는 유명하지 않은 소설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고 춤을 추면 덩달아 춤추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인지라 나 역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품게 됐고 별다른 고민 없이 첫 줄을 써 내려갔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조회수를 얻고 싶었던 것도, 책을 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내게 비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노트에 생각나는 이야기를 풀어냈을 뿐이었다. 마침 주변 친구들이 내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줬기에 그나마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연재를 이어가던 중 커뮤니티에서도 조회수가 수백 단위로 나오기 시작했고 한 출판사에 내 소설을 추천한 독자 덕분에 책까지 내게 됐다. 이때 얻은 성취감은 그 이후로 많은 일을 저지르듯 행동하게 했다.
열여덟엔 작사가가 될 뻔한 적도 있다. 지금처럼 작사학원이 없던 시절이어서 작곡가에게 직접 곡을 받아야만 그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내 주변에는 음악의 끄트머리에 가까운 사람조차 없었고, 나는 없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 직접 작곡가들의 미니홈피를 뒤져 메일을 보냈다. 당장 작사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가능성이라도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러 작곡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대답 없는 대답을 받고, 혹은 너그러운 누군가로부터 격려도 들었다. 그러던 중 한 작곡가로부터 데모곡을 보내줄 테니 가사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어리지만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라는 말에 심장부터 손끝까지 떨렸다. 무려 세 곡이나 되는 데모곡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이대로 정말 데뷔인 걸까? 열여덟의 작사가! 너무 짜릿하잖아? 기대했지만 물론 답은 오지 않았다. 얼마 후 그 곡들이 내가 좋아한 신화 멤버의 솔로앨범에 수록된 것을 확인했고, 비루한 내 가사와 비교해보며 왜 답을 받지 못했는지 온몸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상처가 조금 아물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곡을 받아본 게 어디야. 실제로 작업을 해본 게 어디야. 업계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가능성 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게 어디야. 이룬 게 아예 없지는 않은 것이다. 역시 준비가 덜 되어 있어도 일단 가봐야 한다. 나는 일단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 깊이 새겼다.
지금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수없이 마주한다.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방송을 앞두고, 아직도 이 일은 나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거듭 생각한다. 내가 가진 마음의 크기는 옹졸하기 그지없는데 내가 맡은 일은 너무 커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아무리 공부해도 누구 앞에서나 당당할 만큼 똑똑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다.
작사라고 다르지 않다. 정말 잘 쓰고 싶은 곡을 만나면 끝내 이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쓰지 못하고 망쳐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어진다. 나는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메모장에 좋은 표현을 저장해두는 치밀한 사람도 아니어서 곡이 들어오는 대로 급하게 가사를 쓸 뿐인데, 이러다 밑천 드러나는 건 금방이라는, 아니 어쩌면 밑천은 이미 드러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하지만 준비운동을 아무리 많이 해도 완벽해질 수는 없다. 모두 다 각자의 최대치를 이끌어낼 뿐 사람이 하는 일에 어떻게 완벽이 있을 수 있을까.
낯선 온도에 숨이 막혀도 워밍업 없이 가보고 싶어.
나의 데뷔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인 CIX의 숨 가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며 망설이고 싶지 않다. 워밍업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손과 발을 물에 적응시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늦는다. 당장 뛰어들기. 뛰어들고 나면 화들짝 놀란 내 몸과 마음이 더 빠르게 작동한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어른에게 필요한 투명한 용기
마른 가지 안에서 발버둥 치는 새순의 시간
과습 때문인지, 물이 부족한 건지 잎이 우수수 떨어지길래 올리브나무 가지를 다 쳐내버렸다. 죽은 가지는 빨리 잘라내는 게 낫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만 믿고 저지른 성급한 짓. 마지막 서리가 내리고 꽃피기 직전이 가지치기를 하는 시기라는데, 내가 나댄 건 4월이었다. 뒤늦게 알고 나서 식물이 생장하는 시기에 발을 걸어버린 것만 같아 꽤 오래 자책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참 예뻤는데... 지금은 줄기 윗부분에만 잎이 무성하고 중간은 휑하니 이상한 모습이 돼버렸다. 그 앞에 씁쓸하게 서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바람과 햇빛이 나 대신 이 일을 수습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일. 올리브나무를 수시로 베란다 산책을 내보내며 공을 들였다.
그렇게 몇 달 기다리니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새순이 돋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수분 없이 가늘게 말라비틀어졌던 그 가지를 뚫고 눈곱만한 새잎이 이마를 내밀었다. 마치 그 작은 신호가 내 인생의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침마다 올리브나무를 들여다봤다. 아직 전과 같은 모습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모양을 갖춰가는 그 생명력이 신기했다. 대견하고 경이로웠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이루지 못한 것도 다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오래 정체돼 있던 일들도 한순간 툭 터져 나와 새로운 물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꼭 다 마른 줄기 같은 기분이다. 특히 가사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간신히 달려 있던 잎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휑뎅그렁한 마음으로 예전에 발매되었던 내 가사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다시는 이렇게 쓸 수 없을 거라고 좌절한다.
하지만 매일 작아지는 이 시간도, 어쩌면 죽은 가지 안에서 발버둥 치는 새순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가는 게 어려울 뿐 그 안에서는 새로운 잎이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변신할 때마다 옷이 뜯기는 헐크처럼 내 가능성도 껍질이라는 까만 하늘을 뚫고 언젠가 튀어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쓴다. 창문을 열어둔 베란다로 화분을 낑낑거리며 옮기듯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바람을 맞으러 간다. 다시 이마를 들이밀어보자. 여전히 숱하게 버려지지만, 꼭 버려지는 데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믿으며, 메마른 가지를 뚫는 올리브나무의 새순처럼 내가 먼저 나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지.
올리브나무는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이라고 한다. 사는 일도 그렇다. 신경 쓸 것도 많고 영 쉽지 않다. 하지만 올리브나무에 마음을 쏟았던 것처럼 삶에도 꾸준히 공을 들이면 눈곱만한 가능성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의 원칙들
관계: 관여하지 않는다
유행한 지 오래인 열여섯 가지 성격 분류에 따르면 나는 분명 통제형(J) 인간이다. 계획을 철저히 짜는 편은 아니지만, 상황에 대한 구상이 늘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그 그림이 무너졌을 때 크게 당황하곤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기대하는 바가 다소 분명하고 응당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때 실망했던 것도 솔직히 여러 날이다.
나이 듦의 축복인지 그나마 철이 든 것인지 그래도 사람에 대한 기대는 많이 내려놓았다는 걸 최근 들어 느낀다.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을 가득 담아 예쁜 말로 리본 묶어 전달하고, 상대의 감동받는 표정을 보며 흡족해하는 일련의 과정이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의 마음만큼 귀한 것은 없고 인류의 사랑이라는 것은 놀랍고도 위대하다고 믿고 있지만, 내 주위에 직접 흩뿌리는 사랑은 현저히 줄었다. 글쎄, 고양이를 사랑하기에도 마음이 부족한데 인간에게까지 나눠줄 여분이 없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마음은 조른다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탓일까.
분명한 건 나에게나, 나를 대하는 사람에게나 어느 정도의 무심함이 지나친 관여보다 낫다는 것이다. 내 마음도 뜻대로 안 움직이는데 남의 마음이 어디 쉬울까. 나는 상대를 귀찮게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바로 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너의 인생은 너의 것, 나의 인생은 나의 것. 내가 기대한 반응을 상대가 내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애초에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서운할 필요가 없다고 기본 설정을 해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칙을 세운다고 해서 모든 실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에게 다치는 일도 여전하다. 다만 이제는 왜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나에게 잘하지 않는지를 따져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게 무례했을 경우, 내 영역을 존중하지 않았을 경우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문제는 소유욕 때문이었을까. 사람이고 물건이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니 쓸데없는 관심이 줄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공간만큼 숨 쉴 구석이 많아졌다.
솔직히 이렇게 마음먹는 데에는 내게 서운해하는 친구들의 영향도 있었다. 왜 더 자주 연락하지 않는지, 왜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지 서운해하기 시작하면 친구가 어렵고 버겁게 느껴졌다.
마주해서 웃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늘 무언가 채근당하는 기분. 회사에서도 마음이 힘든데 친구를 만나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니. 꽤 오랫동안 억지로 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가며 그렇게 끌려다녔다. 이런데도 내가 무심하게 느껴졌다면 내 마음이 거기까지였을 뿐. 그 이상은 뭔가 더 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몇 번쯤 이런 식으로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이러한 부분이 서운하니 바꿔달라는 요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확실해졌다. 사람은 바뀌지 않고 뾰족한 말들만 상처로 남는다는 것.
겪어보니 지나치게 솔직한 말은 때로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관여하고 싶어질 때, 내가 원하는 행동을 끌어내고 싶을 때마다 이 생각을 다시 꺼낸다.
관여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 자신도 상처받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한발 물러서고 나면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가까이 들여다볼 때는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어른들이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까.
"그럴 수도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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