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어 학교폭력의 문제를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 단위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담당하게 된 2020년 초기부터 저자는 몇 년간 두 곳의 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전담변호사로 근무하며 현장에서 학교폭력의 실제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500여 건의 학교폭력 사안을 살폈고, 200여 건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에 직접 참여했으며, 50여 건에 이르는 행점심판 및 10여 건에 이르는 행정소송을 수행했다. 때로는 학교 현장에 직접 방문해 학교폭력과 관련한 현장의 고충을 직접 전해 듣고 법률 자문을 했다.
이 책은 그런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학교폭력전문변호사로서 저자가 현장에서 겪고, 배우고, 고민한 학교폭력의 실제와 해결의 실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고민을 함께 나눈다.
■ 저자 양이림
제7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제주시교육지원청 학교폭력전담변호사,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학생화해중재원 학폭력전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학교 안팎의 학폭 문제를 다루고 해결 방안을 찾아왔다. 현재 법무법인(유한) 민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_ 순천 고등학교 졸업
_ 연세대학교 사회체육, 생물학과 졸업
■ 차례
Prologue
1장__장난이었을 뿐인데
상대방도 장난으로 생각할까
“제발 별명 부르지 마”
친한 사이라면 욕도 괜찮을까
내 것과 네 것의 경계선
빌려준 돈을 받았을 뿐이에요
도박, 시작은 쉬워도 끊을 수 없는
양이림 변호사의 한마디
2장__SNS에서 생긴 일
무심코 보여준 사진 한 장
그런 건 보고 싶지 않고 불쾌해요
혼자 즐기는 몰카라도
합성 사진 놀이를 하는 동안
서연이의 SNS가 부러웠어요
설마 내가 저격당할 줄이야
양이림 변호사의 한마디
3장__먼저 잘못했다는 이유로
폭력은 결코 대화가 아닙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해”
직접 가해하지 않았지만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했을 때
정당방위라는 항변
폭행보다 아픈 상처
양이림 변호사의 한마디
4장__이별을 배우는 시간
성적 호기심과 스킨십 사이에서
우리가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합니다
양이림 변호사의 한마디
5장__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뒷담화만 했다는 변명
생김새가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
다름은 있어도 차별은 없는 삶
우리 팀은 늘 그랬다는 말
전통이라고 다 옳은 걸까
양이림 변호사의 한마디
Epilogue
실제 빈번하게 발생하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그 일상적 행동들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 친구와 갈등의 과정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타인과의 사소한 다툼들이 어떻게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지, 왜 그것이 학교폭력인지 실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괜찮은 장난은 없다
장난이었을 뿐인데
상대방도 장난으로 생각할까
“친해서 이해할 줄 알았어요”
“광수와 중학교에 들어와서 같은 반이 되어 친해졌어요. 제가 치는 장난도 잘 받아주고 성격도 잘 맞아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도 서로 잘 놀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광수가 저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광수가 제게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서로 친하게 지내고 맨날 같이 레슬링 놀이, UFC 놀이 이런 걸 했는데, 이제 와 서 학교폭력이라뇨? 저는 광수랑 친하고 서로 편하게 장난도 치고 지내는 사이라 그냥 장난을 쳤을 뿐인데 그걸 학교폭력이라고 신고하다니, 광수한테 배신감이 들고 너무 억울해요.”
“왜 장난으로 받아주지 않나요”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됩니다. 흔히 남자아이들은 서로 장난도 치고 놀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장난도 정도가 심하거나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럼 장난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까요? 장난이 무엇인지 알면 왜 장난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는지도 깨달을 테니까요. 장난이란 무엇일까요? 장난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주로 어린 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짓궂게 하는 못된 짓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장난이란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궂고 못된 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난이라는 행위 자체가 ‘짓궂고 못된 짓을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장난이 상대방에게는 결코 기분 좋은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재미로 혹은 무심결에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때로는 장난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장난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는지 좀 더 살펴볼까요? 우리가 흔히 하는 장난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행위가 아니기에 언제라도 상대방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언제 장난이 폭력이 아닌 장난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그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장난은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행위가 아니기에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반대로 상대방이 기분 나쁘거나 불쾌해하지 않는다면 장난이 폭력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상대방은 언제 장난이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지 않게 느낄까요? 장난이 장난에 머무르는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는 무엇보다 장난의 방향성에 있습니다.
말이 어렵나요? 쉽게 말하면 장난은 서로 같이 쳐야 장난이지, 혼자만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장난이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폭력입니다. 만약 광수가 장난도 잘 받아주고 서로 놀이로 장난을 주고받은 것이라면 아마 광수가 그토록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왜 광수는 피해를 호소하고 영식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을까요? 광수가 자기와 같이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영식이 혼자 주로 광수에게 일방적인 장난을 쳤고, 그 장난을 영식이는 장난으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괜찮은 장난은 없다
상대방은 언제 나의 행동이 장난이 아닌 폭력이라고 느낄까요? 때로는 일방적인 장난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은 장난이라도 그 정도가 심하면 상대방은 폭력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상대방에게 장난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도의 피해를 주는 행위라면 그건 장난이 아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내게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내가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내 행위가 장난인지 폭력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주먹으로 내 배를 때린다면, 상대방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마주칠 때마다 ‘헤드락을 한다면, 상대방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UFC 놀이를 한다며 내 팔을 비틀어 꺾는다면, 상대방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앉으려고 하는데 의자를 빼서 엉덩방아를 찧게 한다면 과연 나는 “장난이니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을 알고 있죠? 이 속담은 장난이 왜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무심코 한 장난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피해와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친하다는 이유로, 재미로, 혹은 무심코 한 많은 장난이 상대방에게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과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난 그 자체는 항상 상대방에 대한 침해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장난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친구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쯤에서 광수의 마음을 한번 알아볼까요?
광수의 마음
광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는 영식이를 중학교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어요. 같은 반이 되었는데 성격도 밝고 활발하고 운동도 잘해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식이가 말을 걸거나 장난을 쳐도 잘 받아주었더니 영식이랑 금방 친해져 자주 어울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식이의 장난 횟수와 강도가 심해졌답니다. 광수는 친한 친구로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며 지내기를 원한 건데, 장난을 편하게 받아주다 보니 광수가 편해진 건지 말을 함부로 하고, 날이 갈수록 장난이 심해졌답니다. 영식이가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볼 때마다 헤드락을 걸고 넘어뜨리고 레슬링 기술을 하면서 광수에게 탈출해보라고 하고, 괴로워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면 더 심하게 기술을 걸고 해서 너무 힘들었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UFC 놀이라며 다리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암바 건다고 팔을 꺾고, 또 탈출해보라고 하고, 로우킥이라면서 발로 허벅지를 차기까지······.
“저는 어느 순간 너무 아프고 힘들어져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영식이는 장난인데 왜 그래, 너도 하면 되잖아, 라면서 제 말을 무시하고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식이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나는 영식이 장난 상대, 심심풀이 상대구나. 너무 화가 나고 슬펐어요. 그저 장난이었다고요? 영식이가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너랑 한 번도 장난을 친 적이 없다고, 나는 언제나 네 폭력의 피해자였다고.”
영식이는 광수의 마음이 이해되나요? 아직도 그저 장난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서로 장난을 친 것뿐이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영식이가 처지를 바꿔 자신의 지난 행동들을 곰곰이 되새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광수라면 과연 나는 그 모든 행동이 그저 장난이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습니다. 장난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영식이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장난이 아니라 피해자였을 뿐
무엇보다 먼저 광수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식이의 잘못된 행동으로 광수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면, 지난 자신의 행동이 장난이었다는 핑계로 자신의 잘못 을 회피하지 말고, 광수에게 자신이 미처 광수의 고통과 상처를 살피지 못했음을 늦게라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실수를 합니다. 하물며 성인도 그런데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많은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은 오죽할까요. 중요한 것은 실수와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잘못을 통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배우 고,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쪼록 이번 일을 계기로 영식이가 광수에게 한 자신의 행동이 잘 못된 것임을 깨닫기를, 그 잘못을 인정하고 광수에게 사과를 구하기를, 앞으로는 광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SNS에서 생긴 일
합성 사진 놀이를 하는 동안
“다들 장난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영이는 요즘 너무 힘들고 괴롭답니다. 얼마 전에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되었으니까요. 요즘 애들 사이에서 ‘지인 능욕이라고 유행하는 놀이가 있지요. 마음에 들지 않거나 놀리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그런 여러 이유로 친구들끼리 하는 사진 합성 놀이입니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얼굴 사진을 캡처해서 얻고 그 사진과 인터넷에서 떠도는 다른 사진들, 예를 들면 나체 사진, 몸매나 성적 특징이 도드라진 사진, 우스꽝스러운 사진, 돼지, 파충류 등 혐오감이 들게 만드는 동물 사진 등에 그의 얼굴을 합성하는 겁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 앱을 통해 쉽게 합성할 수 있지요. 그걸 진영이와 진영이 친구들이 돌려 보면서 웃고, 조롱하기도 하며 놀았답니다.
사실 진영이도 이게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건 알았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렇게 하니까, 하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우리끼리만 웃고 즐기는 거니까 괜찮겠지 싶어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저는 정말 그게 범죄인 줄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장난 뒤에서 고통받는 사람
진영이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을 해서 굉장히 곤란한 지경에 처했네요. 네, 그렇습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그것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도 모른 채 ‘지인 능욕이라는 사진 합성 놀이가 재미, 장난이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학교폭력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처벌법에 의해 아주 무겁게 처벌되는 성폭력범죄에 해당합니다.
성폭력처벌법은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 · 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 · 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영상물 등의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 · 합성 또는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진영이와 친구들이 한 행동은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사진)을 그 친구의 의사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 · 합성한 행위로 이 법률에 따라 최대 5년의 징역에 처하거나 5천만 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그 행위를 상습적으로 한 경우에는 최대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는 중대한 성폭력범죄입니다.
본인이 합성하지 않았다고요? 직접 합성하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합성하지 않고 다른 친구가 합성했다고 해도 진영이가 그 합성된 사진을 다른 친구에게 전송했다면 진영이 또한 그 사진을 직접 합성한 친구와 마찬가지로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최대 5년의 징역에 처하거나 5천만 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그 행위를 상습적으로 한 경우에는 최대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합성하지 않았고 전송도 하지 않았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설사 사진을 직접 합성하지 않고 전송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정한 경우 학교폭력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직접 합성하거나 전송하지 않았다면 성폭력범죄로는 처벌받지 않을 수 있지만, 단톡방 등에서 그 사진을 같이 보며 그 상대방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경우, 합성과 전송하는 친구에 사실상 동조한 경우 등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렇게 심각한 범죄인 줄 몰랐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진영이와 친구들의 행위는 정말 심각한 범죄에 해당합니다. 우리 법은 그와 같은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고 아주 강한 처벌을 할까요? 무엇보다 그와 같은 행위는 피해자에게 심각한 성적 수치심, 모멸감 등의 정신적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와 같은 행위는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볼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내 얼굴 사진을 이용해 나체 사진 등과 합성해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을 만든다면, 그 사진을 통해 내가 누군가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면,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그 사진을 돌려보며 나를 성적 대상으로 능욕하고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만든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누군가 내 어머니, 누나, 여동생의 얼굴 사진을 이용해 그와 같은 행위를 한다면 어떨까요? 이제 이해되나요? 진영이와 친구들이 무심코 즐거움을 위해 한 그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정신적 고통을 주는지 이해가 되었나요? 더 큰 문제는 그 사진이 언제까지, 누구에게까지 전파될지 알 수 없고, 그 사진의 전파를 사실상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피해자의 피해가 중단되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시기, 범위까지 피해가 확대되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영상물은 한번 찍으면 그것을 지우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영속성, 누구나 쉽게 복제 가능하다는 특성, 인터넷 혹은 모바일 환경을 통해 누구에게나 쉽게 전파 가능하다는 강력한 전파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한번 그 범죄의 대상이 된 피해자는 언제 그 피해가 중단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피해에 노출됩니다.
더 큰 피해를 막을 용기를
누군가 내 얼굴 사진을 도용해 음란한 나체 사진과 합성합니다. 내 친구들이 그 사진을 돌려봅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며 나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 사진을 합성한 친구들이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수치스러운 사진이, 나를 모욕하고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 그 사진이 여전히 인터넷 공간, 모바일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고 돌아다닙니다.
학교, 학원에서 누군가 힐끔거리는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도 누군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다고 하지만, 나의 피해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나의 피해는 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걸까요? 언제까지 이 고통 때문에 힘들어야 하나요? 가볍게 생각하고 장난이라고 생각한 행위가 상대방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최근 이와 비슷한 행동,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우리 학생들은 그것이 아주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진영이와 친구들 그리고 모든 학생이 그와 같은 행동의 심각성을 깨닫고 당장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주변 친구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말려야 합니다. 말려도 듣지 않으면 그런 행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무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아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한 친구들을 신고해서라도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잘못했다는 이유로
직접 가해하지 않았지만
초대되어 같이 있었을 뿐이라고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는 현아. 학교폭력으로 신고 되었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학교에 친한 친구 다섯 명 정도가 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친한 친구 무리가 있고 그냥 아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 친구들과 같이 밥 먹고, 놀러 다니곤 하지만 주로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시지, 인스타그램 DM 등 SNS를 통해 많은 것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내죠. 그런데 얼마 전 집에 있는데 갑자기 단톡방에 초대되었어요.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인애가 보낸 거라서 들어가 보았더니 거기에 저희 무리가 다 있었어요. 그런데 보니까 처음 보는 이름이 있는 거예요. 뭐지? 하고 상황을 좀 지켜보니까 그 친구가 저희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수지 욕을 그렇게 하고 다녔나 봐요. 예전에 수지와 알고 지내던 아이인데, 서로 다투고 멀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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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저기서 수지를 욕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렸답니다. 그래서 수지가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하니 인애가 단톡방을 만들어 그 친구를 초대했습니다. 인애는 수지를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따지고, 잘못을 사과 받게 해주고 싶었던 거겠죠. “그렇게 단톡방에서 인애가 주도해서 그 친구에게 왜 그렇게 수지욕을 하고 다니는지 따지는데, 그 친구가 너희들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비아냥거리고, 말도 함부로 해서 분위기가 좀 나빠졌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욕 비슷한 심한 말도하고, 조롱하고, 사과하라고 강요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현아는 사실 그 친구와 수지 일도 잘 모르고, 방에 늦게 초대되어 상황도 잘 모르고 해서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답니다. 친구들이 나서서 인애를 도와주는데 현아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으니 친구들에게 동조해주는 의미로 ‘ㅋㅋ라고 하거나, ‘그러게 ㅋㅋ, ‘존나 웃기네같은 톡을 몇 번 했답니다. 그렇게 그날 단톡방은 마무리되었답니다. “사과를 받은 건지 받지 않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친구가 어느 순간 단톡방을 나갔고, 친구들이 그 친구를 다시 계속 초대하자 그 친구가 결국 들어와서 미안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끝났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기억에서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선생님께서 부르신 거예요. 학교폭력으로 신고되었다고. 들어보니 그 친구가 그날 단톡방에 있었던 저희 친구 모두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냥 그 방에 초대받고 들어갔을 뿐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번 ‘ㅋㅋ 했을 뿐인데, 학교폭력이라니요?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학교폭력이라니요
당황스럽고 억울한 것 같네요. 사실 현아는 자기가 특별히 그 친구에게 뭔가 폭력적인 말이나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과연 그런 건지, 현아의 생각처럼 현아는 정말 아무런 잘못도 한 일이 없는지, 억울하게 신고당한 것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우선 인애를 비롯한 현아 친구들의 행동은 ‘사이버폭력으로 학교폭력에 해당합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사이버폭력이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따돌림과 그 밖에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해,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메시지, 인스타 DM, 댓글 등 인터넷, 모바일 환경 이른바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사이버폭력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애와 친구들은 카카오톡 단톡방이라는 사이버공간에서 사과를 강요하고 욕설과 조롱을 하는 등으로 상대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준 것이므로 그들의 행위는 학교폭력입니다.
저는 아니라고요? 현아는 특별히 그 친구에게 사과를 강요하거나 욕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요? 그렇습니다. 현아가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은 분명히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은 학교폭력이 아 니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학생이란 가해자 중에서 학교폭력을 행사하거나 그 행위에 가담한 학생을 말한다“고 규정해, 어느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학교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학생의 행동이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그 학생 또한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아의 행동이 인애를 비롯한 친구들의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 현아 역시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 행위를 해야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될까요? 현아의 행동은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학교폭력예방법은 가담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되는지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기에, 형법에서 말하는 ‘공동정범과 ‘공범 특히 ‘방조범에 해당하는지를 그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조하거나 가담하거나
우리나라 형법은 범죄를 ‘함께실행한 자를 ‘공동정범이라고 하여 여러 명이 하나의 범죄 일부를 나누어 맡아 실행하더라도 각자의 행위를 초과한 다른 모든 공동정범의 행위 전부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만약 현아의 행동이 인애와 친구들이 행한 사이버폭력을 함께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즉 친구들의 행동에 동참한 것으로 평가 된다면, 이는 학교폭력을 직접 행사한 것이거나, 그들의 행동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되어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될 것입니다. 한편, 형법은 범죄를 직접 실행하거나 그 실행에 참여한 사람뿐만 아니라 범죄를 직접 실행 · 참여하는 자를 유형, 무형의 방법으로 범죄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이른바 ‘방조범 역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범행을 방조한다는 것의 의미를 ‘범죄를 직접 실행하는 자를 도와 범죄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유형, 무형의 모든 행위로 아주 폭넓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아의 행동이 친구들의 학교폭력을 ‘함께한 것으로 평가되지 않더라도 친구들의 행동을 ‘도와준 것으로 평가된다면 그 역시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에 해당되어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그에 따른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아는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인가요, 아닌가요? 우선 현아가 처음부터 상대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거나 혼내주려거나 하는 의도 목적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했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만약 그렇다면, 즉 처음부터 현아가 그런 의도 · 목적을 알고 그 단톡방에 참여했다면, 현아가 그 단톡방에서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요. 다행히 현아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인애의 초대로 단톡방에 초대된 것이므로 현아가 그 단톡방에 있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단순히 그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사정 혹은 친구들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현아의 행위를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폭력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는 현아 또한 일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고, 그 행위가 다른 친구들 행동에 동조한 것 혹은 참여한 것으로 평가될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현아는 스스로 언급했듯이 친구들의 행동에 ‘동조하는 의미로 친구들이 상대에게 따지고, 사과를 강요하고, 조롱하고 욕설하는 말을 하는 중간중간 ㅋㅋ 그러게 ㅋㅋ 존나 웃기네 등의 톡을 했습니다. 현아 입장에서는 상대를 욕하거나 비난,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어 의미 없이 쓴 톡일 수 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갑자기 누군가 초대해서 단톡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따집니다. 잘못했으니 사과하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욕을 하며 비아냥거립니다. 자기들끼리 ㅋㅋㅋ 거리고 서로 웃습니다. 상대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욕설을 한 아이는 상처를 준 아이이고, 그저 ㅋㅋㅋ 거린 아이는 동조한 아이는 상처를 주지 않은 아이일까요? 상대에게는 그 방에 있던 친구들 전부가 ‘단체로, ‘집단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비록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현아 또한 친구들 행동에 동조하고 참여했습니다.
혹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속담은 사전적 의미로는 ‘겉으로 위해주는 체하면서 속으로 헐뜯는 사람이 더 밉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흔히 직접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곁에서 동조하고 동참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밉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제국주의에 편승해 동포를 괴롭힌 사람들, 이른바 학교 일진과 함께 다니면서 그 위세를 빌어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빗대어 사용할 수 있겠죠. 그 단톡방에 있었던 그 상대 친구에게는 현아가 ‘말리는 시누이였을 수 있습니다.
만약 현아가 정말 친구들 행위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 방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친구들의 행동을 말려야 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면 적어도 동조하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현아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현아의 그런 행동 역시 친구들 행동 못지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현아의 행동 역시 얼마든지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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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