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와 노마의 시점이 반복되고, 50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 소설의 구조는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을 다각적으로 나타낸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처음 글을 쓸 당시에는 ‘조’의 시점으로만 서술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순간에 아이를 잃은 사건의 파급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 루시가 하고 싶을 말들을 전달하고자 노마, 즉 루시의 시점을 보여 준다. 덕분에 독자들은 아이를 도둑맞은 가정, 납치로 새 가족을 맞은 또 다른 가정의 삶을 르포처럼 따라가게 된다. 조와 노마의 시점으로 상황을 따라가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루시가 곧 노마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마가 루시라는 이름을 되찾기까지의 여정, 그녀를 잃은 조의 가족이 수십 년 동안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은 역사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아이를 잃은 가족과 한순간의 실수로 데려온 아이를 키운 가족의 상실감, 슬픔의 저류, 분노의 반복과 해소’다. 그리고 모든 오해와 갈등, 분노는 잃었던 조와 루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뭉근한 사랑을 확인하며 해소된다. 억지로 떼어 낼 수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이 있기에 조의 가족의 삶은 비극적이지만 아름답다.
■ 저자 아만다 피터스
저자 아만다 피터스는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자리한 아메리카 인디언 예술연구소에서 예술학 석사 프로그램을 졸업했으며, 토론토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노바스코샤 아나폴리스 밸리에서 반려견 홀리, 반려묘 푸크와 살고 있다. 캐나다 미크마크 원주민 및 정착민 출신 작가로, 2021년 미출간 산문 부문 원주민 목소리상 우승자이자 2021년 작가 트러스트 라이징 스타 프로그램의 참가자다. 그녀의 작품은 ‘더 안티고니시 리뷰(The Antigonish Review)’와 문학 계간지 ‘그레인(Grain)’, ‘알래스카 쿼터리 리뷰(Alaska Quarterly Review)’, ‘더 달하우지 리뷰(The Dalhousie Review)’ 및 ‘필링 스테이션(Filling Station)’에 게재되었다.
■ 역자 신혜연
역자 신혜연은 성균관대 번역대학원과 바른번역 글밥아카데미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언어의 문턱을 낮추고자 노력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지식과 지혜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옐로페이스’, ‘삶을 예술로 만드는 법’, ‘나를 지키는 관계의 기술’, ‘웃음’, ‘엥케이리디온’, ‘최면술사: 마크 트웨인 단편집’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하나, 조
둘, 노마
셋, 조
넷, 노마
다섯, 조
여섯, 노마
일곱, 조
여덟, 노마
아홉, 조
열, 노마
열하나, 조
열둘, 노마
열셋, 조
열넷, 노마
열다섯, 루시
열여섯, 조
열일곱, 루시
감사의 말
어느 날 사라져 버린 네 살배기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순간의 선택과 거짓말이 불러온 두 가족의 비밀과 상실, 용서, 치유의 과정을 그려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베리 따는 사람들
하나, 조
그날, 루시와 나는 들판 가장자리에 있는 우리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이 호수로 슬쩍 내려가 잠깐 수영을 하거나 여자아이 중 하나와 입을 맞추며 짧은 자유를 누리는 동안, 거기에 즐겨 앉아 있곤 했다. 메이 누나는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개 해가 저물 무렵 야외에서 감자와 고기를 요리하곤 했다. 하지만 캠프 전체가 먹을 식사를 우리가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감자 껍질을 벗기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메이 누나는 늘 불만을 토로했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했다. 아빠의 걱정이나 엄마의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를 잡아 타고 뱅고어로 가곤 했다. 누나는 어두워진 후에야 슬그머니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루시와 내게 몰래 사탕을 건네주었다. 어디서 났는지 우리는 절대 묻지 않았다. 어디서 났든 상관없었다. 설탕과 새콤한 가루의 맛은 정말이지 황홀했다. 사탕은 이빨에 들러붙기도 했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메이 누나는 가만히 앉아 들었다. 그러고 나면 누나는 두어 주 동안은 착실히 일을 돕다가 다시 떠났다. 당시 메이 누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날 루시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까마귀들에게 빵을 던져 주고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엄마한테 말하지 마, 루시”라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물수제비를 뜨기 위해 호수로 달려 내려갔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다시 작업줄에 합류하기 전에는 보통 그러고 놀았다. 루시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루시는 늘 식사가 끝나면 가만히 앉아 새를 지켜보면서 엄마나 메이 누나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트럭에 일꾼들을 가득 태우고 그곳을 지나쳐 들판으로 돌아갈 때도, 루시가 없어진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루시가 메이 누나를 도우러 가지 않아서 엄마가 바위로 루시를 찾으러 왔을 때, 비로소 다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엄마는 단지 일을 돕기 싫어서 피하는 줄 알고 고함을 질렀다. 루시가 그럴 리 없는데도 말이다.
셋, 조
고속 도로는 숲을 관통해 이 지역을 남과 북, 둘로 가르며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한다. 이 시기가 되면 아스팔트 곳곳에 큰 포트홀이 움푹 팬다. 어떤 포트홀은 아주 커서 자칫 잘못 충돌했다가는 자동차를 통째로 삼켜 버릴 수도 있을 정도다. 나는 그 하나하나를 다 느낄 수 있다. 의사들이 말하길, 병이 골수까지 전이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믿는다. 포트홀을 지날 때마다 병에 걸린 뼈마디 마디가 그걸 느낀다. 이번 여정의 유일한 관심사는 진료를 마친 후 아침 식사 메뉴를 종일 제공하는 식당에 가는 일이다. 베이컨과 달걀, 홈프라이, 달콤한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 그리고 기름기 적은 햄이 나온다. 엄마가 억지로 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쉰여섯 살이고, 여전히 살아 있다. 여든일곱 살인 엄마가 자식이 또 죽는 꼴은 못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나는 그저 침대에 누워 어둠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엄마는 저보다 더 오래 사실 거예요. 찰리 형을 보내고도 살아남았고, 아빠를 보내고 나서도 살아 계시잖아요.” 차가 포트홀을 밟으며 덜컹거리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말했다.
“루시도 있잖아.” 운전석에서 메이 누나가 말을 받았다.
“루시는 죽지 않았어, 누나.”
“어머, 조. 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너랑 엄마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절대 루시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년 9번 국도를 따라 그 들판을 찾았지만, 루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만일 죽었다면 누군가 뭐라도 발견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죽으면, 거기에는 어떤 최종적인 비애감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루시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살아야 할 삶이 있었다.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우리는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해 가을, 아빠는 존슨네 가족에게 사과 따는 일꾼들을 대신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우리는 조금 더 오랫동안 슬픔에 빠져 있었다.
여섯, 노마
더운 여름날,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준 이모는 큰길 뒤편에 자리한 커다랗고 노란 집 현관 계단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는 참 아름다운 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목재로 된 장식과 바닥재, 가장자리가 날렵하게 손질된 멋진 창문은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과 모자를 살짝 기울여 인사하는 신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준 이모는 그 건물의 주인으로 1층에 살았고 위로 두 개 층이 더 있었다. 2층에는 레너드라는 남자가 살았는데, 이모는 비 오는 날이면 그 사람과 차를 많이 마셨다. 아마 내가 레너드를 알고 지낸 세월이 이모를 알고 지낸 세월과 맞먹을 것이다. 3층에는 3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빵집을 운영했는데, 저녁이면 준 이모와 레너드를 위해 남은 빵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 집에는 많아 봐야 열두 살 정도로 보이는 보이드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아이가 내게 반했던 모양이다.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고 혀가 굳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귀여웠다. 그리고 나도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어둑했다. 하지만 늦은 아침이 되자 해가 구름을 흩어 놓았다. 준 이모는 동네를 구경시켜 주기에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걸어가서 녹지에 둘러싸인 커다란 연못가를 따라 돌았다. 공원은 물가와 나무 사이에 펼쳐진 나일론 텐트들로 임시 야영장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바닥이나 담요 위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담배를 피웠다. 훔친 땅을 돌려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팻말들이 땅에 박혀 있거나 텐트 옆에 걸려 있었다. 검은 머리를 등 뒤로 땋아 내린 검은 피부의 여인들이 검은 피부의 남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이게 다 뭐예요?”
“항의 시위하는 거야.”
“뭣 때문에요?”
“가서 물어보는 게 어때?”
“원주민들이에요?”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준 이모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아는 원주민은 중학교 교과서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제한적으로나마 내가 아는 원주민의 역사와 존재는 전쟁에 굶주린 야만인 아니면 치료 주술사, 그리고 포카혼타스가 전부였다.
“그래,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도 하고, 꼬맹아. 속삭일 필요 없어. 저 사람들도 자기가 누군지 아니까. 그리고 장담하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기꺼이 말해 줄 거야.”
우리는 물가를 벗어나 큰길을 향해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지퍼가 반쯤 닫힌 초록색과 빨간색 텐트 문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고 있었다. 여자는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그 손의 움직임만큼이나 얼굴에도 격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 들을 수 없었다. 남자는 바닥에 다리를 끌어안은 채로 앉아 고개를 무릎에 얹고서 여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자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최대한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려던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눈길이었지만, 나는 주눅이 들어 준 이모에게로 돌아섰다. 이모는 어느 나이 많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시위자들이 줄줄이 옆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보도 위로 다시 올라섰다. 시위자들 때문에 텐트 옆에 있던 여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흩어지자 그 여자가 여전히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내 쪽을 가리키자, 남자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돌아섰다. 나는 팔을 들어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지나가는 시위대와 손 푯말, 울려 퍼지는 북소리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우리는 그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내게 손짓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모와 이야기 중인 여자에게 어서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이 많은 여자는 준 이모와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팔짱을 끼고 선 채로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나온 민들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남자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준 이모에게 다가갔다. 이모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남자가 소리쳤다. “루시?” 그가 벌떡 일어섰다. “루시!”
이제 그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가 이모와 얘기하던 여자에게 소리치는 줄 알았으나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내게로 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불안이 엄습했다. 모든 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게 들렸다. 그때, 준 이모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이모는 내 손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끝이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모는 왠지 달라 보였다. 나를 잡아끄는 손에서 이모가 겁에 질려 허둥거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노마.” 이모는 나를 군중으로부터, 그리고 내게 다가오고 있는 그 남자로부터 멀찍이 끌어당겼다.
“이모, 왜 그래요?"
“갑자기 몸이 좀 안 좋네. 그만 가야겠다.” 이모가 상기된 얼굴로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요, 가요.”
“루시! 기다려!”
준 이모는 그 남자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내 뒤로 가서 섰다. 이제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그 젊은 여자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벤, 어디 가?”
이모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며 그 남자가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보았다. 그의 갈색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우리는 길을 건넜다. 군중이 길 한가운데를 행진하며 우리를 갈라놓자, 그제야 모든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거의 달리고 있었다. 이모의 손이 여전히 내 손을 꽉 쥐고 있는 가운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가 긴 시위 대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북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너머로 그의 외침이 들려왔다. “루시! 제발, 루시!”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감 때문에 나는 사람 잘못봤다고 말해 주기 위해 거의 걸음을 멈출 뻔했다. 하지만 준 이모는 연립 주택과 쓰레기통들이 늘어선 작은 골목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숨기려 애썼지만, 이모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집까지 걸어가면서 도중에 뭐라도 한잔하자. 날이 덥네. 내가 살게.”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서 골목 중간까지 가다가 이모가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섰을 때 시위대가 잇따라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벤이라는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열넷, 노마
준 이모는 여전히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했다. 친구들과 극장과 가라오케에 갔고, 때로는 나를 초대하기도 했다. 나는 앨리스가 내내 봉사했던 여성 보호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친구를 몇 명 사귀었다. 나는 여전히 차를 가지고 있었고, 며칠씩 호수에 가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대부분 혼자였지만, 가끔은 준 이모와 함께 가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둘에게 잘 맞는 일상의 리듬에 정착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실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히 감정적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었다. 가족을 찾고 싶은 마음과 혹시 내가 찾기를 그들이 원하지 않거나 이미 너무 늦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밤이면 뜬 눈으로 누워 방 안 천장에 드리우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그들을 최대한 기억해 보려고, 그들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고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내가 쓴 일기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지만, 내 정체성에 관한 확실한 단서로 보이는 유일한 정보는 ‘루시라는 이름뿐이었다. 그 이름은 외로운 아이의 상상 속 친구였고, 시위 현장에서 불린 이름이었다. 이건 뭔가를 의미해야 했다. 이건 맞는 조각이 하나도 없는, 아니, 혹시 맞더라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퍼즐 같았다.
9번 도로에 다녀온 지 몇 주 후, 치킨 파르메산이 다 구워지길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 있는데, 이모가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걸 보고 이모를 다시 쳐다봤다. 뭔지 궁금했다.
“열어 봐.” 이모가 말했다.
“뭐예요?”
“네가 진짜 누군지에 관한 단서.”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쳤다. 오래전 신문 기사 사본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서 준 이모를 올려다보았다.
“일단 읽어 봐.”
표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카니발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원주민 소년 사망.” 기사의 날짜는 1971년 8월이었다. 나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분명한 건, 메인에서 블루베리를 따는 원주민 청년 둘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술에 취해 일어난 일로 의심되었다. 사망한 소년의 이름은 찰리였는데, 성실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이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망한 청년의 가족에게는 거의 10년 전 네 살의 나이에 실종된 딸이 하나 있다고 알려졌다. 그 사건 역시 같은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한테 찰리라는 오빠가 있었나 봐요.”
“그런 것 같아. 만일 기사 속 아이가 네가 맞는다면 말이지. 같은 해에 메인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실종된 아이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거든.” 이모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들, 그러니까, 내 다른 가족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농장에서 일했던 것 같아. 어쩌면 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다음 날 아침, 하늘이 막 밝아 오기 시작할 무렵 출발했다. 차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고, 엘리스라는 사람과 오후 두 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앞서 몇 달 전 우리가 방문했던 바로 그 블루베리 농장 주인이었다. 12월 초의 추운 날이었다. 몇몇 나무에는 아직 잎사귀가 달려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름다운 빨강과 주황, 황금 잎사귀 대신 헐벗은 가지만 남아 있었다. 자연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좋았다. 그건 바로, 놓아 줄 건 놓아 주고 계속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긴장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사무실 출입문 옆에 트럭만 몇 대 있을 뿐이었다. 차를 주차하는데, 준 이모가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가방을 챙긴 다음, 문으로 향했다.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엘리스 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저, 여기는, 제 조카 노마입니다만...... 그게, 우린 노마가 그 어린 딸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어요. 조라는 사람은 아마 노마의 오빠일 겁니다.”
“말도 안 돼. 뭐라고요?” 그가 벌떡 일어나 벽에 서 있는 서류함으로 걸어갔다. “당신이 그 꼬마 루시라고요? 이런, 무슨 이런 일이!”
“루시?”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혀끝에서 부드럽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루시.” 내 세상이 갑자기 전부 다 이해되기 시작했다.
엘리스 씨는 서류함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펼친 다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종이에 뭔가를 베껴 적었다. “아마도 이런 정보를 공유하면 안 되겠지만, 당신이 조랑 너무 닮아서, 실수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의 부모님 주소예요. 1950년대에 여기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같은 주소였습니다. 그들은 찰리가 끔찍한 일을 당한 이후로 여기 일은 그만뒀어요. 그런데 조가 돌아왔죠. 아까 말씀드린 기간 동안 이곳에서 일했어요.” 그가 내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잘되면 저 한테도 알려 주십시오. 그래 주실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종이를 바라보았다.
열다섯, 루시
사람들이 다 들어가기엔 방이 너무 작았다. 방에서는 살짝 곰팡내가 풍겼다. 오래된, 벽에 행복과 슬픔을 품고 있는, 웃음이 회반죽의 틈새로 스며들고 눈물이 바닥을 수도 없이 씻어 낸 그런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 냄새에는 이 집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 방은 한때 내 오빠들의 꿈이 시작되고 악몽이 사라진 장소였다. 나는 한 자그마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움푹 팬 검은 눈에, 피부는 황달 때문에 탄력 없이 누렇게 떠 있었다. 너무나 작고 병든 그를 바라보는데, 약물과 탈진으로 인해 흐려진 눈으로 그가 애써 내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더니 울기 시작했다.
“안녕, 조 오빠.” 말끝에 기대와 약간의 두려움이 무겁게 얹힌 한숨이 뒤따랐다. 그렇다. 누군가를 잃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죽음 가까이에 있어 본 적은 없었다. 형제와 가까이 있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와 있었다. 이 작은 방 문간에 선 이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