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의 삶 자체를 한 번에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예술은 더 이상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예술작품이 당대 사회로부터 현재 우리들의 시대까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예술사를 총제적으로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고 아름다운 미술수업〉은 그래서 탄생했습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박물관에 들어선 것처럼 거장의 원작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한눈에 감상하면서, 동시에 화가의 생애에 얽힌 이야기까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면 이보다 재미있고 풍성하며 아름다운 수업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열림원어린이’가 〈작고 아름다운 미술수업〉에 여러분을 초대하는 이유입니다. 첫 번째 주인공 르누아르에 이은 다음 예술가는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반 고흐는 진실한 사람들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했으며 그들을 향한 애정으로 작품을 가득 채웠습니다. 또한 그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색채를 과감히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책은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반 고흐가 다양한 직업을 거쳐 진정한 화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담아냈습니다. 또한 남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고갱과의 우정과 반목에 따른 반 고흐 정서의 변화 등 예술가의 일생을 따라가며 시기에 걸맞는 주옥같은 작품을 수록하여, 그의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인 여러 상황과 그가 거주하던 지역적 특색에 따른 작품의 변화까지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 코너는 마치 뮤지엄에 도착한 것처럼 생생한 감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고 아름다운 미술수업〉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가 위대한 작품의 큐레이터가 되어보고 커다란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 그림/만화 반 고흐
그루스 준데르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 화상점원,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1881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주로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 모습과 주변생활과 풍경을 담았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로 온 고흐는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 등과 알게 되었다. 고흐는 인상파의 밝은 그림을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그림을 마구 그렸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
미국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칼리지 오브 아트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 서 예술학으로 학사 학위를, 타우슨 대학교 Towson University에서 예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전시회를 가졌고, 1995년에는 장편소설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을 발표하여 작가로 등단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단국 대학교에서 ‘미술사’ ‘서양 미술사’ ‘미학특론’, 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에서 ‘소설창작실습’ ‘소설론’ ‘아동문학’을 강의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작고 아름다운 르누아르의 미술수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린이와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 차례
그리운 고향집 8
감자 먹는 사람들 28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40
노란 집 54
우체부 룰랭 66
해바라기 78
붕대를 감은 반 고흐 90
별이 빛나는 밤 102
반 고흐는 누구인가요? 118
반 고흐 미술관 122
세계적인 미술가의 깊고 감동적인 예술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설가이자 화가인 김미진 작가가 한 편의 동화로 엮은 예술가의 삶과 원작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불별의 거장 반 고흐
작고 아름다운 고흐의 미술수업
반 고흐는 누구인가요?
빈센트 반 고흐는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예요. 빈센트가 이름이고, 반 고흐는 성이에요. 화가들은 그림에 서명할 때 자신의 성을 사용하지요. 그러나 반 고흐는 ‘빈센트라고 서명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반 고흐를 발음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가 화랑 점원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 때의 일이에요. 그 뒤 서점 직원, 선생님, 전도사 같은 직업을 전전했어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스물일곱 살 때였어요. 그 순간부터 모든 열정을 그림에 바쳤어요. 고독과 헐벗음과 헌신으로 일관된 생활이었지만 반 고흐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반 고흐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반 고흐를 미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며 업신여겼어요. 반 고흐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준 사람은 동생 테오예요. 테오는 형을 이해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어요. 동생의 사랑이 없었다면 반 고흐는 너무 외롭고 힘들었을 거예요. 그토록 뛰어난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을 거예요.
이 천재 화가는 별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보며 죽음의 계시를 들은 걸까요? 1890년 7월 27일, 반 고흐는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어요.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이었지요. 형의 죽음은 테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어요. 6개월 뒤, 슬픔에 잠겨 있던 테오 역시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비록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도르 반 고흐 형제의 이야기는 별처럼 아름다운 신화가 되었어요.
평생 동안 가난과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던 반 고흐. 그는 단 한 장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불운한 화가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서 그림 값이 가장 비싼 현대 화가이고, 그의 그림들은 유명한 미술관마다 가장 좋은 위치에 걸려 있어요. 이제 위대한 화가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반 고흐 미술관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0.7x65.3cm, 크륄러-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1888년 9월 중순경 완성된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외로움을 달래고 영혼의 기반으로 삼았던 공간이 이 카페였음을 조용히 말해 주어요. 아를은 남프랑스의 전원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번화가의 화려함은 전혀 없었고 사람들의 생활은 몹시 고요했을 거예요.
반 고흐는 걷거나 책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반면에, 고갱은 스포츠 등의 활발한 취미 활동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지요.
이 작품에는 벗이 필요했던 반 고흐에게 특별한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잘 나타나 있어요. 푸른 하늘빛과 반 고흐 특유의 노란 인공 불빛 표현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작품으로, 저기 카페 앞에 어디쯤 이젤을 놓고 앉아 있었을 반 고흐의 고독한 뒷모습이 저절로 상상되는 구도가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x91cm, 푸시킨 미술관, 모스크바
반 고흐는 1888년 상반기에 화려한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로 옮겨 갔어요. 이 일은 도심으로부터 프로방스로 이동한 거리만큼이나 작품 세계의 큰 변화를 이끌어 낸 계기가 되었답니다. 반 고흐는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이 과감하게 사용된 이 작품을 동생 테오에게 소개하면서, 석양에 물들어 온통 와인 느낌이 된 포도밭을 그린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항상 빚을 지는 마음을 가졌던 그가 감사의 의미를 담아 탄생시킨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반 고흐 생전에 동생 테오도르 반 고흐에 의해 판매가 이루어진 유일한 작품이에요. 벨기에의 화가 안나 보쉬가 구입했고, 이후 러시아 사업가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게 되면서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전시되기에 이릅니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x92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여름밤의 낭만적인 강변을 표현한 이 작품을 두고 반 고흐는 여동생에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푸른 밤, 카페의 테라스에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태우고 있단다.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이지. 그곳에서 밤을 그릴 때면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단다. 창백하고 옅은 하얀 빛은 평범한 밤의 풍경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이야. 까만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한 것이란다. 그리고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채웠단다. 하늘에 별을 그려 넣는 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이 설명을 통해 우리 또한 행복한 마음이 매우 풍부하게 깃든 작품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5x103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상당히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하늘이 인상적인 반 고흐의 대표작이에요. 길은 막다른 모양으로 표현 되어 있고, 까마귀는 불길한 어두움을 상징하는 느낌이 들지요. 오늘날의 미술 감상객들은 이 작품에
서 반 고흐 삶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불길함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 이후로도 여러 작품을 창작했어요.
이 작품은 반 고흐 특유의 고독한 서러움이 강렬하게 표현됐던 것으로 추정되어요. 그러면서도 반 고흐가 평소에 즐겨 그렸던 조용하고도 소박한 전원적인 시골 공간과 그 소재 그리고 특유의 질감이 건강하게 느껴지는 면도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가셰 박사의 초상
1890년, 캔버스에 유채, 68.2x57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90년 5월경에 반 고흐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 우아즈에 갔어요.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의사 폴 가셰 박사는 반 고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그의 치료 의사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해요. 또, 직접 반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지요.
가셰 박사는 당시 60대의 나이였는데 그는 젊은 시절부터 마네, 세잔 같은 예술가들과 우정을 나누었지요. 반 고흐는 이 의사가 손에 약초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붓질은 상당히 힘 있게 했던 것으로 보여요. 특히 머리카락의 모양과 청색 계열의 상의 등을 통해 가셰 박사의 능동적이고 열의 있는 한 단면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아를의 침실, 첫 번째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2.4x91.3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반 고흐는 아를의 침실 그림을 총 세 작품 남겼어요. 첫 번째 작품은 1888년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림은 1889년 생 레미 요앙원에서 생활할 때 그렸지요. 1888년 작품의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마루의 색이에요. 바닥이 깨끗하고 색깔도 매우 선명하지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 고흐는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 시트와 베개는 라임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라고 표현했어요. 첫 번째 침실 그림은 친구 고갱에게도 칭찬받은 작품이랍니다.
아를의 침실, 두 번째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6x92.3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고갱과 함께 자신의 노란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는 것은 반 고흐에게 매우 즐거운 나날들이었 어요. 그러나 고갱과 크게 다툰 뒤 그가 떠나가자, 반 고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몸에 상처를 입혔어요. 그 일로 마을에서 쫓겨난 뒤 요양원에 가게 되었지요.
요양원에서 그린 두 번째 침실 그림을 보세요. 마루의 색이 벗겨지고 꽤 낡았어요. 자신의 그림을 비난하던 고갱과의 불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화 가로서의 재능, 팔리지 않는 그림, 요양원 생활의 우울함 등이 그림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아를의 침실, 세 번째
1889년, 캔버스에 유채, 57.3x73.5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마지막 침실 그림 역시 요양원에서 완성한 작품이에요. 이 그림은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른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한 선물이라는 점이랍니다. 비교적 크기가 작지만 가구나 사물들의 배치는 거의 같지요.
친구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이 그림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요. ‘생기 없어 보이는 색깔의 벗겨진 바닥, 흐린 남보라색 벽, 붉은 색 침대 커버 등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설명이에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반 고흐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침대 옆에 걸린 액자를 보세요. 사랑하는 여동생의 초상화와 말쑥하게 면도한 반 고흐 자신의 초상화가 나란히 있어요. 어려운 일을 겪고 힘겹게 살고 있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듯하지요. 이렇게 그림을 보는 지금의 우리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향한 반 고흐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답니다.
자화상
1889년, 캔버스에 유채, 57.7x44.5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워싱턴 DC
반 고흐는 다른 사람도 많이 그렸지만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1890년에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도 반 고흐는 계속해서 자화상을 그렸는데, 주로 거울을 보고 그렸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실제 그리던 때에 그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과 반대 방향으로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반 고흐의 모순되고도 뒤집어진 내면의 흐름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반 고흐는 왜 그렇게 자화상을 많이 그렸을까요?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면밀히 관찰하고, 치열하게 자아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가혹한 학대에 가까우리만큼 자신의 빈틈이나 변화를 엄격하게 들여다보던 완벽주의자는 아니었는지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외에도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고갱을 위해 그린 반 고흐의 자화상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답니다.
꽃 피는 아몬드나무
1888년, 캔버스에 유채, 54x65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마을에서 쫓겨나 생 레미 요양원에 들어간 반 고흐는 몸과 마음이 매우 쇠약한 중에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도착했어요. 테오는 편지에 ‘형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어. 그 아이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하게 크도록 소원도 빌었어.라고 적으며 기쁨을 전해 왔답니다.
이 그림은 조카에게 줄 선물로 그린 작품이에요. 아몬드꽃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이른 봄에 핀다고 해요. 아를 시절부터 수많은 꽃나무를 그린 반 고흐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꽃과 꽃봉오리를 관찰해서 그린 작품도 이토록 밝은 색을 사용한 작품도 유일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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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