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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
 
지은이 : 이누준 (지은이), 이은혜 (옮긴이)
출판사 : 알토북스
출판일 : 2025년 11월




  • 덴류하마나코 철도의 종점 가케가와역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추억 열차’를 타고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면 그 사람이 종착역에서 기다린다는 것. 기적의 역무원 ‘니토’ 씨의 안내를 따라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거나 멈춰 선 네 명의 주인공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

    멈춰 선 사람에게도 삶은 계속 말을 걸고 있다

    종착역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더 가 볼 길도, 가고 싶은 마음도, 남은 힘도 없는 때. 주변은 여전히 분주한데, 나만 혼자 선로 끝에 남겨진 것 같은 날들. 이 책이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 힘은 생각보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찾아온다고 말한다.

    종착역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분명 끝이라고 배웠는데, 실제 역사에 가보면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가장 큰 플랫폼인 경우가 많다. 여정의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모든 노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교차점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종종 “내가 여기서 끝났구나”라고 속단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서 보면, 그곳은 방향을 바꾸기 위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거대한 환승역에 가깝다.

    종착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잠시 멈추는 것이다. 멈춰 서야 비로소 보이는 진실들이 있다. 그동안 놓친 사소한 기쁨들, 미처 슬퍼하지 못해 굳어버린 마음의 근육들,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지만 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 멈춤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지금은 점검의 시간”이라고 건네는 신호다. 속도가 전부인 시대일수록, 멈추는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진짜 방향을 다시 묻는다.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시간 사용법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허한 시간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이 재배열되고,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감정이 가라앉는 동안 축적되는 침전의 시간에 가깝다. 조급함은 늘 묻는다. 지금 당장 뭔가 하지 않으면 뒤처질 거라고. 하지만 깊이 있는 변화는 언제나 느리게 진행된다. 뼈가 붙고, 상처가 살로 메워지는 속도는 우리의 성격과 상관없이 일정하다.

    기다린다는 것은 타인의 시간표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모두가 결혼하고, 승진하고, 자리를 잡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나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각자의 인생에는 고유한 계절이 있다. 어떤 사람은 스무 살에 꽃이 피고, 어떤 이는 마흔 이후에야 비로소 향기를 드러낸다. 기다림은 나만의 계절이 오기를 묵묵히 견디는 힘이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언제가 올지 모를 날”을 상상하는 대신, 오늘이라는 하루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돌봄에 집중해야 한다.

    기다림의 기술은 거창한 목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울고 싶을 때는 울고, 지쳤을 때는 잠깐 누워 있는 것, 마음이 허기질 때 짧은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자그마한 행동들. 그 행동이 쌓일 때, 우리는 어느새 더 이상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의 방향이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끝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진짜 마음의 목소리
    사람은 여유가 있을 때보다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를 더 솔직하게 마주하게 된다. 여유가 있을 때의 다짐과 결심은 아름답지만, 절망의 끝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훨씬 더 날것의 진실을 품고 있다. “나는 사실, 이 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와 같은 고백은 대개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입 밖으로 나온다.

    종착역에 선다는 것은, 포장되지 않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남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벗겨내면, 남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의무가 되어버린 일들, 사랑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관계들,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온 모든 체념들. 그 위에 쌓여 있던 껍질이 한 번에 벗겨지는 지점이 바로 종착역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냉혹한 자기비판이 아니라 조용한 자기연민이다.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았을까”라는 후회의 질문 대신 “그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이었겠지”라는 이해의 시선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인생의 방향은 커다란 결단에서만 바뀌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순간, 삶은 이미 다른 궤도를 타기 시작한다.


    너에게 건네는 말은 곧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누군가에게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문장을 던지고 있다. 타인을 위로하는 말들 속에는,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문장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 버티고 있어”, “언젠가 네가 이해받을 날이 올 거야” 같은 문장은 사실 타인을 향한 메시지를 빌려 나에게 되돌아오는 응원이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 역에 잠시 들렀다 가는 존재가 된다. 어떤 인연은 짧게 머물다 떠나고, 어떤 인연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중요한 건 머문 시간의 길이가 아니다. 누군가의 종착역에 와서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 있어 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때로는 조언보다 침묵이, 해답보다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종착역에서 필요한 건 누군가의 빠른 해결책이 아니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는 태도다.

    스스로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조급하게 앞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옆자리에 같이 앉아 기다려주기로 하는 것. 이건 거창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자기 존중의 형태다. 내가 나의 종착역에서 나 자신을 기다려줄 수 있을 때, 타인의 무심한 시선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된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은 끝을 충분히 겪어낸 사람이다
    끝을 부정한 채 시작한 출발은 금세 지친다. 관계를 서둘러 덮고, 실패를 억지로 잊으려 할수록 같은 패턴은 반복된다. 종착역에 머무르는 시간은 과거를 부정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끝을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이다. 상실을 제대로 슬퍼해야만, 그다음의 만남과 도전이 과거의 그림자를 덜 끌고 온다.

    인생은 여러 번의 종착역을 통과하는 긴 여정이다. 한 번의 끝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오늘의 좌절이 전부라고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이미 수많은 끝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그 모든 끝마다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처럼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나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음 노선에 올라탈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된다.

    다시 출발하는 사람은 예전처럼 무작정 달리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나의 힘이고, 어디서부터는 내려놓아야 하는지 조금 더 잘 안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들 가운데,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종착역의 시간은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삶을 견디는 근육을 다르게 단련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때의 종착역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한 가장 고마운 정거장이라는 것을.


    핵심 메시지
    종착역에 멈춰 선 시간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점검과 재정비의 기회다.
    기다림은 공허한 공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과 방향이 서서히 바뀌는 변화의 시간이다.
    끝을 충분히 겪어낸 사람만이 과거를 덜 끌어안은 채, 자신에게 맞는 다음 노선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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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여기가 끝”이라 느낀 사람이라면, 이 글 속 문장들이 자신을 향한 편지처럼 다가올 것이다.
    위로라는 말이 식상하게 느껴졌던 이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공감과 숨 쉴 틈을 얻을 수 있다.
    조급한 재출발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동행이 되어줄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