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능동적
 
지은이 : 노연경 (지은이)
출판사 : 필름(Feelm)
출판일 : 2024년 11월




  •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요즘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만 가득한 인생에 지쳐서 ‘나’로 살아가는 법을 잊은 사람들에게 발 벗고 찾아 나선 행복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반짝이게 만들어 주는지 이야기해줍니다.                                                                                   


    행복은 능동적


    결국 나는 또다시 내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나 자체로 다 되었다

    내겐 배 속에서부터 함께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나와 쌍둥이는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림이 그저 취미 정도에 불과했던 나와는 다르게 쌍둥이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고, 또 좋아했다. 잘하는 걸 좋아하기까지 하니까 실력은 빠르게 늘었고 고등학교 때 이미 이름을 알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걔는 몇 살에 뭐를 했대.” 엄마 친구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어도 비교가 되는 마당에 나와 나이부터 얼굴, 체형까지 모든 것이 비슷한 쌍둥이가 일찍이 재능을 찾아 승승장구하는 걸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야 했던 나는 늘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조급할 필요 없어. 좋아하는 걸 어린 나이에 일찍 찾은 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일이야. 첫째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항상 조급하고 불안해했던 내게 아빠가 수없이 주었던 조언은 그 당시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도 빨리 잘하는 걸 찾아야 하는데. 나도 빨리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하는데. 나도 빨리 유명해져야 하는데. 나도 빨리 성공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애매한 것만 같았다. 노래를 잘 부르지만 가수가 될 만큼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림에도 재능은 있지만 10시간씩 앉아서 몰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게 이런 식이어서 새로운 걸 시도하더라도 그만큼은 아닌거 같아라고 스스로 한계를 보고는 금방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남들은 어떤 것을 월등히 잘하고 좋아하는데, 나는 여러 분야를 맛보기 하듯 발을 넣었다 뺄 뿐 금방 질려서는 나 이거 좋아해! 미친 듯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었다. 무언가 특출난 단 한 가지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내내 들었다. 나는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는데 뭘 해 먹고 살아야 하지? 나는 그냥 이렇게 애매하고 평범하게 살다 죽겠구나 싶었다. 빛나고 멋진 사람이 될 거란 기대를 포기해 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꼭 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는 관념 때문이었다. 노래를 좋아하면 그냥 노래를 하면 되는데,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면 그냥 그림 그리는 그 자체를 좋아하면 되는데 자꾸만 다른 사람이 그려 둔 훌륭한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는 못 그려 하면서 좋아하는 일들을 일찌감치 접어 버렸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무엇인가 될 생각을 하니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없어진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면 그냥 그리면 되는 건데. 유명한 웹툰 작가가 되어야지!로 시작한 생각은 항상 학원을 다닐까? 학교는 어디로 진학하지? 플랫폼은 어디로 정해야 할까? 사람들이 내 그림을 안 좋아하면? 내가 다른 사람만큼 잘 그릴 수 있을까? 왜 나는 저 사람만큼 안 되는 거지?로 끝맺어졌다. 많은 상상과 비교를 하면서 쉽게 지쳐 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는 꿈도 되어보지 못한 채 고이 접어져서 꿈이 되기엔 애매한 취미 상자 속에 보관되어 버린 것이다.


    꼭 무엇인가 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나 자체로 다 되었다.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던 걸까. 무엇이 되려고. 가수? 작가? 사업가? 직급을 올리는 것? 직업을 가지는 것?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직업은 언제든 바꿔 입을 수 있는 옷에 불과했다. 낮에는 회사원이다가 저녁엔 작은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록가수일 수 있다. 뭐가 되었든 회사원인 나도, 노래를 부르는 나도 결국엔 모두 나인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쌍둥이와 비교하면서, 또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얼른 훌륭한 업적을 이뤄내야만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포기해 왔다. 시작부터 완성을 바랐다. 너무 큰 부담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대했다.


    그럴 필요 없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면 작가가 되는 것까지가 완성이 아니라 글 쓰는 나 자체로 이미 완성이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이미 내 안에 다 있다. 가수도, 화가도 무엇이든 이미 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방엔 늘 책이 쌓여 있었고 도처에 널브러진 공책엔 빽빽하게 써 내려간 활자들로 가득했다. 글쓰기에 자부심이 있어 글쓰기 대회란 대회는 전부 다 나가 상을 쓸어왔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줄 때면 부끄럽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작가가 되는 건 늘 상상으로만 남겨두었다.


    늘 작가가 될 만큼은 아니지라는 생각에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는데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작가가 될 필요가 있었나?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글 쓰는 나 자체로 이미 완성인걸. 그걸로 이미 다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해서.


    그러니 나는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무언가 될 필요없다. 직업이란 옷을 입고 성공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다시는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직업과 성공은 남들이 정해 둔 기준에 불과하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서둘러 도착한 곳에 진정한 내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나 자체로 이미 완성이다. 나로서 이미 성공이다. 내 안에 내가 꿈꾸는 일들이 이 미 다 있다. 단지 좋아하는 걸 조금씩 끄적여 봄으로써 세상 밖에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음미 : 아침부터 일기가 쓰고 싶어지는 하루다

    아름다운 곳에 와서야 행복해지길 바랄 게 아니었다

    파리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밖으로 나가 센강 변을 따라 걸었다. 해가 뉘엿하게 지고 있는 시간. 여름 센강은 당연히 아름다우니까. 해도 막 노을을 그리며 지고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 예쁜 시간을 배경으로 두고 강변에 걸터앉아 와인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심심하고 무감각하게 걷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클래식을 잘 몰라 들어도 감동받을 줄 모르 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멀리서 바이올린 현이 마구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갑자기 그 순간, 흐리게만 보였던 센강의 노을빛이 도화지 위로 물감이 번져나가듯 파리 시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건 내 마음속까지 깊게 배어 들어와서 내 감각의 스위치를 진한 노을색으로 물들이며 탁, 켜버렸다.


    파리의 전경과 센강의 북적이는 사람들, 여름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그를 타고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까지. 모든 것이 단 일순간에 완벽해졌다. 나는 갑자기 너무 좋아서,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고양되어 오른손을 강이 있는 쪽으로 쭉 뻗었다. 그냥 쭉. 혹시나 바람이라도 만지면 바이올린 선율을 만지는 시늉이라도 낼 수 있을까 해서. 그러면 온몸으로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바람과 그 춤추는 듯한 선율을 잠시라도 움켜쥐고 싶어 그렇게 손을 내밀고 춤을 췄다.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일이 취하지 않고서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그냥 스스럼도 없이, 쑥스러움도 없이 강변의 가장자리에서 강을 향해 팔을 내어 바람과 선율의 파도를 타고 흐느적거렸다.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을 그대로 느끼며 으흠- 흐흠- 아-. 아주 멀리서 그렇지만 선명하게 흘러오는 바이올린 소리와 여름 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탔다. 정말 완벽하게 심취해버렸다. 생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완전한 감상이었다. 촉각과 후각과 청각이 완전히 곤두세워지며, 모든 것을 느끼려는 그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비로소 느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온전하게 느끼며.


    그때 나는 처음 감상을 했다. 이게 감상이구나. 느끼는 것이구나. 이 순간을. 이 예술을. 이 삶을. 이 예술 같은 삶을. 느끼며 걷는 것, 빠져들어 걷는 것. 느끼며 사는 것. 이 예술을 감상하는 것.


    이것이 아니면 나는 차라리 죽어있는 것에 가까웠다. 아. 내가 파리에 있어서, 아름다운 곳에 있어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파리에 두 달쯤 있으니 익숙했고, 단조롭고, 외로웠다. 그냥 늘 걸었으니까, 파리에 있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걷는 것이 유일하게 할 일이었으니까.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의무적으로 센강에 나가 걸었다. 여행이 일상이 되었던 날이었다.


    아름다워 눈이 멀 것 같은 곳이라도 일상이 되어가면 감흥이 떨어진다. 원래 그런 법이다. 그런데 멀리 어디선가 그저 희미한 바이올린 소리 하나 더해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지고 나를 완전히 만취시켰다. 작고 사소한 것 하나에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완전히 새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희미하고 둔했던 것들이 온몸을 찌르듯 날카로워졌다. 모든 장면이 강렬하게 날아 들어온다. 그렇구나,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아름다운 곳에 와서야 행복해지길 바랄 게 아니었다. 더 많이 감상해야겠다. 내가 있는 곳에서 일상을, 삶을, 모든 것을. 그럼으로써 행복해야겠다. 이것이 바로 감상이구나. 감명받는 일이구나. 아름다운 곳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모든 찰나의 모든 순간이, 모든 삶이 아름답고 눈이 멀 것 같은 것이구나. 정말로 눈부신 것이구나.


    곧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집으로 돌아와 여독과 짐을 풀던 이튿날, 날이 화창하길래 밖으로 잠시 산책을 나갔다. 원래라면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쉬웠을 것이다. 아니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나를 치유했던 곳에서 지긋지긋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구나. 지독한 현실로.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바로 뛰쳐나가 감상을 했다. 집 앞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익숙한 내 집 앞이었는데 나가자마자 정말 좋았다. 그냥 좋았다. 햇볕이 막 나에게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따뜻했다. 아,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어. 온전하다. 행복하다. 나는 행복할 수 있어. 나는 느낄 수 있어.


    그런 느낌. 나는 그때 감상을 했고, 감상을 배웠다.



    사랑 : 사랑은 늘 하고 있습니다

    사치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걸 우리는 사치라고 하죠. 그럼 난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일까요? 적은 사람일까요?


    난 사랑을 믿겠어, 난 사랑을 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일까요? 적은 사람일까요?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은, 사랑에 자주 빠지는 사람은 가진 게 아주 많은 사람인 거예요.


    부자가 돈을 많이 쓴다고 사치라고 하진 않죠. 마찬가지로 세상 풍파를 다 겪고 나서도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차갑고 모질게만 군데도 난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어 이 세상을 사랑해라고 말 할 수 있다면 난 가진 사랑이 아주 많은 사람인 거죠.


    가진 게 많은 사람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강렬한 열정으로 마음을 모두 불태울 만큼 사랑에 빠진 경험. 마음이 시꺼멓게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았다면, 다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일은 정말로 사치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랑을 믿을 수 있다면, 다시 뜨겁게 불태울 수 있다면, 나는 가진 게 정말 많은 사람이 아닐까?



    성취 : 기술이 아니라 느낌을 배울 것

    행복하기 위해 온몸으로 불안을 떠안는다

    불안은 당연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이유가 없다. 많은 학자들이 밝히려 노력했지만 지금까지 결론 내어진 바론 생명체가 태어나게 된 일은 수많은 우연의 결합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우주를 나도는 돌멩이었다가 우연히 어떤 조건이 갖춰진 바람에 갑자기 살아 숨 쉬는, 게다가 의식까지 생겨버린 생명체가 되었다.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으나 24시간 살아 있는 이 호흡과 깨어있는 한 돌아가는 이 의식이란 것은 우리에게 불안을 심어주었다.


    지나치게 똑똑해진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우연히 태어난 생명체에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인간은 고민한다. 그럼 죽지 않아야 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러니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내딛는 한 발자국에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탄생한다. 지나간 1초는 곧장 과거가 되어 버리고, 한 치 앞도 감히 예상할 수가 없다. 더욱더 먼 미래는 어떻겠는가. 무슨 일이 생길까.


    잘 살아 낼 수나 있을까.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우린 더욱 불안할 뿐이다. 유튜브와 뉴스에선 계속해서 미래에 닥칠 일들에 대해 위기감을 준다. 경제 위기, 저출산, AI의 출현.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할수록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끝없는 불안만이 몰려온다.


    그러나 나는 이 불안을 깊이 떠안는다. 팔을 활짝 벌려 받아들인다.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낮 돌멩이에 불과할 수 있었던 내가 생명이 되었다. 살아 있다. 맥박이 살갗 아래 팔딱이며 뛰고 있다. 삶이 내게 고통을 준다면 나는 최대한 몸부림치겠다. 삶이 불안정한 것이라 끝없이 불안해야 한다면, 나는 그러겠다. 그것이 내가 열렬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온몸으로 불안해하면서, 되려 행복을 꿈꿀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삶은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다. 무엇이 펼쳐질지 모른다면 그게 불안이라 믿는 만큼, 행복이라 믿는 것도 말이 되지 않겠는가. 삶이 내게 고통을 준다면, 고통을 깊이 느끼겠다. 아주 깊이. 살아있음에 느낄 수 있는 고통이라 여기면서. 하지만 그만큼 삶이 내게 행복을 준다면, 행복 또한 깊이, 아주 깊이 느끼겠다. 온 마음 다해 감사하겠다. 이 또한 삶이 내게 준 선물임으로,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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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